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1 13:54 (월)
전공의 휴진 사태, 정부-의료계 ‘수 싸움’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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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휴진 사태, 정부-의료계 ‘수 싸움’ 돌입
  • 김선태
  • 승인 2020.09.01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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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협 ‘명문화 요구’ 정부 수용, 국정동력 떨어뜨려
공권력에 의한 전공의 압박 시 ‘전선 확대’ 불가피
정부, ‘코로나19 방역과 대체의료진 확보’ 집중해야

“오라, 내 그대와 놀아주리라.”
슬픔은 온종일 내 곁에 와 있네. 밤이 되면 그는 돌아와 말하네.
“내일 다시 오리다. 다시 와서 그대 옆에 머무르리다.”
숲길을 따라 우리 함께 걸어가네. 부드러운 그의 발소리 내 곁에서 사각거리네.
- 오브리 드 비어, ‘슬픔’ 중에서.

청와대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를 위해  수석보좌관회의 참석자를 필수 인원으로 최소화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모두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 사진 = 청와대
청와대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를 위해 수석보좌관회의 참석자를 필수 인원으로 최소화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모두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 사진 = 청와대

전공의 휴진 사태가 정부와 의료계의 정면 대결 양상으로 비화하면서 ‘수 싸움’ 국면에 들어선 모양새다.

애초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같은 정부안에 전공의들이 반대하면서 시작된 집단휴진은 이후 의대생들의 국가고시 반대와 전문의, 의대 교수진의 동참으로 의료계 전체의 문제로 확산된 상황이다.

정부-의료계, 상대방 설득할 기회 사라져

그간 국회가 의료계를 포함한 회의기구에서 법 개정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약속했고, 미래통합당이 “야당을 믿고 의료 현장에 동참해 달라” 호소한 데 이어,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정책을 원점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전공의 휴진을 이끌고 있는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대전협)는 29일 밤 파업 지속을 묻는 투표가 부결되자 결정권을 비대위원장에게 묻는 등 일종의 꼼수 재투표를 통해 30일 오전 무기한 집단휴진을 결정했다. 의사는 파업 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법적 근거에 따라 정부가 고발 조치를 취하자 전문의와 의대 교수진들이 이에 항의해 임시 휴진을 결정하는 등 의료계의 결속력은 더 높아지는 중이다.

그간 정부와 의료계 양측은 나름의 명분을 내세워 사태 해결을 시도해 왔다. 정부는 한편 현재와 같은 코로나 시국에 의료진이 현장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다른 한편 원점 재논의까지 입장을 후퇴했고 국가고시도 연기했다.

여론도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일례로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달 11일부터 27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무려 6만9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56.5%가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의료계에 위협거리가 되지 않는 듯하다.

전공의는 대학병원 등 주요 의료현장에서 대체불가한 인력인데다 상상을 불허하는 결속력을 지닌 조직이다. 당장 정부가 한 발 물러선 31일 현재 전체 전공의 7975명 가운데 6688명이 근무하지 않아 휴진율이 83.9%로, 28일의 75.8%보다 오히려 높았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완전 항복을 선언할 때까지 전공의 파업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심지어 “이번 기회에 의료계가 중심이 되어 문재인 정부를 타도하자”는 주장까지 나오는 중이다.

상황이 꼬일 대로 꼬여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원인을 따져 순리적인 해결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이미 대전협이 대화 창구를 봉쇄한 채 무기한 파업을 선언한 터라, 정부가 취할 전략에 따라 이번 사태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정부가 대전협의 주장을 전면 수용하겠다고 선언할 경우다.

이는 정부가 기왕 밝힌 의료개혁 정책을 명시적으로 철회하고 관련 논의를 의료계와 원점에서 재논의할 것을 명문화한다는 의미다. 그로써 이번 사태는 전공의 측의 승리로 일단락되고 의료 현장은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 정부는 환자를 볼모로 삼은 집단휴진이라는 비인도적 투쟁에 무릎을 꿇은 격이 되어 추후 의료개혁의 동력을 잃게 된다. 더욱이 그간의 불법 휴진을 눈 감아 의료계의 특권화를 부추긴 꼴이 되어 여론의 비난 또한 고조될 것이다. 이로 인해 전반적인 국정 동력 상실을 초래할 것이 뻔한 이런 전략을 정부가 취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대전협 역시 이런 식으로 승리할 것이라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둘째 정부가 공권력을 행사해 전공의를 압박할 경우다.

앞서 8월 26일 경 보건복지부는 수도권 수련병원에 업무개시 명령을 발령했고, 휴진 전공의(수련의) 358명에게 업무개시 명령서를 발부했으며, 이를 이행하지 않은 전공의 및 전임의 10명을 경찰에 고발했다.

