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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일반 등산, 전문 등반, 등산 산업-등산사회과학(4)

등산사회과학 - 등산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하여(4)

  • 기자명 편집부
  • 입력 2019.08.19 16:14
  • 수정 2020.05.28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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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기/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 교수, 체육학 박사

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 교수이자 ‘국내1호 등산박사’인 김성기 교수 기고 글입니다. 흔히 ‘댓가 없는 무상無償의 행위’로 간주되며 변변한 이론체계를 갖추지 못한 등산 활동을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을 원용해 시론적으로 정리하고 산업과 국민 레저 양 측면에서 등산의 과제를 짚어 본 글입니다. 김성기 교수에 대해서는 링크 기사(단병호 사수대 출신, '국내1호 등산박사'의 삶과 산)를 참조하세요. [기획자 주]

 

사진=등반중인 필자 김성기박사
등반중인 필자 김성기 박사 / 사진=본인 제공

 

산에서 생활하는 스님들과 산속을 누비는 심마니들에게 산악인이라 하지 않는 이유?

광의의 개념으로 ‘산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를 등산(登山)이라 한다. 이러한 행위를 하는 사람을 산악인이라 칭한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오랫동안 산에서 생활하고 산을 오르시는 스님들은 왜 산악인이라 칭하지 않는 것일까? 아무도 오르지 않고 가보지 않은 곳을 오르면 초등정이라 하는데 우리나라 산, 아무도 가보지 않은 산속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심마니들에게는 초등정이라는 칭송은 커녕 산악인이라고도 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등산 개념에는 단서가 하나 있기 때문이다.

“산에 가기 위한 목적이어야 한다.”

산에 가는 목적이 산에 오르기 위한 것일 때 등산이라 한다. 산에 오르기 위한 그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산악인이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님들은 산에 오르는 목적이 무엇인가? 종교적인 목적이며, 사찰을 가기 위한 것이다. 만약 사찰이 도심에 있다면 스님들은 산에 오르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산악인이라 하지 않는 것이다. 심마니 또한 산에 오르는 것이 채취 목적이다. 산삼과 약초 등을 얻기 위해 산에 오르는 것이다. 이 또한 마찬가지로 이러한 채취 대상들이 밭에서 난다면 이들은 산에 오르지 않을 것이 분명하므로 산악인이라 하지 않는 것이다.

 

산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는 일반적인 등산과 등반으로 구분된다

광의의 개념으로는 산에서의 모든 행위를 등산이라 하지만 협의의 개념으로는 일반등산과 등반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일반 등산은 인간이 두 발로만 걸어갈 수 있는 산행 즉, 걷는 산행을 말한다. 인간이 일반적으로 두 발로만 걸어갈 수 있는 산행 각도는 약 30도이다. 산행 각도 30도가 넘어서면 손을 쓰게 되고 손을 써서 오르는 행위를 하게 된다. 70도까지 완경사 또는 슬랩 이라 하고, 80도를 페이스, 90도를 수직 벽, 90도가 넘어가면 오버행과 천정이라고 한다. 손과 발을 사용하지 않으면 오를 수 없는 곳을 오르는 행위를 할 때 등산과 구별해 등반(登攀)이라 한다.

사진=일반 등산 장비
사진=일반 등산 장비

 

사진=일반 등산 장비

 

등산장비와 등반장비의 발달은 산의 고도와 각도의 추구에서 시작되었다

등산 초기는 고도를 추구했다. 이 시기는 오직 산 정상만을 오르기 위해 최선을 다한 시기이다. 등산 초기 알프스 3000~4000m 봉우리들이 섭렵 되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정상을 향해있는 가장 완만한 능선을 선택해 올랐다. 이런 등산 방식을 등정주의(登頂主義)라 한다. 정상 등정만을 목표로 하는 등산이다. 이러한 시대를 피크헌팅(peek hunting) 시대라고도 한다. 고도만을 추구하면서 발달한 것이 등산 장비이다. 초기에는 지게에다 장작과 담요 등을 지고 올랐다. 무거웠던 지게는 배낭을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장작은 버너로 발전하였고, 담요는 침낭으로 발전하였다.

