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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오늘의 한국사회 만들어낸 핵심동력”

[풀풀이의 #한글] 1. ‘문자혁명’의 흐름, 문화혁명의 동력

  • 기자명 편집부
  • 입력 2021.04.10 01:59
  • 수정 2021.04.1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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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박물관에서 ‘문자혁명’ 전시회가 25일까지 열린다. 사진=하영권
한글박물관에서 ‘문자혁명’ 전시회가 25일까지 열린다. 사진=하영권

한글박물관, ‘문자혁명’ 기획전...“문자 통한 지식 대중화 소개”

한글박물관에서 ‘문자혁명-한국과 독일의 문자 이야기 (Letters in Print – Korea and Germany Compared)’라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국립기관에서 ‘문자혁명’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돋보인다. 한글의 의미와 가치가 ‘문자혁명’이기에 한글박물관의 존재가치를 잘 보여주는 전시회다.

이번 기획전은 4월 25까지 열린다. 온라인 http://munja.hangeul.go.kr/ 에서 미리 맛볼 수 있다. 이번 전시 기획의도는 https://youtu.be/0EzE9Z-LxRs에서 엿볼 수 있다.

문자혁명전은 한국과 독일의 자국어 문자 문화의 발달사를 비교하고 있다.

한국과 독일에서의 자국어 문자 보급과 확산, 인쇄 서체를 보여주는 총 157건 303점(독일에서 온 자료는 총 33건)이 전시 중이다.

같고도 다른, 다르고도 같은 한국과 독일의 문자혁명을 담았다.

특히 인쇄술을 통한 자국어 문자의 보급과 확산이 어떻게 문화와 사회의 발전으로 이어졌는지를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전시는 총 3부로 나누어졌다. 1부 ‘독점에서 공유의 길로’, 2부 ‘소통과 공감으로’, 3부 ‘궁체와 프락투어’. 1부와 2부는 한국과 독일의 인쇄술 개량과 발명, 한자와 라틴어의 자국어 번역, 문자 문화의 확산 양상을 양국의 사례로 비교했다. 소수에서 다수로 지식의 대중화가 진행되는 과정을 담은 것이다. 3부에서는 인쇄 서체의 발전사를 보여준다.

“간이벽온방언해(1578년, 보물 제2079호)”, “월인석보(1459년, 보물 제745-3호)”, “월인천강지곡(1447년경, 국보 제320호)”, “사리영응기(1449년)”, 루터의 “독일어 성서(1536년)”, “토이어당크(1517년)” 등이 대표적인 전시물이다.

문자를 통한 지식의 대중화가 ‘문자혁명’
전시회가 ‘혁명’이라는 말을 내건 것은 ‘인쇄기술’이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꾸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문자혁명에 있어 인쇄술은 서양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쇄술보다 문자의 창조가 더 큰 일이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의 창제와 보급과정에서 인쇄술이라는 기술은 보조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1443년, 당시 한글이라는 말은 없었다)를 통하여 말과 글의 통일이 시작되었다.

말과 글의 통일은 양반과 상민의 통일(근대화)을 앞당겼고, 생활과 문화의 통일(한글의 기적)도 불러왔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개발과 성경책 인쇄가 서양에서 르네상스(문예부흥), 종교개혁, 과학혁명 등 사회 전반의 문화혁명으로 이어지고 사회혁명(정치혁명, 산업혁명)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런 이유로 구텐베르크를 ‘지난 1천 년 동안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평가하기도 한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활자 인쇄기를 발명했다는 것 하나로도 그런 평가들을 받고 있다.

문자혁명가 세종과 구텐베르크는 거의 같은 시기에 활동했다. 문자혁명전 소개영상 갈무리 화면.
문자혁명가 세종과 구텐베르크는 거의 같은 시기에 활동했다. 문자혁명전 소개영상 갈무리 화면.

반면 같은 시기에 살면서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대왕은 문자 창조뿐만 아니라 활자와 인쇄술의 개량, 경전의 자국어 번역, 음운학, 실용서적의 간행 등 문자를 둘러싼 폭넓은 문화적 창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구텐베르크보다 적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조에 따라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문예, 종교, 과학 등 사회 전반의 문화혁명과 정치경제 변혁에 큰 영향을 주었음에도 그 과정은 정리 평가되지 못하고 묻혀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 1천 년 동안의 가장 중요한 인물임에도 세계 속에서는 그런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아래에 이런 현실을 풍자한 아시아경제의 재미있는 신문기사(2009년)가 있다.

