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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 “개미도 세계를 들 수 있음을 보여준 중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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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 “개미도 세계를 들 수 있음을 보여준 중국인”
  • 김선태
  • 승인 2021.01.06 1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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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생활 접고 창업 나서, 중국 대표 기업가로 우뚝 서

성공에 안주하지 않은 혁신가, 그의 안전을 우려하는 이유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 사진=연합뉴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 사진=연합뉴스

“내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첫째, 나는 가진 돈이 없었다. 둘째, 나는 인터넷의 이응자도 몰랐다. 셋째, 나는 바보처럼 생각했다.”

2006년 7월 마윈은 알리바바를 찾은 전기 작가 류스윙을 현관에서 맞이해 직접 안내했다. 응접실에서 마윈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비서가 그의 도시락을 치워 버렸다. 돌아온 마윈은 먹지 말고 이야기나 하자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직원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보셨지요?”

이듬해 알리바바는 홍콩거래소에 상장하여 순식간에 중국을 대표하는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7년 뒤 알리바바는 뉴욕거래소에 상장했다. 이번에는 시가 총액 2314억 달러(약 240조 원)를 돌파하며 페이스북과 아마존을 앞질렀다. 알리바바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가운데 하나로 우뚝 서는 순간이었다.

평범한 어린 시절 거쳐 운명처럼 창업에 나서

마윈의 어린 시절은 지극히 평범했다. 그저 그런 학창 생활을 보냈고 수학을 못 해 대입 시험에 두 번 떨어졌다. 재수생 시절 외국인 가이드를 하면서 쌓은 영어 실력으로 항저우 사범대 문턱을 간신히 넘었다. 졸업하자 곧장 영어 강사를 시작하여 겨우 생계를 이어갔다.

어느 날 마윈은 문득 주어진 운명을 따르는 삶은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다. 그의 나이 서른, 사회 진출 4년 만에 창업의 길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고전을 거듭했다. 번역회사를 차렸지만 보따리 장사를 해서 적자를 메워야 했다. 3년이 지나 겨우 자금난에서 벗어나자 이번에는 회사를 넘기고 다른 길을 택했다.

그의 마음을 뒤흔든 사건이 있었으니 1995년 우연히 들른 미국 회사에서 인터넷을 접한 것이다. 가히 꿈의 무대였다.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있었는데 그 속에 중국이 존재하지 않았다. 마윈은 거기서 기회를 보았다.

이어지는 마윈의 삶은 그 자체가 중국 인터넷 비즈니스의 역사라 해도 좋았다. 마윈은 중국 최초의 상거래 사이트를 개설했고, 인터넷이 뭔지도 모르는 기업가들에게 홈페이지 개설을 역설했다.

정부 투자 기관에서 일하며 돈 안 되는 일에 매달린다며 바보 취급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몇 년 동안 여러 관공서의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어 열었다. 상급 기관들이 이를 마땅치 않게 여겨 질책하기 시작하자 마윈은 미련 없이 사표를 내던졌다.

1999년 2월 마윈은 알리바바를 설립해 중소기업과 중소기업을 연결하는, 일찍이 없던 B2B(기업간 거래) 사업을 시작했다. 천운이 따랐는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며 고객이 급증했다.

일각에서 마윈은 중국 정부가 키웠다는 주장을 펴기도 하는데, 이는 근거 없는 말로 굳이 따지자면 중국 정부가 마윈의 앞길을 가로막지 않았다고 할 수는 있다.

1995년 첫 상업용 사이트 ‘차이나페이지’를 만들 당시 마윈은 제리 양을 흠모해 중국의 야후를 꿈꾸었다. 10년 뒤인 2005년 ‘마윈의 우상’ 제리 양은 야후차이나를 마윈에게 맡겼다. 야후가 10억 달러를 쏟아붓고 알리바바 지분 40퍼센트(의결권 35퍼센트)를 갖는 조건이지만 어쨌든 마윈의 인생 역전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마윈의 꿈은 더 멀리 가 있었다. 2007년 11월, 알리바바는 시가 총액 200억 달러를 훌쩍 뛰어넘으며 홍콩거래소 역사상 최고의 IPO(주식공개)로 기록되는 상장 일정을 마무리했다. 마윈이 말한 ‘8년 항쟁’의 결산이자, 그가 일관되게 추구한 ‘매개(네트워킹)’의 위력이 입증된 날이었다.

제리 양과 손정의 만나 ‘청출어람’의 길로

알리바바의 사세가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거듭 위기가 닥쳤지만 마윈에게는 제리 양이라는 우군이 있었다.

마윈과 제리 양의 인연은 특별하다.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자금난에 허덕일 무렵인 1998년, 마윈은 부업으로 여행가이드를 했다. 마침 야후 사이트로 대성공을 거둔 제리 양이 중국을 방문해 만리장성 여행에 나섰는데 이때 마윈이 가이드를 맡았다.

마윈과 제리 양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았고 친구가 되었다. 제리 양은 마윈에게 야후차이나 최고업무책임자(COO) 자리를 제안했지만 마윈은 거절했다. 이후 마윈이 알리바바를 설립한 뒤 자금난에 부딪히자 제리 양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에게 그를 소개했다.

초면에 열변을 토하는 마윈에게 반한 손정의 회장은 군말 없이 2천만 달러 투자를 약속했다. 이 과정이 몇 차례 이어지면서 알리바바는 순항을 이어갔고, 2003년 5월 마윈 인생 회심작이라 할 소매업 전자상거래 사이트, 타오바오(淘宝网)가 탄생했다. 당시에도 자력으로 사이트를 개설할 수 없었던 마윈은 다시 손정의 회장을 찾았고 손 회장은 무려 8200만 달러를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오늘날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사이트는 아마존이지만 그 당시 타오바오의 경쟁자는 미국에 이어 중국 전자상거래시장을 주무르고 있던 이베이였다. 결과는 ‘3년간 거래 수수료 면제’를 내세운 마윈의 승리로 돌아갔고, 한때 중국 내 시장 점유율 90%를 자랑하던 이베이는 대륙에서 철수했다.

“개미도 세계를 들어 올릴 수 있다.”

이베이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마윈이 남긴 말이다. 지난해 10월 세계 최대 규모의 상장이 예고되었다 중국 당국에 의해 철회된, 문제의 ‘앤트그룹’은 마윈이 이런 착상에서 명명한 회사다.

2013년 5월 마윈은 알리바바 그룹 CEO직을 내려놓고 은퇴했다. 그가 세운 알리바바는 새로운 항해를 하게 되었고 이후 마윈은 중국이 낳은 글로벌 경영자로서 전인미답의 길을 걸어 왔다. “운명을 믿지만 내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고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하는 인물, 마윈의 행방과 안전이 심각하게 염려되는 이유다.

·김선태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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