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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택의 국제분업과 한국경제-3] 음성통신에서 무선통신으로, 라디오에서 텔레비전으로

■ 정양택 (경제연구자)

  • 기자명 편집부
  • 입력 2020.10.1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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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보스턴 대학의 교수 그레이엄 벨은 1876년 전화기를 발명합니다. 사람의 음성은 공기 중에서 파동으로 전환하여 귓속의 고막을 진동시켜 상대방에게 전달됩니다. 

같은 원리로 음성에 의한 음파가 전화 송화기 속의 얇은 막을 진동시켜 자기장의 변화를 일으키게 하여 음성을 전류로 변환합니다. 이러한 전류가 전선을 타고 전달되어 상대방의 수화기 속에 있는 자기장의 변환을 같은 파장으로 일으키고, 그 파동이 다시 음성으로 전환되는 것이 전자의 운동 원리입니다. 

음성통신에서 무선통신으로
그레이엄 벨이 인류 최초의 전화기 발명자는 아닙니다. 1861년 독일의 과학자 필립 라이스는 전화기를 발명하고 해당 장치를 ‘텔레폰’이라 명명하였습니다. 그러나 해당 장치는 독일 특허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고, 미국의 그레이엄 벨은 미국 특허사무국의 법적 보호를 받아 1877년에 벨 전화회사를 설립하게 됩니다. 

1885년 벨 전화회사는 미국 전역의 장거리 통신망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자회사로 미국전신전화회사(AT&T)를 설립하며, 1899년 AT&T가 모회사인 벨 전화회사를 인수하면서 미국 전역의 장거리통신망 구축 사업을 독점적으로 수행할 정도로 성장하게 됩니다.  

사람의 음성은 공기를 매개물질로 하여 전달됩니다. 하지만 공기의 제약으로 인해 장거리 송신은 불가능하기에 유선통신을 이용해야 합니다. 더구나 진공 속에서는 사람의 음성이 전달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자가 갖는 파동으로서의 특성을 이용하면서 통신의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게 됩니다. 즉, 우주 공간에서도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원형으로 휘감은 코일에 전류를 흘리면 코일 내부에 자기장이 형성됩니다. 이때 전류를 일정한 주기로 출렁거리는 교류방식으로 흘려주게 되면 관성효과에 의해 자기장의 강도는 더욱 커지며 이 자기장의 힘에 의해 전류의 출렁임이 제약을 받게 됩니다. 

축전지도 같은 원리입니다. 축전지에 교류 방식의 전류를 흘려주게 되면 양극판에 전하가 축적되지만, 자기장의 효과에 의해 전류의 출렁이는 정도가 강할수록 극판에 쌓이는 전하의 양은 줄어들게 됩니다. 

이러한 코일과 축전기가 교류회로에 동시에 존재하게 될 때 두 개의 자기장이 서로 간섭하여 전류의 흐름을 방해하는 자기장의 힘이 매우 약해지는 공명 진동수를 갖게 되는데, 이때의 회로구조를 공진회로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코일과 축전기, 회로에 흐르는 전류의 진폭 조절을 통해서 특정한 주파수에서 공명하고, 해당 주파수만의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전파의 수신장치가 발명됩니다. 또한 공진회로에 기반하여 특정한 진폭을 갖는 전자의 진동주파수를 가진 전자진동 발생 장치인 발진기를 발명함으로써 무선통신의 시대를 열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물리학자 맥스웰은 1864년 기존 패러데이 등의 전자기학에 대한 논의를 수학적으로 집대성한 <전자기장에 관한 역학이론>이라는 논문에서 빛이 전기와 자기에 의한 파동, 즉 전자기파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다시 말해 전기장과 자기장이 동전의 양면과 같고, 공간에서 빛의 속도로 전기장과 자기장이 파동으로 이동할 수 있음을 증명한 셈이며, 빛의 본질이 전자의 파동과 회전에 있다는 것을 밝힌 것입니다. 1887년 독일의 과학자 하인리히 헤르츠는 방전 전자파 발생 장치로부터 10m 떨어진 곳에서 전자파를 검출하는 데 성공하여 맥스웰의 이론을 실증하게 됩니다. 

이탈리아의 과학자 마르코니는 이러한 전자파를 이용한 무선 송수신 장치의 성능을 개량합니다. 이탈리아에서 특허권 확보에 실패한 마르코니는 영국으로 건너가 무선 송수신의 거리를 20km 내외로 확장하는 데 성공하면서 1897년 특허권을 확보하여 영국 마르코니무선전신회사를 설립합니다. 

