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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계의 책축제: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다 ②

  • 기자명 편집부
  • 입력 2019.11.17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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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이상(李相)
저술가, 문화기획가
《실천문학》 편집장, 헤이리 예술마을 사무총장, 파주북소리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세계예술마을은 무엇으로 사는가》 《헤이리 두 사람의 숲》 등의 책을 썼다. [편집자 주]

 

Book Festival이 뜨겁다. 영국에서만 300개가 넘는 책축제가 열린다. 대부분 2천년대 들어 생겨났다. 책축제는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마당이자 아이디어를 나누는 지식 공유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 문화가 범람하는 역설은 무엇 때문일까? 독특한 문화 환경을 빚어내고 있는 전세계의 주요 책축제를 소개한다.  

 

 

◆ 인도에서 부는 변화의 바람: 자이푸르 문학축제  

자이푸르 문학축제*는 2006년에 출범한 신생축제다. 그러나 인도와 아시아를 넘어 ‘세계 최대 규모의 무료 문학축제’로 성장하였다. 2017년 축제장을 찾은 청중은 35만 명이었다. 자이푸르 문학축제는 세계의 경이로움의 하나가 되었다. 소설보다 드라마틱한 인도의 현실을 둘러싼 토론 속에서 새로운 인도가 태어나고 있다.

*유럽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책축제와 문학축제는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인도는 찬란한 문명을 발전시켜온 나라이다. 그러나 출판산업은 황무지다.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5천 부가 팔리면 비소설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미국에서 3백만 부가 팔린 〈해리 포터〉 시리즈 4권이 인구가 네 배가 되는 인도에서는 겨우 3만 부 발행되었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은 주로 경제적 요인 때문이다. 책은 사치품으로 치부되었다. 독자가 없으니 출판사도 별반 없고, 서점도 몇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갑자기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인도 출판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 되었다. 경제전망이 밝아지면서 하퍼콜린스, 랜덤하우스 같은 외국 출판사들이 진출하였고, 큰 규모의 체인 서점이 대도시에 들어섰다. 인도 전체의 서점 수는 2천을 넘어섰다. 나라의 크기와 인구에 비해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나마 좋은 서점은 30개를 넘지 못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서점은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 영세서점들이다.

 

자이푸르 문학축제에서 인터뷰 중인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원작작가 캔디스 부쉬넬(왼쪽) / ⓒ 미 국무부
자이푸르 문학축제에서 인터뷰 중인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원작작가 캔디스 부쉬넬(왼쪽) ⓒ미국무부

 

출판과 관련한 인도의 의미있는 변화는 책축제에서도 감지된다. 인도는 아시아권에서 가장 책축제가 활발한 나라이다. 델리, 벵갈로르, 콜카타, 자이푸르 등지에서 문학축제가 열린다. 소설가 쿠쉬완트 싱을 기리는 축제도 명성이 높다. 대부분 2000년대 들어 생긴 축제들이다.

그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자이푸르다. 자이푸르 문학축제Jaipur Literature Festival는 2006년에 출범한 신생축제다. 그러나 인도와 아시아를 넘어 ‘세계 최대 규모의 무료 문학축제’로 성장하였다.

2017 축제는 1월 19일부터 5일간 개최되었다. 축제장을 찾은 청중은 35만 명이었다. 등록을 마쳐야 행사장에 입장할 수 있기 때문에 허수는 없다고 믿어도 좋다. 인기 작가의 강연에는 5천 명 이상이 모이는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축제는 여전히 해마다 큰 폭으로 확장되고 있다. 20만 중반대의 청중이 모이는 헤이 축제와 에든버러 책축제에 견주어 보면 얼마나 구름같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는지 알 수 있다. 헤이는 10일, 에든버러는 20일 남짓 진행되는 데 비해 자이푸르는 단 5일간 개최되기 때문이다.

문학축제의 아이디어는 인도를 현대문학의 주요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대중들의 글쓰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었다. 인도는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타고르를 비롯해 훌륭한 문인을 많이 배출한 나라이다. 그런 전통에 걸맞지 않게 문맹률이 높은 나라이기도 하다.

