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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말한다 -4] "신화, 미토스의 언어로 인류 이끈 지혜의 꽃"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솟아나는 '신화의 교훈' 다채롭게 펼쳐내

  • 기자명 편집부
  • 입력 2020.09.05 12:58
  • 수정 2020.09.05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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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언어 : 통념의 전복, 신화에서 길어 올린 서른 가지 이야기’ = 조현설 저, 한겨레출판, 296쪽
‘신화의 언어 : 통념의 전복, 신화에서 길어 올린 서른 가지 이야기’ = 조현설 저, 한겨레출판, 296쪽

최근에 조현설 교수의 신작 『신화의 언어』(한겨레출판, 2020.2)가 출간되었다. 무의식과 역설, 자연과 타자, 문화와 기억, 이념과 권력 등 4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신화를 직관적 통찰력과 미려한 표현력으로 직조해 낸 책이다. 그런데 4개의 키워드를 명확하게 구분하여 제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가 이들 키워드가 포괄하고 있는 하위 주제들을 일관하여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화와 언어’ 문제를 거듭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언어 중에서 신화의 언어야말로 매우 특별하기 때문이다. ‘신화의 언어’를 책 제목으로 내세운 이유일 터다.

신화와 언어는 인류를 성장시킨 쌍생아

주지하다시피 신화는 언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일찍이 카시러(Ernst Cassirer, 1874-1945)는 신화와 언어를 ‘가까운 친척’이라고 했고,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개의 가지’라고도 했다. 신화의 기원은 곧 언어의 기원이고, 언어의 기원은 곧 신화의 기원이라는 점을 비유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남미 원주민의 구비설화 <말하는 바위>는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한다. ‘말하는 바위’가 출현하여, 한 원주민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려준 후 길이 전승하도록 ‘신성한 명령’을 내린다. 그렇게 해서 그 원주민이 속한 부족민들은 처음으로 이야기(신화)라는 것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이후 소중한 물건을 보관하듯이 ‘말하는 바위’가 들려준 이야기들을 대대로 전승해 갔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말하는 바위’는 언어와 신화가 한 몸이 되어 있는 공간, 즉 이들이 아직 분리・출산되기 전에 머무르는 자궁 같은 곳을 나타낸다. 신화와 언어가 하나였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바위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출발한 언어와 신화는 점차 각각의 독립된 가지들을 분화시키며, 오늘날 언어와 신화라는 각각의 독립 분야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라캉(Jacques-Marie-Émile Lacan, 1901-1981)에 의하면, 태어난 아이는 자신이 어머니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확신하며, 어머니와의 ‘존재적 통일’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는 이런 경험을 가능케 하는 단계, 즉 상상적 단계(상상계)에서 벗어나 점차 성장하면서 자신과 어머니 사이에 아버지라는 또 다른 존재가 있음을 파악하게 되고, 아이는 그만 충격적 부재와 박탈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 아이는 아버지의 세계(상징적 단계, 즉 상징계)로 편입을 시도하는 한편, 어머니와의 ‘존재론적 통일’에 대한 욕망은 억압받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언어를 배움으로써 아버지의 세계로 온전하게 편입하게 되는데, 이는 언어가 아버지 세계의 법과 질서를 배우는 기초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언어는 아이가 아버지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열쇠다.

신화와 언어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지만, ‘라캉 식의 아이’가 어머니와의 ‘존재적 통일’을 욕망하며 이성을 대표하는 아버지의 세계로 편입되듯이, 본래의 신화와 결합하였던 미토스(mythos)의 언어는 로고스(logos)의 언어로 진화해 갔다. 동시에 감성과 직관의 사유로써 우주, 자연, 인간의 기원과 질서를 상상하던 미토스의 언어는 이성과 논리의 사유로써 이들을 증명해 내려는 로고스의 언어로 대체되었다.

미토스의 언어가 가졌던 사회적 권위가 로고스의 언어에 부여되고, 미토스의 언어는 더 이상 사회적 권위도 없고, 신뢰를 주는 말도 아닌, 그저 허구적인 것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신화와 언어가 맺고 있는 불가분의 관계가 미토스의 언어와 로고스의 언어라는 이분법적 잣대가 적용되면서 분절적 관계가 된 것이다. 때문에 신화의 언어를 해석해보려고, 도전하는 행위는 뭔가 비합리적이고 비생산적인 것처럼 간주되기도 하였다.

