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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코로나 발 세계 대공황(하편)

■ 공황의 세계적 확산과 전망

  • 기자명 편집부
  • 입력 2020.04.07 21:49
  • 수정 2020.05.2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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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길/노동사회과학 연구소 교육위원장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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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발 세계 대공황(하편)

작년 4월 <다가오는 공황: 이번에는 다르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씌여진 상편에 이은  하편입니다. 상편은 세계적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기 직전인 2월 초, 그리고 이번 하편은 판데믹 선언 이후 최근 쓰여졌습니다. 

필자는 1971년 달러 금태환 정지 이후 1980년대 신자유주의를 거쳐 바야흐로 세계화를 달성한 금융자본주의를 ‘의제자본주의fititious capitalism’로 규정합니다(필자에 따르면, 일반적 의미의 자본주의는 생산자본이 노동을 소외시키고 생산을 지배한다면 의제자본주의는 의제자본인 금융자본이 생산자본과 노동을 지배합니다).

상편에서 의제자본주의가 2008년 금융 공항을 변곡점으로 양적완화 여력 소진에 따라 다시 공황을 맞게되는 과정을 살펴봤다면 이번 하편은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글로벌 분업체계가 무너지고 공황이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과정을 분석하고 있습니다.[편집자주]

 

1. 코로나발 대공황의 역사적 위치

공황은 일반적으로 순환적 공황과 구조적 공황으로 나뉜다. 물론 순환적 공황이 따로 있고 구조적 공황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공황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상황에서 터진다. 이때 순환적 공황은 구조적 공황으로 나타난다. 구조적 공황은 공황 발생 당시 자본주의가 가진 구조적 특성을 바꾸지 않고는 극복할 수 없는, 자본주의 구조 변화 사이클의 마지막에 발생하는 공황이다. 역사적으로 1870년대 대공황, 1930년대 대공황, 그리고 1970년대 대공황이 있었다.

1870년대 대공황은 자유주의 자본주의에서 독점자본주의(monopoly capitalism)로 변화를 낳았다. 1930년대 대공황은 독점자본주의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state monopoly capitalism)로 이행을 가져왔다. 그리고 1970년대 대공황은 국가독점자본주의에서 의제자본주의(擬制資本主義, fititious capitalism)로 변화를 촉발했다. 이번 코로나 발 공황은 결론부터 말한다면 의제자본주의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극복될 수 없는 구조적 공황 초입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 발 대공황은 의제자본주의 구조적 위기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패권 이행기와 맞물려 그 진행이 보다 격렬해 질 것이다.

자본주의 패권 이행은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그리고 영국에서 미국으로 두 번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이행기는 약 백년간이다.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각축을 벌였고, 결국 영국이 승리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행기는 약 50여 년간이다. 이때 영국, 독일, 미국은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켰다. 결과는 알다시피 미국 승리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미국 패권이 유지되고 있다. 이런 자본주의 패권이행은 자본주의 성격 변화를 동반한다.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이행은 상업자본주의에서 산업자본주의로 변화를,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행은 독점자본주의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변화를 동반하였다.

그러나 자본주의 구조가 변화해도 패권국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1870년대 대공황 이후 자유주의 자본주의에서 독점자본주의로 이행이나, 1970년대 대공황 이후 국가독점자본주의에서 의제자본주의로 이행은 패권국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았다. 이번 코로나 발 대공황은 의제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과 패권 이행에 따른 제국주의 갈등이 중첩되어 나타날 공산이 크다. 물론 이번 대공황 결과 새로운 자본주의 시스템이 구축됨과 동시에 새로운 패권국이 등장할 것이라고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2. 의제자본주의 특징과 코로나발 대공황

이번 코로나 발 대공황은 의제자본주의 종말의 단초가 될 것이다. 의제자본주의의 모순에서 촉발되어 의제자본주의를 끝내는 과정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의미에서 의제자본주의의 몇 가지 특징을 이번 공황과 관련해 살펴보자.

