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본문영역

[이종원의 '붕어빵' ] 3화. 그에게 오지랖 넓은 녀석이 나타나다

  • 기자명 편집부
  • 입력 2020.11.12 07:00
  • 수정 2020.11.13 11: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 주 : 이종원 님의 장편소설 '붕어빵' 연재를 시작합니다.

‘붕어빵’은 복선이 깔리고 반전이 있으며 흥미로운 스토리를 지닌,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살아 숨 쉬는, 무엇보다 술술 읽히는 소설입니다.

‘붕어빵’은 마음을 울리는 감동이 있는 소설입니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잔잔한 공감 속에 평소 알지 못했던 타인들을 이해하는 마음을 열지도 모릅니다.

‘붕어빵’은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또한 낮은 소리로 다가오지만, 어쩌면 독자 여러분이 귀 기울일지 모를 그런 메시지가 있는 소설입니다.

하지만 판단은 어디까지나 시그널 독자 여러분의 몫입니다. 모쪼록 즐겁게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자리를 빌려 글을 제공해주신 작가 이종원 님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

그들은 매일 아침과 저녁 출퇴근 시간에 집중적으로, 그리고 낮에도 간헐적으로 참 시끄럽게도 떠들어 댔다. 그런데 시끄러운 것 보다 더 큰 문제는 저 선거 유세단이 옆으로 죽 늘어서서 그의 시야를 가린다는 점이었다. 그의 판매대와 차도 사이에 비교적 넓은 공간이 있어서, 선거 때만 되면 선거운동원들이 자리를 잡고 하루 종일 소란을 떨었다.

그거야 뭐 그런대로 참을 수 있다 치고, 문제는 그들 때문에 주요 취약지점 중의 하나인 그의 정면 차도가 잘 보이지 않아서 감시하기에 영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이 취약지점은 상습 무단횡단지역, 바로 얼마 전 잘난 신사에게 그가 법과 질서의 존재를 일깨워준 바로 그곳이다.

차도 건너편과 이쪽 편 양쪽에 제법 큰 상가와 시장이 있고 그의 판매대가 있는 건물 뒤편으로 인구가 밀집된 동네가 있어서 사람들의 통행량은 많지만, 횡단보도는 좀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래서 무단횡단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때로 교통사고가 나기도 했다.

그는 증거확보용 영상 촬영을 위해 붕어빵 판매대 기둥에 거치대 비슷한 것을 만들어서 스마트폰을 걸어 놓았다. 아주 편리했다. 그런데 선거 유세단이 앞을 가리면서 그가 설정해 놓은 최적의 각도를 상당히 무력화시켜 버린 것이다. 그의 심기가 점점 불편해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 젊은이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안녕하세요? 장사 잘되시지요?”

젊은이는 홍보 전단을 내밀면서 아주 밝은 표정으로 씩씩하게 말했다. 전단에는 ‘투표에 꼭 참여합시다.’ ‘민주주의는 우리의 참여로 이루어집니다.’ 이런 등등의 말이 쓰여 있었다.

유세단에 가서 좀 비켜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그에게, 때마침 이 씩씩한 젊은이가 제 발로 찾아온 것이다.

‘옳거니.’

주는 전단을 일단 받아 들고, 읽기 전에 우선 자신의 요구사항을 말했다.

“저기 저 사람들이 조금만 비켜주면 좋겠는데...”

그는 왜 자신이 그런 요구를 하는지 나름대로 최대한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 씩씩한 젊은이는 처음에는 약간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귀를 기울여 열심히 들었다. 끝까지 다 듣고는 붕어빵 판매대와 유세차량 그리고 차도 쪽을 번갈아 가면서 유심히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 요구가 합당한지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잘 알겠는데 제가 해 드리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네요. 저는 저분들의 일행이 아니라서요. 저는 어느 특정후보를 지지하러 나온 게 아니라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라는 캠페인을 하러 나온 거거든요.”

‘뭐라고?’

그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손에 들고 있던 전단을 들여다봤다. 기호 몇 번, 이런 숫자라든가 여러분을 위한 모모 당 후보 아무개 등의 이름 같은 것은 전혀 쓰여 있지 않았다. 이 청년이 지금 그의 감시활동을 방해하는 저 무리들에 속하는 사람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얘는 도대체 뭐하는 거지? 안 그래도 시끄러운 선거판에 끼어들어서 왜 오지랖을 떠는 거야?’

