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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순의 모래알 ⑧] 음모론의 함정

대중매체 앞세워 진실 접근 차단...정치에 대한 냉소·무관심 확산

  • 기자명 김선태
  • 입력 2020.12.21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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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게임’, 윌리엄 홀브룩 비어드(William Holbrook Beard), 1887년 작.
포커게임’ : 윌리엄 홀브룩 비어드(William Holbrook Beard), 1887년 작.

정치적인 음모론에 빠지다
지난번 정치평론에 대해 언급한 김에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먼저 그림을 하나 보자. 이번에도 윌리엄 홀브룩 비어드의 작품이다. 마찬가지로 여러 마리의 원숭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포커게임>이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도박에 열중이다. 모두가 패를 감추고 확실한 승리를 위한 결정적인 순간을 준비한다. 겉으로는 무표정하지만 뒤로는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숨기고 있을 듯하다. 건너편에서 자기 패를 하나 내놓자, 다들 고심에 빠져든다. 오른쪽에서는 한 손으로 턱을 만지며 자기 패를 다시 보며 승부수를 던져야 할지를 고민한다. 

하지만 조금 더 꼼꼼하게 살피면 이면의 상황이 눈에 들어온다. 다른 주인공이 보인다. 왼편 구석에서 불빛과 테이블의 원숭이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이가 심상치 않다. 이 판을 움직이는 주인공은 패를 들고 있는 원숭이들이 아니라,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저 어둠 속의 존재라는 느낌이다. 

서양 회화에서 등을 돌리는 것은 기만·속임·배반을 의미한다. 음모를 통해 상대를 수렁에 빠뜨리는 행위를 나타낸다. 등이 높은 의자여서 돌아앉는 순간 머리도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 흉계를 꾸미는 시선이다. 묘한 웃음을 띠고 있어서 미리 치밀하게 마련한 음모대로 판이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도박 관련한 영화를 보면 흔히 접하는 상황이다. 은밀하게 설계한 도박판에 돈 많고 어수룩한 ‘호구’를 끌어들여 꼼짝달싹 못 하고 전 재산을 날리게 만드는 술책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게 전문적인 도박판에서만 만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TV나 유튜브의 각종 정치평론에서 드물지 않게 접하는 음모론적인 분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상만 정치로 바뀌었을 뿐이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어둠 속의 플레이어를 전제로 한다. 상황 이면에 숨어있는 그림자 세력의 의도에 의해 현실이 움직인다고 분석한다.

정치평론가의 성향이 보수냐 진보냐를 가리지 않고 음모론이 판을 친다. 특히 유튜브 정치평론이 홍수를 이루면서 음모론이 더 크게 유행하는 중이다. 당면한 정치적 현상을 잠시 언급한 후에 곧바로 분석의 주요 근거로 뜬소문이 등장한다. 배후에서 누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어떤 의도가 있는지에 주목한다. 

특정한 정치인의 사소한 발언이나 행위의 뒤에는 실제 권력을 지닌 자의 거대한 의도나 대권 계획이 깔려 있다는 주장이 난무한다. 걸핏하면 정책 배경에 북한이나 중국의 음모가 숨어있다는 주장도 지겹도록 되풀이된다. 심지어 주요 선거가 끝나면 개표기 조작을 통한 음모론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음모론이 왜 문제인가? 
현상 이면의 원인을 추적하는 시도가 문제가 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정치 분석이라고 한다면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태도다. 현상 나열에만 머문다면 정치를 소재로 한 소란스러운 수다에 지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대부분의 사회·정치 현상은 원인과 직선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하나의 현상이 나타나기까지 사회적·경제적인 구조, 문화적인 전통, 집단적인 이해관계, 심리적인 요인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요인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여기에 예상치 못한 우연적인 요소까지 결합하기에 더욱 복잡해진다. 실선으로 연결된 부분과 점선으로 연결된 부분이 뒤죽박죽 섞인다. 심지어 영향을 미치는 선이 괄호 안에 있어서 안 보이기도 한다. 

상승과 하강 추세조차도 뚜렷한 양상으로 나타나기보다는, 나선형이기 일쑤여서 짧은 국면만 봐서는 방향을 가늠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날카롭고 세심한 정세분석과 상황분석이 필요로 되는 이유다. 

문제는 음모론이 체계적·구체적인 분석과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진실에의 접근을 가로막는다는 점이다. 그림자에 가려 실질적인 구조와 관계가 사라져버린다. 현상과 음모가 단선으로 연결된다. 

게다가 배후의 의도란 본래 알 방법도 없다. 상대의 내면은 객관적인 분석 대상일 수가 없다. 결국 음모론은 우리의 생각이 현상과 허상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허우적대도록 만든다. 

그런데 왜 음모론이 판을 치고, 사람들이 빠져드는가? 곧바로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의도로 연결하는 순간 아주 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분석할 필요 없이 단순하게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편리한 생각을 자극한다. 은밀하고 대단한 배후를 알았다는 만족감을 준다. 음모 당사자를 비난하는 심리적 만족감도 얻는다. 

음모론을 제기하는 쪽도 편리하다. 상대가 근거를 요구하면 은밀한 의도이기에 객관화할 수 없다고 한다. 예상과 다르게 상황이 전개되면 또 다른 음모로 설명하면 될 일이다. 

음모론의 더 심각한 부정적 영향이 있다. 당장은 사람들에게 정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무력감과 무관심에 빠트린다. 한국사회에서 음모론의 대표적 저서로 읽히는 이리유카바 최의 《그림자 정부》가 밝히는 다음의 결론이 역설적으로 이를 잘 알려준다. 

“그들은 계획을 추진할 때는 항상 옳은 말만 한다. 그러나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완전히 정반대의 결과가 도출되고, 대중이 이러한 진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늦어 그 전 상황으로 되돌릴 방법이 없다.” 

현실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 보이지 않는 그림자 세력이 지배하기에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한다. 겉으로 했던 말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나고 나서야 일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대중은 일이 진행된 후이기 때문에 결과를 되돌리거나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현실은 늘 사람들의 생각과 행위가 미치지 않는, 비밀스러운 곳에서의 음모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음모론은 세상이 자신의 실천과 무관하게 움직인다는 사고방식, 스스로 자신을 국외자로 취급하는 무력감을 심어준다. 무력감이 여러 차례 되풀이되면 사회와 정치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으로 돌아선다. 

음모론은 항상 그 주장을 대규모로 퍼뜨려주는 매개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대부분은 대중매체가 그 역할을 맡는다. 언론으로서는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은 방식이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다.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사실 확인을 하는 수고를 쏟지 않아도 되니 일석이조다. 결국 음모론은 지적인 게으름과 상업주의가 만나는 곳에서 형성된다. 

박홍순 : 인문학·사회학 작가로, 《미술관 옆 인문학》, 《헌법의 발견》, 《생각의 미술관》, 《나이든 채로 산다는 것》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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