의제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화폐에 있다. 진정한 화폐는 금이다. 그러나 1930년대 이후 금의 유통수단으로서 역할을 종이돈이 대신한다. 이를 금환본위제(gold-exchange standard) 또는 금괴본위제(gold bullion standard)라 하기도 한다.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자본주의 세계 패권을 장악한 후에는 달러-금환본위제가 된다.  이는 1971년까지 유지되다 달러의 금 태환을 중지한 닉슨 쇼크(Nixon Shock) 이후 붕괴한다. 그리고 달러는 금 대신 국공채를 담보로 하는 의제화폐(통화)가 되었다. 의제화폐(통화)의 제도적 표현은 변동환율제(floating exchange rate system)와 변동금리제이다.

변동환율제는 1970년대 초반 브레턴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 붕괴와 더불어, 그리고 변동금리제는 1980년대 이후 금융화를 통해 정착된다. 환율은 통화의 상대적 가치이고 금리는 통화의 의제(가공)가치이다. 의제자본주의(신자유주의)자들은 이런 변동환율과 변동금리는 통화 가치가 수요와 공급 때문에 결정되는 시장금융제도라고 하면서 시장에 의해 ‘아름다운 균형’에 이를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 결과는 이야말로 세계 경제의 불균형과 불안정, 지속 불가능과 불평등을 강화하는 기제였다.

의제자본주의에서 통화가치가 환율과 금리에 의해 끊임없이 변동하기 때문에 경제주체들은 통화가치의 불확실성에 노출된다. 이런 불확실성으로 인해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거래가 가능하게 되고 투기거래 시장이 실물시장보다 커지게 된다. 이에 따라 통화가치 변동에 따른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파생금융상품이다. 선물옵션스왑(swap)담보부증권(mortgage-backed securities) 등인데 파생금융상품을 이용하면 환율과 금리 변화에 따른 손실을 회피할 수 있다. 또 고정자산에 자금이 묶이는 것을 피해 자금을 유동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위험회피 수단이어야 할 금융파생상품이 역설적으로 금융시장(의제 자본시장) 불안정을 더욱 조장하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투기에 이용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2008년 금융공황에서도, 이번 코로나 발 대공황에서도 그 작용을 보게 된다. 지난 금융공황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비우량주택담보대출) 채권이, 이번 대공황에서는 회사채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Bond Obligation)이 공황 진원지가 되었다. 그 구조는 2008년이나 지금이나 같다. 2008년에는 모기지 채권이 문제였다면, 이번엔 회사채(corporate bonds) 문제다.

100원짜리 회사채를 사고 이를 이자 수익만 바라고 만기까지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100원짜리 회사채를 담보로 95원을 대출받아 다른 채권을 또 산다. 이를 담보로 다시 대출받아 다른 채권을 또 산다. 유동화이다. 이렇게 부채를 쌓는다. 일명 레버리지(leverage) 투자다. 부동산의 갭투자와 비슷한 구조다. 레버리지가 10배면 10%만 자산가격이 하락해도 투자자산 전체, 즉 100% 손실이 나는 구조이다.

지난 2008년 금융공황 이후 제로금리가 8년간 지속했다.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로 유동자금은 넘쳐나는데 실물경기는 성장이 둔화한 상태로 저금리조차 영업이익으로 감당하기 힘든 기업, 소위 좀비기업(Zombie Company)이 3~40%에 이르는 상황에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한정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자금이 대거 자산시장에 몰려 들었다. 부동산 가격도 올리고, 국공채 가격도 올라갔다. 고수익을 노리는 자금은 회사채 등에 몰려들었다. 회사채에 버블이 형성된 것이다.

