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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순의 모래알 ⑨] 먹방의 심리학

박홍순 / 작가

  • 기자명 김선태
  • 입력 2021.01.0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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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창구이. / 사진=필자.
곱창구이. / 사진=필자.

한국은 지금 먹방의 전성시대

몇 년 전에 곱창구이를 먹으려다 포기한 날이 있다.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모습만 봐도 군침이 돌기 마련이다. 고소한 맛, 겉은 쫄깃하고 안은 부드러운 식감을 떠올리며 평소에 봐둔 식당을 찾았다. 하지만 좌석에 손님으로 가득하고 문 앞에 대기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특별히 맛집으로 소문난 곳도 아니어서 의외였다. 할 수 없이 검색을 통해 근처 다른 식당으로 갔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입맛만 다시고 돌아섰다.

나중에야 무슨 일인지 알았다. TV 프로그램에서 어떤 여성 가수가 곱창구이를 먹는 장면이 나온 후에 그 난리가 났단다. 일종의 ‘먹방’이었는데, 수많은 사람이 곱창구이를 찾게 만들었다. 연일 손님으로 북적였고, 일주일이 넘게 전국에 곱창 재료가 동이 날 지경이었다니 참으로 대단한 영향이라 할 수 있다.

‘먹방’은 말 그대로 ‘먹는 방송’이다. 십여 년 전부터 TV에서 먹방이 대유행이다. 먹방을 표방한 프로그램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여행을 가든 사람을 만나든, 음식을 사거나 조리해서 먹는 장면이 줄을 잇는다. 유튜브에서도 인기 장르다. 수십만 명의 구독자를 자랑하는 채널이 적지 않다. 먹방 스타들은 엽기적으로 많은 음식이나 자극적인 음식을 먹는 장면으로 막대한 수입을 올린다. 심지어 세계인에게 유튜브에서 케이팝과 함께 대표적인 한류 콘텐츠로 여겨다. 아예 고유명사가 되어 외국에서도 'Mukbang'이라고 표기할 정도란다.

먹방 유행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기는 견해가 있다. 인간이 본래 먹는 행위에 높은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인류가 이 세상에 나타난 이래 가장 강력한 본능이 식욕이므로 당연히 끌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복잡한 세상살이에서 벗어나 본능에 충실하게 자기만족을 구하는 행위가 문제 될 게 없다는 논리다.

‘만찬’ = 로마 시대 모자이크, 3세기 작품.
‘만찬’ = 로마 시대 모자이크, 3세기 작품.

먹방은 본능의 산물인가?

맛있고 푸짐한 음식을 즐기려는 식탐이 본능이기에 먹방 신드롬도 문제 될 게 없을까? 흔히 로마 만찬이 식탐의 대명사로 통한다. 고대 로마의 모자이크 회화인 <만찬>은 왕성한 식욕의 전형을 보여준다. 평상에 올라가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먹고 마셨다. 보통 아홉 명이 모이는 경우가 많았다. 식탁 주위에 세 개의 평상을 놓고 세 사람씩 올라갔다. 만찬은 몇 시간 이상 지속됐고, 밤을 새워 먹고 마시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림에서도 노예들이 비어 있는 식탁에 새로운 음식을 나르고, 한편에서는 와인을 계속 따르는 중이다. 바닥에는 먹고 버린 뼈다귀들이 가득해서 이미 여러 차례 식탁에 새로운 음식이 올라갔음을 알 수 있다. 바닥에 버려진 뼈를 보면 소·돼지·오리 등 육식류만이 아니라 물고기·조개 등 다양한 음식이 지나쳐 갔다.

몇 단계 순서에 따라 음식이 나왔다. 삶은 계란으로 시작하여 굴·문어·야채를 곁들인 요리, 식용 달팽이를 양파·버섯을 이용해 조리한 음식이 나왔다. 이어서 게·새우·가재로 만든 경단이 나오곤 했다. 아직 본 음식은 시작도 안 했다. 메인 요리는 주로 굽고 찌거나 튀긴 요리였다. 광어·숭어·철갑상어 등의 생선이 식탁을 채우고, 다음으로는 멧돼지나 어린 양·염소를 통째로 구워 내놓았다. 마지막으로 사과를 비롯한 과일로 식사를 마무리했다.