1901년 12월 미 뉴펀들랜드주 세인트존스에서 안테나를 들어 올리는데 사용된 연을 올리는 동료들을 보고 있는 길레르모 마르코니. / 사진 = 맥큐어(McClure') 매거진, 1902.
1901년 12월 미 뉴펀들랜드주 세인트존스에서 안테나를 들어 올리는데 사용된 연을 올리는 동료들을 보고 있는 길레르모 마르코니. / 사진 = 맥큐어(McClure') 매거진, 1902.

또한 마르코니는 1901년에 영국에서 캐나다의 동부 지역까지 무려 2,900km의 대서양을 횡단하는 무선통신에 성공하면서 1909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르코니의 목표는 전선을 이용하지 않고 모스부호(morse code)를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송신하는 데 있었고, 음성과 음악을 무선을 이용해서 송수신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기술적 발전이 필요했습니다. 유선통신의 경우에 비해 무선통신은 전자의 양과 파동수가 매우 적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보다 큰 폭의 진폭과 파동으로 증폭하는 기술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1904년 영국의 과학자 존 플레밍이 파장으로 운반된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필수 부품인 2극진공관을 발명하였고, 1906년에는 미국인 포리스트가 향후 라디오 수신의 핵심 부품이 된 3극진공관을 발명합니다. 

진공관은 진공 속에서 필라멘트에 전류가 흐를 때 저항에 의해 열에너지와 전자가 방출되는 에디슨 효과를 이용한 것이며, 필라멘트 바로 위에 설치된 금속판에 양의 전압을 걸어주면 전류가 흐르고, 음의 전압을 걸어주면 전류가 흐르지 않아 결국 전류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정류작용을 하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한편, 3극진공관은 필라멘트와 금속판 사이에 그물망 형태의 전극을 삽입하여 해당 그물망 전극의 전압이 (-)에서 (+)로 변화함에 따라 자기장의 변화에 의해 전류가 비례하여 증폭되는 장치입니다. 이를 통해 진공관의 음극에서 흐르는 전류의 양을 증폭작용을 통해 조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1914년 미국의 에드윈 암스트롱은 3극진공관에서 정류작용과 함께 전자의 검파기능과 증폭기능뿐 아니라 발진기능도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후 전파 발진 주파수의 값을 다시 입력 방향으로 되돌리는 기능을 하는 피드백 회로를 완성하며, 이는 전파를 정해진 주파수대에서 변조하여 다시 복조할 수 있는 검파장치의 발전에 기여합니다. 

이를 통해 고주파로 변형된 주파수를 수신기의 영역에서 청취가 가능한 주파수 영역으로 변환할 수 있게 되며, 이는 FM 방송의 발전에 중대한 기여를 합니다. 

무선전신회사를 운영했던 포리스트는 무선 수신 장치를 보급해 각 가정에서 음악과 연설을 들을 수 있도록 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합니다. 1910년 뉴욕에서 오페라를 라디오로 중계하는 성과를 올렸고, 1915년부터 자신의 공장에 전파탑을 세우고 정기 음악 방송을 시작하게 되면서 최초의 사설 라디오방송이 출현하게 됩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던 중 미국 국방부는 미국 내 라디오 시스템의 건설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사에 제안하게 되고, GE사는 마르코니무선전신회사를 인수하여 1919년 RCA(Radio Corporation of America)사를 설립합니다. 

이후 RCA는 3극진공관을 활용한 수신용 라디오를 제작, 판매하고 1926년에 몇 개의 사설 라디오회사를 인수하여 공영방송인 내셔널 브로드캐스팅 컴퍼니(National Broadcasting Company, NBC)를 설립합니다. 이러한 라디오 방송의 흥행으로 1920년 5천대에 불과하던 미국 내 가구당 라디오 보급률이 1931년에는 50%를 초과하면서 뉴스와 각종 생활정보의 대량소비 시대를 이끌게 됩니다.    

진공관의 출현과 TV 시대의 개막 
1897년 독일의 과학자 칼 브라운은 브라운관(‘음극선관’이라고도 함)이라는 영상수신기를 발명합니다. 그것은 진공으로 된 둥근 모양의 유리구 안쪽에 형광물질을 발라 전기신호를 영상으로 나타내는 장치로, 브라운관의 표면에 화소라고 불리는 수많은 점들을 도포한 후 그것들이 전자와 충돌하여 빛을 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브라운관의 발명으로 브라운은 1909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마르코니와 공동으로 수상하게 됩니다. 브라운관은 유리구 안쪽의 전자총에서 주사된 전자가 수직과 수평으로 배열된 편향판을 통과하게 합니다. 