코로나 발 경기 침체가 예상되자 유가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유가를 지지하기 위해 사우디와 러시아가 원유 감산 협상에 나섰다. 하지만 러시아가 감산을 거부해 협상은 무산되었다. 원유 가격은 급락하게 된다. 이것이 이번 코로나 발 대공황의 트리거가 되었다. 회사채에는 하이일드 회사채가 있다. 모기지의 서브프라임에 해당하는 투자부적격 회사채이다. 이런 투자부적격 회사채는 이자율이 높아서 위험관리만 잘한다면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고수익을 추구하는 펀드, 기금, 투자은행 등이 회사채를 대량 매입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들은 회사채를 담보로 돈을 빌려 다시 회사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투자했다. 그런 구조에서 회사채 가격이 10%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100원짜리를 담보로 95원을 대출받았는데 담보로 잡은 회사채 가격이 90원이 된 것이다. 그러면 5원을 토해내야 한다. 이런 구조가 연쇄적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10번 순환했다면 가격이 10% 하락할 때 자산 50%가 손실이다. 이런 상태에서 러시아가 원유 감산을 거부하여 원유 가격이 하락한다. 이에 미국의 셰일가스(shale gas) 기업 회사채 가격이 급락한 것이다.

회사채로 빚에 빚을 더해 투자한 투자은행이나 펀드, 연기금들은 연쇄적인 담보가치 하락을 메우기 위해 현금이 대량 필요하게 되었다. 현금화가 가능한 우량 자산을 먼저 내다 팔아야 했다. 주식, 채권, 금을 모두 팔아 현금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이것이 이번에 일어난 주식시장 폭락이다. 이는 단지 셰일가스 기업에만 해당하는 사안은 아니다. 코로나로 항공, 호텔 등 서비스 기업들 전체에 가해진 충격이다. 그리고 단지 하이일드(투기등급) 채권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회사채 발행 규모는 2019년 말 기준 미국이 9조 6천억 달러고, 전 세계적으로 13조 달러에 이른다. 2007년에 비해 약 두 배 정도 증가한 수준이라고 한다. 하이일드(투기등급) 채권은 그중 잔액기준 44%나 된다고 한다.

문제는 투자적격 채권 중 등급이 자장 낮은 BBB등급이 기업 실적과 재무구조 악화로 투기등급으로 강등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이 BBB등급이 전체 투자적격 회사채 가운데 51%를 차지한다. 지난 금융공황 때에 대비해 보면 이런 BBB등급이 매년 7% 정도씩 투기등급으로 강등되게 된다. 그러면 이자율이 높아져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게 된다. 코로나 발 유가 하락이 전체 회사채 시장에 충격을 가한 것이다. 금융시스템 전체가 붕괴하기 직전이었다.

이에 미 연준이 나섰다. 연준은 금융 시스템 붕괴 상황에 직면하자 2008년보다 훨씬 과감한 조치들을 취했다. 먼저 무제한 양적 완화를 신속하게 단행해 은행에 대규모 자금을 공급한다. 이는 회사채 문제가 은행으로까지 전이 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둘째 한국을 포함한 이머징(emerging market) 국가와 통화 스왑(currency swaps)을 체결한다. 이는 회사채에 물린 펀드나 투자회사, 연기금들이 이머징 시장에서 자산을 매각해 달러를 확보하려고 하면 그 국가에서 자본이 유출되기 때문이다. 곧 외환위기로 발전하고 이머징 국가들의 외환위기는 더욱 심각한 공황을 일으키는 것이 된다. 이런 발전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연준은 선제로 아홉 개 국가와 통화 스왑을 체결한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연준이 회사채 매입을 직접 지원할 수 있는 꼼수를 만들어 냈다. 연준은 미 의회 승인 없이는 회사채를 매입할 수 없기에 문제의 진원지인 회사채를 직접 타겟으로 하는 조처를 할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미 재무부와 연준은 재무부 출자 공기업 형태의 기업을 설립한다. 이 회사는 문제 되는 회사채를 매입하고 이를 담보로 공채를 발행한다. 그리고 이 공채를 연준이 사들이는 형식이다. 그러면 연준은 국공채만 담보로 달러를 발행할 수 있는 한계를 극복하고 신속하게 회사채를 담보로 달러를 발행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1차 패닉은 일단락된 듯하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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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황의 세계적 확산

