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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연재] 반반(反半)전문가의 전문성 비판 2

채희태의 시대 진단 #16

  • 기자명 채희태
  • 입력 2020.08.07 12:48
  • 수정 2020.08.0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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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에 이어 독일을 대표하는 사회학자로 떠오르고 있는 '니클라스 루만'은 모든 사회체계(전문성?)은 사회의 필요성으로 인해 출발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확대재생산에만 몰입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최근 평교사 출신 국회의원인 강민정 의원(열린민주당 비례 대표)의 "국가, 지자체 책임 온종일 돌봄 특별법" 발의를 보며 전문성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강민정 의원은 "교육은 학교가 전담해야 하지만 돌봄은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말꼬리를 잡고자 하는 의도는 없지만, 그렇다면 학교는 국가와 사회에서 떨어진 또 다른 국가, 또 다른 사회라는 의미인가? 필자는 2015년부터 2년 2개월 14일 동안 서울시교육청에서 어쩌다 공무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실재로 필자가 서울시교육청에서 만나본 교육전문가들 중에서는 태초에 학교가 있었고, 그 학교를 위해 마을이 존재하게 되었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 국회의원 당선 후 아이들을 중심에 두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힌 강민정 의원이 교사가 아닌 시민, 그 중에서도 학교 밖 청소년들을 포함한 교복 입은 시민인 학생들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번에 지난번 전문성의 함정에 이어 전문성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살펴 보겠다. 


2. 전문성의 시작

인류의 전문성은 조상인 사피엔스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특징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전문성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전문성의 시작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나는 근대의 위대한 통찰자인 맑스의 어깨 위에 살짝 올라타고자 한다. 맑스는 근대 인류에게 두 가지 중요한 ‘관점’을 제시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노동‘과 ‘계급’이다. 맑스 이전의 노동은 피지배 계급이나 하는 천한 행위였다. 하지만 맑스는 그 천한 행동이 바로 역사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보았다. 노동의 가치는 신성한 것이 되었고, 그러한 인식의 확대는 맑스의 의도와 무관하게 자본가에게도 득이 되었다. 노동을 신성하다고 여기지 않았다면 어떻게 자본가들이 자신의 이윤 창출을 위해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노동을 강요할 수 있었겠는가! 산업 자본주의가 복잡해질수록 노동 또한 신성하게 ‘분화’되었다. 노동의 분화와 전문성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맑스를 소환했다고 해서 전문성이 맑스의 시대적 활동 무대였던 근대에 시작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전문성이 자본주의와 만나 꽃을 피운 것은 맞지만, 그 시작은 맑스가 제안한 또 다른 관점인 ‘계급’과 관련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맑스는, 그리고 엥겔스는 그 유명한 공산당 선언에서 인류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주장했다. 계급투쟁의 당사자, 인류의 역사 어느 시기에 지배를 전문적으로 하는 지배계급과 지배를 전문적으로 받는 피지배계급이 생겨난 것이다. 어쩌면 계급이야말로 인류 최초의 전문성인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지배와 피지배로 나뉘었던 계급이 본격적으로 전문성의 분화를 추동한다. 피지배계급의 전문성이 효율적인 생산 노동을 위해 분화했다면, 지배계급의 전문성은 보다 세련되게 피지배계급을 지배하기 위해 분화하였다. 가장 쉬운 예를 들어보자. 석기시대를 지나 청동기시대가 시작된 이유는 청동기가 생산 노동에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청동기 유물을 살펴보자. 제정이 일치된 계급사회에서 지배계급은 자신이 신의 대리인이라며 피지배계급 앞에서 청동쌍령구를 흔들었을 것이다. 또한 피지배계급이 노동을 하다 말고 청동 거울을 꺼내 노동에 찌든 자신의 얼굴을 살폈을 리 만무하다.

계급사회 이후 다양한 전문성이 노동으로부터 분화되어 나왔다. 우리가 노동과 다소 무관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단어인 예술, 즉 ‘art’의 라틴어 어원은 ‘ars(아르스)’이다. ars는 그리스어 ‘techne(테크네)’에서 유래한 말이다. 예술의 어원인 techne가 예술을 의미하는 art와 기술을 의미하는 technic으로 분화하기 전, techne는 노동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도구를 다듬는 기술을 가리키는 단어였을 것이다. 그러한 techne가 계급사회 이후 노동과 분리되어 지배계급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전문성인 ‘art’와 여전히 노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전문성인 ‘technic’으로 분화한 것이다. 기원전 14세기 이집트 제18대 파라오인 투탄카멘의 얼굴을 황금으로 만든 장인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고대 그리스 시대에 살았던 또 다른 장인은 라오콘 군상의 일그러진 표정을 통해 신의 뜻을 거역하면 이렇게 고통스러운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담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라오콘 군상 AD 27년, 지배 전문가에게 저항하며 저런 고통을 당할 수 있다?
라오콘 군상 AD 27년, 지배 전문가에게 저항하며 저런 고통을 당할 수 있다?

계급사회에서 예술과 문화가 지배의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해서 예술을 부정적으로 규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술은 노동으로부터 분리되면서 비로소 전문적이고 독자적인 성장의 길을 걷게 되었다. 예술이 여전히 노동의 이면으로 존재했었다면, 그 빛나는 성취는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예술은 중세에 접어들어 완벽한 신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정교해졌고, 그 정교함이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는 도시국가를 바탕으로 부를 축적했던 시민 계급의 지원을 받아 꽃을 피웠다. 메디치 가문의 지원이 없었다면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나 ‘다비드’ 같은 작품을 창작할 시간에 농사를 지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모차르트에게 거액의 작곡비를 지불한 ‘프란츠 폰 발제크 백작’의 이름으로 초연되었다.

하나의 예를 더 들어보자. 문화를 뜻하는 영단어 ‘culture’는 ‘경작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라틴어 ‘cultura’가 그 어원이다. 문화는 인류의 직접적 생존 방식이었던 노동(경작) 행위에서 비롯되었지만, 이미 산업사회 훨씬 이전부터 그 본질인 노동과는 무관하게 성장해 왔다. 문화는 계급사회에서 지배계급의 지배를 정당화시키는 억압의 망치 역할을 세련되게 수행해 왔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계급사회에서 지배와 불평등을 당연하게 인식하도록 하는 것은 문화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브르디외가 제2의 본성으로 규정한 아비투스, 즉 계급은 문화적으로 당연하게 인식되었기에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의 억압과 착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문화와 힘겨운 투쟁을 해야만 했다. 모든 사회 체계들이 그러하겠지만, 무형, 무색, 무취로 존재하는 문화야말로 지배계급의 관점에서 시대를 ‘유지’하거나 피지배계급의 관점에서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자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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