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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연재] 영원히 끝나지 않는 노래, "그날이 오면"

채희태의 시대 진단 #8

  • 기자명 채희태
  • 입력 2020.06.10 13:00
  • 수정 2020.06.1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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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당일치기로 부산에 다녀 오느라 피곤했나 봅니다. 늦은 아침을 차려먹고 있는데 TV에 익숙한 노래가 들려 봤더니 윤선애씨가 "그날이 오면"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6월 10일... 카드값 나가는 날이라 며칠전부터 통장 잔고에만 신경을 썼는데, 오늘이 6 10 민주화항쟁 33주년이네요.

지금은 꼰대가 되어 이 사회의 적폐가 되었지만, 그들도, 아니 저도 가슴 뜨거웠던 청춘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 시절 더 치열하게 시대와 맞섰던 사람일수록 더 강력한 꼰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이라는 게 누구나 보상받고 싶은 심리가 있으니까요. 전쟁 세대는 전쟁에 대한 심리적 보상을, 반독재 민주화  세대는 그 시대에 대한 보상을 지금 세대에게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칼럼은 원래 올해 2월 1일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던 민중가요 소환 콘서트, "the 청춘"의 프리 이벤트로 연재를 했던 "민중가요 이야기" 중 그 첫번째 글을 가져와 봤습니다. "the 청춘"은 코로나로 연기가 되어 언제 하게 될지 기약이 없고, 제 연재 20여 편만 그저 깃발도 되지 못한 채 나부끼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민중가요 이야기" 연재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링크를 남겨 놓겠습니다. 

채희태의 "민중가요 이야기" (링크 클릭)


'그날이 오면'은 1985년 노래모임 새벽이 전태일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노래이야기 「불꽃」 공연을 위해 만든 노래이다. 가사에서 전태일이나 분신자살 등의 내용이 표면화되어 있지 않지만, 극심한 고통과 아픈 추억들, 짧은 젊음을 뒤로 한 채 삶을 마감하려는 한 인간의 고뇌와 극복을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음악은, 슬픔을 내면에 간직한 채 꿋꿋하게 이를 극복하는 태도가 잘 드러나 있으며, 섬세함과 담대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큰 스케일을 지니고 있다. 1986년 새벽의 비합법음반 9집 『그날의 오면』에서 윤선애의 독창과 혼성합창으로 수록되었고, 합법음반으로는 1989년 노래를찾는사람들의 2집 음반에 합창곡으로 수록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영화 '1987'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노래 '그날이 오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특히 80~90년대 대학을 다녔던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날이 오면'이라는 노래를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광적으로 '그날이 오면'을 좋아한다. 한때 '그날이 오면'을 다양하게 편곡해 한 장의 앨범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일지는 모르나 '그날이 오면'은 민중가요를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곡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첫째... 누구나 '그날이 오면'을 부르거나 들으면서 느끼듯, 서정적이면서도 비장한 가사 때문이다.

민중가요, "그날이 오면" 악보
민중가요, "그날이 오면" 악보

만약 나에게 이런 가사를 쓸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질 수만 있다면 악마와의 거래도 마다치 않으리라... 하지만, 이런 가사는 악마와의 거래가 아니라 시대의 고통 속에서 고뇌하는 한 사람의 예술가가 아니면 쓸 수 없으므로... 난 악마와의 거래를 포기했다.

둘째, 곡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 완성도 때문이다. 이 부분은 다소 전문적인 내용이니 패스해도 좋다.

그날이 오면은 다장조(C Major)이다. 하지만 전주는 다장조의 나란한조인 라단조(Am)로 시작해 노래가 시작하기 전 자연스럽게 장조로 바뀌며 노래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의 전주 멜로디는 코드의 구성음이 경과음으로 연결되며 묘하게 어긋난다. 그러면서도... 완벽하게 어울린다. 그래서 기타로 '그날이 오면'을 반주할 땐 다른 노래를 반주할 때 느낄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코드는 F인데 F코드에는 없는 '레'가 꽤 비중 있는 경과음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곧바로 F코드 위에 얹혀진 불안정한 '레'는 C 코드의 '미'로 해결된다.

민중가요, "그날이 오면"에 등장하는 의미 있는 경과음들...
민중가요, "그날이 오면"에 등장하는 의미 있는 경과음들...

'그날이 오면'의 도입부 베이스 진행에서도 음악적으로 절제된 완성도를 볼 수 있다. '고통', '눈물', '땀방울', '정의의 물결'이라는 결코 차분하지 않은 가사의 배경이 되는 화음은  C - Am - Dm - G로 진행하지만 베이스 진행은 각 코드의 근음인 도 - 라 - 레 - 솔이 아니라, '도'에서 '시'로, '시'에서 다시 '라'로 오히려 차분하게 한 발, 한 발 내려간다.

마지막으로 마치 철학과 예술을 결합해 놓은 듯한 곡의 엔딩...

내가 '그날이 오면'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이 엔딩 때문이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노래의 99.9%는 모두 으뜸음(도)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그날이 오면'은 으뜸음인 '도'가 아니라 가온음인 '미'로 끝난다. 그(도) - 날(도) - 이(레) - 오(레) - 면(미)... 우리가 '그날이 오면'이라는 노래를 끝내려면 그(도) - 날(도) - 이(레) - 오(레) - 면(도)으로 불러야 한다. 그래서 '그날이 오면'에서 노래하는 그날은 아직 오지 않았고, 우리는 여전히 그날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그래서 '그날이 오면'은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노래이다. 작곡가 문승현은 마치 끊임없이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미숙한 인간의 숙명을 '그날이 오면'이라는 노래를 빌어 철학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그러니... 그날이 오지 않았다는 섣부른 투정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간에게 있어서 그날은... 죽음이다. 박종철 열사나, 이한열 열사, 그리고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산화해 가신 많은 열사들은 죽음으로 그날을 맞이했다. 마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 죽어야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마지막으로... 내가 대학시절 노래패, '꼴굿떼' 후배들의 요청으로 마석행 기차 안에서 편곡한 무반주 '그날이 오면'을 붙인다. 인류는 노래, '그날이 오면'처럼 영원히 그날을 위해 나아갈 것이다. 

"그날이 오면" 아카펠라 (링크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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