변동환율제와 변동금리제는 자유로운 자본의 이동과 결합해 의제 자본시장을 세계적 차원에서 연결하게 하며 거대한 규모로 키운다. 외환시장 규모는 세계 전체 무역액의 50배에 이른다고 한다. 외환시장 뿐만 아니라 주식시장, 채권시장, 부동산시장 등이 세계적으로 동조화되는 현상을 만들어 낸다. 이들 의제 자본시장은 각종 기금, 연금의 발전을 가져왔다. 이는 실물시장 규모를 압도하기에 이른다. 한 나라 자산시장의 위험이 세계적으로 미치는 통로로 작용한다. 연기금, 투자회사, 펀드 등이 그 통로 역할을 한다. 공황은 순식간에 세계공황으로 전이된다.

물론 이는 소위 밸류 체인(value chain), 즉 생산의 위계적 상호의존적 관계를 반영한 것이다. 의제자본주의는 위계적 상호의존적 생산체계에 토대한다. 위계적 상호의존체계는 미국을 정점으로 독일과 일본이 최상위 지위를 차지한다. G7이 다음 단계 지위를, G20이 그 다음 단계를 차지하며 나머지 국가들을 지배한다. 이는 이전 제국주의-식민지 관계와 구분되는 발전된 지배 구조라 할 수 있다. 이전 제국주의-식민지 체제에서는 원자재와 원료 등을 식민지에서 들여와 제국주의 국가에서 완제품을 만들고 다시 식민지와 다른 나라에 판매했다. 따라서 무역은 원자재와 완제품이 중심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반해 위계적 상호의존체계에서는 상품 설계와 기획은 미국에서, 상품을 만드는 공작 기계와 소재는 독일과 일본에서, 중간재는 한국이나 대만 등에서 만들고 최종적으로 중국에서 조립하는 세계적 분업체계가 특징이다. 이런 세계적 분업체계에서는 한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나라에 걸친 분업체계가 형성된다. 무역은 소재 등 중간재가 중심이 된다. 이는 세계적 생산체계를 형성하고 어느 한 나라나 한 체인이 붕괴할 때 상품생산에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이번 코로나 발 대공황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중국 공장이 멈추자 전 세계가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한일 간 반도체 소재 갈등문제도 이를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어느 한 나라 공황은 곧바로 전 세계적으로 여파가 미치기 쉬운 조건을 형성한 것이다.

또한 이런 위계적 의존관계는 소위 글로벌 불균형을 만들어 낸다. 이전 글에도 언급했듯이 글로벌 불균형은 위계적 의존체계 최정점에 미국이 있다. 이 미국이 세계의 소비를 책임지는 구조이다. 위계질서 최상위에 있는 미국 유로 일본이 세계 소비를 담보하고 하위 단위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구조이다. 잉여가치의 이전구조이다. 이런 생산과 소비의 전 세계적 의존관계가 코로나 사태로 붕괴하고 있다. 전 세계 공장들이 멈춰 서고, 사람들의 외출은 금지되었다. 중국이 먼저 이번 사태를 극복하고 생산에 나선다고 해도 소비 축인 유로와 미국의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한 회복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유로와 미국은 한참 사태가 진행 중이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조만간 유로와 미국을 중심으로 셰일가스와 서비스업 중심으로 기업도산이 이어지고 실업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이는 투자를 더욱 위축시켜 기업도산을 더욱 가속할 것이다. 이런 악순환에 빠지면 전 세계 밸류 체인은 붕괴하고 국가들은 다른 나라에 책임을 전가하며 각자도생에 나설 것이다. 코로나 백신만 개발되면 이번 대공황은 끝난다는 전망이 대부분이다. 과연 그럴까?