이에 의료계가 동요하면서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자 당황한 정부가 한 발 물러나 대통령까지 나서 ‘원점 재검토’를 약속했다. 더 나아가 1일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정부는 이미 어떠한 조건도 걸지 않고 의사 수 확대 정책의 추진을 중단해 둔 상태”임을 밝혔다. “공공의대 설립은 국회 입법을 전제하는 것으로 정부에서 정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는 가운데 의료계의 책임을 묻는 여론이 비등하면서 상황은 다시 반전 국면을 맞았다. 앞선 정부의 공권력은 법적 근거 위에 행사되는 것으로 이를 중단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를 강행할 경우 전공의를 중심으로 한 의료계는 대체불가 집단이라는 무기에다 ‘코로나를 빌미 삼은 독재 정권의 희생양’이라는 무기 하나를 더 얻게 된다. 기왕에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이 ‘문재인 케어’를 공산주의 방식으로 보고 이번 투쟁을 정권 타도 투쟁의 일환으로 몰아가려 하고 있어 이 무기의 파괴력은 증폭될 수 있다.

그로 인해 의료대란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고 여론마저 진영논리로 양분될 수 있어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수습책임을 지닌 정부가 궁지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다른 한편 의료인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분노 게이지도 도를 넘어설 것인데 이는 장기적으로 의료계의 입지를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 당장 "의료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어떠한 범법 행위에도 면허를 유지할 수 있는 현행 법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다.

정부, 협상보다 코로나19 방역과 대체의료진 확보가 시급

셋째 정부가 공권력 행사와 협상을 유보한 채 코로나19 방역과 대체의료진에 집중하는 경우다.

협상은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 위에서 진행되어야 타결 가능성이 있다. 이번 전공의 휴진 사태는 잘잘못을 떠나 이미 정부와 대전협, 정부와 의협 사이에 일말의 신뢰도 성립되기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항복 선언을 하지 않는 한 어떤 협상도 성과를 내기 어렵다. 심지어 코로나19의 전국적 확산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것처럼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야 하는 정부의 입장에서 선택지가 많지도 않다.”

그렇다면 정부가 막연한 기대감에 의료계의 복귀를 호소하는 일은 시간낭비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 대신 코로나 방역에 집중해 의료 붕괴 가능성을 예방하는 일이 현실적일 수 있다. 의협이 이번 사태를 정권 타도의 기회로 보는 측면도 있어 의료계와 부딪히는 일은 더더욱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여기에는 대통령의 발언도 포함된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의료계에 해명하거나 호소하는 일은 가뜩이나 모든 문제를 문재인 정권 탓으로 돌리고 있는 상대방의 권위를 세우는데 일조할 뿐 사태 호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공자가 군군신신 부부자자(君君臣臣 父父子子)라고 말한 것처럼 과장이 할 말은 과장이 하고 국장이 할 말은 국장이 하고 장관이 할 말은 장관이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의료계의 집단 휴진을 방치해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일 수 있다. 이 문제는 의료 공백으로 고통을 입고 있는 국민들을 생각하면 어느 쪽이든 해결을 위해 나서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코로나19도 문제지만 대학병원에는 당장 치료를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환자와 그 가족들이 부지기수다. 이미 제때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환자가 생길 정도이고 시민단체들이 의료진 복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전공의·전임의 연대를 흔들 수준은 아니지만 의료계 내부에서도 현업 복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전공의들이 아무리 “제 밥그릇 챙기기는 아니다” 말하지만 우리의 의사 편중 현상이 극심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인구 1천 명당 평균 활동 의사 수는 2.08명으로 나타났다. 전국 250개 시군구 중 192곳이 이에 미치지 못했고, 1천명당 활동의사 수가 1명도 채 되지 않는 시·군·구도 45곳으로 18%에 달한다. 1천명당 의사 수 기준으로 서울 종로구는 16.29명인데 강원도 고성군이 0.45명이다. 전문의가 담당하는 진료과목으로 보면 횡성·무주·담양·고령·합천 등 11개 지방 시군에 산부인과 전문의가 단 한명도 없다.

의료 공백에 따른 시민들의 인내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1일 박지현 대전협 비대위원장이 정부와 공개토론회를 갖자며 “(이는) 의료계도 원하고 언제든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이를 감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정부와 의료계 모두 공개토론회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는 있지만 국민들이 당장 원하는 것은 의료 현장 회복과 코로나19 확산 저지다. 결국 정부가 코로나19 방역과 대체의료진 확보를 위해 효과적으로 노력해 당장 급한 불을 끈다면 더 급한 쪽은 의료계가 될 전망이다. 정부든 의료진이든, 코로나19로 인한 슬픔이 국민들의 몫으로 남겨지도록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김선태(시그널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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