"신화는 미토스의 언어로 구성된 지혜의 보고"
“뭘, 그런 걸 공부해?” 내가 대학원 석사 과정 때 한 은사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꽤나 나의 학문 행위가 비합리적이고 비생산적인 것처럼 보였던 듯하다. 그 판단은 물론 로고스의 사유에 기초했을 터다. 그러나 신화는 비합리적이지도 비생산적이도 않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우리가 그것에서 너무 멀리 와 버렸기에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몇몇 신화학자, 그리고 시대의 마지막 등불을 자처하는 몇몇 시인들이 그 무지몽매함을 한탄하며, 미토스의 언어를 탐구하고, 재현하고 있을 뿐이다. 조현설 교수는 바로 신화학자이자 또한 시인이다. 신화의 언어에 대해 신화학자 이상으로, 시인 이상으로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 터다. 그 결실이 바로 『신화의 언어』다. 만족(满族)의 신화적 속담에 ‘한 방울의 물로 태양을 본다.’고 했으니, 이 책에 적합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제주큰굿의 큰대우리나라 굿의 원형을 간직한 제주큰굿을 펼칠 때면 굿 마당에 이와 같은 큰 깃대, '큰대'를 세우게 된다.
제주큰굿의 큰대
우리나라 굿의 원형을 간직한 제주큰굿을 펼칠 때면 굿 마당에 이와 같은 큰 깃대, '큰대'를 세우게 된다.

그렇다면 조현설 교수는 개별 신화의 비유적 형상인 ‘물방울’을 통해 어떤 ‘태양’을 본 것일까? 아마도 인간과 자연의 문제, 소수자의 문제, 직관적 통찰의 문제, 함경도 신화의 문제 등 여러 개의 태양을 보았을 것이다. 그 중 여기서는 ‘인간과 자연의 문제’를 간략하게 언급해 보기로 한다. 코비드(Covid)19라는 초유의 상황은 더욱 이러한 문제에 우리를 천착하게끔 하는 것이다.

조현설 교수는 함경도 망묵굿에서 구연되는 <영산 각시와 붉은 선비> 속 대망신을 자연을 관장하는 신으로 보고, 다음과 같은 해석을 시도한다.

“대망신, 곧 자연의 분노를 누가 잠재울 것인가? 그런 능력을 지닌 존재라면 창조신밖에 없다. 영산 각시는 대망신을 재로 만들어 산천을 재구성한다. (중략) 선비를 규정하는 ‘붉은’이라는 빛깔이 대망신의 분노를 표상하는 것이면서 불량한 산의 상태[下山]를 암시하는 형용사라면 ‘영산靈山’이라는 여신의 이름은 산천을 다시 창조해주는, 하산을 명산으로 만들어주는 여산신의 뜻을 함축하고 있는 명사가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오늘날의 등산객들이 산에 쓰레기를 버려 ‘붉게’ 만들어버리는 문제를 넌지시 제기한다. 동서양의 창세신화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자주 다뤄지는 주제다. 예컨대 베트남 므엉족의 창세신화 <물과 불의 기원>에서는 홍수 후 지상에 출현한 유일한 거목[우주수)에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만물들이 생겨난다고 묘사한다.

또한 서구의 19세기 민간 기록에 의하면, 신은 자연의 구성 요소를 취해 흙으로는 인간의 살을, 돌로는 뼈를, 물로는 피를, 해로는 두 눈을, 구름으로는 생각을, 바람으로는 숨결을, 뜨거운 불로는 체온을 만든다. 이들 신화는 자연이 인간 생명의 원천이라는 점을 보편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영산각시와 붉은 선비>, <땅과 물의 기원>을 구성하고 있는 미토스의 언어는 오늘날의 등산객들뿐만 아니라, 유발 하라리 식의 데이터교(구글로 대표되는 데이터 집적 시스템) 신봉자들에게는 더 이상 권위가 없다. 이들에게 신화는 한낱 허구적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신화는 이들을 포함한 우리들 모두에게 무용지물인가? 아니다.

신화는 인간의 언어가 구현해 낸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꽃은 져서 열매를 맺고, 열매는 떨어져서 꽃을 피우는 것처럼 신화는 우리의 삶이 가장 절망적 상태에 처하더라도, 한 줄기 꽃을 피우고 미래를 설계할 지혜라는 열매를 선사할 것이다.

지혜가 무엇인가. 지혜는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이 아닌가. 신화가 인류 최고(最古)의 철학일 수 있는 이유다. 조현설 교수의 『신화의 언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허구적 이야기라고 여겨도 좋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가 주는 지혜마저 무시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신화의 언어』로 들어가는 입구[표지]에 혹시 ‘한 송이 꽃이 거북이에게 쫓기고 있다’고 해서 놀라지 말자. 그 꽃의 안내를 받아 『신화의 언어』 속에 서서히 침잠해 보자. 그 안에서 독자는 조현설 교수가 제시하고 있는, 신화의 언어가 구현한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꽃을 분명 보게 될 테니까. 그 꽃은 우리가, 우리 사회가 처한 문제에 혜안을 줄 가장 명쾌한 ‘직관 방정식’이 될 것이다.

 

필자 최원오
1966년 전남 무안 출생. 문학박사(서울대). 동아시아의 영웅서사시와 신화,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신화, 일제강점기 전설 자료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아동문학에도 관심이 있어, 어린이용 구비설화 전집 10권(해와나무)을 기획・출간한 바 있다 현재 광주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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