세계 경제가 건전하고 안정적이라면 코로나 사태는 일시적인 외부적 충격일 뿐으로 사태가 진정되면 다시 빠르게 회복될 수 있다. 그러나 현 세계 경제는 의제자본주의를 강타한 2008년 금융공황 이후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물론 은행들은 더욱 건전해 졌다. 그러나 실물경제는 성장이 정체돼 지금에 이르렀다. 2008년 금융공황 이후 세계는 의제자본주의의 문제 즉 의제자본시장은 성장하는데 실물경제는 정체하는 문제를 해결이 아니라 보다 심화시켰다. 의제자본시장은 비대해지는 반면 실물시장은 정체하는 것은 의제자본주의의 특징 중 하나다.

이 의제자본이 성장하는 근간은 부채이다. 부채는 원래 기업이 투자를 위해 빚을 지는 것이다. 즉 생산을 위해 자금을 조달한다. 생산만이 잉여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생산에 투자된 자금은 더욱 많은 자금으로 돌아와서 빚의 확장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의제자본주의에서 부채화의 특징은 국가와 가계가 부채의 주체가 된다는 점이다. 국가와 가계는 생산주체가 아니라 소비주체다. 소비를 위한 부채는 부채를 탕감할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런 부채는 연기금, 투자은행, 펀드 등 기관투자자들을 통해 의제자본시장(자산시장)으로 흘러들어 갈 뿐이다.

의제자본시장은 기생적 시장으로 잉여가치 생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단지 부의 자산효과를 만들어내 소비를 제한적으로 확대하는 역할을 하고, 주된 기능은 생산된 잉여가치를 이전하는 역할이다. 부채증가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영원히 부채를 증가시킬 수 없다. 이는 실물경제에 의해 제약되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가 이미 2008년 금융공황 때 드러났다. 그런데 이를 더 큰 부채로 봉합했다.

이후 부채는 기업에서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 부채 비율은 2014년 1분기(1∼3월) 88.0%에서 2019년 1분기 93.7%까지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성장률은 낮아졌지만 주요 선진국에서 기준금리를 계속 내리면서 부채가 계속 늘어난 결과다. 국제결제은행(BIS) 등 국제금융기구는 GDP 대비 기업 부채 비율이 80∼90%를 초과하면 과다한 빚 자체가 성장세를 제약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기업의 부채가 과연 생산적 투자를 위한 부채였는가가 더 큰 문제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항공업계를 보면, 지난 10년간 잉여 현금흐름의 96%를 자사주 매입(stock repurchase)에 썼다. 델타, 아메리칸항공, 유나이티드, 사우스웨스트 이 4대 항공사는 지난 5년간 390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했고, 보잉은 혼자서 350억 달러를 매입했다. 대략 100조 원을 주식에 쏟아 부었다.

