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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계의 책축제: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다 ①

  • 기자명 편집부
  • 입력 2019.10.21 15:32
  • 수정 2019.10.2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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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이상(李相)
저술가, 문화기획가
《실천문학》 편집장, 헤이리 예술마을 사무총장, 파주북소리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세계예술마을은 무엇으로 사는가》 《헤이리 두 사람의 숲》 등의 책을 썼다. [편집자 주]

 

Book Festival이 뜨겁다. 영국에서만 300개가 넘는 책축제가 열린다. 대부분 2천년대 들어 생겨났다. 책축제는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마당이자 아이디어를 나누는 지식 공유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 문화가 범람하는 역설은 무엇 때문일까? 독특한 문화 환경을 빚어내고 있는 전세계의 주요 책축제를 소개한다.  

 

◆ 세계 최초의 책축제: 첼트넘 문학축제  

세계 최초의 책축제인 첼트넘 문학축제는 영국을 넘어 이제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문학축제의 하나가 되었다. 책축제가 많기로 유명한 영국에서도 자타가 공인하는 4대 책축제의 하나다. 손꼽히는 축제의 도시 첼트넘의 축제 가운데 단연 최대 참가자를 자랑한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책축제를 개최한 곳은 영국의 첼트넘Cheltenham이다. 1949년의 일이다. 2차세계대전 이후 새롭게 출발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시작된 해이다. 정식명칭은 첼트넘 문학축제이다.

첼트넘 문학축제 이전까지 ‘축제’를 내건 책 관련 행사는 없었다. 오직 도서전만이 있었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이후 유럽의 크고 작은 도시에서 저마다 도서전이 열렸지만, 실상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와 라이프치히가 주도권을 다투는 양상이었다. 20세기 전반기는 도서전의 암흑시대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는 등 정치경제적 여건 때문에 두 도시의 도서전마저 겨우 실낱 같은 명맥을 이어왔던 것이다.

 

2017년 첼트넘 문학축제에 참가한 작가 마이클 로젠이 사인회를 갖고 있다. (ⓒ 피터 커비쉴리}
2017년 첼트넘 문학축제에 참가한 작가 마이클 로젠이 사인회를 갖고 있다. (ⓒ 피터 커비쉴리}

프랑크푸르트 도서전과 첼트넘 문학축제가 같은 해에 열리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라 할 수 있다. 세계대전의 상처를 문화의 힘으로 치유하려는 다양한 모색의 일환이었다. 함께 시작하였다고 가는 길이 같은 법은 아니다.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는 도서전의 일방 독주시대였다. 프랑크프루트 도서전이 비약적인 성공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프랑크푸르트를 모델로 한 도서전이 전 세계에서 80여 곳이나 생겨났다. 

책축제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은 에든버러 국제책축제와 헤이 축제가 시작된 1980년대 이후다. 그런 점에서 첼트넘 문학축제는 매우 이례적이다.

첼트넘은 웨일스와의 접경에 가까운 잉글랜드 서부의 작은 시골도시다. 인구 십만이 조금 넘는 도시답지 않은 유명세는 이 도시가 온천도시이기 때문이다. 왕실과 귀족들이 즐겨 찾았던 까닭에 19세기 초의 권위 있는 전통건축이 많이 남아 있다.
첼트넘 주변 지역은 코츠월드로 불린다. 목가적 풍경이 아름다워 가장 영국적인 곳으로 일컬어진다. 런던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영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고장으로 꼽힌다. 틀에 박힌 여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찾는 여행 매니아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영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진, 목가적인 분위기를 자랑하는 코츠월드의 중심도시 첼트넘 (ⓒ 애드리언 핑스턴)
영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진, 목가적인 분위기를 자랑하는 코츠월드의 중심도시 첼트넘 (ⓒ 애드리언 핑스턴)

첼트넘은 영국에서도 손꼽히는 축제의 도시다. 도시를 대표하는 4개의 축제는 재즈 축제, 과학축제, 음악축제, 그리고 문학축제이다. 해마다 2,500명이 넘는 유명 뮤지션, 과학자, 작가 들이 관객, 청중 들과 함께하기 위해 첼트넘을 찾는다. 4개의 축제에서 개최되는 이벤트가 천 개를 넘고, 22만 장의 표가 팔린다. 

