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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연재] 빈자(貧者)들의 거리 “Streets of London”

■ 정진택의 음악산책 4회

  • 기자명 편집부
  • 입력 2019.12.05 21:16
  • 수정 2020.03.27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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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ets of London”이 수록된 앨범
“Streets of London”이 수록된 앨범

 

빈자(貧者)들의 거리 “Streets of London”

정진택/큐레이터

 

“문 닫은 시장길,
날짜 지난 신문지를 팔에 낀 채
해진 구두를 질질 끌며 지나가는 노인.
꾀죄죄한 머리에 누더기 같은 옷차림으로
가재도구를 담은 캐리어를 끌고
런던 거리를 배회하는 늙은 아주머니.
한밤중 올 나잇 카페에 앉아
궁상맞게 찻잔을 바라보며 밤시간을 죽이는 군상들.
그리고 추적추적 비 내리는 겨울의 런던 거리.
내 삶은 외롭고 햇살이 비친 적이 없다고 자조하는 사람들,
이리 와서 런던 시내를 한번 돌아보면
그 마음 바뀌어 위로가 될 거요.“

1965년 런던 청년 랄프 맥텔(Ralph McTell)은 기타 하나 달랑 들고 유럽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파리를 거점으로 버스킹과 히치하이킹을 반복하며 벨기에, 독일, 유고 그리고 유럽의 끝자락인 그리스까지 다녔다.

그 여정에서 맥텔의 가슴을 채워나간 건 노숙자, 노인, 외롭고 사회에서 잊힌 이들의 삶이었다. 당시 파리에 짙게 드리운 빈부 격차와 불평등의 그림자 속에서 숙성된 노래 하나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곳곳의 노숙자들 집회에 울려 퍼지며 많은 이들의 고단한 삶을 어루만지고 있다.

맥텔은 애초 그 노래 제목을 “Streets of Paris”로 붙이려 했다. 하지만 파리 풍경 뒤 더 깊은 속에는 그가 자라고 생활한 런던 변두리 크로이던의 서리 마켓 모습이 진하게 스며있었다. 당시 에디뜨 삐아프 등이 불렀던 “The Poor People of Paris(불어 제목 La Goualante du Pauvre Jean)”와 겹치는 것도 제목을 바꾼 이유가 됐다.

비단 파리나 런던 거리뿐일까? 뉴욕이든, 서울이든…. 지구 상 모든 도시, 제아무리 부유하고 번창한 도시라도 예외는 없다.

“크고 인구가 밀집된 도시는 단순히 불평등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 도시와 대도시 지역이 더 크고, 더 밀집하고, 더 집중될수록 경제적 불평등이 더 심화한다. 경제 성장을 만드는 요인이 바로 경제적 불평등을 만든다.” (도시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도시는 왜 불평등한가?」)

아놀트 하우저는 찰스 디킨스가 자본과 노동 간 갈등의 의미를 완전 잘못 파악해 계급 간 화해 가능성에 대한 유치한 신앙심을 버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리버 트위스트나 그의 여타 소설에서 묘사되는 런던 뒷골목은 20세기 맥텔의 런던 거리를 연상하기에 여전히 유효하다. 세월이 흘러 21세기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런던 거리는 사회적으로 변주되어 등장한다.

도시의 경제적 소외뿐 아니라 정신적 소외는 올나잇 카페 가사에서 보이는데, 장소와 매체를 달리하여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에서도 뉴욕 맨하탄의 한밤중 카페 정경으로 이미 출현한 바 있다.-

 

Streets Of London – Ralph McTell featuring the Crisis Choir with guest vocalist Annie Lennox

영국 노숙자 단체 Crisis 홈페이지에 게시된 “Streets Of London” (Crisis 합창단과 공연)

 

Edith Piaf La Goualante du Pauvre Jean French & English Subtitles

에디뜨 삐아프 “The Poor People of Paris(불어 제목 La Goualante du Pauvre Jean)“

 

 

“Streets of London”이 수록된 앨범

 

 

영국 노숙자 단체 Crisis 홈페이지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한 장면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밤을 지새는 사람들(Nighthawks)” ​1942년, 캔버스에 유채, 84 x 152cm, 시카고 미술연구소

 

필자 정진택: 학예사(큐레이터)로 고미술 전시분야 전공이다. 우리음악 탈춤 영화시나리오 등에 조예가 깊으며 우리음악과 세계음악 특히 제3세계 비주류음악에 대해서도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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