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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장편소설 '붕어빵' ] 2화. 그는 마을 순찰을 한다

  • 기자명 편집부
  • 입력 2020.10.28 16:06
  • 수정 2020.10.2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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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이종원 님의 장편소설 '붕어빵' 연재를 시작합니다.

‘붕어빵’은 복선이 깔리고 반전이 있으며 흥미로운 스토리를 지닌,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살아 숨 쉬는, 무엇보다 술술 읽히는 소설입니다.

‘붕어빵’은 마음을 울리는 감동이 있는 소설입니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잔잔한 공감 속에 평소 알지 못했던 타인들을 이해하는 마음을 열지도 모릅니다.

‘붕어빵’은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또한 낮은 소리로 다가오지만, 어쩌면 독자 여러분이 귀 기울일지 모를 그런 메시지가 있는 소설입니다.

하지만 판단은 어디까지나 시그널 독자 여러분의 몫입니다. 모쪼록 즐겁게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자리를 빌려 글을 제공해주신 작가 이종원 님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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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는 이쯤에서 마치면 될 것 같았다. 정리하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조그만 판매대에 불과하니까.

붕어빵 판매대를 닫은 그는, 습관처럼 등 뒤쪽 통유리를 통해 안쪽의 카페를 주욱 한번 둘러보았다. 대충 보는 것 같았지만 그의 눈길은 구석구석을 자세히 살피고 있었다. 그가 일을 마칠 무렵 카페를 한 차례 둘러보는 일은 꽤 오래된 습관 같아 보였다. 안에서는 카페 주인이 그처럼 문 닫을 준비를 거의 마쳐가고 있었다.

그의 붕어빵 판매대는 얼핏 보기에는 마치 이 카페의 한 부분처럼 보였다. 이곳은 리어카에 싣고 다니는 붕어빵 노점이 아니라 통유리로 된 카페 앞면 왼쪽 끝, 안으로 쑥 들어간 지점에 마치 푸드코트에 있는 점포 비슷한 모양으로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핫쵸코.

카페 이름치고는 좀 특이한 이름이 쓰여 있는 간판 바로 아래의 출입구 유리문을 잠그고 나자, 주인은 그가 카페를 둘러보듯 붕어빵 판매대와 그 주위를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그러나 꼼꼼히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언제나처럼 작고 힘없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창백해 보일 정도로 하얀 얼굴의 그녀 또한 무뚝뚝한 그의 표정에 뒤지지 않을 만큼 거의 표정이 없었다.

“이제 들어가시나 봐요.”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살짝 끄떡였다. 그런 그의 반응에 아주 익숙한 듯, 그녀도 살짝 목례를 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길로 향했다. 이 자리에서 약 십 년 동안 나란히 카페와 붕어빵 판매대를 하면서 매일같이 마주친 사람들의 대화치고는 너무나 심심했다. 다퉜거나 서로 싫어하는 관계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단지 두 사람의 사이가 아주 애매해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전혀 불편하거나 어색한 것 같지 않았다.

가장 가깝고 빠른 길로 집에 가지 않고, 뒷골목 이곳저곳을 거쳐 가는 것은 그의 오랜 습관이었다. 자신이 정한 ‘취약지점’을 둘러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쓰레기 수거차량이 지나가면서 집어갈 수 있게 쓰레기를 모아놓은 몇몇 지점, 여기에는 정식 쓰레기봉투가 아닌, 그래서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되는 각종 비닐봉투에 담긴 쓰레기들이 섞여 있곤 했다. 마음 착한 청소원들은 비록 그런 봉투가 발견된다고 해도 일단 거둬 가는 경우가 많다. 버려두면 길이 지저분해지니까 정상적인 쓰레기봉투를 수거하면서 눈감고 그냥 치워주는 것이다.

이 점을 노리고 함부로 허가받지 않은 쓰레기를 버리는 고약한 심보를 가진 자들이 종종 있는데, 그는 이런 짓거리를 용서하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 끼고는 쓰레기 더미 속에 숨겨진 무허가 쓰레기봉투를 찾아내는 숙달된 동작과 날카로운 눈빛으로 보아, 그가 이 일을 하루 이틀 한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오늘은 없네. 다행이군.’

그런데 이보다 더한 취약지점, 그가 시간과 노력을 더 들여서 감시하는 곳은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되는 으슥한 곳에 몰래 싸인 쓰레기 더미들이다. 범죄자들은 신출귀몰하다. 그들은 감시카메라가 없고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으슥한 곳을 귀신같이 찾아다니며 쓰레기를 버린다. 이들이야말로 가장 잡기 어려운, 그러나 그럴수록 더 잡아야 할 이유가 있는 자들이다.

