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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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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 편집부
  • 승인 2020.01.0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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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이코노뉴스 편집위원, 본지 기획위원

 

“1790년에는 수도원 교사였던 사람이 1792년에는 교회를 짓밟았고, 1793년에 공산주의자였던 사람이 5년 후에는 백만장자가 되었으며, 10년 후에는 (프랑스 최고 부자 반열에 오른) 오트란토 공작이 되었다.”(『조제프 푸셰』, 슈테판 츠바이크, 이화북스, 9쪽)

그리고 나폴레옹의 신임을 받아 경찰 장관으로 10년이나 권세를  나폴레옹을 탄핵하는 데 앞장섰고, 자신이 맞아들인 부르봉 왕가에 의해 고국에서 쫓겨나 이역만리에서 숨을 거뒀다. 프랑스 혁명에서 왕정복고에 이르는 23년에 걸쳐 기괴한 음모와 배신 행각으로 악명을 떨친 야심가, 조제프 푸셰 이야기다.

 

배신의 역사에 획을 그은 경찰 장관 또는 검찰총장

1792년 프랑스에서 부르봉 왕가의 전제 체제를 타도하고 공화제를 수립하기 위한 삼부회가 소집되던 때. 당시 32세이던 그는 수도원을 박차고 나와 혁명 진영을 공격하는 보수파 의원으로 국민공회에 입성했다. 하지만 대세가 기울어진다고 느낀 그는 주저 없이 혁명파로 변신했다. 때는 1793년 1월 루이 16세 목숨을 결정하는 공회 투표가 있던 날. 겨우 10시간 전에 왕을 지키겠노라고 호언장담한 그가 연단에 올라 “사형”을 외쳤다. 결국 왕은 처형되었다.

내친김에 급진파로 변신해 로베스피에르 추종자가 된 푸셰는 역사상 가장 잔인한 정치적 만행을 저지른다. 수도사 전력을 부정하며 무신론자 대열에 합류한 푸셰는 당시 프랑스 제2 도시 리옹에서 기독교 세력 봉기가 일어나자 자청하여 사형집행인으로 파견되었다. 푸셰는 먼저 주범인 사제를 처형한 다음, 마구잡이로 잡은 주민들을 60명씩 묶어 대포로 쏘고 산탄총으로 갈겨 죽였다. 이는 순전히 그가 “단두대는 너무 느리게 일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단 몇 주 만에 1600명을 처형한 뒤 푸셰는 개선장군처럼 파리로 귀환했다.

▲ 『조제프 푸셰』 = 슈테판 츠바이크, 정상원 역, 이화북스, 2019. 9. 30.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공포정치가 정점으로 치달아 온건파 지롱드당에 이어 자코뱅당원들마저 단두대에 올랐고 마침내 혁명 지도부는 로베스피에르만 남아 점차 대중들이 공화정의 참혹성에 환멸을 느낄 무렵, 푸셰는 다시 극적으로 변신한다. 즉 불안에 젖은 의원들을 차례로 설득하여 저 유명한 테르미도르의 반동을 끌어내는데 성공, 자신의 보스이자 제1 권력자 로베스피에르를 비명에 보낸 것이다.

이후 공화정의 몰락으로 정계에서 퇴출당하여 밀정 짓으로 연명한다. 그러던 푸셰는 조금씩 조직과 금력을 확보하여 다시 권력에 접근했고, 급기야 프랑스가 총재정부로 변한 1799년 도피자 신세에서 일약 경찰 장관, 우리로 치면 검찰총장 신분으로 부활한다. 푸셰가 취임 직후 취한 조치는 전날까지 자신이 총재로 일하던 자코뱅 클럽을 파괴하는 일이었다. 푸셰는 밀정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클럽과 그 조직을 아주 깨끗하게 쓸어버렸다.

이제 푸셰는 자신만의 비밀첩보원과 밀정단으로 전국 각지를 그물망처럼 엮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정보권력을 구축했다. 나폴레옹이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로 1인 독재를 확립하고 이어 제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푸셰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2인자 지위를 굳혀 나갔다. 하지만 전쟁 능력을 과신한 나폴레옹이 원정에서 거듭 패하자 푸셰는 숨겼던 배신자 본성을 다시 발휘한다. 절호의 기회가 왔으니 1815년 6월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영국군에 항복한 때다. 국정 공백으로 임시정부 수반에 오른 푸셰는 10년 넘게 섬긴 주군을 비웃음과 함께 폐위 처분했다. 이때 푸셰 재산은 2000만 프랑으로 프랑스에서 두 번째 규모였다.

그런 다음 푸셰가 상상도 못 한 역전극이 일어났다. 프랑스가 왕정복고를 선택하자 객지에서 돌아온 부르봉가(家) 루이 18세가 왕좌에 앉았는데, 그는 자신의 형 루이 16세를 단두대로 보낸 푸셰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는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푸셰는 장관직에서 쫓겨난다. 프랑스 의회는 그에게 “신의 선택을 받은 왕의 옥체를 해친 자”라는 낙인과 함께 영구 추방령을 내렸다. 푸셰는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채 이 나라 저 나라 떠돌다 1820년 12월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카프카의 문지기와 한국 정치 검찰

조국 전 장관 일가족을 수사해 온 윤석열 총장 휘하 특수부 검찰이 보이는 행태는 프란츠 카프카 작품 『소송』에 나오는 '시골 사람과 문지기' 일화를 연상케 한다. 어떤 권력집단으로부터 영문도 모른 채 소송을  자기 힘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음을 알게 된 주인공 요제프 카.

