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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정가 뒤흔드는 “러시아의 미군 살해 사주” 사건

“러시아 사주로 미군 사망” 보고 묵살 의혹
내부의 추가 제보 잇따라 트럼프 ‘전전긍긍’

  • 기자명 김선태
  • 입력 2020.07.01 16:56
  • 수정 2020.07.0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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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국의 최대 명절 추수감사절인 지난해 11월 28일(현지시각) 아프간을 깜짝 방문, 미군 장병들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국의 최대 명절 추수감사절인 지난해 11월 28일(현지시각) 아프간을 깜짝 방문, 미군 장병들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

러시아 스캔들로 특검까지 치러야 했던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번에는 러시아가 미군 살해를 사주했다는 첩보를 무시한 것으로 알려져 곤욕을 치르고 있다.

NYT, “러시아가 반군 사주해 미군 살해“

뉴욕타임스(NYT)는 26일부터 이어진 연속 보도를 통해 “러시아 정보기관이 탈레반 측에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살해를 사주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보고받고 아무런 대응도 지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폭로했다.

뉴욕타임스가 확보한 제보에 따르면 러시아군 정보기관인 정찰총국(GRU) 산하 ‘29155’라는 조직이 지난해 탈레반과 연관된 아프간 반군 세력에게 미군 살해를 사주하며 포상금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 포상금을 받은 반군에 의해 최소 1명 이상의 미군이 살해된 것으로 미 정보당국은 보고 있다.

지난해 1월 미군은 적군 포로로부터 이와 같은 첩보를 확보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탈레반 전초기기를 기습해 50만 달러어치 지폐를 회수했다. 이어 미군은 생포한 탈레반 포로들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이 돈이 러시아가 제공한 포상금의 일부이며 그것이 미군 사망으로 이어졌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프간에서는 종종 아프간 보안군이 아군인 연합군을 공격하거나 탈레반이 아프간 보안군으로 위장해 미군을 공격하는 사례가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미국은 2001년 이래 지금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수행 중이며 그동안 2400여 명의 미군 이 사망했다.

작년에는 작전 중 23명의 미군이 임무 수행 중 사망했는데 이는 최근 5년 이래 연간 최다 사망자 수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특히 아프간에서 적의 총격이나 사제폭발물로 목숨을 잃은 미군 병력은 2018년 10명, 2019년 16명이며 올해는 2명이다.

NYT에 따르면 이러한 정보가 지난해 1월 미군 사망 사건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에 의해 확인되었으며 확인 작업을 거쳐 3월 말 백악관 고위급 회의에서 논의되었다. 당연히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보고됐으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측도 관계 부서들과 이를 논의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백악관은 이 문제에 관해 어떤 조치도 허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NYT는 이유를 믿는 기자의 질문에 백악관이 아무런 설명도 내놓지 않았다고 썼다.

트럼프 “보고받은 적 없어”, 미 의회 “그것이 더 문제”

6월 28일(현지시각) 저녁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나,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마크 메도스 비서실장 중 누구도 보고를 받은 적 없다. 미군에 대한 공격은 많지 않았고 어떤 행정부도 우리보다 러시아에 강경하지는 않았다”는 주장을 올렸다.

이어 그는 “정보당국이 방금 내게 보고하기를, 정보가 신빙성이 없어서 나나 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한다”며 “아마 또 다른 조작된 러시아 사기극일 것”이라 썼다.

하지만 NYT는 “만일 러시아 사주설이 사실이라면 이는 러시아 첩보 기관이 서방을 공격한 최초 사례일 것”이라 썼다. 다만 보도가 나간 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해당 사실을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비울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도 “탈레반은 그 어떤 정보기관과도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NYT는 분석 기사를 통해 이 일은 멀리 2018년 시리아에서 미군에 의해 러시아 용병 등 수백 명이 사망한 일에 대한 복수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그 근거로 ‘29155’라는 기관이 2018년 3월 영국 솔즈베리에서 일어난 러시아 출신 이중간첩 세르게이 스크리팔 독살 시도의 배후 조직으로 지목된 사실을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련 사실 인지를 강력하게 부인하는 가운데, 미 정가에서는 미군이 러시아의 사주로 살해된 사안을 보고조차 받지 못했다면 이는 더 심각한 문제라는데 입을 모으고 있다.

미 공영라디오 NPR은 29일(현지시각) “미국 의회는 초당적으로 이 보도와 관련한 국방부와 정보기관의 브리핑을 원한다”고 보도했다.

이날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존 랫클리프 국가정보국(DNI) 국장과 지나 해스펠 CIA 국장에게 “이번 의혹과 관련해 즉각 브리핑해 줄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펠로시 의장은 서한에서 “이 행정부의 충격적인 침묵과 무대책이 우리 군과 연합국 파트너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 배경으로 펠로시 하원의장은 “러시아를 주요 8개국(G8)에 끌어들이려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련 사실을 무시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하원 애덤 스미스 군사위원장은 “백악관이 분명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라면서, 백악관의 대응이 “대통령은 알지 못한다는 사실만 주장한다면, 이는 비정상적인 일”이라 덧붙였다.