이른바 FAANG이라고 언급되는 미국 IT 기업들도 크게 다르진 않다. 애플 아마존 뭐 다들 그간 수익이 증가한 것에 비해서 주가는 너무 많이 올랐다. 몇 배, 몇십 배씩 올랐다. 역시 자사주 매입이 그 뒤에 있었다. 그런데 자사주 매입을 잉여금으로만 한 게 아니다. 빚을 내서 주식을 샀다. 2008년 이후 유동성이 엄청나게 풀리면서 이 자금이 회사채 시장에 몰리고 이 회사채를 발행해 마련한 자금으로 자사주를 매입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미국 주식시장은 2008년 이후 5배 정도 올랐다. 전혀 잉여가치 창출 없이 그저 주가를 띄운 것이다. 자사주를 매입하면 한 주당 순이익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주당순이익은 한 주당 순이익이 얼마냐 하는 지표인데, 계산할 때 자사주는 분모에서 뺀다. 분자가 똑같아도 당연히 기업이 장사를 더 잘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렇듯 세계는 위계적으로 상호 의존되어 있고, 기업들은 그동안 회사채 발행으로 부채를 쌓아 놓았다. 무디스는 투자적격등급 회사채의 약 10%가량이 코로나 확산에 따른 영업난으로 부도 위험에 처할 것으로 전망했다. 투기등급은 말할 것도 없다. 이는 실업 폭증과 공황의 심화로 이어질 것이다. 부도 위험을 회사채를 다시 발행해서 방어하진 못할 것이다. 이미 회사채 시장은 마비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5년 동안 미국기업만 4조 달러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온다. 이런 회사채를 연준이나 미 재무부에서 매입한다면 이미 이는 사기업이 아니다. 일본 중앙은행이 일본 상장기업의 최대주주라고 하듯이 미 재무부와 연준도 최대주주를 향해 가고 있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2분기 미국 실업률이 30% 가지 치솟고 GDP는 50% 급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물론 이는 좀 과장되게 경고를 보낸 것이지만 2분기 뿐만 아니라 3분기도 미국의 기업도산과 실업이 급증할 것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다. 이는 위계적 의존관계를 맺고 있는 의제자본주의의 생산과 소비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며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글을 쓰는 중 미국의 신규 실업급여 청구 건수가 발표되었다. 330만 건에 이른다. 기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1982년보다 4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연준과 미 재무부에 새로운 대책을 요구하는 시그널이라 할 수 있다.

 

4. 연준의 공황 대책, 그 한계와 향후 전망

앞서 보았듯이 연준의 대책은 크게 3가지이다. 첫째 무제한 양적 완화, 둘째 통화스왑, 셋째 회사채 매입이다. 무제한 양적 완화는 은행에 자금을 공급한 것이고, 통화스왑은 이머징 국가에 자금을 공급한 것으로 회사채 문제로 인한 금융시스템 붕괴를 대비한 것이다. 그리고 회사채 매입은 이번 공황의 진원지를 봉쇄해 더 이상 확산을 차단하고자 한 것이다. 미 연준의 조치들은 금융시스템 붕괴를 막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는 2008년 금융공황 때 조치와 다르지 않다.

다만 좀 더 빠르고 좀 더 대규모로 시행해 사전에 금융시스템 붕괴를 막았다는 점이 다르다. 2008년에는 대형은행들이 파산하여 금융시스템이 붕괴한 이후 조치에 나섰다. 그러나 연준의 이번 조치도 코로나19(대공황)가 이제 발견되어 최초 확진자(투기등급 회사채)가 나오자 초기 대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대량 확진자가 나오고 지역 감염이 발생하면 새로운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럼 문제는 지역 감염과 확진자의 대량 발생에 대응할 수 있겠는가가 관건이다. 지역 감염은 유로, 중국, 일본 등에서 재정위기가 발생하고, 이머징 국가 등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확진자의 대량 발생은 미국에서 대량의 실업과 기업도산이 발생하는 것이다. 2008년과 비교해 보자. 2008년 금융공황 때에는 미국이나 유로 국가들은 국가 재정에 여유가 있었다. 2008년 공황이 발생하자 유로존의 여러 나라가 재정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지금은 재정적으로 여유 있는 유로존 국가는 독일만 남았다. 이런 독일이 이번에 대규모 재정정책을 쓰기로 했다. 그러나 독일은 지난해 이미 경기 침체에 들어선 상태이다. 독일은 유로의 중심국이고 수출중심 경제구조이다. 미국은 중국뿐 아니라 유로와도 무역전쟁 중이다. 미국으로의 수출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공황이 발발한 것이다. 이번 공황을 극복하기에 독일만의 힘으로 쉽지 않다. 아마 이번에 유로는 존폐의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다음은 중국이다. 2008년 당시 중국은 금융공황의 직접적 영향에서 비켜 있었다. 그 결과 대량의 기업부채를 일으키고 지방재정을 동원할 수 있었다. 지금은 중국 중앙국가의 재정이 아직 건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현상일 뿐이다. 중국 기업부채는 대부분 국영기업이 안고 있으며, 지방정부는 거의 파산 직전이다. 이를 감안한다면 중국의 재정 여력도 여유 있다고 할 수 없다.

