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본문영역

[박홍순의 모래알 ⑩] 전문가라는 완장

박홍순 / 작가

  • 기자명 편집부
  • 입력 2021.01.14 14: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차하는 철로’ = 페르낭 레제(Ferdinand Leger), 1919년.
‘교차하는 철로’ = 페르낭 레제(Ferdinand Leger), 1919년.

전문가가 아닌데 어떻게……

전업 작가로 살아온 날이 아주 길지는 않지만 그래도 십여 년은 넘었다. 또한 참 다양한 자리에서 여러 계층의 사람을 상대로 강연 기회를 가졌다. 그런데 과거나 지금이나 출판이나 강연 관련하여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데 어떻게 책을 쓸 생각을 했나요?” 처음에는 나름대로 이런저런 설명을 했다. 이제는 하도 여러 번 들은 말이어서 그냥 웃고 넘기는 경우가 많다. 글이건 말이건 사람들의 판단 기준이 내용 이전에 전문가 여부에 두어진다. 전문가라면 일단 권위부터 인정한다.

프랑스 화가 페르낭 레제의 <교차하는 철로>는 전문가에 대한 생각을 보여주는 듯하다. 여러 개의 선로가 교차한다. 많은 지역으로 연결된 철로가 모이는 교통 중심지의 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뒤죽박죽 섞여 있다. 기계적 장치로 선로를 열거나 닫아서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도록 유도한다. 자칫 잘못된 길로 향하면 대형 사고가 발생한다. 탈선하거나 다른 기차와 충돌할 테니 말이다.

그림 중앙의 화살표가 인상적이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는 여러 개의 원으로 만들어진, 활터나 사격장에서의 표적 같은 모양이 있다. 난마처럼 얽힌 선로들의 숲에서 선명하게 방향을 제시해준다. 지시된 대로 따라가면 오류나 위험 없이 목적지에 도달하리라는 신뢰의 분위기를 풍긴다. 마치 주변에 암초들이 가득한 어두운 밤바다에서 배가 가야 할 방향을 안내하는 등대처럼 우리에게 안도감을 안겨준다.

전문가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기대하는 역할도 비슷하다. 사회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관련 분야 전문가에게 의존한다. 이들이 복잡한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진단해줄 것으로 믿는다. 미로를 빠져나가는 길, 그것도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해주리라 여긴다. 지금 당장 무엇을 하면 어떤 효과로 연결되는지를 알게 해준다고 예상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의 해법과 조언을 따르면 될 일리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TV 뉴스의 해설이나 토론 프로그램의 토론자로 각 분야의 공인된 전문가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주변에서는 다소곳이 경청하는 분위기다. 신문의 짧은 칼럼이라 해도 전문가 이름표를 달아야 한다. 어느 대학의 교수이거나 최소한 박사 학위 하나쯤은 갖춰야 한다. 석사 학위로는 무시당하기에 십상이다. 하물며 대학에서 관련 전공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전문가’
‘전문가’

전문가라는 완장

<전문가>는 전문가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단어들을 나열해 놓았다. 통념적으로 떠올리는 주요 역할과 관련하여 조언, 의견, 제안, 상담 등의 단어 조합이 가능하다. 이를 가능케 하는 조건도 추려볼 수 있다. 진실, 지식, 인증된 설명, 근거, 경력, 권위 등의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충실한 근거를 통해 진실에 가까운 지식을 우리에게 논리적으로 전달하리라 믿는다. 학위나 직함을 통해 획득한 경력과 권위가 어딘가 무게감을 제공한다. 그 의견에 따름으로써 도달할 결과로서는 성장, 성공 등이 있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자신을 향한 시선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압권은 전문가로서의 자신과 전공 학위가 없이 지식으로 소통하는 사람을 ‘지식 소매상’으로 구분하는 데서 나타난다. 넓은 지식을 쉽게 요약 정리하는 능력으로 유통 분야에서 소질을 발휘한다. 단지 말재주로 지식을 포장하여 대중적인 재미를 선사하는 역할에 머문다는 발상이다.

지식을 단지 ‘판매’하는 소매상과 구분하는 데서 전문가의 가장 큰 특성을 지식 ‘생산’에 두고 있는 듯하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가며 생산하는 자신들의 권위 아래에서만 지식 소매상의 활약도 가능하다. 판매자들은 언제나 생산자에게 의존하고 심사를 받아야 하는 하위 파트너에 불과하다. 전문가라는 완장을 찬 느낌이다.

지식을 ‘생산’한다는 게 뭘까? 단순히 글을 쓰는 일은 아니다. 집필이야 지식 소매상들도 얼마든지 하는 작업이니 말이다. 글이나 말은 판매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일종의 흉내를 내는 작업이다. 생산은 포장 작업이 아니라는 점에서 독창적인 내용을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 적어도 인문학·사회학 분야에서 순수한 의미에서 독창적인 이론을 제시한 한국의 전문가가 얼마나 있을까? 내 생각으로는 지극히 회의적이다. 외국의 이론을 소개하거나 약간의 의견을 덧붙이는 정도에 머문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지식이 본래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흔히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다고 한다. 지식이야말로 이 말에 딱 들어맞는다. 특히 인간의 정신과 삶을 다루는 인문학·사회학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지식 능력은 이미 있는 내용과 내용 사이에 연결을 맺어주고, 그 과정에서 자기 생각을 약간 첨가하여 가공하는 능력일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글이나 말에 자기 생각이 10%만 들어가 있어서 대단한 작업일 것이다.

지식을 생산하는 사람과 판매하는 사람으로 구분하는 발상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더욱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지식 제공자로서의 지식인과 수용자로서의 대중으로 구분하는 상식 자체가 별로 설득력이 없다. 하물며 지식인 내부에서 다시 층위를 구분하는 발상은 더욱 허무한 일이다. 전문가라는 빛바랜 완장을 차고 어깨에 잔뜩 힘을 주는 우스꽝스러운 광대 짓일랑 이제 그만 내려놓자.

박홍순 : 인문학·사회학 작가로, 《미술관 옆 인문학》, 《헌법의 발견》, 《생각의 미술관》, 《나이든 채로 산다는 것》 등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