첼트넘에서 축제가 처음 개최된 것은 1945년의 일로 음악축제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 에든버러 축제가 1947년에 시작되었으니, 첼트넘이 매우 선도적인 도시임을 알 수 있다. 첫해 무대에 오른 연주회는 겨우 3개였다. 

첼트넘 문학축제는 온천도시답게 작가와 온천 관계자의 협업에 의해 탄생하였다. 작가 존 무어John Moore와 온천 매니저 조지 윌킨슨George Wilkinson이 그들이다. 첼트넘 문학축제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문학축제의 하나가 되었다. 책축제가 많기로 유명한 영국에서도 자타가 공인하는 4대 책축제의 하나로 꼽힌다. 첼트넘 문학축제 'The Times and The Sunday Times Cheltenham Literature Festival'은 현재 영국의 중앙 유력지로 자매지 관계인 《더타임스》와 《선테이타임스》가 타이틀 스폰서를 맡고 있다. 축제 이름에 두 매체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이유다. 

매년 가을 첼트넘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꿈속으로 빠져든다. 첼트넘 시청과 임페리얼 스퀘어, 몽펠리에 가든이 주행사장이다. 몽펠리에 가든에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슈피겔 텐트가 설치된다. 슈피겔 텐트의 나무 바닥이며 스테인드글라스 창에서 유럽 전역을 누비며 순회공연을 펼치던 유랑 극단의 풍취가 물씬 묻어난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베를린 베벨 광장의 책 조형물 (ⓒ리엔하르트 슐츠)
상상력을 자극하는 베를린 베벨 광장의 책 조형물 (ⓒ리엔하르트 슐츠)

축제에는 6백 명 이상의 세계적인 작가, 시인, 배우, 코미디언, 언론인, 학자, 정치가 들이 초청되고, 5백여 건의 이벤트가 진행된다. 슈 타운젠트, 살먼 루시디, 스티븐 호킹, 도리스 레싱, 토니 모리슨 등 세계문학사상 이름을 알린 유명인사의 대부분이 이곳을 방문하였다.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다양한 형태의 강의 및 토크, 시 낭송, 인터뷰, 어린이 이벤트, 스토리텔링, 독서모임, 글쓰기 워크숍, 교육 프로젝트 등이다.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영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방문객이 답지한다. 지난 2014년에는 10월 3일부터 12일까지 10일 동안 열렸다. 2014년 파주북소리와 정확히 날짜가 일치한다. 2018년에는 10월 5일부터 14일까지 열렸다. 10월 첫 주 금요일부터 둘째 주 일요일까지 행사기간이다.    

첼트넘 문학축제는 작가들을 초청해 강연하도록 하는 데 머물지 않고, 우리가 사는 사회에 큰 질문을 던지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다음과 같은 주제들이 챌트넘에서 즐겨 다루어진다. ‘민주주의는 위기인가?’ ‘기술은 우리의 두뇌를 변화시키는가?’ ‘다음 세기는 무엇을 간직할 것인가?’ 

2018에는 14만1500명이 표를 사 축제에 참가했다. 첼트넘 4대 축제 가운데 단연 최대 참가자를 자랑한다. 청중들은 페스티벌 서점에서 작가들의 책을 구입하고, 강좌를 들은 후 작가 사인을 받을 수 있다. 행사장 곳곳에는 북 텐트가 설치되어 이벤트 사이사이의 자투리 시간 동안 책을 보며 보낼 수 있다. 

책축제의 권위를 높이고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문학상을 제정해 운영하는 축제들이 많다. 첼트넘 문학축제는 BBC가 제정한 ‘닉 클라크 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곳이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BBC 라디오 진행자 닉 클라크를 기리기 위한 상이다. 한 해 동안의 언론 인터뷰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을 선정해 시상한다. 방송, 코미디까지 아우르는 영국 문학축제의 개방성을 엿볼 수 있다. 수상자에게는 닉 클라크가 즐겨 마시던 보르도산 적포도주를 부상으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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