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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말한다 - 3]동양 고전 입문을 위한 고전

신영복의 '강의', “다시 읽어도 마음에 새길 말들이 한 가득”

  • 기자명 김선태
  • 입력 2020.09.02 13:59
  • 수정 2020.09.0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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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 신영복. 돌베개. 516쪽. / 분야 : 인문‧동양고전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 신영복. 돌베개. 516쪽. / 분야 : 인문‧동양고전

 

[시그널 = 김선태 기자] 故 신영복 교수의 많은 글들은 여러 번 접해도 깊은 사색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역시 그처럼 늘 신간처럼 느껴지는 명저 가운데 하나다.

책은 수많은 동양 고전에서 본문을 일일이 인용하며 비전공자들에게 독해를 위한 관점과 지식을 제공한다. 저자는 본격 강의에 앞서 “자연이 최고의 질서입니다”라는 말로써 동양적 사유의 핵심을 소개한다. 현대 물리학에서 논의되는 ‘장(場)’ 개념으로 ‘질서’를 보완한 것이 특징이다.

- 동양에서는 자연이 최고의 질서입니다. 최고의 질서란 그것의 상위 질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 질서라는 의미는 이를테면 시스템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장(場)이라는 개념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 서양 철학자들은 인간을 자연과 별개로 독립시켜 이해하려 하며 자연에 대해서는 그 시원을 추구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그에 비해 동양은 인간을 자연과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려 하며 모든 사상의 출발점을 궁극의 질서인 자연에서 찾아 왔다.

- 동양학에서 자연이란 자원이 아닐 뿐 아니라 인간의 바깥에 존재하는 대상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무궁한 시공으로 열려 있는 질서입니다.

본격적인 고전 독법으로 들어가면 저자의 빛나는 사유와 독창적인 해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중 몇 군데를 찾아본다.

- 공자 이전 2500년은 점복(占卜)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자 이후의 시기는 『주역』의 텍스트(經)에 대한 해석(傳)의 시대입니다. (…) 해설의 의미는 대단히 큽니다. 그것이 바로 텍스트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기 때문입니다. 이 철학적 해석이 곧 사물과 사물의 변화를 바라보는 판단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 ‘(맹자가 말하기를) 바다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물을 말하기 어려워하고, 성인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은 언言에 대하여 말하기 어려워하는 법이다.’ 이 글에서의 ‘바다’는 큰 깨달음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노자가 지향하는 정치적 목표는 매우 순박하고 자연스러운 질서입니다. 우선 현(賢)을 숭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현이란 무엇입니까? 지혜라고 해도 좋고 지식이라고 해도 좋습니다만 우리가 습득하려고 하는 지식이나 지혜란 한마디로 자연에 대한 2차적인 해석입니다.

고전의 비판적 독법을 위해 인용한 문구들에서, 저자는 자신의 해석에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며 독자 스스로 고전 이해에 나서기를 권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장자의 유명한 ‘우물 안 개구리 비유’를 장자 사상의 핵심으로 부각시켰는데, 독자들은 장자 전체를 읽고 이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 ‘(『장자』에서)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메뚜기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 우물 안 개구리는 당시의 제자백가들을 일컫는 비유입니다. 교조에 묶인 굽은 선비들이 바로 우물 안 개구리와 같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도를 이야기할 수 없다고 일갈합니다.

저자는 필요하면 비판적 해설을 마다하지 않는다. 노장사상의 핵심으로 거론되는 ‘득어망전(得魚忘筌, 물고기를 잡고 나면 고기 잡던 통발을 잊는다는 뜻)’ 편을 분석하는 자리에서 저자는 고전의 주장에 배치되는 논리를 전개한다. ‘물고기보다 통발이 중요하니, 이는 고기는 현상이고 통발은 천망이기 때문이다.’ 고전의 지식을 실천으로 옮기는 데 신중함이 요구됨을 거듭 확인케 하는 대목이다.

- 고기는 이를테면 하나의 현상입니다. 반면에 그물은 모든 현상의 저변에 있는 구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기가 하나의 사물이라면 그물은 세상의 모든 사물을 망라하고 있는 천망(天網)인 것이지요. 고기는 잊어버리든 잃어버리든 상관이 없습니다…. 남는 것은 그물입니다. 그리고 그물에 관한 생각이 철학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때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단호하다. 예를 들어 제자백가들이 논쟁할 당시, 법가는 유가의 방식을 현실을 외면한 백면서생들의 주장이라고 조소했고, 유가는 법가적 방식을 비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어쨌든 법가는 공평무사한 법치를 주장하며 어떠한 예외도 인정하지 않습니다”라는 말로 법치의 중요성을 옹호한다.

- ‘(『한비자』에서) 법은 귀족을 봐주지 않는다. 먹줄이 굽지 않는 것과 같다. 법이 시행됨에 있어서 지자(智者)도 이유를 붙일 수 없고 용자(勇者)도 감히 다투지 못한다. 과오를 벌함에 있어서 대신도 피할 수 없으며, 선행을 상 줌에 있어서 필부도 빠트리지 않는다. (…) 임금이 법을 버리고 사사롭게 처리하면 상하의 분별이 없어진다.’

고전에서 해설하지 않아도 마음에 새길 만한 대목들도 적지 않다. 독자는 그저 읽기만 하는 것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 ‘자어가 상나라 재상에게 공자를 소개했다. 재상이 말하기를 “내가 공자를 보고 나니 자네가 마치 벼룩이나 이처럼 하찮게 보이네그려. 나는 공자를 임금께 소개해드리려고 하네.” (자어가 대답했다.) “임금께서 공자를 보시고 나면 장차 임금께서 재상님을 벼룩이나 이처럼 여길 것입니다.” 그러자 재상은 다시는 (공자를 임금께) 소개하지 않았다.’

인용문이 주는 울림은 크고 오래 가며 저자의 사색은 지혜로 충만하고 논지는 일관되고 강변하지 않는다. 독자들이 미처 읽지 못한 동양 고전의 원전을 애써 찾아내 읽도록 만들기에 충분할 만큼 유혹적이다. 저자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강의』는 동양고전 입문을 위한 이 시대의 가장 충실한 고전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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