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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말한다-9] 코로나19 시대, 니체처럼 생각하기(2)

“나와 인연 있는 이들에게 고통·절망·냉대·경멸 있기를” 
니체의 아포리즘, 우리 영혼을 일깨우는 아름다운 조언

  • 기자명 김선태
  • 입력 2021.03.12 00:43
  • 수정 2021.03.1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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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바젤에서 니체, 1875년. 사진=위키백과.
스위스 바젤에서 니체, 1875년. 사진=위키백과.

전편에서 우리는 니체가 지극히 가혹한 처지를 맞아, 최악의 운명조차 사랑할 수 있어 기뻐했음을 보았다. 
니체는 “진리가 행복에 우선한다”는 자신의 명제를 기꺼이 실천했고, 그의 방대한 유작들이 이를 증거한다. 니체는 글을 통해 진리를 향한 헌신을 입증했으며 그랬기에 그가 얻은 삶의 통찰은 시대를 뛰어넘어 만인의 영혼을 뒤흔들 수 있었다. 

니체에게 손에 낀 장갑처럼 알맞았던 ‘아포리즘‘
다수가 아포리즘으로 이루어진 니체 특유의 문장이 그 전달력을 배가시킨다. 대부분의 철학서는 하나의 완성된 체계로 이루어져 개별 문장을 전체로부터 분리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책에서 개별 문장을 떼어내면 맥락을 상실해 의미를 전달하지 못한다. 
니체는 다른 방법을 취했다. 홀링데일에 따르면 니체는 『비극의 탄생』(1872)과 『반시대적 고찰』(1873)을 펴낸 뒤인 1876년쯤 아포리즘이라는 형식을 발견했다. 그때까지도 서양 철학이 체계에 매몰되어 있다고 비판하던 그에게 아포리즘은 “마치 손에 딱 맞는 장갑처럼 그의 사상과 문체에 꼭 들어맞는 것”(『니체』, 홀링데일, 208)이었다.
아포리즘(Aphorism)은 한두 문장 또는 짧은 단편으로 전하고자 하는 사상의 핵심을 펼쳐내는 작법(作法)이다. 가령 공자의 언행을 집성한 논어는 아포리즘 문장으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동양 고전이다. 니체의 아포리즘이 특별한 이유는 이 짧은 문장들이 책 전체의 흐름에 부드럽게 녹아들어 부분과 전체의 절묘한 융합을 이룬다는 데 있다. 
1878년 펴낸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으로 아포리즘의 매력을 확신한 니체는 이후 주요 저작에서 아포리즘의 문장을 풍부하게 담아냈다. 『아침놀』(1881)은 575개의 절을 하나로 묶은 아포리즘 모음집이며, 『즐거운 학문』(188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 『선악의 저편』(1886), 『도덕의 계보』(1887) 같은 대작들에도 어김없이 다양한 아포리즘이 등장한다. 그로써 니체는 ‘철학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아포리즘의 예술가’가 되었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아래에 니체의 혜안을 전달하기에 충분한 문장들을 책의 출간일 순서에 따라 간추려 소개한다. 섣부른 해석이나 개입을 배제하되, 전후 맥락의 이해를 돕고자 필요한 최소한의 주석을 덧붙였다. 다만 이 인용은 해변의 모래알 몇 개만큼이나 미미한 양이므로, 제대로 된 이해가 필요한 독자는 그의 저서를 직접 읽어 보기를 권한다.

1.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878

얼치기 지식의 위험
얼치기 지식은 종종 완전한 지식보다 더 많은 승리를 안겨 준다. 그것은 사물을 실제보다 단순하게 만든다. 따라서 그 견해는 더 이해하기 쉽고 설득력이 있기 쉽다.