등산 장비 변화와 발달의 기준은 중력이다. 즉 중력을 거슬러 오르는 데 중량에 따른 불편함에서 등산 장비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 때문에 등산 장비 특징이 소형화, 경량화, 고기능성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등산 장비는 산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의식주에 연관된 것들이다.

이후, 19세기 말 영국 등반가 머메리(A. F. Mummery)는 ‘좀 더 어렵고 다양한 루트(more difficult variation)를 개척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한 등산 정신을 등정주의와 구분해 머메리즘(Mummerism)이라고 불렀다. 즉 등로주의(登路主義)이다. 산 정상을 향한 완만한 능선을 벗어나 수직의 벽을 오르기 시작하면 등반자 의지와 상관없이 발생하는 것이 추락에너지이다. 지면 추락 예방과 추락 길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등반장비이다.

 

사진=전문 등반 장비등반장비는 산의 각도를 추구하면서 발달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등산장비와 등반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들이 등산산업 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전문 등반 장비. 등반장비는 산의 각도를 추구하면서 발달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등산장비와 등반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들이 등산산업 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등산 산업이 없다

도심을 벗어나 자연(산, 바다, 강,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모두를 아웃도어 또는 레저, 레포츠 활동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레저(leisure)란 여가를 뜻한다. 여가는 사회적 구속시간과 생리적 구속시간을 제외한 자유재량 시간을 말한다. 사회적 구속시간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사회적 존재가 되기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시간 즉 노동시간을 말하는 것이고, 생리적 구속시간은 인간에게 생리적으로 최소한 필요하게 되는 시간으로 수면과 음식섭취 등에 필요한 시간을 말한다.

자유재량 시간은 구속시간을 제외한 시간을 각자가 자기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선택하여 사용하는 시간을 말한다. 레포츠는 레저와 스포츠가 결합한 합성어이다. 스포츠는 일정한 규칙을 정해서 순위를 겨루는 경쟁이지만 레포츠는 경쟁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건강과 재미를 위해 즐기는 것이다. 레포츠가 경기로 발전하면 ‘스포츠’가 된다. 예를 들면 처음엔 인공암벽이라 칭하던 것을 순위를 겨루는 경기를 하게 되면서 스포츠 클라이밍이라 칭하는 것이다.

 

표=아웃도어 활동의 구분
표=아웃도어 활동의 구분, 김성기

 

한편 아웃도어 의류란? 위에 표에서 정리한 개념대로라면 모든 아웃도어 활동들을 할 때 입는 의류를 말하는 것이다. 등산할 때 입는 옷, 골프할 때 입는 옷, 스쿠버다이빙 할 때 입는 옷, 산악승마 할 때 입는 옷, 산악자전거 탈 때 입는 옷, 스카이다이빙할 때 입는 옷, 이 모든 의류 전체를 포함할 때 아웃도어 의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아웃도어 매장, 아웃도어 의류, 아웃도어 용품, 아웃도어 제품, 아웃도어 브랜드라고 쓰고, 등산복이라 읽고 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우리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과 같다. 예를 들면, 학교에는 많은 학습자가 있다. 학습자 무리를 학생이라 칭하고 개인을 부를 땐 이름을 부른다. “학습자” 하면 모두를 부르는 것이다. 개인을 부를 땐 “홍길동”이라 하듯이 “아웃도어의류” 하면 모두를 말하는 것과 같다. 이제 부터라도 우린 우리 이름을 사용하여야 한다. “아웃도어”가 아닌 “등산”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정체성을 확립하는 기초 단계이다.

프레임이 변해야 패러다임이 변하는 것과 같다. 아웃도어에 관련된 각 분야는 그들의 이름을 붙여 사용한다. 요트산업, 골프산업, 승마 산업 등등으로 분야별 관련된 제품을 생산하거나 판매하는 것을 관련된 명칭을 사용하여 산업화하고 있다. 등산브랜드만 아웃도어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등산제품들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아웃도어 산업이 아닌 등산 산업이라는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표=등산 산업의 분류
표=등산 산업의 분류, 김성기

 

[5편에 계속]

 

김성기/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 교수, 체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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