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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연재] 시대 진단을 시작하며...

■ 채희태의 시대 진단 #0

  • 기자명 채희태
  • 입력 2020.05.17 07:24
  • 수정 2020.05.1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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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곤란에 빠지는 건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알고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 마크 트웨인 -

정확히 중앙재해대책본부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전환하려는 바로 그 시점에 발생한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코로나 선진국’ 대한민국이 다시 멘붕에 빠졌다. 확진자 수가 안정적으로 10명 밑으로 떨어지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post-코로나에 대한 논의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던 터라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 확산은 이미 보편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의 공포에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물론 코로나가 완전히 끝난 이후에야 post-코로나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유일한 지구 생명체이고, 지금의 문명은 인류가 단지 꿈을 잘 꾼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peri-코로나(참조1) 상태가 지속된다면 post-코로나에 대한 다양한 상상도 힘을 잃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post-코로나에 대한 상상은 말 그대로 현재 상황을 벗어나고 난 후 반복될 것으로 예상되는 펜데믹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일 뿐, 현재의 peri-코로나를 벗어나기 위한 논의는 아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post-코로나에 대한 상상은 그저 주장으로 그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대부분의 post-코로나에 대한 논의가 자신이 처한 신념이나 입장의 관성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동성애가 코로나 항체 생성에 효과적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한국의 목사들이 얼마나 될까? 코로나를 통제하기 위해 과거의 전체주의 국가로 회귀해야 한다면 개인의 자발성에 기초한 민주주의에 익숙해진 선진국 시민들은 과연 동의할 수 있을까?(참조2)

하여 post-코로나를 언급함에 있어서 혹시라도 코로나를 기회 삼아 평소 자신의 신념과 진영에 힘을 실으려 하는 것은 아닌지, 자기가 디디고 있는 축발을 떼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각자 서로에게 상대방부터 먼저 발을 떼라고 요구하고 있은 것은 아닌지 한번쯤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가 공포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한마디로 통제의 영역 밖에 있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미국의 압도적인 사망원인 1위는 총기 사고다. 하지만 미국은 총기보다 테러를 규제하기 위해 더 많은 예산을 쏟아붓는다.(참조3) 한국인의 생명을 가장 크게 위협하고 있는 것은 코로나일까, 아니면 압도적인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자살률일까?(참조4) 근대 인류는 필연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으로 인해 결과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우연의 영역을 단지 눈에 보이는 수치로 계량화할 수 없다는 이유로 늘 무시해왔다. 사실 post-코로나에 대한 논의나 주장에서 더 중요한 것은 ‘근대적 정의'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합의 가능성’일지도 모른다. 

복잡하게 구조화된 산업사회 속에서 분업화된 전문성에 입각한 주장은 오히려 사회적 합의를 방해한다. 대부분의 주장에는 합의에 필요한 보편적 상식보다 각자의 전문성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합의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장보다는 객관적인 시대 진단이다. 하여 필자는 개인의 취향과 가치를 담은 주장보다는 합의로 나아가기 위한 시대 진단을 위해 일천한 지식 노동을 하고자 한다.

 

■ 왜 시대 진단인가?