자신을 속이는 허세
허세를 부리는 사람은 자신이 타인보다 잘나 보이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다. 내용이나 실질은 괘념치 않는다. 다시 말해 착각을 불러 이르키는 데만 신경 쓴다. 그것에 정신이 팔려 자신마저 속인다는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내 안의 문제와 대면하라 
세상과 타인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는가. 그렇다면 자신을 차분히 돌아보자. 어떠한가. 실은 자신이 미덥지 못하기에 세상이 불만족스러운 것이다. 계속 그리 살다 보면 세상과 타인에 대한 삐뚤어진 원망만을 끌어안은 채 평생을 보낼 수밖에 없다. 눈앞의 불만은 잠시 제쳐두고 자신 안의 문제와 대면해보라. 그리고 대처하라.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다 보면 그럭저럭 문제도 해결되는 법이다. 

타고난 재능은 중요치 않다
‘타고난 재능’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말라. 재능을 타고나지 않았으면서도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모든 분야에 존재한다. 그들은 부족한 자질을 일궈가면서 스스로 위대함을 획득했다. 그들은 장인의 근면함과 치열함으로, 먼저 모든 부분을 정확하게 구축한 다음에야 대중 앞에 완성된 작품을 내놓았다. 황홀한 완성품이 주는 효과보다 보잘것없고 신통치 않은 것들을 개선하는 작업이 그들에게 더 많은 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지혜는 분노를 진화한다 
지혜롭지도 현명하지도 않은 자의 특징은 이러하다. 곧잘 화를 낸다. 가감 없이 울분을 드러낸다. 불평불만이 많다. 초조해한다.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그러나 지혜가 깊어질수록 분노와 울분은 잦아든다.

인생은 형태로 나타낼 수 없다 
인생은 그림으로 그릴 수도 시로 쓸 수도 없다. 수많은 예술가가 인생을 표현하려 애쓰지만 완성된 작품은 개인의 인생을 소재로 한 단편적 자취일 뿐이다. 이를 뛰어넘어 보편적인 삶의 형태를 표현하기란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인생이 쉴 새 없이 운동과 변화를 반복하는 ‘생성’ 자체이기 때문이다. 생성이야말로 우리의 삶이며, 우리의 현실이다. 

이상주의자의 착각
이상주의자는 모두 자신이 헌신하는 일이 세상의 다른 일보다 본질적으로 더 낫다고 우쭐거린다. 하지만 인간이 하는 다른 모든 행위가 그렇듯이, 그 일이 잘되려면 악취 나는 거름이 필요하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진리의 적
거짓말보다 진리에 더 위험한 적은 확신이다.

2. 『아침놀』, 1881

우리는 나약할 때 증오를 느낀다 
사람들은 대개 나약할 때 누군가를 미워한다. 혹은 복수할 기회가 있다고 여길 때 상대를 증오한다. 반면 상대에게 틈이 보이지 않고 복수는커녕 비난조차 할 수 없다면 증오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스스로 풍요롭고 강하다는 확신을 가질 때는 증오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견해를 바꾸지 못한다면
허물을 벗지 못하는 뱀은 죽고 만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견해를 바꾸지 못하는 정신은 정신이기를 그만두는 것이다.

성급한 치유는 병을 악화시킨다 
인간의 병중에서 가장 나쁜 병은 사람들이 자신의 병을 다스리는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치유로 보이는 것이 결국에는 그 치유의 대상이 되었던 병보다 더 독한 무언가를 낳았다. 마찬가지로 즉시 효과를 얻는 수단들, 고통을 곧장 진정시키는 방법은 그 고통을 낳은 불만을 더욱 누적시키는 대가를 치른다.

3. 『즐거운 학문』, 1882

구해도 얻지 못했다면 
원했음에도 얻지 못했다면, 다음 방법은 더 간절히 구하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확실히 손에 넣을 때까지 끈질기게 구한다. 그럼에도 얻지 못했다면 더는 애쓰지 않는다. 이는 포기가 아니다. 이제는 구하는 대신 발견해야 한다. 찾아내야 한다. 그리하면 언젠가는 애초에 구했던 것보다 더 고귀한 무언가를 반드시 찾을 수 있다. 

자신의 발로 나아가라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놓은 길을 걷지 말라. 앞서간 누군가의 방식이나 지도자가 제시하는 길에 당신을 맞추지 말라. 오로지 당신만의 길을 가라. 막연할지라도 당신만의 길을 넓혀 가라. 그렇게 자신을 이끌고 당당하게 나아가라.

