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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연재] 중세를 무너뜨린 백수, 부르주아지!

채희태의 시대 진단 #11

  • 기자명 채희태
  • 입력 2020.06.23 11:38
  • 수정 2020.06.24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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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가 아니었을 땐 별로 활동을 하지 않던 나의 JQ(잔대가리)가 현재 백수 상태인 나를 지키기 위해 미친 듯이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피곤한가? 과거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것 같다. 이른바 담배를 끊으라는 주변에 압박에 대응하기 위한 흡연의 정당화다. 비교육적이지만 얼마 남지 않은 끽연가들을 위해 그중 하나를 소개한다. 100세를 넘기는 것이 쉽지 않던 시절, 시골의 한 할머니가 100세를 넘겼다고 해서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매스컴에서 찾아가 장수의 비결을 물었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거, 담배들 끊어! 난 작년에 끊었어.”

 

자고로 시대가 변화의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그 변화를 주도하는 세력은 시스템의 안이 아닌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지금의 백수가 그렇고, 중세를 무너뜨린 부르주아지가 그렇다. 감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의 지배자인 부르주아지를 백수와 비교하다니... 지나친 비약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론을 제기하기 전에 나의 JQ가 알아낸 놀라운 발견을 한번 들어나 보시라! 유레카~

부르주아지라는 단어가 처음 역사에 등장한 것은 정확히 1007년 프랑스의 한 문서라고 알려져 있다. 볼리외의 한 수도원 주위에 생겨난 부락의 주민들이 수도원 측에서 부과한 타이유(세금)에 반발하여 들고일어났을 때, 앙주 백작 풀크 네라(Foulques Nerra)가 개입하여 “이곳 주민들을 농노 상태에서 해방하고 수도원장에게 자의적인 타이유의 부과를 금하는 한편, 차후에 그들이 수도원에 대하여 또다시 불온한 행동을 할 경우 60 리브르의 벌금을 물린다.”는 내용의 문서를 작성했다. 이 문서에 등장하는 그 문제의 주민들이 바로 ‘부르주아(burgenses)다. 부르주아라는 새로운 명칭이 등장했다는 것은 그때껏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부류의 인간들이 생겨났음을 뜻한다(성백용, 2006: 7).

사실 부르주아의 어원인 ‘부르(bourg)’는 성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다. 즉 부르주아지의 어원은 성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중세는 지금처럼 자기가 하고 싶다고 여기저기 계급과 직업을 바꿔가며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부르주아지에게는 중세의 시스템에서 벗어난 특권이 인정되었는데, 그 이유는 원거리를 오가며 물자를 유통해야 하는 새로운 사회적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1세기는 1차 십자군 원정으로 인해 동방에서 약탈한 다양한 문물이 서양으로 유입되는 시기이다.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매우 익숙하지만, 11세기 중세 유럽은 농업에 기반한 사회였다. 물자를 유통하는 행위는 혈통에 의해 지배 권력을 행사했던 귀족이나, 귀족들의 전투력을 담당했던 기사, 또는 땀을 흘려 토지를 일구는 농노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었다. 그 역할은 중세 봉건주의 시스템 밖에 있었던 제3의 계급인 부르주아지의 몫이었다. 그리고 중세의 영주들은 그러한 부르주아지들을 안전한 성 안에 살게 하면서 세금을 부과했다. ‘부르’는 11세기 이후 부르주아지라는 특권층으로 인해 성이라는 의미보다는 ‘상인 거주지(vicus mercatorum)’를 가리키는 말로 더 널리 쓰이게 되었다(성백용, 2006: 7-8). 부르주아지들은 상업을 통해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도시국가를 건설했다. 그리고 마침내 18세기에 이르러 산업혁명이라는 날개를 달고 중세를 무너뜨린 후, 근대를 여는 당당한 주역이 되었다. 부르주아지들이 바치는 달콤한 세금에 취해 있던 중세의 귀족들은 그들이 장차 자신들이 구축한 단단한 성체인 중세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민중을 이끄는 여신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외젠 들라크루아)

이제 서양이 아닌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부르주아지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도 서구의 중세처럼 조선시대까지는 농업에 기반한 사회였다. 농부들의 노동을 독려하기 위해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도 만들었다.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여기서 말하는 농자(農者)는 농부가 아니라 ‘농사라는 것’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 즉, 천하의 근본이 농사를 짓는 놈(者), 즉 농부가 아니라 농사, 그 자체라는 뜻이다. 만약 농부를 천하의 근본이라고 생각했다면 조선시대의 신분질서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 아니라 ‘농사공상(農士工商)’이었어야 맞다.

조선시대는 근본이 농업이었고, 정치를 하는 선비(士)들은 농업의 생산물을 착취하는 동시에 분배했다. 그리고, 농업의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조선시대에도 물건을 만드는 장인(工)이 필요했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장인이 바로 세종대왕이 발탁해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갖게 해 준 장영실이다. 사농공상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조선시대 상인의 지위는 평민 중에서도 가장 낮았고, 노비의 바로 위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상업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처럼 물자가 넘쳐나야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추측을 한 번 해 보자. 농사가 근본인 사회에서 농부도 아니고, 정치권력도, 기술도 가지지 못했고, 또 지금처럼 유통해야 할 물자가 풍부하지 못했다면 상인들의 지위는 지금의 백수와 무엇이 달랐을까? 서구와 달리 우리나라의 상인들은 어쩌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장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장 낮은 지위에 있는 상인들은 그 멸시와 천대 속에서 생존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네이버의 인기 웹툰, 문정후의 “고수”에 등장하는 상인에 대한 설명
네이버의 인기 웹툰, 문정후의 “고수”에 등장하는 상인에 대한 설명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과 정보의 팽창,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급속하게 갱년기로 접어들고 있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명을 개척해 나갈 신인류는 누구일까? 중세의 질서에서 벗어나 있던 부르주아지가 중세의 몰락을 이끌었듯, 소위 직업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백수가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주역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11세기 서양에서는 급격히 늘어난 물자를 유통하는 과정에서 부르주아지들이 등장했다면, 지금은 빅뱅 수준으로 팽창하고 있는 정보의 유통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인류는 2017년을 기준으로 매년 16ZB의 데이터를 생산해 내고 있다. 하루에 482억 GB, 초당 56만 GB, 이를 영화 파일의 데이터 크기로 환산하면 1초에 영화 28만 편이 탄생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매 초마다 데이터 빅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정보의 과잉이 전문성의 분화로 이어졌고, 각자의 전문성에 갇혀 있는 우리는 상식이 어디로 향하는지 관심도 없다. 그래서 창궐하게 된 것이 바로 가짜뉴스다. 부르주아지가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유입된 물자를 유통하며 부를 축적했듯, 정보 빅뱅의 시대 전문성이 만들어 내고 있는 감당할 수 없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유통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바로 시스템 밖에 서식하고 있는 탈근대 제3의 인류인 백수들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다.

 

끽연가들을 위한 흡연의 정당성에 대한 팁을 하나 더 소개한다. 『톰 소여의 여행』의 저자로 유명한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어느 날 금연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담배 끊는 게 제일 쉽던데...
난 지금까지 500번도 더 담배를 끊어봤거든

 

누가 백수라고 무시하면 당당하게 맞서시라! 중세의 백수인 부르주아지가 결국 중세를 멸망시키고 근대를 건설했다고! 불확실한 미래의 주역이 될지도 모를 백수를 우습게 보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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