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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척이다 발견한 영화 ‘우리집’

  • 기자명 서양원
  • 입력 2020.02.11 12:05
  • 수정 2020.02.1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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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속은 안락하다. 겨울철 이불속은 더욱 그러하다. 세상의 모든 정보가 들어있는 휴대폰만 있으면 이불속에서 세상과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한없는 검색 여행을 떠나다가 우연히 발견한 재미있는 영화, 책을 발견하면 끝없는 시간 여행을 떠나곤 한다. 그 와중에 발견한 영화가 <우리집>이다. <우리집>은 윤가은 감독, 김나연, 김시아, 주예림 주연의 2019년 8월 극장 개봉한 영화이다.

 

♦ <우리집> 그 이야기 속으로

 

<우리집>은 세 아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영화 내내 세 아이에게 집과 가족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영상을 통해 보여준다. 집과 가족은 세 아이를 곤란하게 하고 슬프게 하고 때로는 매우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하나는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집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부모님은 아침에도 싸우고, 저녁에도 싸우고 한밤중에도 싸운다. 그리고 그 싸움 속에서 나오는 언어들은 매우 폭력적으로 하나와 오빠에게 다가온다. 급기야 하나와 오빠가 들을 수 있는 공간에서 원하지 않는 출산 얘기까지 나온다. 물리적인 폭력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와 오빠에게 집은 안정감이 아니라 지옥 같은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곳이다.

유미·유진 자매는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가정이다. 오르막길 오래된 다세대 주택 옥탑방에서 둘이서 살아가고 있다. 멀리 일하러 간 부모님,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하는 삼촌도 제대로 찾아오지 않는다. 부모의 돈벌이로 인해 방치되어 있는 자매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니를 잃어버린 유진이를 통해 세 아이들은 우연히 만나게 된다.

세 아이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한다. 하나는 부모가 화해하길 바려며 가족여행을 가자고 하거나 같이 밥을 먹자고 하는 등 갖은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부모님은 물론이고 오빠조차 시큰둥하다. 엄마가 외국으로 떠나갈까 봐 여권을 보관함에 숨기고, 아빠의 애인에게 전화가 오니까 아빠의 휴대폰조차 보관함에 감춰버린다. 유미·유진 자매는 이사해야할 처지에 놓인다. 6,7번의 이사 경험이 있는 유미·유진 자매에겐 이사는 끔직한 일이다. 하나와 합세하여 집을 보러 온 사람에게 덥다는 둥, 벌레가 많이 나온다는 둥, 계약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세 아이는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고 빠르게 친해진다. 체한 유진의 손을 따 주고, 함께 장을 보고, 오므라이스를 먹고, 유미·유진 자매 집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집을 엉망으로 만든다. 급기야 서로의 희망을 담아 아름다운 집 ‘종이상자 집’을 만든다.

세 아이의 고통이 극대화될 때, 유미·유진 자매의 이사가 거의 확정적이고 하나 부모님의 이혼이 확인될 즈음 세 아이는 유미·유진 자매의 부모님을 만나러 긴 여행을 떠난다. 해변가에 도착한 세 아이는 사소한 문제로 다투게 된다. 결국 서로의 희망을 담은 ‘종이상자 집’을 서로 부수며 울음을 터트린다. 무엇인가를 깨달은 세 아이는 우연히 비어 있는  텐트에 들어가 잠을 잔다. 다음 날 부모님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집에 돌아간다. 세 아이는 이사를 하더라도 끝까지 언니 동생 할 것을 맹세한다. 1박 2일의 여행같은 가출에서 성장한 하나는 집에 돌아온다.  나머지 가족들의 추궁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리에 앉힌 다음 밥을 먹자고 한다.

 

세 아이가 만든 '종이상자집' (구글이미지)

 

♦ ‘종이상자집’을 부수며 깨달은 <우리집>

 

드라마건, 가족 영화건 가족은 최대의 행복이고 지켜야 할 보루인 것처럼 묘사된다. 가족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가족이 화목해야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강요한다. 아이들의 바람이 어른들을 감화시키고 나아가 가정의 화목을 이룬다는 틀에 박힌 주제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우리집>은 불행과 불안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그것은 가족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속 세 아이는 가족이 무너지더라도 언제든지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고, 그 속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 아이가 만든 ‘종이상자집’은 각자의 희망을 담는 집이다. 하나는 부모님이 이혼하지 않고 오순도순 밥을 같이 먹는 <우리집>을, 유미·유진은 낯선 곳으로 이사 가지 않는 <우리집>을 희망하며 만든 집이다. ‘종이상자집’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보는 화목한 <우리집>, 누구나 꿈꾸는 사랑과 소통이 있는 <우리집>인 것이다. 세 아이는 다툼 속에서 '종이상자집‘을 부순다. 아이들은 눈물을 흘린다. 아이들은 무엇인가 깨닫는다. 아이들은 ‘종이상자집’이라는 건축물로서 집, 상상속의 집을 허물어트린다. ‘종이상자집’을 부수며 집이 가져야할 본래의 의미 - 정서적 유대감, 싸움을 통해서 얻어지는 식구에 대한 이해-를 아이들은 깨닫지 않았을까. ’종이상자집‘을 부수며 집에 대한 의미를 논리적이 아닌 감각적으로 체화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종이상자집’을 부순 아이들은 텐트 안에서 차분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가출로 인해 불안했던 가족을 뒤로 한 채 하나는 평온하게 밥을 먹자고 한다. 영화 첫 장면에서 안절부절한 눈빛으로 밥을 먹자고 권유하는 모습과 대비된다. 영화 전반부에 하나는 가족을 밥을 짓고, 가족 여행을 떠나게끔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부모의 변화를 도모한다. 자기의 노력이 부모님을 변화시켜 화목한 가정으로 이어지길 바랐다. 이러한 바람과 상관없이 부모의 불화는 계속되고 더 나아가 이혼의 위기에 처한다. 이러한 가정의 위기를 하나가 해결할 수 는 없다. 영화 마지막 하나는 가정의 위기를 해결 할 수 는 없지만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부모의 불화가 이어지더라도 더 나아가 이혼을 하더라도 하나는 가정의 유대감을 위해 밥을 짓는다. 전반부에는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밥을 했다면 마지막 장면은 상황이 변하더라도 밥을 한다는 것이다. 하나는 하나의 방식으로 오늘의 <우리집>을 지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마지막 장면은 스피노자의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를 떠오르게 한다.

 

함께여서 매일이 기적인 아이들 (구글이미지)

 

♦ 아이들, <우리집>의 객체가 아닌 주체

 

봉준호 감독은 "<우리집>은 햇살 가득 슬프고, 명랑한데 가슴 아픈 영화였다"고 감상평을 말한다. 봉준호 감독의 얘기는 맞다. 이 영화는 슬프고 가슴 아픈 영화다. 상상(허구)속 집의 아이들, 교과서에서 나오는 반듯한 집의 아이들, 아이들의 바람을 알아서 해결하는 화목한 부모 밑에 아이들이 아니라서 이 영화는 슬프고 가슴 아픈 영화다. 하지만 이것은 ‘어른’들의 시각에서 나온 감상평이 아닐까?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어른들의 결정에 순응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가정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 아이 스스로가 가정의 객체가 아닌 주체임을 이 영화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온실 속의 화초도 아름답지만 비바람을 맞으며 거친 들판에 피어난 야생화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이 영화는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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