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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말한다-12] “때로 욕쟁이 아이가 의사보다 낫다”

거리의 의사 정혜신, ‘세월호’ 속에서 ‘사람 공부’를 말하다

  • 기자명 김선태
  • 입력 2021.04.15 00:40
  • 수정 2021.04.15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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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의 사람 공부』=정혜신, 창비
『정혜신의 사람 공부』=정혜신, 창비

[시그널=김선태 기자] 작가 김영하는 2014년 연말에 발표한 단편 ‘아이를 찾습니다’로 이듬해 김유정문학상을 받았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 나선 주인공의 이야기를 쓴 이 작품이 그해 봄 벌어진 세월호 참사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면서, 작가는 수상 소감에 이렇게 썼다.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 『오직 두 사람』, 김영하, 문학동네, 269쪽.

“남을 치유하려면 내가 먼저 사람이 되어야”
정신의학 전문의 정혜신은 진료실보다 거리에서 많은 사람을 치유해 온 탓에 ‘거리의 의사’라 불린다.

2016년, 그가 사람 공부에 대해 강연한 내용을 책으로 엮어냈다. 그 2년 전 세월호 참사 이후 현장에서 그가 겪고 느끼고 배운 이야기들이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는데 세월호의 시간만 멈춘 듯, 다시 읽어도 저자의 문제의식이 가슴에 와 꽂힌다.

“의사는 진료실에 있을 때보다 진료실 밖에서 사람들에게 다가갈수록 더 큰 치유능력을 가질 수 있다.” 

저자가 경험으로 확신하는 명제다. 세월호 참사는 전국 각지에서 현장을 찾은 심리치료와 상담 전문가들에게 이 점을 거듭 곱씹게 했다. 
 
세월호가 잠긴 바다 앞에 수많은 심리상담 부스가 들어섰다. 그런데 정작 피해자들이 그곳을 이용하지 않았다. 당장 아이를 찾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심리상담이라니,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음을,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접근할 방법을 찾지 못한 많은 이들이 현장을 떠났다. 진료실에서는 잘 들던 의사의 메스가 사람이 결정적으로 쓰러져 넘어가는 순간에 별 소용이 없었다.
 
그 뒤 의사들은 장례를 치른 가족들을 위하여 안산지역에 상담 부스를 차렸지만, 유족들은 여전히 상담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영문도 모른 채 막 자식을 잃은 사람들에게 상담이라니. 

심지어 유가족을 일일이 방문해 수백 가지 문항으로 된 심리 검사지를 나눠주면서 체크를 요구하는, 경우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유가족들은 상담에 응하기는커녕 찾아간 전문가들에게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저자는 당시 전문가들의 행동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들은 심리치유에 ‘골든 타임’이라는 게 있어서 그 시점에 반드시 상담을 진행해야 한다는, 교과서에 나와 있고 매뉴얼에 적혀 있는 방식에 매달렸다.”

일련의 몰상식적인 과정을 겪은 유가족들이 보기에 그들 ‘치유 전문가’는 한마디로 책상물림이었다. 정혜신은 “상담이란 기본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도록 돕는 과정”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내 고통을 누군가에게 토해내는 일이란 기본적으로 몸과 마음의 이완과 함께 일어나는 일입니다. 아이를 바닷속에 둔 채로 숨을 쉬고 있는 엄마 아빠들에게는 그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죠. 당연한 얘기예요. 내 자식의 생사 여부에 온몸의 신경이 빨랫줄처럼 팽팽하게 곤두서 있을 때죠.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도 아이를 찾고 나서 죽자는 마음이 드는 상태죠. 아이를 찾을 때까지는 자신에게 최소한의 이완도 허용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상황입니다.”

저자가 보는, 세월호 피해자들이 갖는 감정은 죄의식이다. ‘내가 아이를 죽인 거다. 나 때문이다. 내가 수학여행을 보내지 않았다면, 내가 안산으로 이사하지 않았다면…….’ 그런 감정과 생각에 깊고 집요하게 마치 늪처럼 빠져든다. 그렇게 끝없이 밀려드는 ‘내 탓’으로 그들은 초주검이 되어간다. 

같은 이유로 생존한 학생과 아이를 잃은 부모들은 자기 몸을 함부로 다루는 방식으로 ‘자기 처벌’을 한다. 자기를 보호하지도 않고 그럴 자격도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심리상담도 거부하고 병원 치료도 거부한다. 심리전문가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그들의 심리 상태였다.

