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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순의 모래알 ⑪] “이 나라가 기재부 나라냐?”

박홍순 / 작가

  • 기자명 편집부
  • 입력 2021.02.13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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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 포스터.
기획재정부 포스터.

속 시원한 한 마디?
행정 각부의 업무를 총괄하고 국무위원을 통솔하는 국무총리가 “이 나라가 기재부 나라냐?”라고 역정을 낸 일로 며칠간 우리 사회가 떠들썩했다. 이례적일 정도의 날 선 비판에 대해 속이 다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꽤 많았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이후 전 국민 대상 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럴 때마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며 찬물을 끼얹은 곳이 바로 기획재정부였다. 

화수분은 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로, 온갖 물건을 담아 두면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다고 한다. 기재부가 제동을 걸고 나선 결과 한국은 지난 1년 동안 비슷한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 가운데 정부 지원금 지출이 가장 적었다. 

최근 3차 대유행으로 큰 피해를 본 자영업자의 손실을 보상하는 제도개선 방안을 만들라고 공개 지시하는 과정에서 기재부가 난색을 보이자 강하게 경고한 것이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기재부 장관은 다시 별일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화수분 운운했다. 주류 언론에는 국무총리가 차기 대통령 후보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로 여기는 평가들이 줄을 이었다. 

혹은 대통령 임기 후반부에 공직사회 레임덕 조짐을 차단하려는 의도에서 과장된 표현을 했다는 식이었다. 

기재부의 나라가 아님을 똑똑히 알라는 말이 오히려 다른 진실로 우리를 인도한다. 본래는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권력이 중심이고 정부 부처와 관료는 결정에 따른다는 의미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의도와는 반대의 진실이 담겨있다. 강조하고자 했던 바와는 달리 ‘이 나라는 관료들의 나라다.’라는 점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선출직 정치인들을 관료라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부표로 보는 게 더 정확할지 모른다. 부표는 바닷물이 움직이는 대로 출렁거린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4~5년에 한 번 선거를 통해 자리에 오른다. 

특히 한국 대통령은 단임제이기 때문에 5년 후에는 물러날 사람이다. 정치인들이 정책 결정을 하고 관료들이 따르는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관료들이 올린 두어 개의 정책 대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 

한국에서 고유하게 나타나는 상황이 아니다. 또한 독재체제나 권위주의 통치세력 아래에서의 특수한 양상도 아니다. 관료의 지배는 현대국가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미국과 유럽처럼 민주주의 제도가 고도로 발달한 국가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난다. 겉으로는 선출된 정치인들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실질적으로 국가를 움직이는 힘은 은밀하게 움직이는 관료집단에서 나온다. 

라이트 밀스 '파워 엘리트' 표지
라이트 밀스 ‘파워 엘리트‘ 표지

현대국가의 권력 중심에는 관료들이 있다
이미 20세기 중반에 미국 사회학자 라이트 밀스는 《파워 엘리트》에서 은밀하지만 실질적인 권력을 분석했다. 

“시대 상황이 맞물리면서 파워 엘리트가 부상하도록 만들었다. (…) 권위는 형식상 ‘국민’에게 있다. 그러나 발의 권한은 사실상 작은 집단들에게 있다. 조작의 표준적인 전략은 큰 집단의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것처럼 보이도록 꾸민다.”

시대 상황이란 거대 국가의 출현이다. 수천만 명이 넘는 구성원을 가진 국가체제를 만들었다. 필연적으로 권력 기구는 확대되고 중앙으로 집중되는 피라미드 구조를 갖게 된다. 관료들이 수직적인 피라미드의 각 층을 채운다. 

규모가 큰 만큼 연결망은 거미줄처럼 촘촘하다. 업무가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면서 일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데만 몇 년이 걸린다. 관련 업무를 장기간 일상적으로 처리하는 관료가 아닌 한 일의 장악이 불가능에 가깝다. 

정책 결정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정부 정책은 막연한 구상이나 추상적 이론이 아니기 때문에 관료에 의한 실행과정 사전 검토 없이는 입안 자체가 곤란하다. 실질적인 ‘발의의 권한’은 관료라는 ‘작은 집단’에 있다. 

먼 거리에서 볼 때는 선출직 책임자와 대의기관을 통한 국민 결정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관료의 의사가 가장 크게 반영된다. 결국 민주주의 형식이란 ‘조작의 표준적인 전략’에 의해 움직이는 틀이 되어버린다. 

문제는 민주주의 제도가 발달한다고 해서 관료의 힘이 약화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탈리아 정치학자 노르베르토 보비오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서 지적한 다음 내용은 현실에서 거의 그대로 나타난다. 

“민주국가와 관료국가는 매우 날카롭게 대조적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이 둘은 역사적으로 훨씬 긴밀한 상호 연관성을 지녀왔다. 보다 민주주의적으로 변해간 모든 국가는 동시에 관료주의적으로 되어갔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대부분의 민주국가에서 관료기구는 지속적으로 팽창되어 왔다. 민주국가에서 요구되는 복지기능 확대도 관료기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고용보장제도, 노후연금제도, 의료보험제도, 공공주택제도, 출산과 육아 관련 제도 등은 복지 확대를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이 모든 기능은 관료조직 확대를 동반한다. 관련된 정책 결정 과정에서 관료들의 영향도 증가한다. 

관료들은 주로 누구의 이해를 대변하는가? 당연히 경제적 관계가 가장 크게 작용한다. 당장 이익은 물론이고, 퇴직 후 거액의 연봉을 보장해주는 기업의 영향이 다른 무엇보다도 강하게 작용한다. 

그러므로 “기재부 나라냐?”라는 말은 불쑥 튀어나온 정치적인 수사나 과장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한국 정치 나아가 현대 민주주의가 맞닥뜨린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짧은 칼럼이기에 구체적 방안은 무리이겠지만, 해결 방향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관료의 힘이 수직적인 거대한 피라미드 관료조직으로부터 생겨나기에, 해결은 엄격하게 위계화된 절차주의를 약화시키는 방향에서 온다. 

이를 위한 가장 유력한 길이 분권과 자치의 확대다. 또한 관료제의 동력인 비밀주의를 약화시키는 방향이다. 정보공개를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일상적으로 제도화하는 길이다. 

 

박홍순 : 인문학·사회학 작가로, 《미술관 옆 인문학》, 《헌법의 발견》, 《생각의 미술관》, 《나이든 채로 산다는 것》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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