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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과학’과 트럼프 체제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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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과학’과 트럼프 체제의 붕괴
  • 김선태
  • 승인 2020.10.0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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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배양접시’ 상태로 업무 복귀, 혼돈의 백악관
‘코로나19 방역’, 한동안 국내 민심의 최종 잣대 될 것

“죽음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은 대단한 각오로 죽는 것이 아니라 어이없게 그냥 죽는 것이다. 요컨대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어 죽는 것이다.” 
- 라 로슈푸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잠언 편 23항목.

“자연은 항상 이성적이다.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얻어내는 응답은 모두 혹독할 정도로 논리적이다. 바람이 토네이도로 바뀔 때는 비이성적인 광기가 아니라 수학적으로 정확한 과정을 따른다. 정신이야말로 비이성적인 것의 근원이다.”
- 에릭 호퍼, ‘인간의 조건’ 제 10 주제.

 ‘푸른 수염’과 ‘고수머리 리케’의 대결

프랑스 아동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장화 신은 고양이’, ‘신데렐라’ 등 주옥같은 동화들을 남겼다. 독자들은 페로의 여러 작품들에서 동화의 영역을 넘어서는 교훈을 얻곤 하는데 ‘푸른 수염’도 그중 하나다. 

‘푸른 수염’은 페로의 작품들이 세대를 초월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겉보기에는 한 권력자가 탐욕에 빠져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그를 죽인 부인 역시 같은 모방 살인을 저지른다는, 동화적 형식에 기괴한 내용을 담았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살인이라는 범죄행위를 인간의 근원적인 탐욕으로 해석하면 작가의 의중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즉 인간성이란 한 번 허물어지면 복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 부와 권력 앞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없이 왜소한 존재라는 점이 그것이다. 

“파란 수염이 여자를 증오했듯 부인도 남자를 증오하게 되었다”는 설명처럼, 원초적 욕망의 포로가 되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의 인간적 본성을 거추장스럽게 여기며 그로써 일말의 죄의식도 남지 않을 때까지 스스로를 몰아간다. 그 결과 “지하실에는 시체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는 소설의 결론처럼 그들의 내면에는 치유 불가능한 증오심과 자기 합리화로 똘똘 뭉친 기괴한 허상들만이 남게 된다. 

샤를 페로는 이처럼 끔찍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푸른 수염’이 실린 같은 동화집에 전혀 다른 의미의 메시지가 담긴 ‘고수머리 리케’를 실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 리케 왕자가 푸른수염과 정반대 측면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옛날 어느 왕국에 왕자가 태어났는데 외모가 못생긴 데다 머리카락이 엉킨 실타래 같아 기괴한 느낌을 주었다. 아기를 본 사람들은 저마다 탄식을 내뱉었고 소문이 퍼지면서 세상 사람들도 한 마디씩 거들어 결국 왕자에게는 ‘고수머리 리케’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렇지만 왕자에게는 지혜의 요정이 늘 함께 하고 있었으니 그 덕에 그는 자라면서 점점 더 지혜로워졌다. 어느 날 창고지기가 도둑을 끌고 와 리케 앞에 무릎을 꿇렸다. 알아본 즉 도둑은 며칠 째 굶는 아이들 때문에 궁궐 창고를 털려 했던 것이다. 

이를 본 리케는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도둑질은 잘못이니 벌을 주되, 굶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쌀을 넉넉히 보내 주어라.”

리케가 이처럼 대소사를 현명하게 처리하니 온 나라에 리케를 칭찬하는 노래가 울려 퍼졌다.

이 때 지혜는 인간의 선한 본성으로 대체해 이해할 수 있다. ‘푸른 수염’에서 마치 유리천장처럼 쉽게 부서진 바로 그 본성이, ‘고수머리 리케’에서는 인간을 인간되게 만드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제시된 것이다. 

역사상 자신이 고수머리 리케라고 주장한 많은 지도자들이 실은 푸른수염인 것으로 판명되며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지곤 했다. 권력을 향한 욕망에 일말의 선함도 포기하게 만듦으로써 더 이상 추할 수 없는 몰골로 남은 탓이다. 

9월 15일(현지 시각) 코로나19 확진 판정 받기 전의 트럼프 미 대통령.  / 사진 = 백악관 홈페이지 
9월 15일(현지 시각) 코로나19 확진 판정 받기 전의 트럼프 미 대통령.  / 사진 = 백악관 홈페이지 

백악관에서 격리된 미국 대통령

지난 9월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보도로 닉슨 대통령 사임을 이끌어낸 밥 우드워드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된 책 ‘격노’를 출간했다. 출간을 앞두고 미 CBS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우드워드는 트럼프에 대해 “그는 직분에 맞지 않는 인물”이며 한 마디로 ‘문 뒤의 다이너마이트’라 평가했다. 