편향판은 사전에 설정된 전압과 자기장에 의해 전자의 위치와 가속도 등을 조절하게 하며, 편향판을 통해 좌표가 정밀하게 조정된 전자가 유리구에 발린 화소에 부딪혀 영상을 재현하게 되는 원리입니다. 

브라운관의 전자총도 발전을 거듭합니다. 초기에는 1개의 전자총을 사용하여 빛의 농도만을 반영한 흑백 영상만을 제공하던 단계에서, 적색-녹색-청색에 해당하는 3개의 전자총을 사용하는 천연색 영상을 제공하는 수준으로 고도화됩니다. 

1927년 미국의 발명가 필로 판즈워스는 전동기의 회전력을 사용하는 기계식 영상 송수신기를 대체하는 전자식 영상 송수신기를 발명하여 1930년에 미국 특허사무국에서 특허를 획득합니다. 이것은 기록하고자 하는 해당 피사체의 빛에 반응하는 광전지 셀의 전기적 변화를 전자빔의 형태로 스캔하여 영상신호를 전기적 신호로 변환하는 획기적인 방식이었습니다. 

1922년 미 뉴저지 주 로젤 파크에 위치한 RCA 최초의 방송국 WDY 스튜디오 내부 모습. 미 정부 공개문서.
1922년 미 뉴저지 주 로젤 파크에 위치한 RCA 최초의 방송국 WDY 스튜디오 내부 모습. 미 정부 공개문서.

전자식 텔레비전 개발에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인 기업은 RCA였습니다. RCA는 판즈워스의 특허권을 매입하고자 시도하였으나 실패하며, 1924년 키네스코프라는 카메라 튜브를 발명하여 전자식 카메라에 상당히 근접한 발명을 한 러시아 출신의 과학자 즈보리킨을 고용합니다. 

그를 통해 판즈워스의 발명품을 개량하는 복제품을, 해당 특허를 교묘하게 회피하는 방식으로 개발하여 1934년에 특허를 신청하게 됩니다. 판즈워스와 특허분쟁이 진행되는 와중인 1939년 4월, 뉴욕 박람회에서 RCA는 전자식 텔레비전을 선보이며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연설을 NBC 방송으로 내보내 전자식 텔레비전이 자신들의 독창적 창작물임을 선포하는 여론전을 펼칩니다. 이후 1939년 10월에 판즈워스와 특허사용료 지급에 합의하게 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개전으로 본격적인 TV 방송 서비스는 종전 이후로 연기됩니다. 

1946년에 8천 대에 불과하던 미국의 TV 판매 대수는 1950년에 7백만 대로 급증하게 되며, 그 상당 부분을 RCA의 제품이 차지하게 됩니다. 이후 RCA는 천연색 방송 개발에 투자를 확대하며, 1954년 흑백 방송과 천연색 방송의 상호 호환성을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방송 방식을 미국 TV 방송의 표준으로 관철시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합니다. 

1954년 천연색 방송이 시작되고, RCA는 1956년에 텔레비전 화면의 선명도를 높이는 광선 확대기와 값싼 테이프에 비디오 신호를 기록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면서 비약적 성장을 이룹니다. 1960년에 텔레비전 판매 대수는 4,570만 대로 증가하였고, RCA는 텔레비전 시장의 약 80%를 장악하고 라디오 방송까지 주도하는 거대 방송통신 기업이 됩니다.

이처럼 전자산업은 전기에서 출발하여 전자에 대한 발견과 이해를 풍부히 하는 과정을 통해 더욱 고도화합니다. 전자의 입자로서의 특징을 활용한 전신전화 사업, 파동으로서의 특징을 활용한 무선통신 사업, 빛으로서의 특징을 활용한 영상전송 사업 등이 모두 전자의 운동을 적절한 기계장치를 통해서 제어, 활용하는 방식으로 발전합니다.

필자 정양택

미래전략연구원, 동북아평화연대, 새로운 코리아 연구원 등에서 감사를 지내는 등 시민운동과 싱크탱크운동에 참여해 온 경제연구자다. 기존 경제학의 틀에서 벗어나 국제분업과 선발국의 경제지배전략을 분석하며 사람중심 경제학의 새로운 시야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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