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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말한다 – 4] “더 평등한 인간 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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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말한다 – 4] “더 평등한 인간 따위는 없다”
  • 김선태
  • 승인 2020.09.12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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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과 권력의 본질에 대한 지나치게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것”
‘동물농장’ = 조지 오웰 저, 최성애 역, 온스토리, 160쪽.
‘동물농장’ = 조지 오웰 저, 최성애 역, 온스토리, 160쪽.

[시그널 = 김선태 기자] “양치기들에게 무엇보다 무섭고 창피한 것은 양떼를 위한 보조자들인 개들이 무절제나 탐욕 또는 기타 나쁜 버릇으로 말미암아 양들을 해치려 들어 개는커녕 이리를 닮게 되는 일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우리로서는 우리 시민을 위한 보조자들이 우리에 대해 그와 같은 짓을 하는 일이 없도록, 즉 자신이 시민들보다 강하다고 해서 사나운 주인으로 돌변하는 일이 없도록 모든 방법을 다하여 감시해야만 하지 않을까?”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소개한 스승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조지 오웰의 짧은 소설 ’동물농장‘은 양치기 개들이 이리로 변할 때 얼마나 사나운 주인이 될 수 있는지 그 극단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오웰의 묘사가 너무나 강렬하고 끔찍해서였는지, 작가의 고향 영국에서 이 책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읽지 않은 대표적인 소설”로 꼽힌다.

"양치기 개들은 종종 잔인한 이리로 변한다"
그런데 실은 이 책의 전개는 지나치다싶으리만치 간명하고 얼핏 보면 그 비유도 까다롭지 않다. 마치 달밤에 한 잔 술 들이켜고 “친구여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한 번 흘러간 물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걸, 친구여 그대는 알지 않는가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젊음은 되돌릴 수 없다는 걸” 하며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이백의 시 장진주처럼 조금도 그침이 없다. 

게다가 소설은 당대의 스탈린 전체주의에 절망한 사회주의자 오웰이 배신감 끝에 내갈긴 풍자 우화라 치부할 수 있을 만큼 소설과 현실을 대비하기에도 어려움이 없다. 아예 일대 일 대응도 가능하다. 

올드 메이저와 칼 마르크스, 나폴레옹과 스탈린, 스노우볼과 트로츠키, 스퀼러와 소련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 복서와 프롤레타리아, 벤저민과 러시아 인텔리겐치아, 몰리와 쁘띠 부르조아, 미스터 프레데릭과 아돌프 히틀러 등으로 동일시하고 읽어도 어쩌면 무리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이와 같은 동일시가 초래하는 약간의 불일치다. 올드 메이저의 예언에서 나폴레옹의 집권으로 이어지다 전제 체제의 파괴적 확산으로 마무리되는 이야기를 읽고 나서 많은 독자들이 당황해 하는 이유다. 얼핏 뻔한 것 같지만 이야기 전반에 흐르는 알 수 없는 무게감, 도무지 해결하기 어려운 알고리즘이 머리를 짓눌러 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너무 쉽게 읽히면서 선뜻 털고 일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이 책이 독자에게 던지는 문제의식이다. 독자들은 그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미궁에 빠져든다. 때로는 가슴 한쪽이 저미듯 아파오기도 한다. 이 책이 영원한 고전으로 불려 마땅한 이유다.

’동물농장‘이 지닌 그와 같은 매력, 나아가 이 책이 지닌 무게감의 정체를 역자 최성애는 ‘옮긴이의 글’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분량은 짧지만 인간의 본성과 권력의 본질에 대한, 쉽게 풀리지 않는 길고 지난한 의문을 담은 소설이다. 유머와 재미가 가득하지만 그 하나하나가 가시처럼 아프다. 복서의 마지막 몸부림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역자의 말처럼 복서는 오늘날 프롤레타리아트에서 서민대중으로 치환되어 읽힐 수 있다. 올드 메이저는 정치·종교·문학·예술 등 여러 분야의 천재적인 지도자를 연상시킨다. 나폴레옹은 오늘날 세계 여기저기서 활개치고 다니는 전제 지도자로 대치될 수 있다. 스노우볼처럼 음모의 희생양이 된 대중적 스타들도 다양한 분야에서 거듭 발견된다.

아마도 전체적으로 별반 비중이 없어 보이면서도 가장 많은 성인 독자들의 주목을 받는 캐릭터가 당나귀 벤저민일 것이다. 비관에 젖은 채 열외자로 살아가는 벤저민은 오늘날 페이스북 같은 SNS나 포털 사이트의 댓글을 달구는 비평가들 사이에서 그 환영을 볼 수 있다. 