많은 이유 가운데 특별히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제멋대로 대처한 경우를 들었다. 전문가 의견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 문제에 관해 트럼프가 이 분야 최고 권위자인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의 조언을 완전히 무시했다는 것이다.

우드워드는 파우치 소장의 말을 직접 인용해 “대통령이 주위의 말에 집중하는 시간은 마이너스 숫자와 같다”면서 “그의 유일한 목적은 재선”이라고 단언했다. 

자국 대통령이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익히 알면서도 권위 있는 방역 책임자의 조언을 무시했다는 우드워드의 증언은 돌이켜보면 놀라울 것도 없다.

대권에 눈 먼 트럼프에게 코로나 바이러스와 마스크는 난데 없이 등장한 훼방꾼일 뿐이었다. 바이러스가 대중 집회를 가로막았고 마스크는 불편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품위를 손상시킨다 보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안전은 권력을 쟁취한 다음에 생각할 문제였다.

미국을 세계 최대 코로나19 감염국으로 만들었음에도 한사코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 바이러스에 확진되고 말았다. 그가 전용 헬기를 타고 월터 리드 군 병원에 입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만 하면 그도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 자신도 “확진 후에 많이 배웠다”며 그에 부응하는 듯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미처 완치 판정을 받지도 않은 채 서둘러 백악관으로 복귀했다. 퇴원 이튿날인 6일(현지시간) 그는 보란 듯이 트위터에 “코로나19는 독감보다 훨씬 덜 치명적”이라고 썼다. 이런 일이야 그가 입원중이던 지난 4일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겠다고 전용 차량으로 깜짝 외출할 때 이미 예고되었던 것일지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코로나19 바이러스 배양 접시가 되어 좀비처럼 백악관을 돌아다녔으므로 관내가 아수라장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트럼프 스타일로 마스크와 거리두기를 무시하던 미군 수뇌부들 사이에서 연이어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백악관은 자신의 보스를 임시집무실에 격리시킨 일종의 공동묘지로 변하고 군 수뇌부들은 너나없이 자가 격리에 들어가는, 미 역사상 두 번 나오기 힘든 진풍경이 펼쳐지는 중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코로나19 방역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여전히 대통령 자신은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선거판을 뒤집고 말겠다며 분주하기만 하다. 고령인 트럼프에게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는 덤이다.

백악관과 관련해서는 이처럼 모든 게 ‘나쁜 소식’이지만 ‘좋은 소식’ 하나는 있다. 그동안 한사코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던 백악관 직원들이 예외 없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닌다는 사실이다. 기왕 갈 데까지 간 트럼프는 빼고.

“우리 세대가 맞이한 가장 큰 위기”

“아마 복제 중의 실수 때문에 약간 다른 돌연변이 RNA 분자가 저절로 생길 것이다. 만약 어떤 이유로든 새로운 변종이 그전 것보다 우월하다면, 가령 ‘점착성‘이 낫다면 그것은 더 빠르거나 더 효과적으로 복제되어 그것을 낳아준 조상 RNA의 숫자를 압도하여 처음 생긴 시험관 용액에서 증식할 것이다.

그 용액 한 방울을 다음 시험관에 떨어뜨리면 새로운 돌연변이 RNA가 씨를 뿌릴 것이다, 길게 늘어선 시험관들 속에 들어 있는 RNA를 조사해 보면 진화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눈먼 시계공』, 리처드 도킨스 저, 223

“(하위 유전자 가닥인) RNA는 (상위 유전자 가닥인 DNA에 비해) 긴 이중나선을 잘 만들지 않는다. 그것은 DNA보다 복제자 역할을 못한다는 의미이다. 이중나선 체계는 어느 정도 스스로 오류 교정을 하기 때문이다.

DNA 이중나선이 갈라지고 각 단일 나선이 상보적인 주형이 될 때, 오류는 즉시 검출되어 교정될 수 있다. 각 “딸” 사슬이 “모” 사슬에 그대로 붙어 있으므로, 둘을 비교하면 오류를 즉시 찾을 수 있다. 이 원리에 토대를 둔 오류 교정은 돌연변이율을 10억분의 1 수준으로 줄인다.

그런 과정 덕분에 우리 같은 커다란 유전체가 존재할 수 있다. 이런 오류 교정 과정이 없는 RNA는 DNA보다 돌연변이율이 수천 배나 더 높다.”
- 『조상 이야기 - 생명의 기원을 찾아서』, 리처드 도킨스 저, 이한음 역, 까치

이상 도킨스의 이야기에서 RNA를 코로나19 바이러스로, DNA를 인간으로 바꾸어 읽어보면, 실로 취약한 바이러스를 인간이 왜 막아내기 힘든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측할 수 없는 돌연변이가 그것이다. 프랑스 분자생물학자 자끄 모노는 “우연이야말로 생명 탄생의 법칙”이라는 말로 이를 뒷받침한다.

