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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시카고 피자 시식 후기

■시카고 피자나 먹어랏!

  • 기자명 편집부
  • 입력 2020.01.02 16:51
  • 수정 2020.05.2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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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규/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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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뼈가 부러진 지 두 달이 지났다. 수술 후 한 달이 지나자 흔히 ‘깁스’라고 부르는 것을 절단하고 재활운동을 일주일에 두 번 하고 있다. 오전 9시에 재활운동을 한 시간 하고, 진료와 물리치료 그리고 도수치료를 받으면 점심 먹을 시간이 된다.

하루는 피자가 먹고 싶었다. 병원 근처에 마침 ‘이태리식 화덕 피자와 독일 맥주’를 파는 집이 있어서 가 보았다. 점심 메뉴 광고 플래카드는 예전처럼 걸려 있었는데 불이 꺼져 있었다. 이태리에서 요리 공부를 했다는 주인은 머리칼을 삭도로 밀었는지 베니토 무솔리니를 연상케 했었다. 무솔리니와 달리 말수가 적었으나 키와 덩치가 훨씬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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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덕피자집을 나와서 시카고 피자집을 지나쳤다. 그냥 집으로 갈까 했으나 빈자리가 보여 들어갔다. 8인치 구운 토마토 피자에 페페로니와 양송이를 추가했다. 가격은 이만육천 원, 삼천짜리 콜라 한 캔은 별도였다. 움푹 들어간 프라이팬에 피자가 담겨 왔다. 거치대에 팬을 올려놓고 아래에 놓인 초에 불을 붙였다. 촛불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시카고 피자는 이태리식 화덕 피자와는 말할 것도 없고 익숙한 도미노 피자와도 달랐다. 기본이 되는 빵이 짙은 갈색이었고 두터웠다. LA 가는 아메리칸 에어라인 비행기에서 엉덩이로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던 승무원의 육중한 몸피가 떠올랐다.

피자를 마주하고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절단된 피자 조작을 손으로 집어 먹으려 했는데 여의치 않았다. 움푹 팬에 푹 담겨 있던 치즈는 조각을 내자마자 그대로 흘러내렸다. 소스는 질척거렸으며 싹둑 잘린 토마토는 손쉽게 빵을 이탈했다. 칼로 다시 피자 조각을 조각내고 포크로 찍어서 입안으로 욱여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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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죽하면서 소금을 뿌렸는지 짠맛이 먼저 밀려왔다. 치즈는 고소함보다는 신속하게 공복감을 물리쳤다. 열량이 넘쳤는지 겨우 두 조각을 먹었는데 배가 불러왔다. 이런 팬 피자는 고달프고 힘든 노동을 한 사람들에게 잘 어울리겠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리던 1904년 시카고에서 삶은 힘들고 고달팠다.

우리나라를 두고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20세기 초, 미국 대도시에는 이민자들과 농촌의 흑인이 몰려들었다. 1880년에 50만 명이던 인구는 10년 뒤인 1890년에 두 배로 증가했다. 그런데 이 인구의 약 60%는 해외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고, 20%는 최근에 이민 온 사람들이었다. 막스 베버 말대로 시카고에서 “그리스인은 길거리 아무 데서나 양키의 구두를 5센트에 닦아주고 있으며 독일인은 양키 급사 노릇을 하고, 아일랜드 사람들은 노조원들을 처리해 주며, 이태리 사람은 하수구 청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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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였던 시카고 인구는 철도 덕분에 급격히  도시 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주택과 방이 부족해 임대료는 치솟았으며 집에서 조리하기보다는 길거리에서 서서 먹을 수 있는 햄버거나 조각 피자가 편하고 저렴했다. 우리가 아는 미국식 피자의 양대 산맥인 뉴욕식과 시카고식이 태동한 때도 이 무렵이었다.

고열로 가열된 화덕에서 굽는 피자와 달리 프라이팬 피자는 시간이 더 걸린다. 아무래도 전기 오븐으로 굽는 것이 십수 초 만에 삼겹살 기름기를 빼내는 불가마 화덕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오븐으로 굽는 편이 저렴했기에 뉴욕이나 시카고에서 맨 처음 피자를 팔던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초기 '시장진입비용'이 적었을 것이다. 임대료가 싼 작은 매장에 어울리는 오븐으로 밀가루에 고열량 모조치즈를 들이부은 피자는 이주노동자들 허기를 달래는데 제격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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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열량 치즈가 흘러내린 시카고 피자를 반쯤 먹고서 나머지를 포장했다. 적당히 배부르기도 했거니와 촛불이 꺼지자 피자가 급격히 식감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런 게 미국 음식문화의 특징인가 싶었다. 화덕피자는 식어도 바삭바삭한 식감으로 먹을 수 있다.

다시 혼자 맞는 저녁, 달리 뭘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전자레인지로 시카고 피자를 다시 달구었다. 그냥저냥 먹고 났더니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그냥 남기고 올 것을 괜스레 들고 왔다. 후회막급인 저녁, 조선(북한)의 크리스마스 선물에 잔뜩 긴장한 미국 정찰기들이 서울 상공을 떠돌고 있다. 에잇 시카고 피자나 먹어랏!

 

◇ 글쓴이: 김대규

독일 기센대학 법학(박사),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

사진 / 필자
사진 / © 김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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