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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숲의 천이에서 배우는 삶의 희망

  • 기자명 이상봉 기획위원
  • 입력 2019.12.06 20:10
  • 수정 2019.12.0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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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천이과정 / 산림청 제공
숲의 천이과정 / 산림청 제공

숲의 천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 과학 시간에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단어다.

산불이 나서 숲이 잿더미가 되었을 때, 숲의 생태가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다.

맨땅 → 지의류, 선태류 → 초원 → 관목림 → 양수림 → 혼합림 → 음수림

처음에는 몸집이 작고, 자손의 크기도 작으며 많은 자손을 낳는 종이 빠르게 땅을 점령하여 우점종이 된다. 이후 좀더 몸집이 크면서 더 많은 햇빛을 받을 수 있는 양수림(소나무 등 주로 침엽수) 수종이 우점종이 되었다가, 그로 인해 숲에 그늘이 점점 많아지면, 햇빛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잘 살 수 있는 음수림(참나무 등 주로 활엽수) 수종이 점차적으로 우점종이 된다.

최근 숲의 천이에 관한 내용을 다시 살펴보면서, 우리나라 한국 전쟁 시기 이후의 산업화 과정을 떠올렸다.

한국 전쟁 이후 잿더미가 된 한반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처음에 1950-60년대에는 다들 먹고 살기 바빠서, 최소한의 자본으로 복구할 수 있는 부분은 복구하면서, 다들 아이들 많이 낳고 시대 변화에 순응하며 지내는 사람들이 다수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1970-80년대에 경제가 조금씩 성장하고, 남들보다 좀더 빠르게 덩치를 불리는 기업들이 재벌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재벌의 성장은 사회에 그늘을 만들고, 1990년대를 지나면서 사람들은 그늘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조금씩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는 덩치 큰 자와 함께, 그들의 그늘 속에서 내실을 다지면서 살아남은 자가 혼합되어 있는 세상으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빨리빨리'를 매번 외치던 이유가, 그 전략을 사용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나 생각해본다. 근래의 출산율 저하는 그늘의 영향력을 잘 보여준 것인가 생각해본다. 최근의 슬로우 라이프 붐은 그늘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인가 생각해본다.

2000년대를 살아가는 많은 젊은이들은 그늘이 일상화되어 있는 삶이 힘들고, 과거의 풍부했던 햇빛 속에 성장했던 큰 나무들을 부러워하겠지만, 숲의 천이는, 양수림의 시대는 지고 언젠가 음수림의 시대가 온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참나무는 소나무가 그늘을 만든다고 그 탓을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참나무의 시대가 온다. 이런 치열한 생존의 세상에서 희망을 찾는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여기서 대한민국 젊은이들을 절망에 빠지지 않게 만드는 새로운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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