추가 의혹과 내부 폭로 잇따라

그런 가운데 NYT는 30일(현지시각) 추가 제보를 바탕으로 “일정 시점에 러시아군 정보기관의 은행 계좌에서 탈레반 측으로 거액이 빠져나간 정황이 포착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제보의 신빙성을 더하고자 NYT는 복수의 미 정보당국자를 인용해, “미 정보당국이 러시아와 탈레반 간 자금이체 전산 데이터를 입수했다”고 전했다.

이는 러시아군 정찰총국(GRU) 산하 조직이 탈레반 측에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살해를 사주했다는 의혹을 확실히 뒷받침할 정보이자, 이체된 자금이 미군 살해의 대가로 사후에 지급된 포상금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해석된다.

기사에 따르면 미 정보당국은 러시아 측과 연계된 아프간 인사들의 실명을 파악했으며, 그중 자금을 분배를 맡은 인물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와 같은 사실을 보고받고도 즉각적인 조치를 명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그의 대선 행보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친러 행보는 워낙 유명해서 더 부연할 필요가 없다. 그런 가운데 이번 일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미군의 생명보다 푸틴과의 관계를 우선시한다”는 비판을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30일(현지시각) 미 CNN 방송은 ‘대통령의 전화는 정부 관리들을 경악하게 만든다’는 장문의 논평에서 “트럼프는 종종 자신의 사적인 이해관계, 예컨대 정적에 대한 비판이나 복수 그리고 11월 대선 승리 따위와 미국의 국익을 지속적으로 혼동하는 것 같다”는 익명의 증언을 공개했다.

CNN은 이 주장이 12명 이상의 미 정부 관리들로부터 대통령의 실시간 통화 녹음 또는 상세한 통화 기록을 제공받은 데 근거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주요 사건 일지

한편, 6월 30일 워싱턴포스트가 밝힌 데 따르면 ‘러시아의 미군 살해 사주’ 주요 사건 일지는 다음과 같다.

2017년 4월 : 존 니콜슨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은 러시아가 탈레반을 무장시키고 있다는 보도를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짐 매티스 국방장관은 "아프간 정부 관할을 벗어나 외국으로부터 유입되는 모든 무기는 국제법 위반으로 간주될 것"이라고 밝혔다.

2018년 2월 : 미군과 시리아 동맹군들은 푸틴과 연계된 과두정파 예브게니 프리고진 휘하 러시아 용병 약 100명으로부터 공격받은 직후 그들을 사살했다. 이 사건은 1990년 냉전 종식 이래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벌어진 가장 치명적인 충돌이었다. 미 정부는 이번 사태가 그에 따른 러시아의 보복 차원에서 벌어진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3월 : 니콜슨 사령관이 아프간에서의 “러시아군의 파괴 활동”에 관해 다시 언급했다. 탈레반과 러시아는 그런 비난에 근거가 없다고 부인했다.

2019년 4월 : 아프간 바그람(Bagram) 공군기지로 귀환 중인 미군 호송차량이 공격받아 미 해병 3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했다. 탈레반은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AP 통신에 따르면 미 정보당국은 이 사건이 러시아의 사주에 따른 포상금과 연관되었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2019년 10월: 러시아는 미국, 중국, 파키스탄과 함께 아프간 평화 협정에 서명했다.

2020년 초 : 미 특수부대 네이비 씰이 탈레반 전초기지를 기습해 현금 50만 달러를 회수했다. AP 통신에 따르면 이는 미 정보당국이 러시아의 연관성을 의심하고 있음을 뒷받침하는 사건으로 보인다.

2월 29일 : 미국은 14개월 내에 아프간에서 전면 철수하는 것을 골자로 한 평화협정을 탈레반과 체결했다. 그러나 탈레반과 연계된 다른 무장단체들까지 구속시키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며, 이를 위한 추가 회담 역시 미정으로 남았다.

3월 말: 미 정보당국이 드디어 관계 부처 회의를 열어 러시아가 아프간 내 미군 사살을 사주하기 위해 탈레반 측에 포상금을 제공했다는 정보를 논의했다. 회의 결과 정보 당국은 러시가가 그 일을 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후 6월 26일 뉴욕타임스는 회의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해당 내용에 관해 보고받았으며 이를 트럼프 자신과 백악관이 즉시 부인했다고 보도했다.)

4월 18일 : 트럼프 대통령이 “나는 푸틴과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5월 8일 :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는 수년 동안 러시아로부터 연락을 받은 바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내가 나서서) 이 대단한 우정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과 대화를 나누면서 인공호흡기를 보내겠다고 제안했다. 이후 미국은 560만 달러에 해당하는 200대의 인공호흡기를 러시아에 제공했다.

6월 25일 : 러시아 포상금 소식과 미국의 대응 부족 소식이 보도되기 하루 전, 트럼프는 느닷없이 러시아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해왔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트럼프는 폭스뉴스의 보수논객 숀 해너티에게 “나는 이전 그 어떤 대통령보다 러시아에 더 강경했다”고 말했다.

6월 26일: 뉴욕타임스가 “러시아의 미군 살해 포상금” 소식을 보도했다. 이어 워싱턴포스트, AP 통신 등이 후속 보도를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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