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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백신으로 확산세 줄어도 ‘변이’ 유입 “골머리”

초기 실수 누적...‘해외발 변이’ 늘며 “방역시스템 곳곳에 허점”
의료수준·백신 과신, “방역·검역·역학 조사는 상식 이하 수준”

  • 기자명 김선태
  • 입력 2021.03.05 01:25
  • 수정 2021.03.0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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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설된 대형 코로나19 백신 접종센터 찾은 존슨 영국 총리 / 사진=연합뉴스
신설된 대형 코로나19 백신 접종센터 찾은 존슨 영국 총리 / 사진=연합뉴스

[시그널=김선태 기자] 영국이 허술한 방역시스템 탓에 늘어나는 해외발 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아스트라제네카 예방접종을 시작한 뒤, 이 나라의 일일 확진자 수가 눈에 띄게 감소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일이다. 

백신 선제 투입해 확산세 줄였어도 “낙관 못 해”
지난 2월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확진자 감소 추세에 자신감을 얻은 듯 “영국의 경제 활동을 점진적으로 재개할 것”이라 발표했다. 

영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보건 강국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바이러스 진단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서구에서 가장 먼저 백신 개발에 성공한 나라다. 

영국은 지난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3억5700만 개를 계약, 올 1월 4일 세계에서 처음으로 모든 성인에 대한 접종을 시작했다. 

이 백신은 스웨덴 제약사와 영국 옥스퍼드대학이 공동개발한 것이다. 영국 환자들이 “우리 백신을 기다리겠다”며 화이자 백신을 거부할 정도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영국민의 신뢰는 대단하고 그만큼 접종 속도도 빠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영국 정부는 애초 올여름으로 기대했던 일상의 회복, 나아가 가을로 기대했던 집단 면역 달성 시점을 다소 늦추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CNN이 보도했다. 

변이 바이러스의 급격한 유입으로 백신의 효능이 기대치보다 낮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데다, 자국의 방역시스템이 바이러스를 차단하는데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 문제를 취재한 CNN은 “보리스 존슨 정부가 코로나19 발생 이래 크게 세 가지 실수를 저질렀으며 여전히 크게 개선하지 못하는 중”이라고 적었다. 

그 실수란 첫째 지난해 초 팬데믹이 예고될 당시 선제적으로 학교 등 시설 ‘방역’에 나서지 않았다는 점, 둘째 무증상 감염을 고려해 강력한 ‘격리’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았다는 점, 셋째 확진자와 밀접접촉자에 대한 역학 조사를 통해 감염 경로를 ‘추적’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다.

그 결과 영국 정부는 백신 접종에 따른 확진자 감소로 낙관적인 전망을 펼쳤지만, 변이라는 복병을 만나면서 기존 방역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다. 

영국 옥스포드대학이 개발을 주도한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 / 사진=연합뉴스
영국 옥스포드대학이 개발을 주도한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 / 사진=연합뉴스

의료수준 과신, 방역·검역·추적 상식 이하로 운영
그중 ‘격리’ 문제를 살피면 이렇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3월 11일(현지시각)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뒤에도 별다른 정부 차원의 조처를 하지 않았다. 

미국 조사기관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세계 인구의 91%가 여행 제한 국가에 속했는데 당시에도 영국의 국경은 완전히 개방되어 있었다. 그러다 6월이 되자 마지못해 입국자들을 대상으로 2주간 자가 격리조치를 했는데, 그마저도 다음 달 “감염률이 낮은 50여 국가 입국자”에 대해서는 격리를 철회했다. 

자국 내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가 2만 명에서 5만 명으로 가파르게 늘어나는 와중에 영국 정부는 오히려 격리 기간을 10일로 줄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조치를 했다. 보리스 존슨 총리 자신이 확진 판정을 받았음에도 이런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지난주 폴 링컨 영국 내무부 국장이 증언한 데 따르면 올해 영국의 일일 최대 입국자 수는 1만5000명으로 그중 3분의 1만이 영국인이다. 이베트 쿠퍼 노동당 의원은 “그중 단 1%만이 격리 호텔에 배정되고, 대다수는 별다른 역학 조사를 받지 않은 채 곧장 대중교통 편으로 집에 간다”고 폭로했다. 

초기에는 이런 일들이 영국 정부가 자국 의료수준을 과신한 탓에 일어난 ‘실수’로 보였지만, 이런 식으로 누적되다 보니 이제는 방역에 대한 영국인들의 전반적인 인식에 문제가 생기는 듯하다. 