심지어 일부 전문가들은 유가족을 찾아가 계속 상담하라고, 안 하면 앞으로 더 큰일 난다고 ‘협박’까지 했다. 아이를 잃고 온 삶이 뿌리째 뽑혀나갔는데 더 큰 재앙이 있을 수 있다니. 

전문가들의 그와 같은 시각과 행위는 피해자 개인이 지닌 한 인간으로서의 자각과 건강한 자아에 상처를 줄 뿐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협박’이 트라우마 피해자, 생존자들을 ‘정신과 환자’로 취급했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너는 병들고 모르는 자, 그러니 나를 믿고 따라와라. 이건 명백히 반치유적인 시각이에요. (그 결과) 상처를 치유하겠다고 시작한 일이 거꾸로 상대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주는 거예요.”

점점 가까워져 오는, 거대한 세월호
인양되어 해체 대기중일 당시의 세월호 선체. 2017. 4. 16. ©김선태

정말로 필요한 도움은 상황을 함께 이해하는 것
그렇다면 트라우마 피해자들에게 가장 시급한 도움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들이 처한 상황을 그들 스스로 알 수 있게 해주고, 그 상황에서 “자신을 통제할 힘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자각하도록” 돕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수학여행을 떠났던 아이가 갑자기 사라졌다. 유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어제까지 알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가 어딘지, 내가 왜 이곳에 와 있는지 알아야” 움직일 수 있는데, 도무지 현실감을 가질 수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는 어떤 조언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치유에 나서기 전에, 자신이 처한 상황과 앞으로 닥쳐올 증상들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끈기를 가지고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여 주어진 상황을 조금씩 이해하다, 이윽고 속에 든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상담’의 시간이 온다. 아래에 세월호 참사 초기에 저자가 겪은 사례를 하나 요약했다.

딸을 잃고 두어 달 몹시 힘들어하다가 다시 직장도 나가고 남은 둘째도 비교적 잘 돌보는 유가족 엄마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나름 잘 추스르는 중이었고 자신도 잘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자기 아이와 동갑내기인 친정 조카가 있는데, 사고 이후로 걔가 이유 없이 미워졌다. 어떨 땐 좀 괜찮은 것 같다가 아주 사소한 계기로 죽일 듯이 미워지는 마음이 불쑥불쑥 일어나는 것이다.
어느 날 그녀가 출근길에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는데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응급실까지 가서도 계속 울음이 나왔다. 한참을 지켜보던 의사가 이젠 힘들더라도 아이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뛰쳐나온 그녀가 저자를 찾았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점점 미쳐가는 것 같아요.”
저자가 말했다.
“미치면 어때요. 아이가 갑자기 없어졌는데 엄마가 잘 지내면 그게 엄마예요? 그러면 아이가 얼마나 섭섭하겠어요?”
“그렇죠? 내가 미친 게 아니죠? 제가 엄마라서 그런 거죠?”
그제야 눈물을 그친 그녀는, 울다 지쳐 잠든 아기처럼 깊이 잠들었다.

 
삶을 죄의식으로 느끼는 사람에게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말은 그의 양심을 거세하는 폭력이다. 반면 상대방이 자신의 죄의식을 진심으로 공감한다고 느낄 때, 피해자는 비로소 상황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전문가의 ‘치유기법’ 따위로는 결코 이를 대신할 수 없다며, 저자는 다음처럼 설명한다. 

“치유란 그 사람이 지닌 온전함을 자극하는 것, 그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래서 그 힘으로 결국 수렁에서 걸어 나올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 거죠.”

4·16민주시민교육원 기록관에 복원된 ‘기억교실’경기도교육청이 12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사고 예방 교육을 하기 위해 설립한 ‘4·16민주시민교육원’의 문을 열었다. 옛 안산교육지원청 부지 4천840㎡에 연면적 7천18㎡(지하 1층∼지상 4층) 규모로 설립된 민주시민교육원에는 사고 당시 단원고 2학년 교실을 그대로 옮겨 복원한 4·16 기억교실과 영상실, 기록실 및 7개의 교육실이 마련됐다. / 사진=연합뉴스
4·16민주시민교육원 기록관에 복원된 ‘기억교실’
경기도교육청이 12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사고 예방 교육을 하기 위해 설립한 ‘4·16민주시민교육원’의 문을 열었다. 옛 안산교육지원청 부지 4천840㎡에 연면적 7천18㎡(지하 1층∼지상 4층) 규모로 설립된 민주시민교육원에는 사고 당시 단원고 2학년 교실을 그대로 옮겨 복원한 4·16 기억교실과 영상실, 기록실 및 7개의 교육실이 마련됐다. / 사진=연합뉴스

“눈 내릴 때가 되어서야 피는 이상한 꽃도 있다”
깊은 상실감은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들며 종종 극도의 분노와 원한을 수반한다. 저자는 세월호 참사로 동생을 잃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형이 치유에 이른 내력을 소개한다. 
 
