더불어민주당 20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이재명 후보가 최종 선출되었다. 경쟁의 과정은 엎치락뒤치락해야 관전의 맛이 있는데, 이재명 후보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50% 이상씩 득표하며 일찌감치 민주당 후보 경선의 김을 빼놓았다. 대장동 사태가 터지며 위기를 맞는 듯했으나 국민의 힘이 알아서 물 타기를 해 줌으로써 "일단" 위기는 넘긴 듯하다.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는 누가 더 가점(加點)을 많이 받느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된 선거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특유의 친근한 매력에, 故 노무현 前대통령 가점과 촛불 가점까지 두둑이 챙
지금부터 나는 궤변을 늘어놓을 것이다. 작금의 시대는 바야흐로 가짜 뉴스가 판치는 궤변의 시대이다. 사람들은 사실과 무관하게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글은 논리로, 자신에게 해가 되는 글은 궤변으로 인식한다. 내가 대놓고 궤변을 늘어놓겠다고 한 이유는 나의 논리를 궤변으로 인식할 사람들을 위한 작은 배려다. 이 글이 그대의 이익을 침해할 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지어다. 이 글은 그저 궤변일 뿐이니…작정하고 궤변을 쓰려고 보니 궤변의 달인, 변某 씨의 심정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무플보다 악플이라고
# 인간과 자연의 분리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고 있는 지구의 불행은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분리되면서 비롯되었다. 애초에 인간은 자연에 속한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에서 이탈했다. 그 계기는 유발 하라리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극이라 칭했던 농경이 제공하였다. 인간은 농경이라는 생산관계의 대상이 된 자연을 관찰하고, 연구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이성을 가진 유일한 존재로 성장했지만,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저절로(自) 된 그대로(然)의 현상”인 자연을 오로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대상으로 착각하게 되었다. 인간의
네거티브 사회에는 지지와 반대만 있을 뿐, 그 실체가 없다. 이익이 곧 생존이 되어 버린 사회,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설 수는 없는 사회에서 지지와 반대는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시민의 승패가 단지 쪽수에 의해 결정된다면, 우리는 과거, 그 어느 시대에도 쿠울~하게 패배를 인정했어야 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의 탄핵을 부결시켰다면, 박근혜의 탄핵을 주장한 이들 중 “법의 판단이니 냉정하게 따르자.”라고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가끔씩 지지와 반대의 명분으로 소환되기도
Pre Script.하버마스에 이어 독일을 대표하는 사회학자로 떠오르고 있는 '니클라스 루만'은 모든 사회체계(전문성?)은 사회의 필요성으로 인해 출발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확대재생산에만 몰입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최근 평교사 출신 국회의원인 강민정 의원(열린민주당 비례 대표)의 "국가, 지자체 책임 온종일 돌봄 특별법" 발의를 보며 전문성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강민정 의원은 "교육은 학교가 전담해야 하지만 돌봄은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말꼬리를 잡고자 하는 의도는 없지만, 그렇다
경기가 어려울 때마다 정부가 해결책으로 들고 나오는 정책이 바로 뉴딜이다. MB도 뉴딜을 이야기했고, 문재인 정부도 얼마 전 “한국형 그린 뉴딜”을 발표했다. MB는 누가 봐도 4대 강 헤짚기라는 대규모 토목 공사를 일으키기 위해 뉴딜을 이용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로 인한 경기 침제를 극복하기 위해 환경 문제와 뉴딜을 접목시킨 것으로 보인다. 늦은 감은 있으나 환경 문제를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방향성은 바람직해 보인다. 하지만 MB의 뉴딜이나 문재인 대통령의 뉴딜이나 알맹이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Pre Script.최근 책을 하나 쓰고 있어서 칼럼 연재의 속도가 더딥니다. 당분간 양해 부탁드립니다.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는 누가 봐도 사이코인 동화작가 ‘고문영(서예지 분)’이 등장한다. 인간에게 있어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왜곡된 관계는 때때로 가식으로 치장된다. 의미 없는 관계를 지키기 위한 가식이 난무한 사회에서 진실은 오히려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영화, “완벽한 타인”은 진실이 우리를 얼마나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관계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을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해
코로나가 장기화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팬데믹 종료를 선언하려면 추가 확진자 없이 2개월이 지나야 한다. 오늘부터 확진자 수가 제로라고 해도 9월 이후가 되어야 포스트 코로나에 진입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로 시작한 2020년, 코로나로 끝을 맺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 우리는 post-코로나에 대한 준비가 아니라 peri-코로나에 대한 대응으로 전략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pre-, peri-, post-는 주로 의학 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증상에 대한 처방 이전, 치료를 위한 처방의
백수가 아니었을 땐 별로 활동을 하지 않던 나의 JQ(잔대가리)가 현재 백수 상태인 나를 지키기 위해 미친 듯이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피곤한가? 과거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것 같다. 이른바 담배를 끊으라는 주변에 압박에 대응하기 위한 흡연의 정당화다. 비교육적이지만 얼마 남지 않은 끽연가들을 위해 그중 하나를 소개한다. 100세를 넘기는 것이 쉽지 않던 시절, 시골의 한 할머니가 100세를 넘겼다고 해서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매스컴에서 찾아가 장수의 비결을 물었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거, 담배들 끊어! 난
