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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순의 모래알⑤] 카페의 글에서 브레히트를 떠올리다

박홍순 / 작가

  • 기자명 편집부
  • 입력 2020.10.29 11:16
  • 수정 2020.11.1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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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카페의 칠판 글
어느 카페의 칠판 글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시대

하루는 카페에 들어서려는데, 바깥에 걸어놓은 칠판에 적힌 시인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사랑은 표현하고, 꽃은 피어야 하고, 비는 내려야 하고, 바람은 불어야 한다.”

온라인에서 사랑에 대한 인상적인 문장으로 종종 소개되는 글이지만, 문득 사진으로 찍어 저장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칠판의 상태와 맞물리면서 지금이 아니면 다시 못 볼 무언가를 접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칠판을 바깥에 여러 날 두었던 듯하다. 잠시 가랑비를 맞았는지 글의 아랫부분이 빗물에 흘러내린 흔적이 역력했다. 어딘지 ‘비극’의 냄새가 풍기는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글 내용이 전혀 다른 분위기로 다가왔다.

시인이 어떤 의도에서 쓴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보통은 사람들이 사랑에 대한 설레는 마음과 희망을 담아 인용하는 문구다. 그런데 이 칠판에서는 절망적인 느낌, 적어도 뒤로 물러나는 느낌을 접했다.

당연히 현실에서 꽃은 피고, 비는 내리고, 바람은 분다. 그런데 굳이 꽃·비·바람에 ‘~해야 한다’라는 술어를 붙인 이유는 사랑은 ‘표현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며 살자는 일종의 밝고 능동적인 권유다. 그런데 흘러내려 비극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칠판 위에서는 사랑조차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현실의 고통을 떠올리게 한다.

특정한 사람의 드문 경험이 아니라 대부분이 ‘겪어야 하는’ 어두운 현실 말이다.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일반적인 현실이나 그런 세상이 어디 있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삼포세대’라는 말이 상식처럼 쓰인지 이미 오래다. 사랑과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포기’라는 표현은 어쩔 수 없이 강제된 상황임을 보여준다. 여기에 ‘세대’라는 말이 붙어있으니 이러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 매우 많다는 점은 분명하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결혼과 출산은 경제적 조건이 아니라 해도, 인생관에 따라 선택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런데 사랑은 전혀 다른 성격이 아닌가 싶다.

인간은 세상의 그 어떤 생명체보다 풍부한 감정 표현 능력을 지닌 존재다. 이처럼 다양한 표정을 통해 감정을 드러내는 동물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대부분의 감정은 타인과의 공감 과정에서 나타난다. 사랑은 가장 특별한 공감의 감정이다. 어쩌면 사랑을 포기한다는 건 인간임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아닐까? 그만큼 비극적인 사태다.

‘삼포세대’라는 말에 대해 상반된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나곤 한다. 먼저 “나 때는 말이야~”라며 이해 못하는 표정을 짓는 사람이 꽤 있다. 과거에는 아무리 가난해도 사랑과 결혼을 했고 살림살이는 하나씩 만들어가는 재미라며, 사고방식을 바꾸라는 충고를 점잖게 늘어놓는다.

사랑을 생각이나 의지 문제로 보는, 현실에 얼마나 무감각한지를 증명하는 태도다. 어느 누가 사랑을 하고 싶지 않겠는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물질적 조건 계산이 중요해진 사회로 변해버려서, 하고 싶어도 관계 형성이 안 되는 걸 어떡하라고.

'브레히트와 스테핀', 1934년
'브레히트와 스테핀', 1934년 사진.

브레히트를 떠올리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이 뭐 대수야? 자기 상황부터 안정시켜 놓아야지!’라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정말 사랑은 어려운 상황과 충돌할까? 어느 하나를 먼저 하고 나머지는 다음 순서로 미뤄야 하는 관계일까?