아이는 동생이 사고를 당한 뒤로 직장도 그만두고 친구도 외면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거의 먹지도 않으면서, 몇 사람 이름을 대며 ‘그 인간들 반드시 죽인다’는 말을 수시로 중얼거렸다.
두려운 나머지 엄마가 저자를 찾아와, ‘막내를 잃었는데 이제는 큰애까지 잃게 생겼다’며 하소연했다. 아이에게 상담하러 오라 했지만, 당연히 오지 않았다. 
저자는 아이 엄마에게 이 말을 전해 달라 했다. 
“네가 진짜 형이다. 동생을 그렇게 잃고 멀쩡히 직장 나가고 잘 지내면 형이냐?” 
얼마 뒤 아이가 저자를 찾아왔다. 반가운 표정으로 맞으니 울컥하며 말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 아빠가 안 계셔서, 아빠 노릇 하느라 동생에게 엄하게 했다고. 동생 돌보며 잘해준 게 하나도 없었다고. 동생이 수학여행 가기 전날엔 야근을 했고, 아침에 떠날 때는 용돈도 주지 못했다고. 그러면서 거의 세 시간을 펑펑 울었다. 

저자가 비슷한 경우를 당한 다른 아이에게 해준 다음과 같은 말을, 이 아이에게 전해주어도 될 듯싶다.

“큰 상처를 입고 바로 우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열흘 만에 울고 어떤 사람은 일 년 만에 울어. 십 년이 지나서 울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어. 괜찮아. 사람마다 때가 다 달라. 꽃도 이른 봄에 피는 꽃이 있는가 하면 여름에 피는 꽃도 있고, 눈 내릴 때가 돼서야 겨우 피는 꽃도 있잖아. 시기가 있는 거야. 괜찮아.”

생각해 보면, 눈앞에서 참담한 죽음을 겪고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잊혀진다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다. 그 때문에 자신의 고통을 누군가 ‘잊지 않고 있다’고 느끼는 일은 매우 소중하다.
 
어느 희생 학생의 엄마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런 심경을 엿볼 수 있다. 찬거리를 잔뜩 들고 귀가하던 그녀가 하굣길 여학생들과 마주쳤다.
 
“짐이 무겁게 느껴져 발길이 더뎌졌다. ‘힘들어 죽겠다’ 하는 순간이었다. 어느 여학생이 ‘존나, 씨바, 빙신새끼가 어쩌고저쩌고’, 이러면서 지나가는데 가방에 ‘노란’ 리본이 달랑달랑. 그래, 어떤 ××가 이쁜 너를 열 받게 했을까. 나도 우리 아들 보고픈 거 삭히느라 열 받은 가슴이 숯덩이란다.”
 
저자의 말처럼 이 엄마 눈에 그 노란 리본은 “방석만큼 크고, 물에 빠진 사람에게 건네진 노란 구명튜브 같은” 무엇, 하나의 작은 구원이었다. 우리가 저 예쁜 욕쟁이 아이와 천사 같은 엄마에게 배우는 것,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사람 공부’일 것이다.

“세월호참사특수단 수사결과 규탄한다”2월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관계자들이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수사결과를 규탄하며 새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세월호참사특수단 수사결과 규탄한다”
2월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관계자들이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수사결과를 규탄하며 새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오는 16일이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558일이다. 여전히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고 가해자들은 어둠의 침실에 드러누워 장막 밖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진실을 찾는 순간이 길어질수록 상처 입은 이들이 견뎌내야 할 날도 그만큼 많아진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31일, “검찰세월호참사특별수사단(특수단)의 수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세월호 유가족 단체들이 낸 항고 사건을 서울고검이 기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특수단은 그보다 앞선 1월 19일 활동을 종료하면서 옛 국군기무사령부와 국가정보원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 의혹, 청와대·법무부의 외압 행사 의혹 등과 관련한 고소·고발을 무혐의 처분했다.

이에 세월호 관련 단체들과 민변이 “소극적인 수사와 부당한 법률해석을 통해 책임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부당한 처분”이라며 항고장을 제출하자, 이번에는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기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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