“구텐베르크는 금속활자를 만들어 책을 찍어 팔았다. 그는 인쇄업자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한 왕조의 통치자였다. 인쇄업자와 세종대왕. 신분이나 처지로 보아 그들을 비교할 만한 이유나 기준이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구텐베르크는 세계사에 지대한 족적을 남겼다. 세계사에 미친 영향만 따지면 세종과 게임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혁명은 지식의 독점체제를 무너뜨렸다. 지식의 대중화를 가능케 했으며 서구의 근대화를 앞당겼다.

그가 처음부터 지식의 대중화를 겨냥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를 통한 인쇄혁명은 서양이 동양과 제3세계를 누르고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들어 놓고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쉽게 익힐 수 있는 글을 만든 의도는 백성을 계몽시키자는 것이었다. 한자문화와 양반귀족 중심의 사회체제를 개혁하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의지는 철저하게 좌절됐다. 수구세력은 기득권을 유지해야 했고, 계급적 사회구조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개혁의지가 꺾인 것이다.”

([카이홍의 문화산책] “[한글날 특별기획] 세종, '르네상스맨' 구텐베르크 만나다” 중에서)

50년 동안 2천만 권의 인쇄, 지식의 대중화에는 구텐베르크가 빨랐다. 문자혁명전 전시물
50년 동안 2천만 권의 인쇄, 지식의 대중화에는 구텐베르크가 빨랐다. 문자혁명전 전시물

훈민정음의 창제와 보급은 ‘문자를 통한 혁명’의 시작이었다.

그런데도, 문자혁명으로서의 의미, 그 문자혁명의 발전 과정은 많은 부분이 알려지지 않았다. 하기야 국립 한글박물관이 2014년 만들어진 현실(#부끄럽게도, 참 빠르기도 하다!)이니 그 정보의 대중화는 아직도 멀었다.

혁명(革命, revolution)은 권력이나 조직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중심에 세우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사회나 정치 체제의 질적 변화를 말하지만, 경제나 문화, 사상 등 여러 분야의 질적 변화도 그렇게 말한다.

칸트는 지동설을 인류의 정신사를 뒤집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轉回, Copernican revolution)’라 표현했다. 혁명은 기존 질서의 전회(뒤집기)이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훈민정음은 ‘문자혁명’이었다.

문자를 만들어 모든 것(민족과 민중의 생활과 문화 전체)을 뒤집어 놓았다. 세종대왕에 의해 시작된 문자혁명은 전진해 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제는 우리나라를 넘어서고 있다.

한글학자 김슬옹 박사가 정리한 한글의 탄생 약사. 문자혁명전 전시물.
한글학자 김슬옹 박사가 정리한 한글의 탄생 약사. ‘한글 해례본 이야기’ 갈무리 화면

‘한글’이 현재의 한국사회를 만든 핵심동력

풀풀이는 #한글이 불러온 사회 변화를 추적해 보려 한다.

‘한글’ 자체에 대한 연구 성과들은 한글학자, 언어학자에게서 많은 부분을 빌려올 것이다.

하지만, 한글이 불러온 사회문화, 정치경제의 변화에 대한 논의는 구석구석 방치되어 있기에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한강의 기적’은 사실상 ‘한글의 기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경제 연구에서 한강의 기적에서 원동력이 된 ‘한글’ 부분은 빠져 있다.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의 모든 기초에 한글이 있다. 쉽게 배우는 한글을 통한 지식의 대중화가 우리나라의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의 핵심동력이었다.

한글문화의 사회사, 1차 문자혁명에서 파생되어 나간 2차(근대화) 3차(산업화와 민주화) 4차(정보화와 세계화)의 혁명 또는 개혁의 과정을 하나하나 추적하는 글을 이어나가고자 한다.

늦기 전에 한글박물관에 들러 1차 ‘문자혁명’을 느껴 보기를 권한다.

글·하영권 기획위원/마디글패 풀풀이 foolfool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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