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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연재] 상상은 현실이 된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를 꿈꾼 영화들…

채희태의 시대 진단 #1

  • 기자명 채희태
  • 입력 2020.05.18 16:52
  • 수정 2020.05.1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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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바이러스고, 코로나야말로 백신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혹시...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자가 인류 개체 수 조절에 나선 것은 아닐까요? 이전 글에서 '문명은 인간이 그저 꿈을 잘 꾼 결과'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비인격체인 자본이 주도하는 시대, 꿈이 자본을 만나면 영화가 되고, 자본이 꿈을 만나면 블록버스터가 탄생합니다. 채희태의 시대 진단 첫 번째 이야기는 꿈과 자본이 만나 만들어 낸 인류 개체 수 조절에 관한 영화 몇 편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세기 6:5-8)

 

■ 최초의 인류 말살 계획, 노아의 방주

슈퍼컴퓨터에게 수많은 정보를 입력한 후 지구를 되살릴 방법을 물었다. 오랫동안 연산을 반복하던 슈퍼컴퓨터는 다음과 같은 답을 제시했다.

"인류를 죽여라!"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답이다. 실제로 인류 말살까지는 아니어도, 최근 작금의 인류(지구?)가 처한 환경적 위기를 인류의 개체 수 조절로 극복해야 한다는 내용의 영화가 부쩍 등장한다.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영화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2015년)"다. 그리고 미션 임파서블의 6번째 에피소드인 "폴아웃(2018년)"과 어벤저스 시리즈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인피니티 워(2018년)"와 "엔드게임(2019)"도 같은 맥락의 주제를 담은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하나씩 떠올려 보자.

왼쪽부터 "킹스맨", "미션 임파서블", "어벤저스"의 포스터
왼쪽부터 "킹스맨", "미션 임파서블", "어벤저스"의 포스터

 

1. 현대판 노아의 방주를 꿈꾸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위풍당당 행진곡"이 BGM으로 나왔던 바로 그 장면!
"위풍당당 행진곡"이 BGM으로 나왔던 바로 그 장면!

인류 말살 계획을 세운 리치몬드 발렌타인(사무엘 잭슨)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 통화와 무료 인터넷을 평생 사용할 수 있는 SIM 카드를 나눠준다. SIM 카드에서 나오는 신경파로 인간의 공격성을 자극해 서로를 학살하게 만들어 인류 개체 수를 조절하겠다는 것! 발렌타인은 자신의 계획에 동조하는 세계의 고위층을 안전한 벙커로 초대하고, 초대를 거부하거나 초대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은 인공위성을 이용해 SIM 카드를 활성화시켜 말살하려다가 주인공, 에그시의 영웅적 활약에 의해 저지당한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몸에서 열이 나는데, 몸이 체온을 올려서 바이러스를 죽이려는 거죠. 지구도 똑같이 작용합니다. 지구 온난화는 열이고, 인류는 바이러스죠. 지구를 아프게 하는 바이러스예요. 도태만이 유일한 희망이죠. 우리가 직접 인구를 줄이지 않으면 예상 가능한 결과는 둘 중 하나예요. 숙주가 바이러스를 죽이거나, 바이러스가 숙주를 죽이는 거죠. 어느 쪽이 됐든 똑같아요." (킹스맨 중 발렌타인의 대사)

킹스맨은 다양한 장면에서 스파이 영화의 원조 "007 시리즈"를 오마주 한다. 그리고 리치몬드 발렌타인은 창세기에서 인류 말살 계획을 세운 여호와와 방주를 만들었던 노아의 오마주라고 할 수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 똑같은 사람인데, 세상을 물바다로 만들어 인류를 말살한 여호와는 선이고, 같은 생각을 가진 발렌타인은 악이라니... 인간의 목숨값은 시대에 따라, 또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나 보다.

 

2.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다.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의 인트로... 극단적 아나키스트 델부룩 박사는 존 라크의 선언문을 방송에서 읽어주면 핵무기를 통해 인류 말살 계획을 세우고 있는 존 라크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는 휴대폰의 접속 코드를 알려주겠다고 이단(톰 크루즈)를 협박한다. 이단은 분노하지만 어쩔 수 없이 델부룩 박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거대한 고통이 선행되지 않으면 평화를 이룰 수 없다. 고통이 클수록 평화도 더 확고해진다. 인간은 등불 앞 나방처럼 자기 파괴에 이끌리기에 평화의 수호자라는 교회, 정부, 입법부는 인간의 자기 파괴를 막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재앙을 피하려는 노력은 평화를 지연시켰을 뿐이다. 평화는 포화 속을 지나서만 도달할 수 있다. 내가 초래하는 고통은 종말의 시작이 아닌 상호... 궁극적 인류애의 첫 발걸음이 될 것이다. 내가 초래하는 고통은 완벽한 평화로 가는 다리이며... (존 라크의 선언문)

델부룩 박사가 방송을 보고 흡족해하며 이단에게 접속 코드를 알려주자 사방의 벽이 쓰러진다. 방송 세트장을 꾸며놓고 실제로 방송이 나간 것처럼 트릭(사기?)을 쓴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난 존 라크의 선언문이 나름 설득력이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걸 막고 있는 이단을 보며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안기부가 떠올랐다. 내가 미친 것일까? 정의의 사도 '이단 헌트'를 의심하다니...