 

자이푸르 시내에 위치한 월드 트레이드 파크 / ⓒ시다쓰
자이푸르 시내에 위치한 월드 트레이드 파크 ⓒ시다쓰

 

엘리트 문화와 대중문화의 기묘한 혼합이 인도의 특징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음악, 춤 같은 오락적 대중문화에 탐닉하던 대중들이 새로운 신호를 보내기 시작하였다. 무엇인가를 배우려는 욕구,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동승하려는 갈망이 책축제 참가의 동인으로 나타난 것이다. 축제 참가자들 가운데는 단순 구경꾼들도 많다. 그들은 책축제보다는 저녁에 벌어지는 록콘서트에 더 관심이 많다. 강연회에 참석했으면서도 강연자의 책을 읽기는커녕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이푸르의 청중들은 다른 어느 축제보다 젊고 열정적이다.

청중들은 자이푸르에서만이 아니라 델리를 비롯한 인도 각지에서 온다. 해외 관람객들도 많이 늘었다. 자이푸르 외부에서 오는 인도인들은 신흥 중산층들이다. 사람들은 문학적 관심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인도 사회에 대한 긴장감 넘치는 토론을 즐긴다. 인도 사회를 짓누르는 부패, 민주주의, 성, 종교 같은 문제들이 다루어진다. 소설보다 드라마틱한 인도의 현실을 둘러싼 토론 속에서 새로운 인도가 태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이 같은 역동성이 축제를 성장시킨 배경이다. 축제가 시작된 것은 2006년이었다. 자이푸르 헤리티지 국제축제의 한 부문으로 출범하였다가 2008년에 독립적인 축제로 발전하였다. 18명의 작가가 초청된 2006년의 청중은 1백 명에 채 미치지 못하였다. 참담한 실패였다. 독립축제가 된 2008년에도 2,500명에 불과하였다. 그러던 것이 2010년에 3만 명을 돌파하고, 2012년 〈악마의 시〉를 쓴 살만 루시디 초청이 화제가 되면서 국제 미디어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루시디의 이름이 초청자 명단에 올랐으나, 생명에 위협을 느낀 루시디는 인도 여행을 취소하였다.

 

자이푸르 문학축제에 참가중인 시인 굴자르, 프라순 조시, 자베드 악타르(오른쪽부터) / ⓒ 카르티카르
자이푸르 문학축제에 참가중인 시인 굴자르, 프라순 조시, 자베드 악타르(오른쪽부터) ⓒ카르티카르

 

자이푸르는 라자스탄 주의 사막도시다. 인도에서 가장 인구가 희박한 곳이다. 델리에서 자동차를 타고 서남쪽으로 6시간을 달려야 한다. 핑크빛 건물들이 많다고 하여 핑크 시티Pink City라고 불린다. 자이푸르는 인도 대륙과 아시아 대륙을 잇는 문명의 교차로였다. 수많은 민족과 언어와 종교가 이곳을 넘나들었다.

자이푸르 문학축제는 국제축제로서 인도와 세계의 문학을 다룬다. 그러나 자이푸르와 인도의 역사적 특성이 반영되어 그 어느 축제보다 독특하다. 힌디어, 우르두어, 라자스탄어, 마라티어, 마니푸리어, 텔루구어, 타밀어, 산스크리트어, 펀잡어, 팔리어, 영어 작가를 망라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만 가지고도 국제 축제라 불러 손색이 없을 지경이다.

이 같은 특성을 들어 자이푸르 문학축제의 공동 디렉터인 나미타 고칼레는 이렇게 말한다.

“자이푸르 문학축제는 세계의 경이로움의 하나가 되었다. 집합적 창의성과 개인적 이해를 위한 플랫폼인 축제는 우리 시대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국제적 지역적 관점을 제공한다. 2015년 축제는 책, 사상과의 대화를 지속적으로 육성할 것이며, 남아시아 문학의 다양성 및 국제문학의 최고봉을 선보이는 쇼케이스이다.”

자이푸르 문학축제의 프로그램은 전 세계에서 공연 및 문학축제를 운영하는 팀웍 아츠라는 곳에서 책임 맡고 있다.

2014년부터 자이푸르 문학축제는 인도 국경을 넘어 그 날개를 펼쳤다. 영국 런던에서 해마다 여름 이벤트를 개최하고, 미국 콜로라도 주 볼더에서도 이벤트를 열고 있다. 2017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멜버른 문학축제와 힘을 합쳐 자이푸르 문학축제 멜버른JLF Melbourne을 개최하였다. 인도의 문학 자산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2019년에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오스트레일리아 애들레이드, 미국 뉴욕과 휴스턴, 캐나다 토론토 등지를 순회하며 축제를 개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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