여하튼 이 씩씩하고 오지랖 넓은 청년에게 요구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이제 됐으니 그만 가보라는 표정을 한 번 지어주고는 붕어빵 판매대를 빠져나와서 선거유세단 쪽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갑자기 대화 상대를 잃어버린 오지랖 넓은 청년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여기, 조금만 옆으로 비켜 줘요.”

똑같은 색깔의 셔츠를 맞춰 입고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열심히 율동을 펼치다가 한 곡 끝나고 잠시 휴식을 취하던 유세단원들은 당황했다. 무뚝뚝한 표정의 아저씨가 나타나서 대뜸 옆으로 비켜 달라고 하니, 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며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는 다시 말했다.

“저만치 옆으로 좀 비켜 달라니까요.”

바로 그때, 유세차량 옆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손을 거의 반강제로 붙잡고 흔들던 어떤 사람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그에게로 다가왔다. 그를 지지자로 착각한 것 같았다. 이 떠들썩한 소란의 주인공, 후보자였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기호 ㅇ번 아무갭니다.”

후보는 마치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에는 당신과 나 두 사람밖에 없다는 듯 친밀함 듬뿍 담긴 따뜻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가 내민 손을 쳐다보았다. 악수하자고 내민 손을 외면하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어색하게 손을 잡아 주었다.

‘이 사람이 여기서 제일 높을 테니까, 지금 바로 말하면 되겠네.’

그는 마침 잘 됐다고 생각하고 이 다정하고 친근함 가득한 것처럼 보이는 정치인에게 직접 간단한 민원을 넣기로 했다.

“이분들 때문에 큰길이 잘 안보여서....”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가 민원을 채 설명하기도 전에, 이미 악수를 마친 것으로 그와의 용무가 끝났다고 판단한 정치인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등을 휙 돌려서 다른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가버렸다. 선거 때면 나타나서 평생 등에 업고 다니기라도 할 듯 다정한 척하다가, 선거가 끝나는 즉시 사라져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그 모습의 순간 축소판이었다.

‘이런 젠장.’

역시 겉과 속이 달랐다. 겉이 번드르르하고 화려하고 근사할수록 속은 그와는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그의 겉 표정은 마치 당신을 위해서 뭐든지 다 해 줄 수 있다고 말하는 듯 보였지만, 속에는 그럴 마음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떠들어 대기만 할 뿐, 귀 기울여 들으려는 자세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면.

그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후보와의 직접 면담을 포기하고 다시 유세단 쪽으로 접근했다. 그때 웬 책임자 정도로 보이는 사람이 그를 막아섰다. 그가 옆으로 비켜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것을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무슨 용건이 있으신가요?”

말투는 공손했지만 경계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경쟁 후보 진영에서 보낸 훼방꾼인지 의심하는 것 같았다. 그는 아까 오지랖에게 했던 것보다 더 자세히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책임자의 반응은 오지랖과는 너무나 달랐다.

“아이 참, 이 아저씨 이상한 말씀하시네. 우리도 이게 다 정해진 법을 지키면서 하는 겁니다. 아니, 무단횡단 감시한다고 선거유세를 못하게 하는 게 말이 돼요?”

책임자는 유동인구가 많은 중요한 목을 차지하지 못한 경쟁 후보 진영에서 그를 보냈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다른 남자 한두 명이 더 나타나 그를 가로막았다.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분위기가 다소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선거운동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이성을 잃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오지랖 넓은 청년이 생각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나서서 불상사를 막아야겠다고 느낀 듯, 양쪽 사이에 재빨리 끼어들었다.

“아저씨, 잠시만 가 계세요. 제가 대신 잘 설명해 볼게요.”

이런 일로 다투고 싶지는 않았던 그는 일단 오지랖의 중재에 맡기고 붕어빵 판매대로 돌아왔다. 오지랖이 판매대를 가리키다가 큰길을 가리키다가 하면서 뭔가를 그들에게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봤다. 오지랖은 마치 자기 일처럼 꽤 열성적으로 그들을 설득하는 듯 보였다.