델부룩 박사가 접속 코드를 알려주자 사방의 벽이 쓰러지고 있다.
델부룩 박사가 접속 코드를 알려주자 사방의 벽이 쓰러지고 있다.

그저 국가 기관에 충성할 뿐인 이단 헌트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런데 국가는 무엇이 두려워 존 라크의 선언문이 대중들에게 전달되는 걸 막대한 비용까지 들여가며 방해했을까? 혹시라도 선언문의 내용처럼 교회, 정부, 입법부 즉, 신념(종교), 권력(정부), 제도(입법부)가 특정 계급의 이익을 위해 결과적으로 평화를 지연시키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그 사실이 대중들에게 폭로되면 안 되기 때문은 아닐까? 킹스맨의 악당이 '발렌타인'이라면, 미션 임파서블에 등장하는 대표 악당은 바로 '존 라크'다. 둘 다 악당이지만 차이가 있다. 발렌타인이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악당이라면, 존 라크는 단단한 신념, 권력, 제도에 의해 피해를 보고 있는 다수의 기층 민중을 대변한다. 사실 ‘있는 것’들은 지구의 생태계가 파괴되어 이상기후에 시달리더라도 빵빵한 에어컨과 안락한 자동차를 이용하며 큰 불편 없이 지낼 수 있다. 나같이 ‘없는 것’들이 걱정이지...
어쨌든 미션 임파서블의 주인공인 이단 헌트에게는 면죄부를 주자. 그는 조국처럼 잘 생겼으므로...

 

3. 사심 없이 공정하게 우주의 문제를 해결한 "타노스"

어벤저스 "엔드 게임"의 초반에 등장하는 타노스를 보면, 그가 정말 악당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는 우주 생태계를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딸까지 희생시켜가며 인피니티 스톤을 모았고, 6개의 스톤을 다 모은 후 손가락을 튕겨 매우 공정하게 전 우주의 생명체 중 딱 절반을 랜덤하게 소멸시킨다. 적어도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마 무시한 힘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주를 위해 자신의 힘을 사용하고 난 후 조용히 자연과 함께 살아가다가 토르의 도끼에 목이 잘려 죽는다. 그런데도 진정 타노스가 악당일까? 그렇다면 과거에 신적 사심으로 인류의 대부분을 수장시킨 그 절대자는? 아무래도 매일 의심하고 주저하기를 실천하다 보니 내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자꾸 넘는 것 같다.

그는 그 어떤 권력자보다 사심이 없었고, 그 어떤 신보다 공정했다!
그는 그 어떤 권력자보다 사심이 없었고, 그 어떤 신보다 공정했다!

킹스맨의 "발렌타인"과 미션 임파서블의 "존 라크", 그리고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와 엔드 게임의 "타노스"는 모두 각각의 영화 속 세계관에 등장하는 악당이다. 킹스맨의 발렌타인은 내가 생각해도 의심의 여지 없이 ‘ㄱㅅㄲ’ 라는 생각이 들지만, 존 라크와 타노스는... 반드시 악당이라는데 선뜻 동의가 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의 방식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질서 안에서 혜택을 누리며, 그 질서를 지키기 위해 애를 쓰는 이단 헌트와 어벤저스의 영웅들이 관점에 따라서는 악당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이 의도일까, 결과일까?
① 의도가 선하면 결과가 악해도 선일까?
② 의도가 악하면 결과가 선해도 악일까?
③ 결과가 선하면 의도가 악해도 선일까?
④ 결과가 악하면 의도가 선해도 악일까?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해 국정교과서를 추진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의도는 모든 국민들의 판단으로는 ‘악’이었지만, 국민들이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을 갖는 선한 결과를 이끌어 냈다. 독일과 프랑스에선 68혁명부터 시작되었던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촛불혁명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말할 나위도 없고...(참조1) 가치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흔들었던 잘난 진보의 의도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초유의 악한 결과를 초래했다. 의도와 결과를 버무리면 선과 악을 구분하기 애매해진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모습이다.


  • 참조1 : 독일에서 68혁명을 이끈 핵심 조직은 의회를 통한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비판하고 직접 민주주의를 강력하게 요구했던 이른바 의회 밖 저항운동 단체, "APO(APO: Außerparlamentarische Opposition)"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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