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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국보로 지정

희랑대사, 태조 왕건 도와 고려 창건 기여
문헌기록과 현존작품 보존된 유일祖師像

  • 기자명 김선태
  • 입력 2020.10.30 14:14
  • 수정 2020.10.31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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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 사진 = 문화재청 제공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 사진 = 문화재청 제공

[시그널=김선태 기자]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지난 21일, 실제 생존한 고려시대 고승(高僧)을 재현한 유일한 초상조각인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陜川 海印寺 乾漆希朗大師坐像)’을 국보로 지정하고 이를 고시했다. 

그동안 보물 제999호로 지정되어 오다 국보 제333호로 승격한 것.

건칠희랑대사좌상은 신라 말∼고려 초에 활동한 희랑대사(希朗大師)의 모습을 조각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조각 또는 조사상(祖師像;僧像)이다. 제작 연대는 고려 10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희랑대사에 관해서는 조선 후기 학자 유척기(兪拓基, 1691∼1767)의「유가야기(游加耶記)」에 소개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고려 초 기유년(己酉年, 949년 추정) 5월에 나라에서 시호를 내린 교지가 해인사에 남아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949년 이전에 입적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승이다. 

화엄학(華嚴學)에 조예가 깊었던 학승(學僧)으로, 해인사의 희랑대(希朗臺)에 머물며 수도하였고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왕건은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해인사 중창에 필요한 토지를 하사하고 국가의 중요 문서를 이곳에 두었다고 한다.

생존 고승의 모습 재현한 유일한 고대 조각품

이 조각은 실제 생존했던 고대 고승의 모습을 재현한 유일한 조각품으로 전래한다. 해인사의 해행당(解行堂), 진상전(眞常殿), 조사전(祖師殿), 보장전(寶藏殿)을 거치며 수백 년 동안 해인사에 봉안(奉安)되었던 사실이 문헌에 전해지며 특히 조선 후기 실학의 대가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가야산기(伽倻山記)」에 ‘희랑대사좌상’ 방문기록이 남아 있다. 대략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희랑은 심성이 관대하고 보통 사람과 다른 신비한 힘이 있었다. 얼굴과 손은 까맣고 힘줄과 뼈가 유독 울퉁불퉁 튀어나온 모양이다. 해인사에 머물렀는데 사람들이 천흉승(穿胸僧, 가슴에 구멍이 뚫린 승려)이라 했다."

우리나라에 문헌기록과 현존작품이 모두 남아있는 조사상은 ‘희랑대사좌상’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정조사를 맡은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 보존과학연구실에 따르면 “이 작품은 얼굴과 가슴, 손, 무릎 등 앞면은 건칠(乾漆, 삼배 등에 옻칠해 여러 번 둘러 형상을 만든 기법)로, 등과 바닥은 나무를 조합해 만들었고 후대의 변형 없이 제작 당시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인사의 가을 정경. / 사진 = 합천 해인사 제공
해인사의 가을 정경. / 사진 = 합천 해인사 제공

가슴에 난 구멍, ‘수행 보시’ 또는 ‘신통력’ 상징해

문화재청에 따르면 건칠기법이 적용된 ‘희랑대사좌상’은 육체의 굴곡과 피부 표현 등이 매우 자연스러워 조선 시대에 조성된 ‘여주 신륵사 조사상’(驪州 神勒寺 祖師像, 1636년), ‘영주 부석사 소조의상대사상(榮州 浮石寺 塑造義湘大師像, 조선 시대)’ 등 다른 조각상들과 달리 관념적이지 않고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마르고 아담한 등신대 체구, 인자한 눈빛과 미소가 엷게 퍼진 입술, 노쇠한 살갗 위로 드러난 골격 등은 매우 생동감이 넘쳐 생전(生前)의 모습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이렇듯 앞면과 뒷면을 결합한 방식은 보물 제1919호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처럼 신라∼고려 초에 해당하는 비교적 이른 시기의 불상조각에서 확인되는 제작기법이어서 희랑대사좌상의 제작시기를 유추하는 데 참고가 된다”고 밝혔다. 

‘희랑대사좌상’의 또 다른 특징으로 가슴에 작은 구멍(폭 0.5cm, 길이 3.5cm)이 뚫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그에게는 ‘흉혈국인(胸穴國人, 가슴에 구멍이 있는 사람)’이라는 별칭이 뒤따른다. 해인사 설화에 따르면 이 흉혈(胸穴)은 희랑대사가 다른 스님들의 수행 정진을 돕기 위해 가슴에 작은 구멍을 뚫어 모기에게 피를 보시하여 생긴 것이라 한다. 

하지만 불가에서는 종종 신통력을 지닌 고승에게서 흉혈이나 정혈(頂穴, 정수리에 난 구멍)을 볼 수 있다고 전해진다. 유사한 예로 ‘서울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좌상’(1024년, 보물 제1000호)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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