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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휴식이 필요한 진중권

  • 기자명 서양원
  • 입력 2020.02.18 15:10
  • 수정 2020.02.1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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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과 안철수
진중권과 안철수

"허구한 날 나오니 내가 진중권 기사를 안 볼 재간이 없다."

진중권의 말 "상대가 못 알아들으니 내가 토론에서 이길 방법이 없다”를 패러디해 봤다.

포털사이트 뿐만 아니라 심지어 야구 커뮤니티에서도 ‘진중권’은 빠지질 않는다. 검찰의 조국 가족 수사 이후 진중권은 매일 상한가를 치는 인물이 되었다. 특유의 낙인찍기와 조롱으로 많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아마 진중권은 올해 인물 또는 기사 검색 순위에서 상위권에 랭크되지 않을까 싶다.

■ 나의 기억속의 진중권

나는 진중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책을 성실히 읽어 본 적도 없다. 인터넷 논객으로 이름을 떨칠 때에도 잘 읽지도 않았고, 패널로 나온 토론도 잘 보지 않는다. ‘진중권’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책을 출간할 때였다. 모두 알다시피 조갑제의 박정희 전기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제목을 패러디한 것인데, 당시 많은 인기가 있는 책이었다.

내 기억속의 진중권은 두 가지 사건으로 선명하다.

하나의 사건은 이른 바 ‘종북’이라는 진중권의 낙인찍기다. 2000년대 초중반의 일이다. 민주노동당 내에는 여러 의견 그룹(정파)이 있었다. 민족해방그룹(NL), 민중민주그룹(PD), 사민그룹을 비롯해 여러 의견 그룹이 있었다. 사안별로 대립하기도 하고, 합종연횡하기도 한다. 당내에서 노선투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당원은 당원게시판에 자기 생각, 타 그룹 비판을 싣고 서로 논쟁을 벌인다. 그 와중에 진중권은 민족해방그룹(NL)을 ‘종북’으로 낙인찍는다. ('종북'의 어원은 진중권 - http://theacro.com/zbxe/free/585508) 같은 당 조승수 의원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민족해방그룹(NL)을 종북 세력으로 규정해 버린다. 

내 기억으론 그 당시 조선, 중앙, 동아일보에서도 보지 못한 단어이고, 독재 정권하에서도 공식 발표문에 좌익, 용공, 친북이라는 단어는 있어도 ‘종북’이라는 단어는 없을 때였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를 비롯한 보수매체가 이를 받아 ‘종북’을 대중화시킨다. 이러한 ‘종북’ 프레임은 전원책의 ‘김정일, 김정은을 개새끼라고 못하면 종북’이라는 사상검증으로 확대된다. 급기야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대한민국 핵심 종북 좌파 명단’, 이른바 블랙리스트 명단에 진중권도 오르게 된다. 이처럼 ‘종북’ 프레임은 진중권이 의도했든 안했든 보수 기득권 세력에 의해 철저히 이용되고 있다.

두 번째 사건은 고 송지선 아나운서에 관한 것이다. 지금 야구인이나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송지선’이라는 단어는 불문율에 가깝다. 조롱과 멸시로 한 인간을 투신하게끔 했던 끔찍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진중권은 수면제를 M&M으로, 목매다는 행위를 넥타이로, 투신을 번지점프로 표현했다. 조롱을 넘어서 인격 살인에 가까운 글이다. 아직까지 사과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이 두 사건 이후 진중권은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나에겐 그저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지닌 지식의 양이나 깊이가 어느 정도 인지 모르나 적어도 말과 글이 가져야할 기본 품격의 문제로 나에겐 길가의 돌맹이처럼 무심한 존재가 되었다.

진중권과 그의 30년 지기 조국
진중권과 그의 30년 지기 조국

■ 영리한 비즈니스맨 진중권

매일경제 노원명 논설위원은 ‘진중권은 영리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적으로 맞는 얘기다. 그의 페이스북 언어는 매우 뜨겁다. 그의 언어는 매일 한 두 개의 기사거리를 만든다. 진보 논객으로 불렸던 그가 진보 진영을 향해 총질을 하니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에게는 이처럼 좋은 먹잇감이 없을 듯하다. 이처럼 진중권은 낙인찍기와 조롱이라는 먹이를 보수언론 및 보수정치인의 입맛에 맞게끔 제공한다. 매일 ‘진중권’이라는 단어가 신문 방송 가릴 것 없이 나오니 관심을 먹고 사는 진중권은 제법 행복할 듯하다.