불만을 줄이면 환희도 줄어든다
쾌락과 불만은 서로 단단히 묶여 있기 때문에 한 가지를 가능한 한 많이 원하는 사람은 불가피하게 다른 한 가지도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대가 만약 고통의 정도를 줄이고자 불만을 가능한 한 적게 경험하려 한다면, 그대는 또한 그 고통이 줄 수 있는 환희에 대한 기대 수준도 낮추어야 한다. 

악천후를 겪지 않은 거목은 없다
가장 훌륭하고 가장 알찬 결실을 남긴 사람들의 삶을 찬찬히 뜯어보면서, 악천후와 폭풍을 견디지 못하는 나무들이 거목으로 자랄 수 있을지 자문해보라. 불운과 저항, 혐오와 질투, 불신과 폭력, 이런 것들을 경험하지 않고는 어떤 위대한 성장도 이룰 수 없다. 

4.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883~1885

먼저 자신을 사랑하는 자가 돼라
“이웃을 사랑하라.”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가 돼라. 조금의 업신여김도 없이 온전히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그 무엇보다 가장 먼저 자신을 사랑하라. 커다란 사랑으로 사랑하고, 커다란 경멸로 사랑하라.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자 노력하라
세계는 새로운 소음을 만들어 낸 사람들 주위가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 사람들 주위를 돌고 있다. 

정신의 세 단계 변화 : 인내, 자유, 순수 
여러분에게 정신의 세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정신이 어떻게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며, 사자가 마침내 아이가 되는가를.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닌 억센 정신, 짐을 무던히도 지는 정신에는 무거운 짐이 허다하다. 정신의 강인함은 무거운 짐을, 더없이 무거운 짐을 요구한다. 
무엇이 무겁단 말인가? 짐을 무던히도 지는 정신은 그렇게 묻고는 낙타처럼 무릎을 꿇고 짐이 가득 실리기를 바란다. 
짐을 무던히도 지는 정신은 이처럼 더없이 무거운 짐 모두를 짊어진다. 그러고는 사막을 향해 서둘러 달리는 낙타처럼 그 자신의 사막으로 서둘러 달려간다.
그러나 외롭기 짝이 없는 저 사막에서 두 번째 변화가 일어난다. 정신이 사자로 변하는 것이다. 정신이 자유를 쟁취하여 그 자신의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그리하여 그가 섬겨온 마지막 주인을 찾아 나선다. 그는 그 주인에게 그리고 그가 믿어온 마지막 신에게 대적하려 하며,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저 거대한 용과 일전을 벌이려 한다. 
정신이 더이상 주인, 그리고 신이라고 부르기를 마다하는 그 거대한 용의 정체는 무엇인가?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가 그 거대한 용의 이름이다. “가치는 이미 모두 창조되어 있다. 창조된 일체의 가치, 내가 바로 그것이다.” 용은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가치의 창조, 사자라도 아직은 그것을 해내지 못한다. 그러나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유의 쟁취, 그것을 사자의 힘은 해낸다. 
자유를 쟁취하고 의무에 대해서조차도 신성하게 ‘아니오’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사자가 필요하다. 
정신도 한때는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는 명령을 더없이 신성한 것으로 사랑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사랑으로부터 자유를 되찾기 위해 더없이 신성한 것에서조차 미망과 자의를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이제(세 번째로) 사자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아이가 해낸다. 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제 힘으로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신성한 긍정이다. 
그렇다.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신성한 긍정이 필요하다. 정신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의욕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획득하게 된다.(본문의 강조는 니체가 한 것임)

필자 주 : 부분적으로 삭제했음에도 상당히 긴 이 글은 이 책의 핵심 메시지이자 니체 사상의 정수와 연관된 부분으로 철학자들에 의해 수없이 분석되고 인용됐다. 따라서 니체가 쓴 이전의 모든 글은 이곳으로 수렴하고 그가 쓴 이후의 모든 글이 이곳에서 발산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낙타는 성서에서 차용한 개념이다. 「마태복음」 12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구절이 있다. 고통 속에서 번민하며 살아가는 인간을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건너가는 낙타에 비유한 것이다. 
니체는 이 글을 통해 우리의 정신이 그보다 훨씬 멀리 나아가야 하며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중요한 점은, 어떤 독자라도 자신의 관점에서 이 글을 분석할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후일 헤르만 헤세는 소설 『데미안에서 위 글의 마지막 단락을 다음과 같은 아포리즘으로 재구성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먼저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5. 『선악의 저편』, 1886