일본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아베노믹스의 실패와 올림픽 연기로 주요선진국 중에서도 가장 좋지 않은 상태이다.

가장 중요한 미국은 어떨까. 미국은 2008년 금융공황 이후 공황 타개책으로 자국 중심의 이기적 정책을 펼쳐 왔다. 패권을 스스로 버리는 전략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미국 경제의 한계 때문이다. 미국은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을 바로잡고자 제조업을 중시하고 수출을 쉽게 하기 위해 환율전쟁을 벌였다. 이에 유로와 일본 중국 등 모든 국가가 종이돈을 찍어내는 환율전쟁에 돌입하기도 했다. 이를 어느 정도 무마하고 금융시스템이 안정되자 이번엔 관세전쟁에 돌입했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셰일가스 산업을 일으켜 세계최대 원유생산국이 되었으며 원유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탈바꿈하였다. 산유국의 원유시장을 잠식해 들어가면서도 원유 가격 유지를 위한 협상에는 나서지도 않고 셰일가스 업체를 지원하는 정책을 고수해 왔다. 이것은 이번 공황의 시발점이 된 러시아 원유 감산 거부의 빌미가 되는 것이다. 미국 국내적으로도 세금을 인하하면서 재정지출을 늘리는 정책을 수행했다.

그러면 미국의 이러한 정책들은 성공했는가? 전혀 성공적이지 못했다. 단적인 예로 글로벌 불균형을 시정하고자 한 제조업 육성 정책은 사실상 실패이다. 오히려 대중국 무역역조는 더 커졌다. 그리고 첨단기술의 우위도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단적인 예로 5G 사업에서 중국에 뒤처지기 시작했다. 이는 화웨이 사태의 발단이다. 에너지 세계패권을 노린 셰일가스 지원은 러시아 반발에 부닥쳐 이번 공황의 신호탄이 되었다. 재정적자 문제도 적자가 급격히 늘어나 GDP의 105%에 달한다. 법인세 감면과 재정적자 정책은 그 효과가 채 2년이 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 효과마저도 주식시장 부양에 그쳤다. 여기에서 재정적자를 더 확대하면 달러에 대한 신뢰는 손상될 것이다.

미국은 극심한 경제 불균형과 금융시장 버블이 동반되는 의제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심화시켜 온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 발 트리거가 러시아산 탄환을 발사해 미국 심장에 박힌 상황이다. 일단 연준은 대량 수혈을 단행해서 심장에 돈을 퍼부어 심장 작동을 겨우 유지시킨 상태이다. 심장은 살았으나 온몸에 피가 돌아야 진짜 살아날 수 있다. 2008년에는 심장과 혈관이 고장 나서 대대적인 수혈만으로 다시 소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각각 장기들이 멈춰 서고 있다. 수혈만으로 썩어가는 장기들을 치료할 수는 없다. 썩어가는 장기들은 좀비 기업들이다. 저금리로 버티어온 기업들이다.

연준이 시행한 정책들은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고, 고용을 유지하는 정도의 정책이다. 결국 한마디로 말하면 겨우 생명만 지탱하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실물경제의 지표들이 나오는 5, 6월경이면 새로운 충격이 가해질 것이다. 기업도산과 실업이 급증하기 시작하면 어떤 대책이 있을까?

일단 이머징 국가들과의 통화스왑을 확대하는 정책이 있을 것이다. 이는 이머징 시장을 안정시켜 이머징 국가의 성장동력을 지키는 것이 된다.

둘째 대중 무역 관세를 철폐하든지 무기한 연기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대미 수출을 증가시키고, 위안화 절상을 끌어내 이머징 국가들의 수출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셋째 사우디, 러시아와 함께 원유 감산 협상에 나서는 것이다. 물론 이는 셰일가스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의미한다.