이런 생각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카페 칠판의 글에서 ‘사랑’과 ‘비’라는 단어를 보니, 시 한 편이 자동 연상되듯 떠올랐다.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이기도 한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언뜻 그저 그런 사랑 노래처럼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조심하겠다고, 심지어 내리는 빗방울에 맞아 죽지 않도록 하겠단다. 아무리 문학적인 과장을 인정한다 해도, 이건 좀 심한 과장이라는 생각이 스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 과장이라거나 낯간지러운 속삭임으로만 보이지 않은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이 시를 번역한 사람의 무게감 때문이었다. ‘남민전’ 사건으로 15년 형을 받고 투옥된 김남주 시인이, 자기 사상에 영향을 미친 세계 저항시인들의 시를 번역하여 낸 책이었다. 교도관의 도움으로 몰래 펜과 종이를 얻어 감시의 눈길을 피해가며 번역하고 밀반출해 출판했다. 엄혹한 상황에서 엄선해 번역했으니 한가한 내용은 아니리라는 생각이었다.

또 하나는 브레히트가 주는 무게감 때문이었다. 그는 1933년 나치에 의한 대대적인 탄압을 피해 망명을 했다. 히틀러의 추격을 피해 여권과 신분증도 없이 전전해야 했던 망명 와중에도 나치에 맞서 저항시를 썼다.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저항의 나날을 보내며 쓴 시가 시대와 무관한 달콤한 표현의 잔치일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빗방울에 맞아 살해될까 두려워한 것은 문학적 과장이 아니라 절박한 현실성이었다. 실제로 그의 동지들은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이다 죽어갔다. 아주 작은 실수 하나로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치밀한 계획 아래 움직이다가도 은신처가 발각되어 현장에서 나치의 총탄에 쓰러지기도 했다.

죽어간 레지스탕스 동지들을 떠나보내고 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에서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라며 살아남은 자신을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내일, 아니 오늘 당장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올지도 모르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킨 이에가 그의 누이에게>라는 시는 더 구체적이다.

“우리는 전투 중에도 짬을 내어 사랑했지. (…) 적을 기다리며 움막 속에 숨어있으면 너의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먹을 것과 정보를 가져다주곤 했지.”

그 사람과 하루라도 더 사랑하기 위해서는 살아남아야 한다. 사랑을 향한 자신의 욕망이자, 자신을 필요로 하는 상대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

브레히트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언제 나치에 체포될지 모르는 도피를 연인이자 동지인 스테핀과 함께 했다. <브레히트와 스테핀>은 덴마크를 전전할 때의 사진이다.

1941년 제1차 세계대전으로 나치가 전 유럽에 확대되자 미국 망명을 결심한다. 어렵게 미국행 비자와 배표를 손에 쥔다. 하지만 출발 직전 스테핀은 극심한 폐결핵으로 병동에 갇힌다.

스테핀은 “내가 뒤 따라 갈게요. 단지 죽음과 전쟁만이 나를 방해할 수 있어요.”라고 했지만, 며칠 후 세상을 떠난다. 브레히트는 미국에서 쓴 《작업일지》에서 “막상 스테핀이 빠졌다. 사막으로 들어가는 중에 인도자를 빼앗아 간 것이나 다름없다.”라며 아픔을 토로한다.

브레히트의 시에서 볼 수 있듯이 오히려 인간은 가장 어렵고 위급한 순간에 사랑을 찾는다. 가장 큰 위안이 전면적인 인간관계고, 사랑만큼 이를 충족시킬 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상황부터 안정시키고 사랑은 나중이라 생각한다면 불안과 절망에서 허우적대기에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의 청년들은 사랑을 포기하겠단다. 전쟁 상황, 심지어 당장 적의 총구가 이마에 와 닿아도 이상하지 않은 레지스탕스 활동 중에도 가장 절실한 게 사랑인데 말이다. 청년들의 마음을 탓할 일이 아니다. 포기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과 사람이 교환가치가 되어버린 우리의 ‘현실’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교환가치가 상품으로서 다른 상품과 교환되는 비율을 의미한다면, 오늘날 한국에서 사랑은 교환가치에 의해 측정되는 사물이 되어버렸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들에 핀 꽃이나 비와 바람이 교환가치가 아니듯이 사랑도 상품일 수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상품이 되어버렸다.

‘삼포’라는 말은 교환가치의 힘이 전쟁이나 레지스탕스보다 더욱 강력하게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상품과 시장이라는 안경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보게 만드는 바로 이 괴물이다.

 

필자 박홍순 : 인문학·사회학 작가로, 《미술관 옆 인문학》, 《헌법의 발견》, 《생각의 미술관》, 《나이든 채로 산다는 것》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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