인간의 경쟁자로서 볼 때 바이러스의 무기는 일상화된 돌연변이다. 부단한 돌연변이는 바이러스의 항구적 존재를 가능케 한 능력이다. 애초에 인간 능력은 바이러스의 돌연변이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오늘날 인류는 바로 그 우연에 기초한 돌연변이에 역사상 가장 최적화된 존재라고 불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전대미문의 위기에 빠져 있다. 어떻게든 백신을 주사해 항체를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럴 수 있지만 여기에는 백신을 수시로 만들어야 한다는 단서가 따르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잠시 정리해보면, 항체란 유기체에 침투해 들어온 이질적인 존재를 식별해 공격하는 단백질이다. 문제는 항체가 만들어지려면 이 유기체가 적어도 한 번은 상대방의 침투를 허용해야 하는데, 상대방이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이전 항체가 식별력을 잃는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인류는 아직까지 유기체가 항체를 만들어내는 원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아마 그 원리는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대부분의 경우 유기체는 체내에서 자신을 공격하는 항원의 구조를 알 수 없고, 때문에 자신이 아는 단편적인 정보를 가지고 마치 룰렛 게임하듯 이것저것 대응 물질을 만들어낼 뿐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말처럼 코로나19가 독감보다 덜 치명적일 수는 있다. 하지만 인간은 체내에 침투한 코로나19에 무기력하며, 그 파괴력을 정확히 알지 못하며, 지금도 이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거듭하며 진화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트럼프는 저런 말을 할 처지가 못 되는 것이 겨우 8개월만에 코로나19로 사망한 미국인이 이미 20만 명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이야말로 아마도 우리 세대가 맞이한 가장 큰 위기”라고 말했다. 

“바보야, 문제는 코로나 바이러스라구!”

권력을 위해서라면 민주당원들에게 총질을 하고도 남을 트럼프이므로 이보다 더 어마 무시한 상황을 만들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에게는 행정부가 있고 연방군이 있으며 깜짝 카드로 김정은도 있고 심지어 낙선할 경우 백악관 앞 민경욱과 달리 백악관 안에서 버티기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과학적인 정보와 의료 전문가들의 조언이지, 그 어떤 음모론도 정치적 해석도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광복절 광화문 집회 이후 코로나 감염증이 폭발적으로 확산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은 이를 피부로 느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개천절 광화문 집회를 차벽으로 막은 일에 대해 “문제없다”는 대답이 다수로 나타난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 방역이 우리 사회의 존망을 좌우하는 절체절명의 과제임을 전제한다면 나머지 문제는 그로부터 해답을 유추하면 된다. 예를 들어 정부는 정치적 판단을 배제한 채 전문가의 조언을 따르고, 시민들은 정부의 감시에 앞서 자발적인 참여를 강화하고, 인권 침해와 자유 억제라는 이슈는 공론의 장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것들이다. 

이에 대해 유발 하라리는 ‘비누로 손 씻기’를 들어 설명한다. 그는 “이 간단한 조치 하나로 코로나19의 확산을 극적으로 억제할 수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를 실행하려면 시민의 자발적인 동참이 필수적”이라 말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비누를 쓰는 것은 국가나 경찰의 감시 때문이 아니라,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질병을 비누로 제거할 수 있다는 과학적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스크와 거리두기’를 들어 이와 똑같이 설명할 수 있다. 

이처럼 간단한 과학적 사실을 미국 대통령이 한사코 거부하며 ‘위대한 미국의 건설’이라는 참으로 아름다운 선거 구호에 매달린 결과가 어떤 참상을 낳고 있는지 보자. “아름답게 있기보다 거창하게 있는 것이 더 쉬운 법”이라는 니체의 말처럼 아름다운 미래상으로 대권을 잡고자 한 트럼프에게는 추함만이 거창하게 남았다. 

겉으로 인정하건 하지 않건, 대선이 끝나고 나면 트럼프는 이해할지 모른다. 코로나19 방역이야말로 민심을 결정하는 최종적이고도 확고부동한 잣대였다는 사실을.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런 조언을 던질 만하다. 
“바보야, 문제는 코로나 바이러스라구!”

그리고 이 조언은 여전히 코로나 방역의 ‘정치적’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순진하게 방역에 몰두하는” 정부를 조롱하기 바쁜 우리 일부 ‘지도자급 인사’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글·김선태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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