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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 4화] 그는 종종 덤으로 붕어빵을 한 개씩 더 주기도 한다

이종원 연재소설

  • 기자명 편집부
  • 입력 2021.01.0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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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부터인가 그 소녀는 아무 때고 불쑥 불쑥 찾아와서 붕어빵을 샀다. 보통 학생들은 하교 무렵 아니면 저녁에 학원에 가거나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르게 마련인데, 얘는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났다. 이 단골고객은 중학교 일이학년쯤 되어 보였는데, 늘 얼굴은 하얗게 분칠을 하고 입술은 진한 빨강으로 바르고 있었다. 그는 소녀를 볼 때마다 일본의 전통 공연예술에 등장하는 얼굴은 새하얗고 입술은 새빨갛게 분장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래서 그는 소녀를 가부키라고 명명했다.

전에는 하교 후 혹은 초저녁 무렵에나 가끔 오던 아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분명히 학교 수업이 끝나지 않았을 점심시간 무렵에 붕어빵을 사러 나타났다. 그는 이 아이가 학교를 무단탈출 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지만, 현장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었다. 다만 가부키가 붕어빵이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무릎과 손바닥의 약간 까진 상처를 보고 투덜대는 모습을 보면서 담치기의 흔적을 발견했고, 그는 아무 말 없이 소독약과 솜, 그리고 일회용 밴드를 건네주었을 뿐이었다.

그가 어두운 밤중에 쓰레기봉투를 뒤지다 보면 간혹 깨진 유리 같은 것에 베이기도 하는데, 그럴 때에 응급조치용으로 쓰려고 늘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소녀는 동그란 눈을 똑바로 뜨고 그를 잠시 바라보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하고는 어설픈 솜씨로 상처를 치료한 후 붕어빵 봉지를 쥔 채 학교 쪽으로 달려갔다. 그 소녀는 담치기에 별 소질은 없는 듯 했다. 후에도 몇 번이나 그의 비상의약품을 축냈다. 그러나 담치기는 꾸준히 계속했다.

그날도 가부키는 붕어빵 한 봉지를 사고 덤으로 얻은 한 개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너무나 맛이 있었는지 단팥이 입가에 묻은 줄도 모르고 봉지 속의 것을 하나 더 꺼내 먹은 후, 늘 하는 대로 ‘또 올게요.’ 라고 인사를 하고는 떠나려고 했다. 그는 손을 번쩍 들어서 가부키에게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티슈를 한 장 건네주었다. 입 주위를 닦는 시늉을 해 보이자 가부키는 멋쩍은 듯 히히 웃으며 입가를 닦고는 학교 방향으로 내달렸다.

이제 가부키는 그의 티슈까지도 축내기 시작했다.

가부키가 떠나자마자 그의 티슈를 종종 축내는 또 다른 손님이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헤헤.”

옥탑방 폐인이었다. 이 건물 이층은 고시원이고 그 위 옥상에는 그가 주방 겸 창고로 쓰는 작은 공간과 그 옆에 옥탑방이 하나 있는데 이 친구는 거기에 살고 있었다. 그는 반죽을 하거나 팥을 삶으러 혹은 밀가루 등의 재료를 쌓으려고 옥상에 수시로 드나드는데, 그 때 반쯤 열린 창문으로 들여다보이는 이 폐인의 모습은 늘 한결같았다. 항상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쉴 새 없이 키보드를 두드려 대고 있는 일관된 모습.

하지만 폐인의 모습이 늘 같은 것처럼 보여도 자세히 관찰해보면 두 가지로 나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한참 후였다. 헤드폰을 끼고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인데, 헤드폰을 끼고 있을 때의 모니터에는 화려하고 복잡한 영상이 가득하지만, 헤드폰을 끼지 않을 때의 모니터에는 영어 알파벳과 기호 같은 것들로 꽉 차 있었다. 그것이 게임을 하는 중 아니면 프로그래밍을 하는 중으로 나뉜다는 것을 그는 나중에야 알았다.

여하튼 그가 기억하는 폐인의 모습은 늘 열 손가락 중 어느 하나 이상은 항상 키보드나 마우스에 붙어 있는 것이어서, 그는 폐인이 붕어빵을 잡고 있는 손을 볼 때 가끔 붕어빵이 마우스로 보이는 환각 비슷한 것을 느끼기도 했다.

“오늘은 몇 명 찍으셨어요?”

