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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튜브와 파이프에서 찾은 미학...이철희 조각가

  • 기자명 편집부
  • 입력 2019.09.12 15:10
  • 수정 2019.11.3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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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지난달 28일 강원도 평창군청에선 '파이프 조각가'로 널리 알려진 이철희 작가의 소장 작품 'We Are ONE(우리는 하나)' 무상 전시를 위한 협약식이 이 작가와 한왕기 평창군수 사이에 있었다.

이 작품은 작년초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싹튼 남북한 평화·화해 기조가 두달 후에 4·27 남북 정상회담으로 꽃핀 것을 기념해 두 정상의 만남을 형상화한 조형물로서, 2018년을 의미하는 2018개의 파이프가 사용됐으며 4월27일을 뜻하는 427mm 높이의 좌대에 올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를 되살린 것이다.

특히 작품 정면에 미소 띤 두 얼굴은 우리 민족이 하나 되어 나아갈 희망과 염원을 담았고 뒷면의 음각 처리된 부분은 반만년 역사에서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비극과 애절함을 함께 표현했다.

이날 협약서엔 평화의 상징인 평창에 이 작품을 전시하고 싶다는 이 작가의 제안으로 올림픽 개폐회식이 열렸던 대관령면 횡계리 일원에 이달부터 내년 8월까지 만 1년간 무상으로 전시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철희 조각가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 작가 연구실에서 최근에 만나 작품 인생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철희 작가의 2017년작 '하트투하트'...창원국제조각비엔날레출품작 (재질=알루미늄 파이프) / 사진=작가 제공
이철희 작가의 2017년작 '하트투하트'...창원국제조각비엔날레출품작 (재질=알루미늄 파이프) / 사진=작가 제공

□ 작가님이 미술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요?

■ 광주 조대부고 입학 즈음 인문계 과정에 흥미를 잃어 성적이 떨어지고 있던 중에 중학 시절부터 미술을 전공하던 친구의 권고로 미술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이에 대한 열정과 재능과 환희를 발견한 거죠. 전국대회 대상 등 각종 미술대회 수상과 장학생 선발 등 순탄한 과정을 거쳐 경희대 미술교육과로 진학했어요.

□ 고교 친구가 작가님 재능 발견에 큰 역할을 한 셈이군요. 대학 시절은 어떠했나요?

■ 그렇죠. 저 경우 열등감과 나약함에 빠져있던 시절 그 친구의 권유가 최고의 인생역전의 기회가 된 것 같아요. 후일 그 친구도 나중에 건축 분야에서 성공해 공무원이 돼 다시 만났습니다. 지금도 그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후 저는 경희대 미술교육과로 진학해 추상화, 조각 등 다양한 실험적 시도를 했었고, 졸업 후 압구정동 미술학원 창업과 작품활동 등 초창기에 나름 성공적인 미술가의 삶을 살 수 있었죠.

이철희 작가의 2019년작 '거룩한 여정' (재질=알루미늄 파이프) / 사진=작가 제공
이철희 작가의 2019년작 '거룩한 여정' (재질=알루미늄 파이프) / 사진=작가 제공

□ 조각가로 전향한 계기는 무엇인지요?

■ 초반에 잘 나가던 학원 사업에서 입시 실적이 조금씩 부진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학원을 문 닫게 돼 오랫동안 재충전을 해야 하는 어려운시절을 보내게 됐어요. 이 과정에서 입체와 조각에 대한 의욕이 커져 2000년경부터 본격적인 조각가의 길을 걸었어요.

□ 특히 파이프를 이용한 조형물 창작에 주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요?

■ 수년전 어깨 통증으로 주사를 맞고 한동안 물리치료를 받던 중에 절단된 주사 바늘 끝을 보고 주사 바늘 같은 파이프를 특정한 형태로 절단하고 중첩하면서 패턴을 만들면 독특한 형상이 나오겠다는 구상을 하게 돼 이러한 구성기법을 계속 연구하고 업그레이드 한 게 여기까지 온 거죠.

이철희 작가의 2016년작 '운명-새날을 지휘하다' (재질=알루미늄 파이프) / 사진=작가 제공
이철희 작가의 2016년작 '운명-새날을 지휘하다' (재질=알루미늄 파이프) / 사진=작가 제공

□ 이 작가님이 대량의 파이프를 이용한 조형물 기법을 최초로 구상하신 거죠? 다른 작가들이 유사한 형태로 만든 경우도 있나요?