일례로 한 영국 남성은 싱가포르에서 격리 중에 별 생각 없이 같은 호텔의 다른 방에 묵고 있던 약혼자를 만나러 나갔다가 징역 6개월에 해당하는 7500달러의 벌금형에 처해졌다.

역학 조사에 대한 영국 정부의 인식도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영국 정부는 확진자의 밀접접촉자에 대한 코로나 검사를 권고하지 않는다. 당연히 거의 검사하는 경우가 없다. 

이는 유럽은 물론 미국도 강력히 권고하는 사항이며 우리나라는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사활을 걸고 시행한 조치다. 

영국 왕립의학협회의 가브리엘 스컬리 역학 및 보건부장은 “정부는 (보건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처음부터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밀접접촉자에 대한 역학 조사를 포기한 결과 영국이 유럽 최대의 바이러스 감염국이란 오명을 쓰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초기 역학 조사가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는데 결정적이라는 점은 우리의 경우 상식에 해당한다. 확진자 개개인의 감염 경로를 정확히 밝힐수록 바이러스 전파 범위를 예측하여 대응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방역에 생긴 허점으로 인해 영국은 해외발 변이 유입이라는 더 큰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 

당국의 봉쇄로 문 닫은 영국 런던의 상점 / 사진=연합뉴스
당국의 봉쇄로 문을 닫은 영국 런던의 상점 / 사진=연합뉴스

“방역 허점 증폭돼 해외 변이 차단에 구멍”
CNN은 3일(현지시각), “영국에서 해외발 변이가 확산되는 중”이며 게다가 “서로 다른 변이 바이러스가 뒤섞이면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CNN은 그 원인 중 하나로 “팬데믹 발생 시점에 역학 조사를 소홀히 한 점”을 들었다.

가령 최근 영국에서 브라질 변이 환자들이 발생했는데, 제대로 된 기록이 없어 그들 중 일부가 신원 미상자로 남았고, 당연히 동선 추적도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서 발견된 바이러스는 기존 영국형 변이와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분석 결과 영국 정부가 접종한 백신으로 예방하기도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이 입국자의 검역을 방치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1월 영국은 브라질발 직항 입국을 전면 금지했다. 하지만 간접 입국을 소홀히 한 것이 문제였다. 

2월 10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스위스 취리히를 거쳐 스위스 항공편으로 런던 히스로공항에 내린 가족들에게서 브라질형 변이가 발견되었다. 마찬가지로 브라질에서 파리를 거쳐 런던에 내린 입국자 중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일부로 인해 다른 확진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두고 키어 스타머 영국 노동당수는 지난달 24일(현지시각) “정부는 바이러스가 직항편으로만 이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며 일침을 가했다. 

다른 나라도 아닌 영국이 이처럼 허술한 검역 시스템을 운영한다는 것은 초기에 제대로 된 역학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해 검역에서 과부하가 걸린 결과라고 풀이할 수 있다.

검역의 허점은 고스란히 격리의 허점으로 이어지고 있다. 영국 정부는 해외 유입 차단을 위해 지난 1월 ‘열흘간 호텔 검역’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위의 변이 전파 사례는 주로 격리 중인 호텔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적색 목록(Red list)이라는 이름으로 코로나19 고위험 국가를 지정, 입국 차단 및 격리 조치를 취하고 있다. 여기에는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남미 대부분의 국가, 남아공 등 아프리카 주요 국가, 포르투갈, UAE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가장 많은 확진자 수를 기록 중인 미국은 이 목록에서 빠져 있어 검역의 실효성이 의문시된다”고 CNN은 적고 있다. 

이처럼 입국자 관리가 허술한 데다 실은 격리자 관리도 허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스컬리 보건부장은 “우리의 격리조치는 어설픈 수준”이라고 말했다.

호주 데이킨 대학의 역학 회장인 캐서린 베넷 박사는 구체적인 사례로 이를 뒷받침한다. 영국의 격리 호텔에서는 사람들이 운동하러 떠나는 것을 허용하며,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을 방문하거나 심지어 장례식장에 가는 일도 허용된다는 것이다. 

코로나19에 대한 방역·격리·추적에 관해 영국이 비록 형식은 갖추었지만 그 운영 실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영국이 자국의 변이는 물론 해외 변이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초기의 안이한 대처를 실수로 인식하고 이를 조속히 극복해야만 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타국의 방역 부담을 덜어주는 올바른 조치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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