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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연재] 슬기로운 의사생활? 고통스런 가족생활!

채희태의 시대 진단 #6

  • 기자명 채희태
  • 입력 2020.06.01 15:25
  • 수정 2020.06.0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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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 Script. 필자가 심혈을 기울여 쓰고 있는 가짜뉴스에 대한 진단이 생각보다 인기가 없는듯하여, 이번에는 며칠전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명성에 기대 문화콘텐츠를 통한 시대 진단을 해 보겠습니다. 


방심했다. 시청률 정점을 찍고 있는 드라마가 설마 12회 만에 끝날 줄이야. 앞으로 무슨 낙으로 일주일을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일단 일주일에 두 편을 편성하는 기존 미니시리즈의 룰을 깼다. 일주일에 한 편 제작을 통해 드라마의 퀄리티를 높이겠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드라마 설정 상, 매주 새로운 곡을 연주해야 하는 연기자들의 부담도 한몫 했을 것이다. 프로 연주자가 아닌, 프로 연기자 5명이 서로 호흡을 맞춰야 하는 합주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파헬벨의 "Canon" 롹버전은 기타도, 드럼도, 베이스도 만만한 곡이 아니다. 

Canon 롹버전을 연습하고 있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5인방 (링크 클릭!)

연재 중간중간에 나오는 합주도 꽤 완성도가 있었다. 덕분에 '쿨'의 "아로하"를 비롯한 기억 저 편의 노래들이 다시 음원챠트를 석권하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사실 음치로 등장하는 채송화(전미도)는 뮤지컬 배우 출신이다. 채송화의 베이스 선생이 나랑 제법 친한 베이이스트라는 사실을 필자는 드라마 촬영이 모두 끝난 후에 알게 되었다. 아마 그 베이시스트와 친하다고 생각한 건 그저 필자의 주관적인 생각이었나 보다. ㅠㅠ

일주일에 한 편 방송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편당 방송시간은 평균 1시간 30분 남짓이었다. 필자는 '과로에 시달리는 백수'라 본방사수가 쉽지 않아 마지막편을 다음날 새벽에 넷플릭스로 보았다. 보는 내내 화면을 멈추고 얼마나 남았는지를 확인했다. 그 확인에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었다. 그런 나의 바람을 알았는지 "슬기로운 의사생활" 최종화는 거의 두 시간을 꽉꽉 채웠지만... 결국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아쉬움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신선한 주제와 연출로 인기를 모았던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신원호 감독과 이우정 작가의 콜라보 연작이다. 다소 무거운 주제도 그 둘이 만나면 깃털처럼 가벼운, 그러나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수작으로 탄생한다. 필자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보고 그 가볍지 않은 이면을 찾아 후기로 썼던 적이 있다.

‘답정너’는 취향과 가치 결합의 결과 (링크 클릭)

이제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후기에 담아보겠다. 코로나 때문에 영화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오랜만에 쓰는 문화콘텐츠 후기다. 

1. "슬기로운 의사생활" 캐릭터 소개

① 장겨울

다양한 표정의 장겨울(신현빈)
다양한 표정의 장겨울(신현빈)

필자의 최애 캐릭터는 장겨울이다. 화장기 없는 얼굴(그래도 했겠지?), 잔뜩 찌푸린 미간과 늘 뚱하게 튀어 나와 있는 입... 드라마 초반에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실려온 아이의 부모에게 심폐 소생술을 했으면 아이가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해 안정원에게 한소리를 듣지만, 동상에 걸린 환자의 발에 드글거리는 구더기를 손으로 직접 떼어내는 모습을 보며 안정원은 겨울의 태도가 의도가 아닌 그저 무지의 결과였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된다. 장겨울의 느릿느릿하면서도 어눌한 저음은 딱 필자의 취향이다. 흥해라, 장겨울!!!

② 주인공 5인방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 5인방의 무게는 필자에게 장겨울과 동급이다. 그래서 몰아서 소개한다.

별도의 설명은 생략한다!
별도의 설명은 생략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제4화에서 주인공 5인방은 대학 동기로 등장하는 더블보더 봉광현(최영준)에 의해 5무로 정리된다. 5명이 모두 한 가지씩 없다는 것.  5인방의 정신적 지주인 채송화는 단점이 없고, 김준완은 싸가지가, 게임과 예능에 빠져 있는 양석형은 사회성이, 놀기만 해도 1등을 놓친 적이 없다는 만능 엔터테이너 이익준은 꼬인 게(그래서 필자도?), 그리고 낭만닥터 김사부의 훌륭한 제자인 안정원은 물욕이 없는 비현실적 캐릭터들이다. 그래서 그런가 5인방을 보면 그저 부럽다는 생각밖엔... 무슨 연기자가 나보다 기타도, 베이스도, 드럼도 잘 치냐고!!!

