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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송, 등소평, 알 파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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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송, 등소평, 알 파치노
  • 김진욱 기획위원
  • 승인 2019.07.24 1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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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미워하지 마라, 판단을 흐릴 뿐이다

김진욱/시그널 기획위원

 

1.

전설적인 프랑스 사진 작가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있다. 20세기 세계 사진계에서 최고 명성을 누렸다. 로버트 카파와 함께 포토저널리즘 선구자다. 그는 늘 손에 간편하게 쥘 수 있는 소형 라이카를 썼다. 카메라 플래시나 인위적 조명을 쓰지 않았고 사람 눈높이를 벗어나는 시각을 왜곡된 시각이라 여겨 표준렌즈만을 썼다. 인화할 때에도 트리밍이나 클로핑을 거부했다. 그런 그가 처음 사용해서 유명해진 말이 있다. ‘결정적 순간’이다. 사진에서 결정적 순간이란 사물과 작가가 만나는 심리적 순간이다.

 

브레송 작품. 뒤로 보이는 포스터와 뛰는 사람 자세가 절묘하게 조화된 순간을 포착했다.
브레송 작품. 뒤로 보이는 포스터와 뛰는 사람 자세가 절묘하게 조화된 순간을 포착했다.

 

2.

등소평은 1979년 미국을 방문했다. 탁구 외교로 불리는 미국 친중 정책에 따라 닉슨 대통령이 방중한 답방으로 갔다. 그는 158센티 작은 키에 커다란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야구를 관람했다. 미국 지도자들 환심을 사기 위해 온갖 제스처를 썼다. 이때 사진은 유명하다. 이 장면은 서방으로서는 말하자면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들어서는 결정적 순간이다. 미소 냉전 정점에서 같은 사회주의권이자 잠자는 거대한 호랑이인 중국이 미국의 대소 봉쇄에 동참하는 장면으로 비쳤다.

하지만 이게 결정적 순간이라는 건 소련 봉쇄에 중국을 끌어들인 서방 입장이 아닐까. 중국입장에서 볼 때 결정적 순간은 뭘까. 이때 등소평은 미국 안내로 우주 비행 훈련소도 방문했다고 한다. 무중력 상태를 훈련하는 기기를 탔을 때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떠나길 주저했다. 하지만 과연 등소평이 기기를 타는 게 그토록 즐거웠을까. 사실 중국 우주 계획은 장기 추진된 계획이었다. 과학 기술 개혁 항목 중 하나였다. 그는 천진난만한 척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그래서 이 장면이야말로 결정적 순간이 아닐까. 그것은 그의 도광양회 전략을 가장 ‘결정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3.

도광양회(韜光養晦). 힘을 기른다. 자신 재능(뜻)을 숨기고 인내하며 실력을 쌓으며 때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삼국지에서 유비가 조조 식객 노릇을 할 때 살아남으려 몸을 낮추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도록 해 경계심을 풀도록 만들었던 계책이라 한다. 마찬가지로 등소평은 전체적으로 미국 경계를 풀려했다. 도광양회는 등소평 유언으로도 알려져 있다. 향후 50여 년간은 국제 사회에 섣불리 나서지 말고 인내하며 힘을 키우라는 것이다. 미국 패권에 도전하지 말라는 것이다.

중국은 1980년대 개혁·개방정책을 취하며 도광양회를 대외정책 뼈대로 삼았다. 자본주의 국가에 문호를 열고 사유경제를 채택했다. 세계 최대 인구를 바탕으로 한 내수 시장과 싼 인건비로 경제 성장을 유도했다. 결국 2000년대 후반 이후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다. 도광양회는 1990년대 등소평 시기 뿐만 아니라 이후 중국의 가장 중요한 외교방침이 되었다. 도광양회를 기본으로 2003년에는 ‘평화를 유지하며 우뚝 선다’는 화평굴기(和平屈起)를 외교 노선으로 채택했다. 2004년에는 ‘해야 할 일은 한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를 표방하며 국제정치에서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08년 이후 도광양회는 대국굴기로 전환된다. 알다시피 이 전환의 계기가 된 것은 미국 금융위기이다. 2008년 경제위기는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현대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중국도 기존 체제로는 지속적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수출 주도 성장정책을 내수 중심으로 바꾸기 시작한다. 한계에 봉착한, 미국 소비에 의존하던 수출 전략을 바꾸며 중국은 미국중심 현대자본주의 위계질서에서 서서히 빠져나오고자 한다. 그 구체적 정책이 경제적으론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와 일대일로(一帶一路)이고 군사적으론 러시아와의 군사동맹이라 할 수 있다(신재길). 결과 지금은 미·중이 무역전쟁을 치루고 있다.