재능이란 일종의 장식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의 진면목은 그의 재능이 시들어갈 때, 즉 그가 자신의 능력을 더 이상 보여주지 못할 때 드러나기 시작한다. 재능은 일종의 장식이며 장식은 종종 은폐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광기의 집단성
개인이 홀로 광기에 사로잡히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개인과 개인이 모여 어떤 단체가 되었을 때, 한 당파로 결속되었을 때, 민족으로 단결했을 때 혹은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그러나 너무도 당연하게 광기에 사로잡힌다. 

괴물과 싸우다 자신도 괴물이 된다 
그대가 싸우는 상대는 누구인가. 벅찰 정도로 강한 괴물인가. 그렇다면 사력을 다해 싸워야 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싸우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대가 심연 속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그대 속을 들여다본다.

사람들의 관계에서 필수적인 것
위험한 상황에서 서로를 오해하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의 관계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모든 우정이나 사랑에도 이 사실은 적용된다. 두 사람이 동일한 말을 사용하면서도 그 말과 관련하여 서로가 달리 느끼고 생각하고 추측하고 바라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우정과 사랑은 지속될 수 없다.

사랑은 선악의 피안에 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를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머리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사랑은 머리가 아닌 몸의 일이다. 그렇기에 사랑이 행하는 것은 선악의 범주에서 판단할 수 없다. 사랑은 선악 이전의, 인간 본연의 감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즉 모든 사랑의 행위는 선악의 피안에 있다.

6. 『도덕의 계보학』, 1887

우리가 자신을 알지 못하는 이유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 인식하는 자들조차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한 번도 탐구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 어떻게 일어난단 말인가?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마태복음 제6장 21절)”고 한 말은 옳다.

인간에게 고통이 의미하는 것
인간의 문제는 고통 자체가 아니라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가?”라고 외치는 질문에 대한 답이 없었다는 점이다. 인간은 가장 용감하고 고통에 가장 익숙한 존재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고통의 의미나 목적이 제시된다면 인간은 고통을 바라고 고통 자체를 찾아다닐 수도 있다. 지금까지 인류에게 광범위하게 내려진 저주는 고통이 아니라 고통의 무의미함이었다. 

필자 주 : ‘고통’에 대한 니체 특유의 관점은 사실 처음부터 니체에게서 나왔다고는 볼 수 없다. 1865년 니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접한 뒤 쇼펜하우어의 열렬한 신봉자가 되었다. 이 책에는 삶의 고통에 대한 수많은 경구가 들어 있는데 다음도 그중 하나다. 

“가장 분별 있는 인간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으로부터 자유를 얻으려고 애쓰는 이다.”

이 글을 읽은 지 얼마 뒤, 니체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삶이란 고통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또 삶을 즐기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그만큼 더 삶의 노예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7. 『우상의 황혼』, 1888 

인생이 주는 선물 
살다 보면 고난이 닥치기도 하고 비극적인 사건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다만 그럴지라도 자신이 불운한 인간이라는 생각은 하지 말라. 오히려 고통을 안기는 인생에 존경심을 품어 보라. 불면 날아갈 듯한 볼품없는 적군 한 명을 상대하기 위해 정예 사단을 보내는 지휘관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고난을 인생이 주는 선물로 여기도록 하자. 고통을 통해 정신이, 마음이, 살아가는 힘이 더욱 단련되고 있음을 기쁘게 여기도록 하자. 

체계는 파괴되어야 한다
체계를 세우는 사람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자신이 만든 틀 안에 가두려는 사람이다. 체계를 세우겠다는 의지는 정직성의 부족에서 비롯되므로, 나는 체계를 세우려는 모든 사람을 불신하며 그들을 기피한다. 