붕어빵을 한 입 베어 문 폐인은 견고하게 매달려서 차도를 노려보고 있는 그의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물었다. 폐인의 입가에는 벌써 단팥이 묻어 약간 흐르고 있었다. 그는 폐인에게 티슈 한 장을 건네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좋은 일이네요. 헤헤. 무단횡단 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좋은 거 아닌가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아직까지 없었을 뿐이지 무단횡단이 없어지지는 않더군, 이렇게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폐인이 무릎 튀어나온 츄리닝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저도 요즘 아저씨처럼 사진을 찍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근래에 폐인이 옥탑방에서 나와 뭘 사러 가거나 할 때면 스마트폰으로 여기저기를 찍으면서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본 것 같기는 했다.

“사진을 찍으니까 재미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요즘은 전보다 집에서 좀 더 자주 나오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그 바람에 게임하는 시간을 좀 뺏기기는 하지만. 헤헤.”

그는 약간 나사 빠진 것처럼 보이지만 선한 웃음을 입가에 달고 사는 이 폐인에게 여느 때처럼 붕어빵 한 개를 덤으로 더 주었다. 폐인은 멋쩍은 미소와 특유의 헤헤 웃음으로 감사를 표시하고는 자신의 아지트로 돌아갔다.

그는 금요일과 토요일 밤 경찰 지구대로 향한다

“오셨어요?”

그가 지구대 문을 밀고 들어가자마자 바로 앞에 앉아있던 김경장이 반갑게 인사했다. 그는 그저 고개만 한번 까딱 해 주고는 주위를 휘 한 바퀴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아직은 별 문제 없이 조용한 상태인 것 같았다.

“아이고, 우리 동네 지킴이 오셨네. 이거 번번이 폐를 끼쳐서 어떡하나?”

나이 지긋한 박경사는 늘 이런 말로 그를 맞이한다. 그는 박경사를 힐끗 한 번 쳐다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른 모든 지구대원들이 이런 저런 인사말과 손짓 등으로 그를 맞았다. 그는 특유의 무미건조한 표정을 모두에게 잠시 보여주고는 바로 화장실로 쪽으로 향했다.

지구대와의 인연은 아주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이 목격한 도시질서파괴자들을 신고하기 위해 현장에서 경찰을 부르거나, 아니면 그들을 데리고 지구대에 오곤 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구대의 단골손님이 되었고 당연히 지구대의 모든 경찰관들은 그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와 길게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마치 서부영화에 나오는 총잡이가 현상수배범을 체포해 보안관에게 휙 던져주고 현상금을 챙겨 유유히 사라지듯, 도시질서파괴자들과 그들의 만행이 담긴 사진 혹은 영상을 증거물로 전달하고는 휙 등을 돌려 사라지곤 했다. 가끔 ‘수고들 하십시오.’ 정도 내뱉은 날은 그가 매우 많은 말을 한 날에 속했다.

그런데 그날 밤은 여느 때와는 상황이 좀 달랐다. 장사를 마치고 뒷정리를 막 끝낸 그의 눈에 무단횡단이 목격되었고,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그가 해야 할 일을 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무단횡단을 하고는 현장에서 도망치려다가 그에게 제지당한 범인은, 거의 모든 취한 사람들이 그러하듯 순순히 범행을 시인하지 않고 도리어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외계어를 내뱉으면서.

“니이이가 무우어언데에 나아암의 아아프을 마아아꼬 지이라아리야아!”

그는 그 외계어를 알아들었지만 그냥 무시하고, 늘 하던 대로 단축키 1번을 지그시 눌러 지구대와의 연결을 시도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외계인을 지구 경찰에게 인계해야만 했다. 바로 그 때였다.

‘퍽!’

갑자기 그의 눈에서 불이 번쩍 튀었다. 동시에 귀에 외계어가 꽂혀왔다.

“비이이 켜어어 이이 캐애애 새애애키이야아아!”

잠시 후 그들은 함께 지구대에 있게 되었다. 도시질서파괴범죄에 폭행죄가 추가되려는 순간이었다.

“어휴, 눈이 많이 부으셨네요. 코피는 이제 멎은 것 같구요.”

김경장이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그러나 연이어 여기저기서 전화벨이 울려대고 김경장은 양손으로 수화기를 집어 들며 응대하기에 바빠져서 그들의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는 눈 주위를 한번 슬쩍 문질러 보고는 콧구멍에 박힌 휴지를 뽑아냈다. 흠흠 콧김을 불어보니 코피는 더 이상 나지 않는 것 같았다.

“내애애가아아 누구우운지 아러어어어? 노오오프으은노오옴 오라아구우래애 씨이이파아아알!”