넷째 다른 나라들과의 혐의를 거쳐 금리를 낮게 고정하는 것이다. 이는 무제한 국채발행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대중 관세 철폐와 러시아와 협상은 정치적인 문제 즉 패권과 관련되고, 미 대선이 임박해 있어서 가능성이 작다. 이는 그동안 트럼프 정부가 수행한 대외정책을 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거에 임하는 트럼프가 실행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 두 가지가 풀리지 않는다면 세계 대공황으로 발전하는 상황을 국제공조를 통해 대응하기는 힘들어진다. 결국 상황이 극단적으로 흐른 다음에야 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열릴 것이다.

위 정책들은 대외적 공조를 위한 전제일 뿐이다. 이에 더해 실질적 경기부양책이 나와 주어야 한다.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까지 쓰게 될 것이다. 헬리콥터 머니(Helicopter Money)와 MMT(Modern Monetary Theory)이다. 헬리콥터머니는 연준이 미 국채를 직접 매입하는 것으로 미 재무부에 달러를 공급하는 것이다. MMT는 재무부가 발권력을 동원해 연준을 거치지 않고 직접 통화를 발행해 시중에 공급하는 것이다. 이것은 의제자본주의의 마지막 발악이 된다.

연준이 양적 완화를 통해 공급하는 통화는 시중은행을 거쳐야 하므로 시중은행이 대출 권한을 쥐고 있다. 따라서 위험한 실물경제에는 대출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주로 의제 자본시장에 자금이 공급된다. 자본시장은 버블을 형성하지만 실물시장은 정체가 일어난다. 그러나 정부가 직접 통화를 공급하면 기업과 가계에 직접 지원하는 것이 가능하다. 소위 기본소득과 회사채 매입, 주식매입 등이다. 이는 통화가 실물시장에 풀리게 되어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

이중 상당 부분은 자산시장으로 흘러들어 자산시장도 극심한 버블을 일으킬 것이고, 양극화는 극단으로 흐를 것이다. 계급투쟁은 격화되고 새로운 시스템의 준비에 들어설 것이다. 이렇게 전개되는 데에는 한 10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어떤 조처를 해도 의제(가공)자본이 실물경제를 지배하는 구조를 바꾸지 않고는 공황을 극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새로운 시스템은 화폐제도 개혁이 중심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상태를 잠깐 보고 끝내자. 2008년에 한국은 외환유출 이외에 모기지 채권 부실의 직접적 영향이 없었다. 한국 금융기관들이 모기지 채권이 뭔지 몰라 매입하지 않았던 결과이다. 따라서 미국과 통화 스왑을 체결하자 위험이 사라졌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이번에 미국 회사채 시장에 증권회사,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 등등이 대규모 투자를 한 상황이다. 그중 투자부적격 회사채에 투자한 금액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총 투자액이 150조 원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직접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외환위기 형태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은 외환보유고도 충분하고 특히 해외 투자자산도 어느 정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의 회사채에 투자한 것도 한국 자금이 해외에 투자한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 자금이 국내에 들어와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영향은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나타날 것이다. 즉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로 터질 공산이 크다. 한국의 부동산 소유자들은 주로 다주택 소유자들이다. 이들이 아파트나 상가를 다수 소유하고 있고, 한국의 소위 재력가들이다. 이들의 현금자금 일부가 사모펀드 등 형태로 미국 회사채에 투자한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이들이 현금 흐름에 압박을 받으면 아파트부터 팔아 현금화하려고 할 것이고, 이는 아파트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아파트 가격하락은 갭투자자들을 압박할 것이고, 이는 대량의 아파트 물량이 매물로 나오게 할 것이다. 아파트 가격은 더욱 내려가고, 가계부채 문제가 터질 것이다.[끝]

 

참고 글 링크
 
 
◇ 글쓴이: 신재길

노동사회과학연구소 교육위원장/재야 정치경제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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