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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등산의 정의, 장르-등산사회과학(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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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등산의 정의, 장르-등산사회과학(1)
  • 김진욱 업로드
  • 승인 2019.08.0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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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사회과학 - 등산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하여(1)

김성기/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 교수, 체육학 박사

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 교수이자 ‘국내1호 등산박사’인 김성기 교수 기고 글입니다. 흔히 ‘댓가 없는 무상無償의 행위’로 간주되며 변변한 이론체계를 갖추지 못한 등산 활동을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을 원용해 시론적으로 정리하고 산업과 국민 레저 양 측면에서 등산의 과제를 짚어 본 글입니다. 김성기 교수에 대해서는 링크 기사(단병호 사수대 출신, '국내1호 등산박사'의 삶과 산)를 참조하세요. [기획자 주]

 

사진=등반중인 필자 김성기박사
사진=등반중인 필자 김성기박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구조 변혁

19세기 영국 경제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는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을 내놨다. 그에 따르면 1784년 증기기관과 기계식 설비들이 개발되는 기술혁신으로 사회경제 구조는 변혁을 맞이한다. 이 시기 섬유 분야와 제철분야가 급속히 발전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1차 산업혁명이라 한다. 2차 산업혁명은 1870년 전기 사용과 컨베이어 시스템 활용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며 시작되었다. 3차 산업혁명은 1960년대 반도체와 메인프레임 컴퓨팅 개발과 1970년대 개인용 컴퓨터 개발, 그리고 1990년대 인터넷 발달로 컴퓨터를 통한 ‘자동화 시스템’을 이룬 혁명이라 한다.

4차 혁명은 물리적 공간과 사이버공간을 포함한 생물학적 영역 간 경계가 없어지는 기술 융합이 이루어진다. 사이버 물리시스템(Cyber – physical system, CPS)이다. 산업 장비, 의료기기, 로봇 등 현실 속 제품인 물리적 체계(Physical System)와 인터넷 가상공간을 뜻하는 사이버 체계(Cyber System)가 네트워크로 연결된다. 데이터 분석과 활용으로 모든 사물은 지능을 갖춘 사물인터넷(IOT)으로 진화한다. 소프트파워를 통한 ‘제품 지능화’를 이룬 변혁이 4차 산업혁명이다. 요컨대 우리는 농경과 가내 수공업 시대를 넘어 증기기관을 통한 ‘기계적 혁명’을 거치고 전기힘을 이용한 ‘대량생산’을 가능케 한 시대를 지나 컴퓨터를 통한 ‘자동화 시스템’과 소프트파워를 통한 ‘제품 지능화’를 이룬 시대를 맞이하며 살아가고 있다.

 

산업혁명 시작은 결핍 욕구, 산업혁명 변화는 성장 욕구

한편 미국 심리학자 매슬로(Maslow)는 인간 욕구를 5단계로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 욕구는 크게는 결핍 욕구와 성장 욕구로 나뉠 수 있다. 결핍 욕구에는 생리적 욕구, 안전에 대한 욕구, 소속감과 애정에 대한 욕구가 포함된다. 이 세 가지 욕구는 아래부터 단계적으로 충족되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결핍 욕구가 모두 충족되었다면 성장 욕구를 충족시키려 할 것이다. 성장 욕구에는 자기존중 욕구와 자아실현 욕구가 있다. 명예나 권력을 누리려는 게 자기존중 욕구다.

이 자기존중 욕구를 달성한 사람은 그 다음으로 최고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지막 5단계인 자아실현 욕구다. 결핍 욕구는 어느 한쪽이 많아지면 그것을 억제하는 네거티브 피드백(Negative Feedback)이 작용한다. 하지만 자아실현 욕구는 이 장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최고가 되기 위해 끝없이 추구하는 것이다.

 

산업혁명 성공이 낳은 ‘등산’

스위스 작은 마을 샤모니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브레방 산에 오르면 몽블랑 정상을 가까이 바라볼 수 있다. 1760년 스위스 자연 과학자 소쉬르는 이곳에 올라 알프스 산맥 최고봉인 몽블랑 정상의 장엄함에 감동한다. 당시에는 만년설이 있는 산 정상은 신의 영역이며 악마가 살고 있고, 용들이 사는 곳으로 인간이 다가갈 수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소쉬르는 산 정상에 올라보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여러 번 시도를 하지만 산 정상에 오르는 길조차 찾기가 어려웠다.

그로부터 무려 26년이 지난 후 1786년, 그는 인류 최초로 알프스 산맥 최고봉인 몽블랑을 드디어 등정한다. 아무도 오른 적 없는 신비스러운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은 미지 세계에 대한 불확실성과 곤란함을 이겨 내는 도전정신으로 가능했다. 이러한 숭고한 정신이 ‘알피니즘’ 기원이 되었다. 오늘날 소쉬르가 ‘근대 등산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이다. 이후 산 정상은 더는 신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이 도전하는 대상이 되었다. 신 중심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인간이 중심이 되는 등산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몽블랑 등정 이후 알프스 여러 고봉에 수많은 개척자들이 도전했고, 하나둘 등정 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알프스 황금기’라 한다. 이 황금기는 1854년 베터호른 등정을 시작으로 1865년 최후 난봉이던 마터호른 정상에 오름으로써 마감되었다. 이 기간 60개가 넘는 4,000m 높이 알프스 고봉들이 모두 등정된다.