그를 상담하게 된 신부는 ‘착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시골 사람이 법원 앞에 와서 문지기에게, 소송해야 하니 들여보내 달라 청했다. 문지기는 지금 입장할 수가 없으니 기다리라 말한다. 문제는 다음날도 다음 달도 그다음 해에도 문지기가 시골 사람을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방법도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그는 문지기를 수년간 연구하다가 그의 모피 깃에 붙어 있는 벼룩까지 알아보고 그 벼룩에게까지 자기를 도와 문지기의 마음을 바꾸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마침내 그의 시력이 약해진다.” (『소송』, 프란츠 카프카, 이주동 역, 솔출판사, 2006년, 231쪽)

그렇다면 시골 사람이 문지기에게 완벽하게 속았던 것일까? 하지만 신부는 그건 순진한 ‘착각’이라며 “문지기는 법에 따라 임무를 받은 것이어서 그의 권위를 의심한다는 것은 법을 의심하는 것”이라고 충고한다. 오늘 한국 사회에 이를 대입하면 시골 사람은 시민에 문지기는 검찰에 해당할 것이다. 검찰은 법무부 외청 소속이면서도 실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여 만인의 유무죄를 예단하는 무소불위 권력 기관으로, 그런 탓에 오늘날 공정한 법 집행을 짓밟는 사법의 문지기가 되었다.

소설 『소송』에서 문지기가 그러했던 것처럼 법을 권력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오류란 있을 수 없다. 그들은 특정인을 죄인이라 생각하면 반드시 죄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죄를 캐내기 위해 인디언 기우제도 지내고 엄마 찾아 삼만 리도 다니며 수술칼로 사방팔방 찔러댄 끝에 마침내 증거를 엮어 죄인을 만들어내는 존재다. 그렇게 하여 카의 말처럼 “허위가 세계 질서가 되고 마는 것(239쪽)”이니 검찰 무오류의 신화가 대개 이처럼 작위적인 허위의식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가짜 돈키호테와 마피아식 ‘절대 규율’

미구엘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유쾌하게 정의를 되찾는 방법에 관한 고전이다. 은퇴한 지 한참 된 시골 귀족 돈키호테 데 라만차의 좌충우돌 모험담에 오랜 세월 독자들이 빠져들었다. 그 이유는 “이 세상과 대중 사이에서 떨치고 있는 세력과 권위를 부숴버리고자” 한 작가 뜻이 불멸의 공감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비록 심신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허약해서 무모하게 벌인 대부분 싸움에서 자신이 중경상을 입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는 자신과 언약한 다음과 같은 맹세 하나는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이 약속을 꼭 지키라는 뜻에서 내가 누군지 밝히자면 나는 불의와 부정을 척결하는 용감한 돈키호테 데 라만차요. 그러니 내게 약속하고 맹세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오. 반드시 당신이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테니 말이오.”

오늘 우리는 검찰 수뇌부 입에서 틈만 나면 “오직 국민만을 보고 간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경험칙상 정치 검찰에게 국민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들에게 돈키호테가 한 저 말을 들려주고 싶다. 제발 틈만 나면 입바른 말이나 하는 가짜 돈키호테 짓일랑 그만하라고. 그게 어떤 비극을 초래할지 마피아를 예로 들어 살펴보겠다.

이탈리아 시실리계 갱단인 마피아는 1919년의 금주령을 계기로 미국에 본격 진출한다. 특유의 냉혹함으로 다른 갱단을 제압해 1920년대 중엽이면 시실리 패밀리 간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암흑가를 지배한다. 당시 리더는 뉴욕 마세리아 패밀리다. 그는 유독 잔인해 다른 보스들을 암살해가면서 권력을 독점하려 했다. 그런데 소규모 조직이던 마란자노 일당이 마세리아 측근을 이용해 그를 제거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마란자노가 마피아 조직을 라 코사 노스트라(La Cosa Nostra, ‘우리들의 임무’)로 부르게 하여 지금도 그 약자인 LCN이 사용된다.