현대의학이 과학혁명을 바탕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배경에는 현미경의 발명이 있었다. 인류는 현미경을 통해 질병의 원인이 신의 저주가 아니라 미생물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현대 의(료과)학의 토대가 된 진단의학의 시작이다.(참조5) 의사는 환자가 가진 질병에 대한 '진단'을 바탕으로 어떻게 치료할지 판단하는 '처방'을 한다. 단순한 소화불량을 위암으로 진단한다면 정상적인 치료 행위는 불가능할 것이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선 이렇게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진단을 선행해야 한다. 현대의학의 관심은 이제 진단과 처방의 단계를 넘어 질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예방의학으로 진화하고 있다.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들여다보는 사회과학은 자연과학보다 훨씬 더 변화무쌍하다.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객체는 주로 상수화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객체인 인간은 쉽게 상수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1999년 호주의 뉴 사우스 웨일스 대학교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리처드 테일러(Richard Taylor)' 박사가 '잭슨 폴록(Paul Jackson Pollock)'의 그림에서 프랙탈의 규칙을 밝혀낸 것처럼 자연의 규칙은 아무리 복잡해 보이더라도 증명 가능한 영역에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현재 쥐고 있는 손을 계속 쥐고 있을지, 아니면 펼지는 연구를 통해 증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우리는 자연의 문제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처방)하는 과정에서 문제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기는 커녕, 주관적 신념으로 미래를 예단(예방?)하는 주장을 통해 오히려 변수를 증폭시켜 왔다. 사회문제를 처방하기 위해선, 개인적 경험이나 주관적 신념에 기초한 확신을 거두고, 객관적인 시대 진단을 위한 노력을 선행해야 한다.

 

■ 시대진단을 위한 세 가지 방법

그렇다면 사회문제를 어떻게 진단해야 할까? 필자는 시대진단을 위한 세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첫 번째는 사회문제가 발생하게 된 원인인 '수직적 인과관계'를 살피는 것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다. 현실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 사회문제는 반드시 그 원인이 과거에 숨어 있다. 두 번째는 '수평적 이해관계'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사회체계이론을 정립한 니클라스 루만은 "모든 체계는 사회의 필요성에 의해 출발하지만, 종국에는 자신의 확대, 재생산에만 몰입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참조6) 당면한 사회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선 각자 자신의 확대, 재생산에만 몰입하고 있는 사회적 체계들이 공유하고 있는 수평적 시간 속에서 어떤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살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문제를 바라볼 때 주관과 객관을 통합하여 인식해야 한다. 가끔 필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필자를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필자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필자가 생각하는 나와 다르게 필자를 인식한다. 그게 당연하다. 그래서 가끔은 억울하기도 하고, 더 가끔은 고맙기도 하다. 그 인식이 나한테 이익이 된다고 해서 맞고, 해가 된다고 틀린 것이 아니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필자는 필자가 주장하는 나와, 다른 사람이 인식하는 내가 통합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대 진단을 위한 세 가지 방법
시대 진단을 위한 세 가지 방법

필자는 각계각층의 전문가나 관료, 그리고 정치인들이 의도적으로 이 사회를 벼랑 끝으로 끌고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 행정, 정치 체계의 밖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교육, 행정, 정치 등이 이 사회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입장을 떠나 이 시대를 객관화하여 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필자가 하려고 하는 소위 “시대 진단”이다.

 

■ 연재의 방향에 대하여

시대 진단을 위해 필자는 때로는 드론을 타고 현실의 입장 밖으로 벗어나 망원경으로 현실이라는 숲을 살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숲속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 미생물처럼 존재하고 있는 현실 속 이해관계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것이다. 배움과 지식이 짧은 필자의 시대 진단은 많은 논리적 오류를 포함할 수 있다. 하여 독자들의 비판이나 보완의 여지를 늘 열어둘 생각이다. 

 


  • 참조1 : pre-, peri-, post-는 주로 의학 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증상에 대한 처방 이전, 치료를 위한 처방의 과정, 처방 이후를 구분할 때 사용하는 접두어다. 지금 인류의 경제, 문화 전반을 흔들어대고 있는 코로나도 본질적으로는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이므로 이러한 접두어의 사용이 매우 적절해 보인다.<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1368837519300399>
  • 참조2 : 연합뉴스(2020/4/26). “삶을 금지하지 말라" 독일 봉쇄조치에 1천명 항의시위”. 『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942015.html>
  • 참조3 :  9・11 테러에 의한 사망자는 대략 3천 명이지만, 미국에서 총기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1년에 평균 3만 명에 이른다.
  • 참조4 :  2019년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2018년 1일 평균 37.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참고로 2020년 5월 17일 현재 코로나로 인한 누적 사망자 수는 262명이다.
  • 참조5 : 이현지·오승환·장철훈(2017). “진단검사의학의 기원과 역사”. 『Lab Med Online』 Vol. 7, No. 2: 53-58.
    <https://labmedonline.org/search.php?where=aview&id=10.3343/lmo.2017.7.2.53&code=9997LMO&vmode=PUBREADER>
  • 참조6 : 이철(2015). "끊임없이 확장하는 소통의 의미장 … 루만의 ‘교육소통’이란?”. 『교수신문』.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1930>