그 외에 채송화을 짝사랑하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안치홍, 사회성 없는 석형에게 모성애를 느끼는 수다스럽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 추민하, 김준완에게 늘 깨지지만 최종화에서 의사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낸 헛똑똑이 도재학, 그리고 귀여운 쌍둥이 홍도와 윤복까지...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등장하는 "바람직한" 감초들을 보는 재미도 꽤 쏠쏠했다. 

 

2.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희망을 담은 문화 콘텐츠

이제부턴 본격적으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문화콘텐츠를 필자가 지향하는 상식을 바탕으로 읽어 보겠다. 문화콘텐츠의 성공 문법은 대략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현실의 촌철살인적 반영을 통해 대중들의 공분을 이끌어 내거나, 현실에 없는 희망을 제시해 대중들을 대리만족시키는 것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단연 후자의 문법을 선택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는 비현실적인 의사와 환자, 그리고 친구들이 등장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등장하는 의사, 환자, 친구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슬기로운 감빵생활"과 라임을 맞추기 위해 '슬기로운'이라는 단어를 선택했겠지만, 더 적확한 제목은 "바람직한 의사생활"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긴 이런 드라마라도 없으면 어떻게 이 지옥같은 현실을 견디겠는가! 문화콘텐츠는 어쨌든 시대를 반영한다. 있는 그대로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없는 것을 보여주며 희망이 결핍된 현실을 부각하기도 한다.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상대적 선도 존재할 수 없다며 사형 집행을 앞두고 도망치자는 친구 '크리톤'의 권유를 뿌리치는 '소크라테스'의 논리처럼, 절망만 가득한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상대적 희망을 보여주는 문화콘텐츠의 중요한 쓸모는 바로 '대리만족'에 있다. 그 대리만족도 아쉽게 끝이 나버렸으니 이제 이 폭폭한 현실을 어떻게 견딜꼬... ㅠㅠ

 

3. 숨겨진 주제는 전통적인 가족으로부터의 해방?

화려한 출연진과 비현실적인 스토리 뒤에 꼭꼭 숨겨놓은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눈치를 챘는지 모르겠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보편적인 가족이 등장하지 않는다. 결혼을 안했거나(채송화), 아예 결혼할 생각이 없거나(안정원), 결혼이 아닌 연애만 하거나(김준완), 결혼은 했지만 이혼을 한(이익준, 양석형)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 다섯 명의 절친은 가족이 아니라 밴드 활동이라는 공동의 취미를 통해 행복을 쫓는다. 쉬는 날이면 혼자 캠핑을 떠나는 채송화나, 신부가 되려고 하는 안정원이나 가족은 더이상 행복의 중심도 전제 조건도 아니다. 친구 익준의 동생 익순과 연애를 하는 준완도 그 연애의 끝이 결혼을 통해 가족을 이루는 것일지는 알 수 없다. 준완이 익순에게 보낸 반지가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 온 것이 암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아가 결혼을 통해 구성된 가족의 부정적인 면들이 불쑥불쑥 등장한다. 일하는 아내와 떨어져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익준은 결국 다른 남자가 생긴 아내에게 이혼을 당하고, 아버지에 의해 원하지도 않는 상대와 정략 결혼을 한 석형은 이혼을 통해 미안함을 전한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이면에는 "고통스런 가족생활"이 내재되어 있는 듯 보인다. 필자가 추측컨대, 정작 작가와 감독이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주제는 이런 말이 아니었을까?

더이상 가족에게서 행복을 찾지 마시라!

 

농경시대엔 효과적인 노동력 확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대가족을 이루며 살았고, 마을공동체는 가치가 아닌 편익의 결과였다. 그리고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부당한 노동을 견딜 수 있었던 원동력은 토끼같은 마누라와 여우같은 자식들로 구성된 가족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다면 코로나와 4차 산업혁명, 그리고 정보권력이 해체되고 있는 새로운 시대를 직면하고 있는 인류에게 가족의 의미는 무엇이어야 할까? 혹시 신원호 감독과 이우정 작가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그 대답을 담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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