코로나19가 촉매가 되었을 뿐,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인해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이미 “뉴노멀(New Normal : 새로운 생활표준)이라는 이름으로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닥쳐올 미래는 과거와 어떻게 다를까? 불확실한 미래를 누가 감히 예측할 수 있겠는가? 뉴노멀 시대를 예측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현실의 질서를 의심하는 것이다. 니체가 중세의 질서에서 벗어나기 위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의 존재를 의심한 것처럼... 우리가 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참 만만한 시대가 아니다. 일단 너무 복잡하다. 도저히 인간의 능력으로는 그 복잡함을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인간은 그 복잡함에 도전해 마침내 인공지능이라는 대체재를 만들어 냈다. 이제 인간은 그 복잡함을 다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 길은 멀다. 아니 갈 길 자체가 안개에 쌓여 있어 보이질 않는다. 나의 경험이, 신념이, 그리고 가치가 그저 복잡한 전체 중의 작은 일부분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 사실에 대한 인정이 자본주의가 만든 가장 중요한 가치인 이
Pre Script.어제 당일치기로 부산에 다녀 오느라 피곤했나 봅니다. 늦은 아침을 차려먹고 있는데 TV에 익숙한 노래가 들려 봤더니 윤선애씨가 "그날이 오면"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6월 10일... 카드값 나가는 날이라 며칠전부터 통장 잔고에만 신경을 썼는데, 오늘이 6 10 민주화항쟁 33주년이네요.지금은 꼰대가 되어 이 사회의 적폐가 되었지만, 그들도, 아니 저도 가슴 뜨거웠던 청춘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 시절 더 치열하게 시대와 맞섰던 사람일수록 더 강력한 꼰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이라는 게 누구나 보상받
Pre Script.채희태의 시대 진단, "가짜뉴스에서 벗어나기" 마지막 편입니다.4. 가짜뉴스에서 벗어나기가짜뉴스는 음모론과 달리 권력을 가진 둘 이상의 악한 의도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또한 가짜뉴스의 생산자는 자신의 주장을 가짜뉴스로 인식하지 않거나, 못한다. 그저 자신의 심리적 생존 즉, 이익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쯤으로 인식한다. 가짜뉴스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무모한 방법은 가짜뉴스에 직접적인 물리력을 가하는 것이다. 물리적 압력을 받은 가짜뉴스의 생산자는 자신의 이익(=생존?)을 지키기 위해 더 강력한 가짜뉴스를 만들어
Pre Script. 필자가 심혈을 기울여 쓰고 있는 가짜뉴스에 대한 진단이 생각보다 인기가 없는듯하여, 이번에는 며칠전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명성에 기대 문화콘텐츠를 통한 시대 진단을 해 보겠습니다. 방심했다. 시청률 정점을 찍고 있는 드라마가 설마 12회 만에 끝날 줄이야. 앞으로 무슨 낙으로 일주일을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일단 일주일에 두 편을 편성하는 기존 미니시리즈의 룰을 깼다. 일주일에 한 편 제작을 통해 드라마의 퀄리티를 높이겠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드라마 설정 상,
“사람들이 속았다는 걸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너무 늦다. 거짓말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을 다 얻은 다음이므로…”- 움베르토 에코 - 3. 이번에는 가짜뉴스의 폐해를 알아보자!가짜뉴스의 폐해는 드라마, “육룡의 나르샤”에 나왔던 삼봉, 정도전의 대사에 잘 녹아 있다. 삼봉 : 신축년, 홍건적이 침입했을 때 개경이 불타고 수도가 함락당했다. 그때 고려를 구한 4명의 영웅이 있었지. 방원 : 예, 정세운, 안우, 김득배, 이방실 장군이었죠. 김득배 장군은 삼봉 선생의 스승 아니셨습니까? 삼봉 : 헌대, 그들 4명이 모두 죽었다. 아느냐?
요즘은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고향이 어디고, 누구 편인지를 먼저 생각한다.- 손호철 - 2. 가짜뉴스가 창궐하게 된 원인은?가짜뉴스가 창궐하게 된 현상적인 원인을 모두 거론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하여 나는 가짜뉴스가 이 시대에 창궐하게 된 본질적 원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글에서도 소개한 『음모론의 시대』에서 전상진은 음모론의 원인을 사회적 고통에서 찾았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사회적 고통이 없었던 시절은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은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고통은 어떻게든
Pre Script. 가짜뉴스에 관한 연재를 다음으로 미루고 잠깐 다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신념’이 현실에 뿌리내리기 위해선 그 신념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 나아가 현실에 구현된 신념이 확산되기 위해선 적절한 ‘인맥’도 필요하다. 이 세 가지가 고루 “균형”을 이룬다면 우리 사회는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고 균형을 이루는 대상이 모두 같은 비율로 존재해야 한다는 기계적 균형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균형은 곧 아름다운 비율을 찾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과학은 적절한 비율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응답하라 1988'을 보며 잊고 살았던 골목을 추억하듯, 이제 코로나 이전의 삶도 영원한 노스텔지어가 되었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인간에게 있어 과거는 언제나 현실의 결핍에 대한 훌륭한 보완재가 된다. 그래서 유행하게 된 말이 있다."라떼는 말이야~"0과 1로 정확히 끊어지는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아날로그 시대를 그리워하지만, 정작 아날로그 시대에 우리는 불편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다. 지금은 그 불편함마저도 그립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