■ 해외에서도 이런 식으로 다량의 파이프만을 재료로 작품을 만든 경우는 보지 못했어요. 다만 국내 작가 중에 제가 처음 이러한 시도를 한 이후에 커다란 파이프로 작품을 만든 것을 한번 본 적은 있죠 . 하지만 저처럼 수많은 파이프를 정밀하게 조립해 구성한 경우는 들어본 적 없어요.

□ 이러한 중대형 조형물을 야외에 전시하게 되면 혹시 안전이나 기타 문제의 소지는 없나요?

■ 그런 염려는 없어요. 절단면의 날카로운 부분을 곱게 갈아 혹시라도 아이들이 작품을 만지거나 올라가더라도 전혀 상해를 입지 않도록 안전에 만전을 기한 후에 설치하게 됩니다.

□ 작품에 사용되는 재료인 파이프의 직경 범위는 어느 정도인가요?

■ 파이프 중에 가장 작은 지름은 3cm예요. 왜냐하면 재료를 레이저 커팅머신으로 하나하나 절단한 후 조립하므로 너무 작은 파이프는 이용하기 곤란하죠. 가장 큰 지름은 13cm 정도 됩니다. 그 이상 되는 큰 파이프 재료도 절단 등의 공정 상 어려움이 있어요.

이철희 작가의 2018년작 'we are one' (광화문 전시. 재질=알루미늄 파이프) / 사진=작가 제공
이철희 작가의 2018년작 'we are one' (광화문 전시. 재질=알루미늄 파이프) / 사진=작가 제공

□ 앞으로 계획은 어떤지요?

■ 외국의 도시들 중에 그 도시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조형물들이 많잖아요? 예컨대, 스페인의 쇠락해가는 도시 빌바오에 구겐하임 재단과 빌바오 시정부가 건립한 '구겐하임 미술관', 영국 게이츠헤드의 아트프로젝트 시작을 알린 '북방의 천사', 베트남 다낭 바나힐 정상에 건립한 '골든 브릿지', 건립과 동시에 뉴욕 허드슨 야드의 랜드마크가 된 '베셀(Vessel)' 등 성공 사례들이 매우 많아요.
이와 같이 저도 한 도시의 상징 조형물로 파이프 작품을 만들어 이것에 플렉시블(flexible) LED 기술을 접목시켜 평화, 사랑, 희노애락 등의 이슈를 녹여낸 다양한 미디어 컨텐츠를 영상으로 연속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작품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 작가님의 창작 철학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겠어요?

■ 수천개 스틸파이프의 단순하고 규칙적인 결합으로 반복의 조형적 안정감을 갖게 하며, 형태를 이루기 위한 정밀한 계산과 정교한 절단, 조립을 통해 질서와 리듬감이 부여됩니다. 그 리듬감은 2차원적인 패턴 리듬이 아닌 3차원적 변화무쌍한 리듬감으로 보는 방향, 굴곡의 정도, 파이프 절단 각도, 그리고 빛의 방향에 따라 다양한 표피감을 주게 되죠.
이는 주변 공간으로 시선을 연장하여 다양한 공간의 확장을 경험하게 되고, 이때 반복의 요소는 패턴화 되어 연속적으로 보여지면서 부분이 아닌 전체를 구성하게 됩니다. 이렇게 수천개의 파이프 하나 하나가 픽셀의 입자가 되면서 그 모양은 각기 다른 형상을 가져서 보는 이에게 신비로움을 주는 동시에 어떠한 역할을 기대하는 효과를 가지게 되죠.

□ 작품이 갖는 의미를 축약해서 정의하신다면?

■ 빛을 이용한 공간 안의 유동성이죠. 빛은 변화하는 각도에 따라 공간 안에 긴장감과 생동감을 주는 주제가 되기도 하며, 반대로 작업의 구조나 생동감을 강조해주는 역할을 중요한 요소죠. 파이프를 일종의 작은 공간을 가진 실린더라고 볼 때 그 작은 공간들을 중첩하여 쌓아올리고 그 쌓여진 공간들이 벌집 모양의 패턴을 가진 공간 덩어리가 되는 구조예요.
마치 물기를 머금은 세포조직이 있듯이 공간을 유지하는 세포, 즉 파이프가 모여 커다란 매스(mass) 또는 형상을 가지게 되는 것으로서 파이프의 물성과 공간 조각의 결합체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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