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본문영역

[박홍순의 모래알 ⑫] “파워는 거짓말에서 나오지!”

박홍순 / 작가

  • 기자명 편집부
  • 입력 2021.02.22 16:3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씬시티’의 한 장면, 2005년.
영화 ‘씬시티’의 한 장면, 2005년.

영화가 보여준 권력의 속살

미국 영화 ‘씬시티’는 강렬하고 충격적인 범죄 장면으로 유명하다. 명암 대비가 극단적일 정도로 뚜렷한 흑백 영상이 관객을 화면으로 빨아들인다. 폭력으로 얼룩진 이야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의미심장한 장면이 눈길을 끈다. 씬시티의 부패한 지배자인 상원의원 로어크가 범죄 도시에 마지막으로 남은 정의로운 형사 하티건에게 증오를 담아 건네는 말이다.

“방아쇠를 당기면 파워풀하게 느껴지나? 파워란 그런 배지나 총에서 나오는 게 아니야. 파워는 거짓말에서 나오지. 크게 거짓말해서 세상 전체가 함께 놀아나게 해야지. 일단 사람들 가슴속으로 알던 게 진실이 아니라고, 모든 사람이 동의하게끔 만들어야 하는 거야.”

‘배지’니 ‘총’은 통념적으로 권력의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배지’는 지위, ‘총’은 물리적인 힘을 상징한다. 영화적인 설정을 넘어 현실의 의미로 넓혀 이해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지위는 선출이든 임명이든 지배적인 위치를 통한 권력 행사다. 물리적인 힘은 감시·통제·처벌할 수 있는 군대·경찰·감옥 등의 강제 장치를 말한다.

대부분 이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씬시티의 노련한 지배자는 전혀 다른 답을 내놓는다. 권력은 거짓말에서 나온다. 대신 다수를 속일 정도로 큰 거짓말이어야 한다. 근대 이전 전통사회에서의 권력은 분명 신분이라는 지위와 무자비한 폭력이 가장 중요한 기반이었다.

하지만 민주주의 절차가 제도로 자리 잡은 사회에서는 더 이상 과거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기가 어려워졌다. 일시적으로 권력을 장악할 수는 있으나 국민적 저항에 의해 오래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여러 경험으로 확인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체주의적이거나 권위적인 지배 욕구가 사라진 것은 전혀 아니다. 실현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지위와 폭력이 아니라,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 절차를 통해 이루어져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다수가 지배세력의 욕구에 ‘동의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다수의 동의에 기초한 전체주의나 권위주의 실현이다. ‘뜨거운 아이스크림’처럼 형용모순처럼 느껴지지만 지극히 현실적이다. 히틀러의 나치가 국민적 동의와 다수결의 선거에 기초하여 파시즘을 실현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간다.

그런데 어떤 바보가 전체주의의 노골적인 민낯을 보면서도 쉽게 수긍하고 따르겠는가. 국민의 기본 권리를 제한하는 방식의 통치를 다수가 동의하게끔 만들기 위해 가능한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속이는 것, 바로 거짓말이다.

물론 과거에도 통치세력의 거짓말은 있었다. 하지만 부차적이거나 여러 통치수단 가운데 일부분이었을 뿐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이 거짓말이 가장 중요한 통치수단이 되었다는 점에서 성격이 달라진 것이다.

크리스 존스톤(Chris Johnston), ‘거짓말 정치인들’, 2015년.
크리스 존스톤(Chris Johnston), ‘거짓말 정치인들’, 2015년.

거짓말의 얼굴은 여러 개다

민주주의 제도가 정착된 나라도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다. 크리스 존스톤의 만평 ‘거짓말 정치인들’은 꽤 안정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조차 늘 거짓말 논란에 휩싸여 왔음을 보여준다.

그림 속의 인물은 노동당 대표 빌 쇼튼이다. 집권세력인 자유당은 지지율이 큰 폭으로 떨어지고, 노동당 지지율이 바짝 추격하는 추세가 이어지자 빌 쇼튼에게 대대적으로 정치 공세를 퍼부었다.