알프스 황금시대를 시작하고 마무리한 주역은 영국인들이었다. 산업혁명 성공으로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영국 귀족과 학자들이었다. 인간 기본 욕구가 충족된 상태였기에 최상위 욕구인 자아실현을 실천한 것이다. 이들은 빙하를 탐사하고, 측량하고, 지질을 분석하기 위해 알프스 대자연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누구도 이루지 못한 것들을 실천하고 이룩해냄으로써 스스로 최고 존재가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요컨대 자아실현 추구가 등산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진=등반중인 필자 김성기박사
사진=등반중인 필자 김성기박사

 

멈추지 않는 자아실현 욕구, 능선에서 수직 벽으로 이동

등산 초기 3,000~,4000m에 이르는 알프스 봉우리들이 섭렵 되던 등반방식을 등정주의라 한다. 정상 등정만을 목표로 하던 이 시대를 ‘피크헌팅(peek hunting) 시대’라고도 한다. 피크헌팅이란 ‘산 최고점(정상) 사냥’이라는 뜻으로 정상에 선다는 의미를 지닌다.

앞서 말했듯 자아실현 욕구에는 한계점이 없다. 생물학적 욕구에는 한계점이 있어서 일정 수준 이상 충족되지만 자아실현 욕구는 충족 될수록 더 강해지곤 한다. 따라서 정상을 오를 수 있는 욕구가 충족되니 더욱 강한 욕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단순히 정상이 목적이 아니라 더욱 어려운 등산 루트를 선택해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 가치를 두게 된 것이다. 이후 알프스 수많은 고봉 암릉과 암벽에 더 새롭고 어려운 루트들이 개발되었다. 자아실현 욕구가 산 정상을 오르는 방법을 완만한 능선에서 수직 벽으로 이동케 한 것이다.

 

등산 가치추구는 자아실현이다

이러한 등반방식 변화는 자기한계 극복으로 나타났다. 인간 능력으로는 해내기 어려운 수직 벽 등반을 시도하고, 3,000~4,000m(알프스 지역)에서 8,000m(히말라야) 높이로 무대를 옮겨갔다. 단독등반과 무산소 등반을 시도하는 등 인간 한계를 극복하는 도전으로 이어졌다. 암벽등반 역시 장비에 의존한 인공등반에서 장비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 능력으로만 오르는 자유등반 시대를 맞이한다.

‘산악인은 스스로 어려운 과제를 선택해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즐기며 궁극적으로는 자아실현에 최상의 가치를 둔다.’

동물은 평생을 ‘결핍(식욕, 성욕) 욕구’ 충족을 위해서만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사냥과 종족 번식을 위한 활동만 추구하다 생을 마친다. 인간과 동물 간 유일한 경계가 ‘성장 욕구’ 행위이다. ‘한계극복’은 인간만이 추구할 수 있는 행위이다. 인간만이 지닌 자아실현 욕구는 완전한 만족이 없으므로 끝없이 추구해 나아간다. 산에서 끝없는 자아실현 추구 때문에 탄생한 정신과 철학이 알피니즘(alpinism)인 것이다. 알피니즘은 자아실현 추구이며, 산을 통한 자아실현 정신과 철학이 알피니즘인 것이다. 요컨대 산악인은 스스로 어려운 과제를 선택해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즐기며 궁극적으로는 자아실현에 최상의 가치를 둔다.

 

알피니즘을 실현하는 ‘알피니스트’

산을 오르는 방식에 따라 우리는 등산을 몇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산 능선이나 계곡을 따라 오르는 행위를 트레킹이라 하며, 이들을 트레커라 칭한다. 계곡과 능선을 벗어나 더 가파르고 높은 수직 벽 세계로 상승한다. 이들을 클라이머라 칭한다. 클라이머는 등반 이론과 기술을 실현한다. 이론과 기술을 완벽하게 실현해 버리면 더 넓고, 높은 이즘(ism) 세계로 상승한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알피니스트라 칭한다.

트레커와 클라이머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코스를 실현하는 것이다. 알피니스트는 정해진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없는 길을 열면서 가는 것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곳, 불확실성 세계를 열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알피니스트 세계이다. 알피니스트는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주체이다. 알피니스트는 인간이 가진 탁월함을 극단까지 끌어올린 상태를 지향한다. 예술 경지와 마찬가지로 일반적 사람들이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알피니스트 세계이다.

 

산 정상을 오르기 위한 수단들이 ‘장르’로 탄생

인공암벽은 스포츠로 발전했다. 오늘날은 스포츠클라이밍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태어나 많은 사람에게 주목받고 있다.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기까지 했다. 어떻게 발전되어 온 것일까? 간단히 말하면 인간들이 산 정상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산에서 만나는 다양한 난관을 해결하기 위한 트레이닝 수단에서 발전되어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산 정상을 가로막고 있는 만년설, 얼음, 바위를 오르기 위한 수단이 축적되어 발전한 것이 등반기술이다. 정상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바위를 넘어서기 위한 수단이 암벽등반 기술이 된 것이다. 어려운 암벽을 넘어서는 기술과 체력을 연마하기 위해 인공으로 만들어 훈련한 기술들이 축적되어 인공암벽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산 정상을 가로막고 있는 만년설과 얼음을 오르기 위한 수단이 발전해 설상 등반기술, 빙벽등반기술이 탄생한 것이다. 오직 정상을 가기 위한 수단들이 또 다른 장르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행위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산악인이라 부르고 생활등산인에 비교해 전문등산인으로 구분한다. [2편에 계속]

 

김성기/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 교수, 체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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