다음은 진중권이 한국일보에 기고한 글의 일부분이다. 

조국의 사찰무마는 우병우의 직권남용이었다. 청와대의 선거개입은 국정원의 대선공작이었고, 조민의 표창장은 정유라의 금메달이었고, 고대생들의 항의는 그전엔 이대생들의 시위였다. “대리시험이 오픈 북”이라던 유시민은 그전엔 “주어가 없다”던 나경원이었다. “문프께 모든 권리를 양도해 드렸다”는 공지영은 그전엔 “나라를 팔아먹어도 1번”이라던 어느 경상도 아낙이었다. 서초동 조국기부대는 그전엔 헌재 앞 태극기부대였고, 그보다 훨씬 전엔 이승만 박사의 출마를 청원하던 우마차 부대였다.

무능하나 순결했던 진보는 어느새 유능하나 부패한 보수로 변신했다. 이는 ‘예외’가 아니라 새로운 ‘정상’이다. 정권은 바뀌어도 권력은 바뀌지 않는다. 상상인은 그전엔 부산저축은행이었고, 방송에서 하차 당한 양희은과 박미선은 그전엔 김미화와 김제동이었다. (한국일보 2월 13일 ‘기득권이 된 운동권, 진보는 보수보다 더 뻔뻔했다’)

진중권 글쓰기의 전형이다. 트위터, 페이스북은 단문이라 기고글로 예를 든 것인데 단문이든 장문이든 진중권의 글쓰기는 한결같다. 진중권 글의 특징은 맞은편에 인물이나 대상을 설정한다. 인물이나 대상을 가벼운 재치와 선정적인 표현으로 비난에 가까운 조롱을 한다. 진중권의 조롱 대상은 조선일보, 조갑제로 시작하여 강준만, ‘나는 꼼수다’, 정봉주를 지나 이제는 조국, 김어준, 유시민에 이르렀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중에게 인정받은 인물이거나 지식인 사회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유명인들이다. 진중권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대상을 찾아 싸움을 걸고 자극적인 표현으로 자신을 과시한다. 낙인찍기 및 조롱으로 소비자를 만족시킨다. 그러나 진중권은 대상 인물에 대해 한껏 조롱할 뿐 제도나 구조적 문제의 해결, 해결을 위한 실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진중권은 논객일 뿐 대중의 마음을 울리는 ‘스피커’는 아닌 것이다.

조선일보 등 보수매체와 진중권은 서로를 이용하고 있다. 조선일보 등 보수매체는 진보 세력의 분열을, 진중권은 레거시 미디어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한다. 진중권의 본마음이 ‘공정’과 ‘정의’를 져버린 집권세력에 대한 충정어린 비판에 있든, 진보에서 보수로의 전향에 있든 중요하지 않다. 분명한 건 영리하게 비즈니스하고 있다는 것이다.

■ 휴식이 필요한 진중권

나는 진중권의 변화에 담담하다. 어쩌면 능히 그렇게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조국이라는 상황에서만으로 이런 풍경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의 도덕성과 생각을 조롱함으로 대중으로부터 관심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진중권의 본질이다. 나는 진중권을 그렇게 해석한다.

이전의 진중권을 좋아하거나 인정했던 분들은 현 상황이 무척 씁쓸할 것 같다. 검찰의 조국 가족 수사 이후 진중권의 입장 변화에 적응이 안 될 것 같다. 현 정부에 대한 비난과 동시에 녹색당에 대한 지지도 선언했기에 ‘우리 편인 듯 우리 편이 아닌’ 이상한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이러한 씁쓸한 상황은 진중권에 대한 배신감도 있겠지만 보수 세력에게 실컷 이용되다가 버려질 것에 대한 염려 때문이기도 하다.

진중권 스스로 일련의 선택이 그의 행복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진보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순수함에서 선택을 했는지도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그가 비난했던 많은 사람들이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 섞기가 싫어서 그런지, 진보 논객 진중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진중권은 얻은 것도 있겠지만 많은 것을 잃었다. 이후 새로운 지지층이 그의 기대만큼 그를 사랑해 줄지 알 수 없다. 다만 진중권 스스로도 지금까지 지지와 성원을 보내줬던 많은 분들의 입장에서 한번쯤은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잠시 글쓰기를 멈추고 자신을 되돌아 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진중권에겐 휴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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