 


▣ 필자 소개: 채희태

프리랜서 콘텐츠, 정책 기획자… 사회 현상의 본질을 넘어 그 이면에 주목하고 싶은 양시론자(兩是論者)…

기성세대가 되어 변절을 하더라도 대학생 때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역사가 발전한다는 리영희 교수의 말을 교조적으로 따르기 위해 대학 땐 학생운동 언저리를 서성이다 졸업 후 별 쪽팔림 없이 다양한 직종을 전전하며 소시민으로 생존해왔다.

한때 유행하던 CD-ROM 타이틀과 여전히 유효한 온라인 콘텐츠 기획도 해봤고, 3년을 프리랜서 작곡가로 버티며 배도 곯아 보았다.
느닷없이 결혼을 한 후 음악으로는 처자식을 못 먹여 살릴 것 같은 책임감에 회사로 기어들어갔다.
친구 잘못 만나 어쩌다 공무원이 되어 구청과 교육청을 오가게 되었고, 그 덕분에 우리나라는 일반행정과 교육행정이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무관심했던 사회 문제를 속성으로 배우기 위해 뒤늦게 대학원에 입학해 자칭 '박사끕 석사 논문'을 써 사회학 석사가 되었고, 지금은 노후를 글로 먹고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다.

20여 년 동안 난잡한 업종 전환을 하면서도 콘텐츠 기획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으며 나름 대표작은 다음과 같다.

■ 경력

  • 1996년 애니메이션 그룹 ‘DAL’의 독립 애니메이션 작품, “Legend”에 작곡으로 참여
  • 1998년 다큐멘터리 시리즈 “차(荼)” BGM 작곡
  • 2001년 EBS 애니메이션 “한글탐정 둘리” 주제가 작곡 
  • 2003년 (주)아리수미디어에서 "아리수한글", "수학탐정" 기획
  • 2007년 (주)북이십일에서 "개념교과서" 기획 및 편집
  • 2008년 (주)북이십일에서 학습만화 "도깨비 영웅전" 기획
  • 2010년 은평구 주민참여형 축제인 "은평누리축제" 제안(만)
  • 2012년 은평구청에서 마을과 학교를 교육콘텐츠로 연계하는 "마을 속 학교" 최초 제안 및 추진
  • 2013년 은평구청 "구산동 도서관마을" 아이디어 최초 제안 및 추진
  • 2016년 서울시교육청에서 서울형혁신교육지구 사례집 "서울형혁신교육지구가 뭐예요?" 책임 편집

■ 논문 및 저서

  • 2019년 한국사회연찬 리포트2, 『좌파, 한국의 좌파』 공저, 휴머니즘
  • 2019년 한국사회연찬 시리즈3, 『좌파, 우파와 새로운 도전, 새로운 가치』 공저, 휴머니즘
  • 2019년 공주대학교 교육연구소 학술지 '교육연구' 제34집 1호에 "교육 거버넌스를 둘러싼 갈등 사례 연구" 게재
  • 2019년 은평구청에서 "공공행정의 신뢰성 제고를 위한 블록체인 기술 기반 민관소통 플랫폼 연구" 책임 연구
  • 2020년 NGO학회 학술지, 'NGO연구' 제15권 제1호에 논문 "범람하는 거버넌스에 관한 소고"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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