 

4.

일본이 징용문제를 핑계로 수출품목을 차단하며 한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베의 간단한 언급이 우리에겐 벌집을 쑤셔놓은 형국이다. 이 문제를 기화로 우리 여당 야당은 더욱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옳다 싶은 아베의 기고만장은 극에 달하고 있다. 하지만 크게 보면 이는 미국발 세계 무역 질서 개편 폭풍일 수 있다. 미국에서 시작해 중국을 지나 일본을 통해 불어오는 폭풍이다. 정치적으로는 동북아 기존 전체 지형이 바뀌는 상황을 반영하는 것인지 모른다. 패권 충돌이라는 전체 판이 움직이면서 나머지 판들이 움직이는 듯 보인다. 우발적이지 않기에 이 위기는 단시간 부분적 국면으로 해결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 있다.

위기는 기회일 수 도 있다. 우리는 일본과 1인당 GDP는 엇비슷하고 수출을 80%까지 따라잡았다고 한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부품 소재 산업 국산화 시작 계기가 될 것이다. 물론 GDP는 '1인당'이고 국산화는 당장되지 않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진짜 중요한 것은 정치와 외교가 아닐까. 지속 가능한 경제를 뒷받침하는 게 결국 그것이기 때문이다. 거시적으로 보면 긴장을 풀고 평화를 얻으며 통일을 위한 기초를 닦는 것이 근본 해결책 아닐까. 일본과 갈등은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당장은 분열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내외부 단결을 높일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일본에 대한 대응이 강이냐 온이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내부가 단결하는 것이 아닐까. 여야가 이 문제를 대할 때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면 국민만 힘들어진다. 여당은 야당주장에 귀 기울이고 야당은 정부 대응에 협조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 단결해야지 않을까. 우리끼리 소모적 논쟁은 일본에게만 득이 되는 것은 아닐까. 기존 국제관계가 변동이 생기면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장기 목표를 중심으로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단기적으로는 신중한 대응이 필요할 수 있다고 본다. 일본이 부당하지만 대응은 별개일 수 있다. 싸우더라도 지혜롭게 싸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초반에 싸움 수위를 너무 높여 일본 전체와 싸우는 확전은 불리할 수도 있다. 일본이 아닌 아베와 극우세력을 비판해 일본 안에 우리 편을 많이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 대부 포스터
영화 대부 포스터

 

5.

일본 극우파에 대한 적개심을 숨기고 우리는 배워야 한다. 등소평에게서, 그리고 유비에게서...천진난만한 척, 지는 척,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더 길러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할 수 없이 싸우더라도 전면적 싸움은 준비됐을 때 해야지 않나. 여기에 어쩌면 영화 <대부>에 나오는 알 파치노 대사가 유용할지 모른다. “적을 미워하지 마라. 판단을 흐릴 뿐이다(Never hate your enemies, It affects your judgement)”. 등소평이 중국인들에게 남긴 유훈 역시 유용할지 모른다. '결정적 순간'을 위하여 말이다.

"도광양회(韜光養晦) 재능을 감추고 드러내지 말고, 절부당두(絶不當頭) 절대로 앞장서지 말 것이며, 유소작위 (有所作爲) 해야 할 일만 적극적으로 하라." (등소평)

 

필자: 성균관대 중문과 졸 및 중국 화공대-청화대-하문대 연수(2년). 인포허브, 네오엠텔 등 모바일 IT업계 19년 근무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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