가장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나는 벤저민에 가까운 유형”이라고 고백했다는 어떤 독서 모임의 후일담이 이런 상황을 뒷받침한다. 실은 바로 그와 같은 사고로 인해 현실은 돌고 돌아 나폴레옹의 손에 넘겨지기를 매번 되풀이한다. “삶이란 늘 거기서 거기인 법이라고, 즉 늘 고달픔 뿐이라고” 말하는 벤저민의 지적이 서늘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하지만 그 또한 관념적인 동일시일지 모른다. 책을 덮은 많은 독자들이 역자가 말한 ‘복서의 몸부림’에서 한동안 헤어나기 어려워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 소설이 남긴 가장 안타까운 장면일 수 있는 이곳에서 저자는 권력의 추악하면서도 무자비한 본질과, 동시에 인간이 지닌 탐욕과 잔인함의 교차점을 보여주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바로 그와 같은 의문이 이 소설이 전개되는 도처에서, 무지막지한 무게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독자들은 소설 속 동물들과 자신 또는 자신의 이웃이나 동시대인들을 지속적으로 비교해 간다. 

무게감은 소설의 결말에 가야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 소설 속 동물들이 주어진 장면에서 매우 필연적으로 주어진 사건의 해결책으로 보이는 말을 내뱉을 때, 돌이켜보면 어느 순간 그 말들조차 우리 피부에 와 닿으며 소름끼치게 만드는 것이다. 

"인류는 굶주림과 실망을 멈출 수 없다"
예를 들어 우리 인간 안에 존재하는 해결할 길 없는 반인간성에 관해 고찰하다보면 인간 자체를 부정해야 할 상황에 이를 수 있다. 바로 그와 같은 지점을 올드 메이저는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의 모든 의문에는 딱 한 가지 답이 있습니다. 그 답은 한 단어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인간’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적은 인간입니다. 인간을 몰아냅시다. 그러면 굶주림과 중노동도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애초 달성될 수 없는 이 유토피아적 망상이 동물들의 매우 낮은 수준의 도발로 부활하고, 그리하여 진짜 인간이 쫓겨난 뒤에도 그들의 ‘동물농장’이 영속하리라 보는 자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려는 동물이 있었으니 나폴레옹과 스노우볼이 그들이다. 

양자 간의 투쟁에서 승리한, 그리고 승리할 수밖에 없는 나폴레옹이 그 다음에 취한 방법은 인간이라는 적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자기 자신을 들여앉힌 일인데, 바로 이 지점에서 독자들은 바로 그 나폴레옹이 어느 정도 ‘우리 자신’일지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또는 가령 지혜로운 벤저민의 넋두리조차 독자의 가슴에 비수로 꽂히기 쉽다. 혁명 당시의 동물들이 다 죽어 나가고 동물농장의 역사를 꿰는 마지막 존재로 남게 된 벤저민이 말한다. “상황이 더 나아지지도 더 나빠지지도 않았으며, 앞으로도 결코 더 나아지거나 더 나빠지지 않을 거”라고, “굶주림과 중노동과 실망, 이 세 가지는 영원히 변치 않을 삶의 법칙이라고.”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인식을 본다.

온몸을 바쳐 동물농장의 낙원화를 위해 일하던 복서가 지쳐 쓰러지자 나폴레옹 일파는 그를 도륙장에 내다 팔고, 동물들은 그 전모를 알게 되었음에도 별다른 항의를 하지 못하는데, 결국 복서의 몸뚱이는 위스키 더미로 바뀌어 지배자들의 뱃속으로 들어간다. 이로 인해 가져야 할 형언할 수 없는 분노는 동물들의 몫이 아니라 오웰이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는 인식.

인간을 몰아낸 자리에 들어서서 인간처럼 두 발로 선 채 인간의 이면을 전면에 내세우려는 나폴레옹 무리들을 막고, 그리하여 제대로 된 인간의 세계를 세우려는 의지 또한 조지 오웰이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는 인식.

그럴 때 비로소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는 형용모순의 논리를,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그런데 동물은 모두 동물이므로 여기서 ‘더’는 불필요하다. 그러므로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로 고쳐야 한다.”는 제대로 된 논리로 고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소설 속 돼지 나폴레옹처럼 스스로 ‘더’ 평등한 것으로 착각하는 동물의 무리를 인간의 자리에서 끌어내려 제 자리로 되돌릴 수 있을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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