로마의 만찬과 한국의 먹방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로마의 만찬은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부유한 귀족이 풍성한 음식과 술로 파티를 열었다. 일반 로마 시민은 거친 곡식으로 매일 끼니를 때우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귀족 사이에서의 호사였다. 로마의 성대한 만찬은 본능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라 부와 지위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먹방은 부의 정도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계층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값비싸고 희귀한 음식으로 흥청망청하는 소수 부자만의 잔치가 아니다. 물론 쉽게 접하기 어려운 귀한 음식도 가끔 등장한다. 하지만 서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음식인 경우가 많다. 휴게소나 길거리 음식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배달 음식으로 식탁을 가득 채우기도 한다. 가히 온 국민적인 현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먹방의 심리적 요인

먹방은 대중매체 안의 가상 세계가 아니다. 대도시든 중소도시든 음식점으로 가득하다. 도심지나 유흥가에 한정되지도 않는다. 동네마다 음식점이 즐비한 골목이 있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먹자골목’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사용될까. 대중매체의 ‘먹방문화’는 실제 생활에서의 ‘먹자문화’와 한 쌍을 이룬다.

자연스러운 본능이라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통으로 나타나야 한다. 외국인들이 한국 먹방을 신기하게 여기고,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은 새벽까지 왁자지껄한 먹자골목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진기한 현상이다. 역사적으로도 전통사회에서 내려온 관습과 무관하다. 지난 이삼십 년 사이에 생겨난 신드롬이다. 본능보다는 수십 년 사이의 사회 변화나 심리 상황에 맞물려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본능과 아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먹는 행위이니 식욕과 연결된다. 육체적 욕망도 에너지의 일종이라면 에너지 보존의 경향이 작용하리라는 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억압된다고 해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사라져버리지는 않는다. 한쪽이 과도하게 눌리면 다른 쪽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르는 풍선효과가 생긴다.

인간의 본능 욕구로 세 가지를 꼽는다. 수면욕·성욕·식욕이다. 먹방으로 상징되는 비정상적인 과잉은 풍선효과의 결과가 아닐까? 한국인의 수면욕은 늘 결핍 상태다. 입시 때문에 십여 년에 걸쳐 몸이 요구하는 잠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 성인이 되어 직장 생활을 해도 마찬가지다. 장시간 노동에서 OECD 최선두에 서 있기 때문에 늘 잠 부족에 시달린다.

성욕이 맞닥뜨린 사정도 별로 다르지 않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니 ‘N포세대’니 하는 말이 집단의 정체성으로 통한다. 일본과 함께 섹스리스를 대표하는 나라다. 성을 부도덕한 무언가로 보는 사고방식이 여전하다. 영화나 드라마, 예술 영역에서 성적인 표현에 상당한 제한이 강요된다. 성욕은 한국 사회에서 아직도 시민권을 얻지 못했다.

한국은 수면욕과 성욕이 억압된 상태에서 허용된 본능이 식욕 하나뿐인 사회다. 먹방문화와 먹자문화에는 이렇듯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프로이트는 본능적 욕구가 억압되면 무의식 속에 똬리를 튼다고 한다. 의식의 표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면서 꿈이나 실수 행위 등을 통해 드러난다. 심하게 억압되어 출구를 찾지 못할 때 신경증에 도달한다.

한국의 수면욕과 성욕의 억압은 개인이 감수해야 하는 특수한 사정을 넘어 집단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먹방이 혹시 일종의 사회적인 심리, 집단적인 신경증 증상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자꾸 머리를 맴돈다. 기형적인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비정상적인 현상, 기형적이면서 슬프기도 한 심리적 자화상 말이다.

 

박홍순 : 인문학·사회학 작가로, 《미술관 옆 인문학》, 《헌법의 발견》, 《생각의 미술관》, 《나이든 채로 산다는 것》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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