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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새로운 광화문광장에 바랍니다

'비어있는 좌대' 프로젝트를 제안하며

  • 기자명 편집부
  • 입력 2019.07.27 10:46
  • 수정 2019.08.06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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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축조형미술연구소 이철희

한류(韓流)란 말도 어느덧 익숙해졌습니다.

90년대말 한국 가요나 드라마 등을 외국으로 수출하고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열광하면서 나온 신조어이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있던 단어처럼 어색하지 않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전 세계가 인정하고 모방할 만큼 위대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복면가왕, 무한도전 등의 예능 프로도 미국에서 그대로 미국화 하여 방송되는 것을 보면 우리가 모르는 엄청난 DNA가 대한민국에 있는 것 같습니다.

광화문 촛불시민혁명 역시 해외에 영향을 주어 홍콩시민혁명 당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홍콩시민들이 부르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여러방면에서 감동이 느껴지는 시대입니다

이제 곧 변화를 앞두고 있는 새로운 광화문 광장에 빈 조각 받침대를 설치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4번째 좌대를 아시나요?

트라팔가 광장은 런던의 중심가에 위치한 광장으로 항상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거리 예술가들의 다양한 공연들이 펼쳐집니다. 우리나라의 광화문광장과도 비슷한 곳입니다. 정부에 대한 시위가 있을 때, 유명 스타의 공연이 있을 때, 월드컵 같은 대형 스포츠 행사가 열릴 때 많은 시민들이 모두 이 장소에서 모이는 장소입니다 1805년에 있었던 '트라팔가 해전'을 기념하기 위해 광장 이름을 '트라팔가'라고 정하였습니다.

트라팔가 광장에는 1841년부터 지금까지 160여년 넘게 비어 있는 조각상 받침이 있습니다. 제4좌대(fourth plinth), 또는 "빈 좌대"로 불리는 이곳엔 런던시(市) 작품선정위원회의 선정을 거친 현대적 예술작품들이 번갈아 설치됩니다.

설치되었던 작품 중 마크 퀸의 ‘임신한 앨리슨 래퍼’가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2005년 2년여에 걸쳐 전시된 이 작품은 지금까지의 공공조형물과는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마크 퀸은 팔다리가 없는 장애인, 게다가 8개월 된 임산부를 선택했습니다. 주인공은 2006년 한국을 방문했던 구족화가 겸 가수 앨리슨 래퍼입니다. 실제 인물의 3배 정도로 키워진 이 조각은 남성미를 과시하는 청동기마상과 대조되지만 매우 당당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었습니다.

‘네 번째 좌대’ 마크 퀸의 ‘임신한 앨리슨 래퍼’, 2005~2007
‘네 번째 좌대’ 마크 퀸의 ‘임신한 앨리슨 래퍼’, 2005~2007

소외계층인 장애인을 당당하게 작품으로 표현함으로서 미인이나 영웅들만이 공공조각으로 세워진다는 고정관념을 깬 기념비적 작품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대입해본다면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 상이나 이순신 장군 동상의 자리에 이렇게 파격적이면서도 깊은 의미가 내재된 조각이 설치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 좌대’ 프로젝트는 자국 예술가만을 선정하지 않습니다. 독일 출신의 카타리나 프리취의 ‘수탉’이 선정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2013~2015 자신의 작품 ‘수탉’ 모형 앞 작가 카타리나 프리취
2013~2015 자신의 작품 ‘수탉’ 모형 앞 작가 카타리나 프리취

더불어 작가 선정 과정 또한 투명합니다. 런던시는 작가를 선정하기 전 약 6개월간 내셔널갤러리와 시청 복도에서 후보작가들의 제안서와 모형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관람객들은 전시장과 인터넷을 통해서 자신이 지지하는 작품에 투표를 합니다. 이렇게 수집된 여론과 심사위원들의 전문적 소견들을 종합하여 최종 작가 선정을 진행합니다. 투표뿐만 아니라 공청회와 함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됩니다.

'북방의 천사'로 유명한 안토니 곰리는 예술 작품들이 될 사람들을 모집하여 살아있는 사람을 전시합니다. 조건은 한 시간 동안 혼자 서 있어야 한다는 것. 한 시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는 "조각상이 된 사람"이 결정합니다. 단,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입니다. 물론 받침대 옆에는 안전을 위해 그물망도 처져 있습니다.

안토니오 곰리- 살아있는 사람을 설치하는 프로젝트의 모형 2009
안토니오 곰리 - 살아있는 사람을 설치하는 프로젝트의 모형 2009

일반인들을 무작위로 추첨한다는 점, 그리고 전통적으로 정치적 발언의 장으로 활용되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며 상당히 민주적인 프로젝트 였습니다. 한 사례로 당시 그 점을 이용해 한 한국인이‘ MB OUT’ 이라는 정치적 슬로건을 들고 서있기도 했습니다.

곰리의 인간설치프로젝트에 참여한 시민 2009
곰리의 인간설치프로젝트에 참여한 시민 2009

이제 결론을 말하고자 합니다

영국 출신 유명 전시기획자 제임스 링우드의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는 ‘빈 좌대’가 없지 않나요?”하는 지적을 필두로 여러사람이 비어있는 좌대의 필요성을 언급한바 있습니다.

저 역시 “광화문광장에 '비어있는 좌대'가 필요합니다”라는 주장을 합니다. 단지 이목집중, 따라하기 등의 이유로 외국 사례를 빌어 오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빈 좌대는 때때로 시민의 발언대 이기도 할 것이며 우리역사에 있는 신문고 와 같은 맥을 이어가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한국의 혁신적이고 의식 있는 젊은 작가에게 희망의 장이기도 할 것입니다. 나아가 대한민국 의 신진 작가들, 그리고 이 땅의 미래를 책임질 청춘들에게 세계로 나아갈 창을 열어주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비단 미술뿐만 아니라 환경문제, 사회적 이슈 등에 도움이 되고 슬로건이 되는 형상이나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을 전시하는 것도 좋은 방안입니다. 혁신적이고 주목받는 우리나라 현대 인물을 초상조각으로 제작하여 전시하는 것 역시 방안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K-Pop(BTS 열풍 등), 한류, 관광 등 분야의 경계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대한민국입니다.

광화문 광장에 ‘비어 있는 좌대’를 설치하고 활용한다면 우리를 알리는 동시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코리아 컬쳐 테이블(Korea Culture Table)’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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