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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 경복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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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 경복궁 이야기
  • 이현진
  • 승인 2020.07.06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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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의 건국과 조선의 건국과정

코로나로 모든 활동이 제약을 받아 갈 수는 없지만

미리 글로나마 문화현장을 돌아보면서, 자유로이 다닐 그날을 기대해봅니다

 

다시 써보는 나의 경복궁 이야기 1

질문 1 : 경복궁은 5개 궁궐중 하나인가? 아니다. 경복궁은 one of them이 아니다.

질문 2 : 경복궁은 곧 조선이다? 맞다. 경복궁은 조선의 건국이념과 철학을 지은 것이다.

질문 3 : 그렇다면 경복궁은 오늘날 우리에게 문화재이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경복궁은 어떤 궁궐이고, 왜 경복궁조선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지, 오늘 우리의  경복궁 답사는 어떤 의미가 있는 지, 다시 돌아보면서 우리가 처한 현재와 과거의 역사를 돌아봅니다. 

1. 명의 건국과 조선의 건국

- 노국공주 선발대회가 주는 의미

20194, 13회째의 노국공주 선발대회가 경북 안동에서 열렸다. 안동의 노국공주 선발대회가 좀 뜬금없는 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고려 공민왕때 홍건적의 침범으로 개경이 함락당하고 공민왕은 안동까지 몽진(蒙塵)해 왔다. 몽진(蒙塵)이란 흙먼지가 뿌옇게 날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임금의 행렬이 정조의 반차도 모습처럼 공식적인 예를 갖추지 못한 채 흙먼지 속에 달려간다는 의미이니, 선조의 몽진이나 공민왕의 몽진이 얼마나 급한 상황인 줄은 단어만으로도 짐작이 된다. 그래서 판단능력이 아직 흐릿한 아이들을 동몽(童蒙)이라 부르고, 아이들이 제일 먼저 공부해야할 책이 동몽선습(童蒙先習)이란 역사책이고, 이들을 정신이 번쩍들도록 깨우치게 하는 책이 율곡의 격몽요결(擊蒙要訣)이다. 실은 몽롱함 속의 어른들이 먼저 읽어야하겠지만......

 

각설하고, 공민왕의 안동 몽진을 Stroytelling 해서 안동이 노국공주선발대회를 13년째 개최해온 것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편액, 안동웅부 등 안동 곳곳에서 공민왕의 글씨가 등장하고 있고, 안동의 놋다리밟기의 유래가 피난 온 왕의 행렬이 다리가 없어 물을 건너지 못할 때, 안동의 할매들이 허리를 굽혀 다리를 만들어(이미 나이 들어 허리 굽은 할매들의 슬픔이 느껴진다) 물을 건너게 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까지, 곳곳에 몽진의 흔적이 남아있다.

역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노국공주 선발대회는 사실 미인선발대회라기보다는 우리 역사의 아픈 기억이 떠오르는 제목이다. 홍건적이 얼마나 잔혹한 일을 벌였는가는 고려사에 잘 나와 있다.<又屠灸男女, 或燔孕婦乳爲食, 以恣殘虐. 남녀를 잡아 불에 태우고, 임신한 여인의 가슴을 구워먹는 잔혹한 . 고려사 13611124> 이러한 홍건적의 만행과는 별개로, 실제 행사를 참관한 적은 없지만, 미소상, 맵시상 이런 시상 내용을 보면 아마도 축제 같은 모습의 행사일 것으로 짐작된다. 역사의 아픔을 축제로 승화시키는 안동의 놀라운 저력을 느낄 수 있다고하면 위안이 될런지......

사실 공민왕 몽진의 계기가 된 <홍건적의 침입>이란 사실은 굉장히 중요하다. 대개 그동안 홍건적이 침입해와 왕이 몽진을 했다는 정도로 서술되어왔지만, 이 홍건적이 중국이나 한국의 왕조 교체에 끼친 영향을 생각한다면 너무 단순하게 기술되어 온 측면이 있다. 다소 과장되게 이야기한다면 홍건적의 영향이 중국은 원()에서 명()으로의 교체를 촉발했고(명을 세운 주원장은 홍건적 한 분파의 수장 출신이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정권교체의 한 요인(원나라의 정책으로 제대로 된 고려정규군이 없는 상태에서 홍건적 진압과정에서 막강한 사병(私兵)을 보유한 최영이나 이성계가 고려말의 실력자로 등장할 수 있었다)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홍건적의 침입은 단순한 도적의 침입이 아니라 조선 왕조 출발의 중요한 분기점 중 하나이기도 하고, 이후 원--고려-조선의 관계를 본다면 단지 조선이라는 한 나라의 역사만으로 궁궐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 협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현재 우리의 남북문제를 우리의 힘만으로는 풀어내기 어려운 복잡한 이해관계가 우리를 둘러싼 여러 나라 사이에 있다는 것이고, 지금도 다국적 시각이 없이는 제대로 우리 문제를 이해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경복궁을  조선과 명의 건국과정과 대비해서 함께 들여다보는 것은, 조선의 역사와 철학, 경복궁을 종합적으로 이해해가는 데  의미가 있다.

문화재청의 <가보자 궁>의 안내서처럼, <경복궁은 1395(태조4)에 창건한 조선왕조의......어쩌구......>이런 객체와 대상으로서의 경복궁이 아니고, <우리가 서있는 이곳이 조선의 출발과 우리 역사를 돌아보는......> , 역사의 주체와 의미로써 경복궁을 돌아보는 것이, <어제를 담아 내일에 전한다>는 문화재청의 모토가 진정 무슨 뜻인지를 실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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