당시 마란자노가 가족들에게 제시한 LCN의 5대 계율은 이후 마피아의 공통된 규율로 자리 잡았다. 그 첫째는 오메르타, 즉 조직에 대한 침묵의 맹세다. 이를 어기면 재판 없는 처형이 가해진다. 둘째는 엄격한 위계다. 부하는 상사에게 절대복종하며 반론을 제기하거나 이유를 물을 수 없다. 셋째는 동료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 넷째는 동료 부인을 탐내지 말라는 것, 마지막 다섯째는 조직 사이에 복수를 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실 마피아들은 마란자노의 이 모든 규칙보다 더 중요한 규칙 하나를 늘 실행에 옮겼다. 그것은 바로 마란자노가 마세리아를 죽이면서 내놓은 이유, 즉 조직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보스도 제거할 수 있다, 아니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마피아 조직을 수십 년 동안 미국 암흑가의 지배자로 군림하게 한 ‘절대 규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란자노 자신도 같은 이유에서 젊은 갱들의 쿠데타에 당하고 말았으니, 이 규율이 얼마나 강력하게 마피아 세계를 지배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마피아식 절대 규율의 무자비한 집행을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검찰총장들에게서 심심치 않게 확인해 왔다. 2003년 3월 김각영 총장은 취임 4개월 만에 사퇴했다. 당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파격적인 인사를 밀어붙이려 하자 부하 검사들이 보스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운 것이다. 2005년 10월 김종빈 총장은 임기 1년을 못 채우고 물러났다. 당시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사건과 관련해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불구속 수사를 지시하자 부하 검사들이 들고일어나 총장의 대응 미숙을 성토한 결과다. 2011년 7월에는 국회 법사위가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통과시키자 부하들이 김준규 총장의 옷을 벗겼다.

각각의 사안에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 모두는 검찰의 마피아식 조직 문화에서 비롯한다. 한국 검찰이 이처럼 천박한 하극상 문화에서 도무지 벗어날 길을 찾지 못하고 있음을, 우리는 윤석열 총장의 저 유명한 발언에서 거듭 확인한다.

“저는 (윗)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검찰 조직은) 대단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한국의 모든 정치 검찰에게 해당한다. 그들은 윗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기회가 오면 언제라도 조직을 위해 보스를 제거할 용의가 있다. 그가 총장이건 말건.

 

그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문재인 정부로부터 적폐 청산이라는 역사적 난제를 수행할 최적임자라 칭송받으며 검찰총장에 임명된 윤석열. 그런 그가 직에 오른 지 반년 남짓한 시점, 진보와 여권에는 독사와 같은 존재로, 보수와 야권에는 박쥐와 같은 존재로 낙인찍혔다. 더불어 사람들은 그가 자신을 신뢰하고 지지한 조국 전 장관에게 야차와 같은 존재가 되었음을 알고 있다. 대체 왜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그를 보면 지나친 야심가라는 측면에서 프랑스 경찰 장관 푸셰가 소환되고, 검찰 조직을 맹목적으로 사랑한다는 측면에서 제거 직전의 마피아 보스들이 떠오른다.

그에 비하면 돈키호테는 약간 나사가 풀렸지만 기사도 정신 하나는 초지일관 까먹지 않았으니 그 얼마나 인간미 넘치는 정의의 사도인가. “내 말에 토토토토토…. 다는 새끼는 전부 배반형이야 배반형! 직사 시켜버리겠어 직! 사!” 하던 영화 <넘버 3(쓰리)>의 조필(송강호 역)은 온통 무식으로 도배한 깡패지만 결단코 양아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자부심 하나는 초지일관 붙들고 있었으니 그 얼마나 대의에 충실한 리더의 사표인가.

헤밍웨이의 대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미국 교수 로버트 조던은 극우 파시스트 프랑코 세력의 폭정에 맞서 싸우고자 스페인 내전에 자원한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이 맡은 임무가 애초의 성과를 달성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교량 폭파에 나섰다가 최후를 맞이한다. 조던은 이처럼 얼핏 허무하게 목숨을 버리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그의 드라마틱한 참전 여정에서 숭고한 인류애의 원형을 발견한다.

윤석열 총장도 지금쯤이면 무언가 한참 엇나갔단 걸 알지 모른다. 검찰 개혁에 나선 장관 하나 잡겠다고 자작한 혐의를 지속해서 언론에 흘려가며 4개월 남짓 100명에 달하는 특수부 검사를 투입해 셀 수 없는 곁가지 수사로 그 가정과 주변을 난도질했다. 일찍이 우리 검찰이 이만큼 잔인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 정도 수사라면 만들지 못할 죄인이 없다는 말이 의심스럽다면 아무 검사 하나를 붙들어 특수부 검사 1백 명을 배정해 인연 지연 학연 포함해 4개월만 별건에 별건으로 수사해 보라. 나오지 않을 증거가 있겠는가.

버림받은 마피아 보스는 대체로 암살되고 버림받은 검찰총장은 대체로 사임하는데 어떤 경우든 조직에서 제거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게다가 윤 총장에게 지금 남은 건 시간 뿐이라 선택의 여지도 없다. 이쯤 되면 막 가는 상황이다. 다만 그의 오기에서 인류애도 민족애도 아닌 굳이 말하자면 엇나간 조직 사랑만이 느껴지는 건, 그리하여 20세기 뉴욕 마피아 보스의 최후나 저 조제프 푸셰의 말로 같은 기운이 스멀스멀 느껴지는 건 왜일까. 여전히 종을 울리고는 있지만 대체 그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는가.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이코노뉴스 편집위원으로 이 글은 이코노뉴스(http://www.econonews.co.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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