그는 몇 차례나 구청에 민원을 넣어서 감시카메라를 더 많이 설치해줄 것을 요청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지점을 알려주고 쓰레기가 버려진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며 사태의 심각성을 열심히 부각시켰다. 그러나 감시카메라가 설치되는 속도보다 쓰레기가 버려지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여전히 사각지대가 많았다. 그는 틈나는 대로 뒷골목을 누비는 수밖에 없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느린 걸음으로 조용히 뒷골목을 걷고 있었다. 전봇대 옆 담장이 낮은 어느 집 창문이 반쯤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방 안에 사람들이 여럿 웅성대는 모습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이 밤중에 웬 사람들이.’

그는 까치발을 하고 담 너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어떤 여자가 현금다발을 여러 개 들고 한 사람당 하나씩 나누어 주고 있었다.

‘노름판인가?’

그는 양손을 담장에 짚고 바짝 붙어 섰다. 담 안쪽으로 팔을 뻗어 최대한 창문 가까이 스마트폰을 들이밀고 방 안의 상황을 영상에 담았다. 그 여자의 말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내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지역에서 승부가 판가름 날거예요. 이제 막판이니까 물불 가리지 말고 한 표라도 더 긁어모아야 해요. 실탄은 얼마든지 쏴 줄 테니까 걱정 말고 죽어라 뛰세요. 알았지요? 선거가 잘만 끝나면 섭섭지 않은 보상이 있을 테니까 그건 걱정 말고.”

여자는 낮지만 아주 엄한 목소리로 일행들에게 명령하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뭐 하는 짓들이야.’

녹화된 영상을 다시 되돌려 보니 그 장면과 소리가 아주 선명하게 잡혀 있었다. 그는 걸으며 이 영상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소방도로를 막고 불법으로 주차된 차들이 자주 발견되는 지점에 이르렀다.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는 즉시 생활불편 신고 앱을 열어 함부로 주차된 차들을 찍기 시작했다.

오늘도 몇 건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는 쓰레기 무단투기범들이 애용하는 몇몇 지점을 추가로 도는 데에 시간을 좀 더 할애하고 마지막으로 놀이터로 향했다.

지나는 길에 보니 편의점에서 일하는 청년이 여느 때처럼 폐지를 모으는 할머니를 도와 편의점에서 나온 박스 등을 할머니의 작은 손수레에 실어주고 있었다. 가는 도중 떨어지지 않게 차곡차곡 싣고 끈으로 단단히 매는 것까지 꼼꼼하게 대신 해 드리는 것 같았다.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는 것처럼 보일 만큼 등이 많이 굽은 할머니는 연신 아이구 허구 헌 날 신세만 지니 고마워서 어쩌나 이런 말을 연발했지만 그는 그저 씩 웃기만 했다.

그는 청년을 안다. 붕어빵 판매대가 있는 건물 이층 고시원에서 꽤나 오래 묵고 있는 청년이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무슨 공무원 시험 준비 같은 것을 한다고 했던가. 폐지 줍는 할머니 말고도 이 청년이 누군가를 돕는 광경을 본 것이 여러 차례였던 것으로 그는 기억한다. 할머니를 떠나보낸 고시원 청년이 그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서 방금 전 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도 고개를 까딱 해 주고는 걸음을 옮겼다.

역시 예상대로 놀이터 그네 근처에는 담배꽁초들이 여기저기 보기 싫게 흩어져 있었다. 그는 언제 한번 이 부근에 지키고 있다가 이런 만행을 저지르는 못된 녀석들을 일망타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저분하게 버려진 꽁초와 휴지를 다 줍고 나서야 순찰을 이쯤에서 마치기로 했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그는 집으로 가는 대신 다시 큰길로 나와 인근 경찰 지구대로 향했다.

 

작가 이종원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했다. 4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배달원, 청소부, 상점점원, 회사원 그리고 택시운전까지 약 10년간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아이를 기르고 조용하게 지냈다.

30대 초반 쯤에 막연히 이다음에 나이가 들면 한 번쯤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세 가지 일 - 수염 기르기, 택시운전, 그리고 책 펴내기를 미국 땅에서 실천에 옮겼다.

2017년 첫 번째 장편소설 ‘용기가 필요하다’에 이어 2019년 4월 두 번째 장편소설 ‘붕어빵’을 발간했으며, ‘다래’라는 이름의 1인 출판사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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