한동안 무슨 말인지 주고받더니, 잠시 후 유세차량과 죽 늘어선 사람들의 위치가 조금 변하는 것이 보였다. 그의 촬영장비가 완벽하게 시야를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그 정도면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며칠 후면 저 시끄러운 사람들은 사라질 테니까 조금만 참자고 그는 생각했다. 그때 오지랖이 밝고 씩씩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저분들하고는 안면이 좀 있거든요. 아저씨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었나 봐요. 선거 때만 되면 사람들이 왜 그렇게 예민하고 날카로워지는지, 원. 전쟁이 따로 없어요. 조금이라도 신경 쓰이는 일이 생기면 다 상대방에서 음모를 꾸민 거라고 단정해 버린다니까요. 자기편이 아니다 싶으면 다 적으로 보이나 봐요. 그나저나, 이제 큰 길이 좀 보이시죠?”

그는 짧게 대답했다.

“음. 고마워.”

그러나 오지랖은 그렇게 간단하게 그들의 인연을 끝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열심히 하던 선거참여 캠페인인지 뭔지는 할 생각도 않고, 아저씨의 시민의식이 놀랍다느니, 아저씨 같은 분이 많이 계셔야 세상이 좋아진다느니, 뭐 그런 거창한 얘기들을 늘어놓으며 그에게 신뢰와 친근감 가득한 눈길을 보냈다.

그는 슬슬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거창한 얘기가 나오면 그는 늘 불편함을 느낀다. 지금이 그런 상태였다. 그런데 오지랖이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서 그가 심하게 불편함을 느낄 만한 결정적인 말을 던졌다.

“아저씨는 당연히 투표하실 거죠? 아저씨 같은 분이라면 당연히 그러시겠지요.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는 씩씩하고 순수하며 타협도 잘하는 이 오지랖 넓은 청년에게 솔직히 대답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글쎄...난, 뭐...”

그의 미지근하고 무덤덤한 반응에 오지랖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준법정신이 투철하고 높은 시민의식을 지닌 훌륭한 분이 어떻게 그런 무책임한 말씀을...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이 불편한 상황을 빨리 끝낼 요량으로 약간의 설명을 덧붙였다.

“저 사람들, 실제로는 어떤 사람들인지 잘 모르니까.”

그는 손가락으로 벽에 붙은 벽보를 가리켰다. 나란히 붙어 있는 사진 속 후보들은 하나같이 인자하고, 온화하고, 선한 표정으로 이 한 몸 바쳐 국민을 위해 헌신과 봉사를 아끼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이고 있었으며 벽보에 쓰여 있는 말들은 구구절절 지당하신 말씀뿐이었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꽁초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무단횡단하는 놈들 중 대부분이 겉보기에 멀쩡하고 말도 잘하지.’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왕 말을 내뱉은 김에 이 부담스러운 대화를 빨리 끝내기 위해 한마디 덧붙였다.

“누군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지지하고 자시고 하나. 그리고 말이야, 그렇게 잘 모르면서 대충 찍으면 나중에 내가 누굴 찍었는지 기억도 못 해.”

그들의 대화가 시작된 이래, 아니 이제껏 살면서 그가 표명한 가장 긴 정치에 관한 의견임이 틀림없는 발언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오지랖은 놀라워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뭔가를 생각하는 듯 가만히 있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저씨 말씀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거든요. 이런저런 선거도 많고 후보자도, 뽑힌 사람도 한둘이 아닌데 과연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에 대해서 잘 알고 뽑는 건지, 자기가 뽑은 사람들을 다 기억하고는 있을지, 뭐 그런 거요. 그리고 뽑아준 사람들이 뭘 하는지, 그들이 일을 제대로 하는지 알고 있기는 할까요?”

오지랖이 진지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을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어요. 사실, 막연하게 그러리라 추측만 했거든요. 아저씨는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계기? 계기는 무슨...”

자꾸 얘기가 심오한 쪽으로 흘러가면서 길어질 것 같았다. 그는 다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대화를 끝내려는 듯 작심하고 무뚝뚝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정 궁금하면 사람들한테 직접 물어보든가.”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오지랖의 눈이 반짝였다.

“아, 맞다! 그러면 되겠네요.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와, 아저씨 정말 기발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오지랖은 용수철 튀어 오르듯 강렬한 반응을 보였지만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기발해? 내가? 고마워? 왜?’

오지랖은 그야말로 행동파였다.

선거참여 캠페인 전단 뭉치를 그에게 맡기고는, 행인들을 한 명씩 붙들고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다. 구두 설문 조사를 시작한 것이다. 이 동네 사느냐, 투표한 적 있느냐, 저 후보자들에 대해서 잘 아느냐, 이 동네 구의원 이름을 아느냐, 시의원 이름을 아느냐, 구의원이 하는 일을 아느냐, 구청장이 누군지 아느냐, 교육감 이름을 아느냐, 등등.