자유당의 비난은 주로 거짓말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요지는 쇼튼이 자신의 이중국적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거짓말을 해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쇼튼은 의회의 면책특권을 빌미로 한 마구잡이 의혹 제기도 최소한의 증거와 타당성을 갖춰야 한다며 반박했다.

한국의 의회와 언론에서 흔히 만나는 논란과 거의 판박이로 닮아있다. 그림을 보면 쇼튼의 코가 길다. 벽에 줄지어 서 있는 석상의 코 길이를 재고 있다. 하나같이 긴 코를 갖고 있다.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에 빗댄 것이다. 코 길이가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피노키오를 뺨칠 정도로 대단한 거짓말쟁이들이다.

어떤 사람들일까? 맨 오른쪽은 자유당 보수연립 대표로서 직전까지 총리를 지낸 토니 애벗이다. 왼쪽으로는 차례로 그 이전에 총리를 지낸 인물들이다. 노동당 대표로서 총리를 역임한 캐빈 러드와 역사상 첫 여성 총리였던 줄리아 길러드, 오랜 기간 보수연립 지도자이자 자유당 당수였던 존 하워드가 있다.

어디냐를 가리지 않고 정치 지도자와 정당 모두가 거짓말쟁이라는 내용이다.

씬시티의 지배자 로어크 말대로 “크게 거짓말해서 세상 전체가 함께 놀아나게” 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거짓말 기술만으로 불가능하다. 거짓말을 대규모로 전파하는 도구가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사실이라고 믿을만한 신뢰를 주는 교묘한 도구여야 한다.

바로 TV와 신문 등의 대중매체다. 막대한 자본을 동원해야 운영할 수 있는 전통 언론은 부와 권력을 장악한 집단이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도구다. 거짓말을 퍼뜨려 다수의 동의를 끌어내는 주요 통로다.

그러한 의미에서 ‘가짜뉴스’는 일부 언론의 일탈이 아니다. 스스로 거대 자본이고, 기업 광고비에 의존하는 한 전통적 언론의 본질에 해당한다.

다수가 거짓말을 믿지 않으면 될 일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순진한 생각이다. 몽테뉴가 ‘수상록’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내용은 충분히 경청할 만하다.

“진실과 같이 거짓말에도 얼굴이 하나밖에 없다면 사정은 더 나아질 것이다. 거짓말쟁이의 말을 반대로 생각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짓말은 수없이 많은 얼굴과 무한한 벌판을 가지고 있다.”

사실은 하나이지만 거짓말은 수십, 수백 개로 나타난다. 때와 장소, 상대에 맞게 변조된다. 의심받는 상황이 되면 또 다른 가면으로 바꿔 쓰고 나타난다. 게다가 한 언론이 아니라 다수 언론이 같은 내용을 반복 재생산하기 때문에 거짓말의 늪에서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다.

거짓말이 현대정치의 본질에 속하기에 정치를 불신하거나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사실과 거짓의 구별을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정치를 주시하고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선한 국가’와 ‘도덕적인 정치’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그 자체로 실체라기보다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계급과 계층 간 이해 다툼과 타협의 장이다.

국가와 정치를 선하게 만드는 것은 무지개를 좇는 일만큼이나 허망하다. 도덕의 잣대로 정치를 바라볼수록 현실은 미궁에 빠지고, 정치에 대한 불신·무관심이 늘어난다.

마키아벨리가 근대 정치의 분기점을 마련했고, 지금도 우리가 그에게서 배워야 할 게 있다면, 다름 아니라 그가 정치를 도덕의 영역에서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내렸다는 점이다.

박홍순 : 인문학·사회학 작가로, 《미술관 옆 인문학》, 《헌법의 발견》, 《생각의 미술관》, 《나이든 채로 산다는 것》 등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