그 도시질서파괴 및 폭력범은 여전히 외계어를 고래고래 내지르며 거칠게 팔다리를 휘젓고 있었고 그걸 제지하느라 박경사와 의경 하나가 땀을 뻘뻘 흘리는 중이었다.

그러나 지구인 두 명이 도시파괴 및 폭력을 서슴없이 자행한 극악무도한 외계인 하나를 제압하는 데에는 다소 역부족인 듯 했다. 지구인의 통제를 벗어난 외계인의 왼쪽 다리가 공중에서 버둥거리며 지구인들을 마구 걷어차고 있었다. 다른 모든 경찰들은 신고전화나 무전을 받고 있거나 외부에 출동 중이었다. 지구의 위기를 감지한 그가 얼른 달려들어 외계인의 왼쪽 다리를 양손으로 움켜잡았다.

그의 합세에 힘입어 외계인의 버둥거림이 잦아들었고, 드디어 지구가 외계인의 난동으로부터 안정을 되찾은 감격스러운 상황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곧 외계인은 다른 방식으로 지구인들을 공격했다.

‘우웨에에엑!’

전투를 벌이던 모든 지구인들은 일시에 그 외계인에게서 손을 떼고 화들짝 뒤로 물러났다. 외계인의 이 마지막 공격은 그 정도로 매우 강력했던 것이다. 최후의 일격을 가한 외계인은 마치 치열한 백병전을 마치고 마지막 순간을 장렬하게 맞이하는 병사처럼 벤치에 옆으로 고꾸라진 채 몸을 푸득거리며, 이제는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를 나지막하게 읊조리고 있었다. 유언이라도 하는 듯이.

“으어어어어 푸우우우우우 웨에에에....흐으으...”

그리고는 마침내 숨을 거두었, 아니 잠에 곯아 떨어졌다. 드디어 지구에 평화가 다시 찾아왔다.

그러나 그 평화는 겨우 몇 초간만 지속될 수 있었다.

우당탕탕. 지구대 문이 거칠게 열렸다.

“저 새끼가 나를 먼저 때렸다니까!!”

“니가 먼저 쏘주잔 집어던졌잖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과 한 무리의 사람들이 뒤엉켜서 지구대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경찰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장이라도 다시 치고 받을 듯 서로 으르렁대고 있었다.

바로 그 뒤를 따라 두 젊은 여성이 울며불며 뛰어 들어왔다. 이상한 놈들이 자기네를 막 붙들고 늘어진다면서 빨리 잡아달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방금 전까지 외계인과의 사투를 벌이던 박경사는 그 이상한 놈들을 잡으러 지구대 밖으로 달려 나갔고, 박경사를 도와 지구를 구하던 의경은 이제 패싸움꾼들 사이에 서서 그들을 가로막느라 바빴다. 각종 신고로 전화벨은 쉴 새 없이 울어대고 무전기는 계속 치이치익 거리면서 어디 지원바람 뭐 이런 요청을 계속 쏟아냈다.

거의 아수라장이었다. 금요일 밤의 지구대는.

그는 이 아수라장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난장판을 우회해서 화장실 쪽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 그의 손에는 휴지와 걸레 등이 들려 있었다. 그는 길길이 날뛰는 사람들 사이로 요령껏 움직이며 아까 외계인이 그를 향해 쏟아 부은 폭탄의 잔해를 닦아냈다.

청소가 끝날 무렵, 여성 외계인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음냐음냐라는 외계어를 중얼거리면서 경찰의 등에 업혀 지구대로 실려 왔다.

“아이 씨, 차에서 토했어. 바빠 죽겠는데.”

외계인을 업어서 이송해온 경찰의 입에서 한숨 섞인 푸념이 흘러나왔다.

그는 새 휴지와 걸레를 챙겨서 문이 열린 채 세워진 순찰차로 향했다.

이날 이후,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밤이면 휴지와 걸레 등 청소도구를 들고 지구대 안팎을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정말 바빠 보였다.

 

작가 이종원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했다. 4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배달원, 청소부, 상점점원, 회사원 그리고 택시운전까지 약 10년간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아이를 기르고 조용하게 지냈다.

30대 초반 쯤에 막연히 이다음에 나이가 들면 한 번쯤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세 가지 일 - 수염 기르기, 택시운전, 그리고 책 펴내기를 미국 땅에서 실천에 옮겼다.

2017년 첫 번째 장편소설 ‘용기가 필요하다’에 이어 2019년 4월 두 번째 장편소설 ‘붕어빵’을 발간했으며, ‘다래’라는 이름의 1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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