그는 오지랖이 자신을 더 이상 붙들고 늘어지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다행이라 생각하고, 다시 본연의 임무인 붕어빵 장사와 무단횡단 및 담배꽁초 투기 감시활동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 두어 시간쯤 흘렀을까, 오지랖이 다시 나타났다. 그런데 아까 보여주었던 활기찬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완전히 풀이 죽은 모습과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말씀이 옳았어요...”

오지랖의 처참한 표정을 본 그는 자신이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얘가 갑자기 이 모양이 되었는지, 뭔가 잘못한 말이라도 있는지 기억을 되새겨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약간 난처했다. 다행히 오지랖은 자신의 이 울적한 상태가 그의 탓이 아님을 즉시 밝혀주었다.

“구의원? 시의원? 그게 다른 건가?”

“글쎄...모르겠는데요? 누구더라?”

“시장은 누군지 알지요. 구청장은 잘 모르겠네.”

“그런 사람들 이름을 어떻게 일일이 다 외우고 다녀?”

“교육감? 교육부 장관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교육감이 교사나 교장 임명하나?”

“구의원이 원래 우리 동네 통장이었는데. 가만있자, 그 사람 이름이 뭐더라? 저기 기름 가게 사장인데, 이름은 모르겠네.”

“솔직히 저 사람들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지요.”

“전에 구청 갔을 때 보니까 구의원은 엄청 무게 잡고, 구청 직원들은 쩔쩔매던데?”

“해외연수랍시고 외국 나가서 관광지나 돌아다니다가 술 먹고 사고치는 사람들 아니에요?”

“모르지 나도. 그 사람들이 누군지. 벽보에 있는 자기소개만 가지고 어떻게 알아?”

“근데 멀쩡한 보도블록은 왜 해마다 갈아엎는 거야? 구청에서 하는 인도 보수공사는 구의원 처남 회사에서 다 한다며?”

“집권당이 마음에 안 들면 반대당 후보 찍는 거지 뭐. 사람 보고 찍나?”

“난 매번 똑같은 당만 찍어. 그런데 그놈의 당 이름이 자꾸 바뀌고 엇비슷한 다른 당도 생기는 통에 좀 헷갈리네.”

오지랖의 면접조사 결과 그 지역 구의원 시의원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구의원과 시의원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한둘이 아니었고, 그들이 하는 일이 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후보 개개인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경우 역시 거의 없었다. 후보가 나오기도 전에 찍을 번호를 이미 정해놓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는 유세단원들조차 그 후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일당을 받고 일하는 치어리더일 뿐이었다. 야구시합과 선거가 다를 바 없었다. 우리 편이니까 응원하고, 상대편이니까 야유하는 딱 그 모양 그대로였다.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오지랖의 표정은 우울해 보였다. 그는 예전에 나라 잃은 우리 조상들의 표정이 아마도 저랬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자신이 괜한 말을 해서 이 지경이 된 것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약간 들었다. 뭔가 위로를 해 주어야 할 것 같았지만 딱히 해 줄 말이 없었다. 그래서 갓 구워낸 붕어빵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지금 이 순간에는 이게 그가 해 줄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했다. 조사하느라 힘들었는지, 조사 결과가 그를 힘들게 했는지, 둘 다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오지랖은 무척 지쳐 있었고, 그는 여러 개의 새로 구워진 따끈따끈한 붕어빵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그리고는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선거가 정말 필요하기는 한 것인지 좀 깊이 생각해 봐야겠어요.”

그 와중에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빼먹지 않은 오지랖은, 축 처진 등을 보이며 터벅터벅 힘없는 걸음으로 떠나갔다. 다음 날 아침부터 한동안 그 근처에서 오지랖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작가 이종원은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했다. 4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배달원, 청소부, 상점점원, 회사원 그리고 택시운전까지 약 10년간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아이를 기르고 조용하게 지냈다.

30대 초반 쯤에 막연히 이다음에 나이가 들면 한 번쯤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세 가지 일 - 수염 기르기, 택시운전, 그리고 책 펴내기를 미국 땅에서 실천에 옮겼다.

2017년 첫 번째 장편소설 ‘용기가 필요하다’에 이어 2019년 4월 두 번째 장편소설 ‘붕어빵’을 발간했으며, ‘다래’라는 이름의 1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