니체가 마지막 3년간 머물렀던 독일 바이마르의 숙소. 사진=위키백과.
니체가 마지막 3년간 머물렀던 독일 바이마르의 숙소. 사진=위키백과.

8. 유고집, 『힘에의 의지』

니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나와 조금이라도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 절망, 질병, 냉대, 경멸이 내려지기를 바란다. 나는 그들이 지독한 자기 경멸과 자기 불신의 고문, 패배당한 자의 열등감과 무관하게 지내지 않기를 바란다.

사소한 문제에 미래가 달려 있다
이 세상에 홀로 떨어져 고립된 채 있는 것은 없다. 터무니없이 작은 것도 자신의 등에 대단히 큰 것을 짊어지고 있다. 당신의 사소한 불공정 행위에 미래의 본질 전체가 달려 있다. 어떤 전체라도 그중 어느 한 작은 부분에 대한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9. 유고집, 『생성의 무죄』

정치가의 눈에 보이는 사람 
정치가의 눈은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눈다. 우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다. 그들은 손발과 도구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단순하고 둔감하며 충직한 데다 쉽게 감동한다. 이해타산이 밝고 손익에 따라 어떤 일에든 뛰어든다. 나머지 사람들 모두가 다른 한 부류에 속하는데, 다름 아닌 정치가의 적이다. 

공정하기 위한 고독
공정하다는 것은, 무엇과도 누구와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것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친한 지인과도, 꺼리는 사람과도, 사랑했던 사람과도,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과도.

결점이라는 이름의 스승
누구나 저마다의 결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은 자신의 결점과 약점을 혐오하고 외면하며 행여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을까, 가슴 졸인다. 그러나 사실 결점과 약점은 가장 좋은 스승이 될 수 있다. 그것들은 내가 무엇을 극복해야 하는지, 어떤 점을 고쳐야 하는지, 또한 나의 장점은 무엇인지, 어떤 개성을 가졌는지를 조용히 귀띔하며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동조한다 
타인의 주장이나 의견에 대해 모든 이가 깊이 사고한 후 지지나 동조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소외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동조한다. 혹은 대중 속에 섞여 눈에 띄고 싶지 않을 때, 주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고 싶지 않을 때 동조한다. 어떤 이유이든 그에게는 두려움, 일종의 공포심이 내재하여 있다.

진실은 고통을 수반한다 
진실을 알고 싶다면 그것과 마주했을 때의 고통을 각오해야 한다. 진실 자체가 고통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대한 자기만의 신념과 확신에 빠져 산다. 진실은 이를 단숨에 파괴해버린다. 진실을 마주한 순간 우리는 자신의 신념 혹은 오랜 세월 서 있던 발판이 무너져내리는 고통을 경험한다.

부끄러워 말고 당당하게 주장하라
당신의 가치관과 주장을 똑바로 말하라. 당신의 신조 혹은 의지나 의욕을 명명백백히, 부끄러워하지 말고 한 치의 숨김도 없이 누구나 다 알 수 있게 말하라. 겁쟁이, 비겁한 자, 무력한 자, 기회주의자, 남 흉내밖에 못 내는 자, 정체를 알 수 없는 자, 제 생각이 확고하지 않은 자들은 그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 안의 악과 마주하라 
노련한 숲지기는 숲속을 헤치고 들어가 생태를 관찰하고, 나무를 솎고, 병든 나무를 베어낸다. 그렇게 가꾼 숲은 생기가 넘쳐흐르며 대지를 따뜻하게 만든다. 숲을 가꾸듯 우리 또한 내면의 악에 감각을 기울여야 한다. 악을 못 본 척하거나 처음부터 악 따위는 없었던 듯 행동하지 말자. 악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정성을 다해 다루자. 인간으로서 더욱 크고 강건하게 성장하기 위해, 자신 안에 자리한 악과 온전히 마주하자. 

사랑만이 구원한다 
다만 사랑만이 구원할 수 있다. 사랑만이 굽은 것을 펴고, 회복하고, 조정하고, 일으켜 세울 수 있다. 진정한 창조력을 갖춘 사랑이야말로 완벽한 구원자다.

글·김선태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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