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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산 아래 한강을 보며 용산(龍山) 옛길에 우뚝 서다 [최철호 칼럼]

  • 기자명 양동균 명예
  • 입력 2018.11.2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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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빛 한강에 뜨니 큰 집들 낚시배에 가린다.
아침마다 나와 오뚝 앉으면 첫 햇살 목멱산에 오른다‘

 

▲ 목멱산 남산도서관과 용산도서관 사이 우뚝 선 퇴계 이황 상

 

[미디어파인=최철호의 한양도성 옛길] 새벽빛이 어슴푸레 흐르는 이른 아침, 양천현감이던 겸재 정선이 한강과 아름다운 산을 보며 붓을 힘껏 움직인다. 목멱조돈(木覓朝暾)이다. 목멱산은 예나 지금이나 소나무 울창하고, 봉수대와 국사당이 있는 명산 이었다.

 

겸재 정선은 오랜 벗 사천 이병연을 생각한다. 인왕산과 백악산 자락 집에서 시와 그림을 나눈다. 한양도성안 산과 강 그리고 계곡을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화폭에 담는다. 그리고 시를 쓴다. 두 절친은 진경시를 읽고, 진경산수화를 느끼며 공유한다. 시화(詩畵)는 쌍벽을 이룬다. 작품은 보물이 된다. ‘시와 그림을 서로 바꾸어 보자’라는 약속으로 ‘경교명승첩’에 담는다.

 

목멱산(木覓山)의 역사와 유래

 

한양도성안 내4산은 주산 백악산과 좌청룡 낙타산, 우백호 인왕산 그리고 남주작 목멱산이 한양을 감싸고 있다. 목멱산은 도성의 남산으로, 인경산(引慶山)이라 불리었다. 도성의 남쪽에 있는 산, 남산(南山)은 일반화된 이름이다. 마치 달리는 말이 안장을 벗는 형상으로 마뫼라고 했다. 또한 인왕산에서 내려와 한강을 보며 동쪽으로 휘어져 솟아 열경산(列慶山)이라 하였다.

 

▲ 목멱산 잠두봉에서 바라본 서울의 산_안산, 인왕산, 백악산과 삼각산, 도봉산

 

서울은 산이다. 산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안산-인왕산-백악산 그 뒤로 삼각산-도봉산-수락산까지 서울을 감싸며 우뚝 서 있다. 한양도성을 잇는 산과 산은 성곽과 성벽을 이룬다. 도성안에 궁과 궐,종묘와 사직단을 지킨다. 도성밖 성저십리에 큰 물줄기가 보이니 한강(漢江)이다.

 

목멱산은 화강암이며, 정상은 265.2m이다. 전국 5개 경로의 봉수대에서 목멱산까지 불과 연기로 위기상황을 알렸다. 목멱산 봉수대는 통신시설의 집결체로 경봉수(京烽燧)라 하였다.

 

목멱대왕(木覓大王)과 국사당(國師堂)

 

600여 년 전 백악산 정상 백악마루에 백악신사를 지어 봄, 가을 하늘에 제를 지냈다. 가뭄이 길면 기우제를, 장마가 길면 기청제를 지냈다. 목멱산 정상을 목멱대왕이라 봉하고 목멱신사를 지었다. 나라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했다. 또한 왕가의 병을 구원하며, 산악신앙을 하였던 곳이다. 목멱산 정상 가는길 잠두봉에 서면 장관이다.서울이 한 눈에 펼쳐진다. 한양을 생각하게 한다. 일제강점기에 국사당은 인왕산 선바위 아래로 강제로 이전 되었다. 지금은 N타워 아래 팔각정이 홀로 버티고 있다.

 

▲ 목멱산 정상 국사당을 향하는 길목 속 N타워

 

구름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산과 울창한 숲을 표현한 그림이 겸재 정선의 ‘목멱산도’이다. 목멱산은 서울 중구와 용산구의 경계다. 도성안과 성밖은 회현동과 후암동이다. 장충동과 한남동의 경계이자 접경이다.

 

목멱산 정상에서 한강을 보면, 동서남북 360도 광활하다. 멀리 용마산 너머 남한강 남양주 양수리와 너른 고을 광주 남한산성이 보인다. 관악산 자락 과천과 덕양산 자락 고양 및 개화산 너머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교하도 보인다.

 

한남동(漢南洞)의 유래를 찾아서..

 

목멱산 아래 남소문터를 지나면 한남동이다. 산을 등지고 강이 펼쳐지는 풍수지리상 최고의 길지다. 한양도성 따라 남쪽, 배산임수 교통의 요지다. 조선초 한성부 성저십리(城底十里) 지역이었다. 한성부 남부 한강방 한강계로 불렀다. 일제강점기에 고양군 한지면(漢芝面) 한강리(漢江里)에서 경성부 한남정으로 불리었다. 해방후 용산구 한남동으로 바뀌었다.

 

목멱산 자락 한강변에는 도성을 지키는 한강진(漢江鎭)이 있었다. 한강 상류에는 송파진, 하류에는 양화진등 군대가 주둔하였다. 현재 한남대교와 남산 1호터널이 이어져 대사관이 밀집되어 있다. 말레이시아, 미얀마, 리비아, 모로코, 나이지리아, 방글라데시 등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한다. 이태원동처럼 편리하고, 이슬람교 중앙사원이 있다. 수많은 역사와 문화를 교류하는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대의 이슬람 사원이다. 국내에 있는 9개의 이슬람 사원 중 총 본산이 한남동에 있다.

 

이태원동(梨泰院洞)의 역사와 유래

 

목멱산 자락 한강을 건너기 전 드넓은 동네이다. 한남동과 후암동, 보광동과 용산동이 접한 역사가 깊은 마을이다. 조선시대 역(驛)과 원(院)이 있어 유래된 지명이다. 도성 밖 동쪽엔 보제원(普濟院)과 전관원(箭串院), 서쪽에는 홍제원(弘濟院) 그리고 남쪽에는 이태원이었다. 조선초 공무로 영남로(嶺南路)로 향하는 첫번째 숙박시설이다.

 

▲ 목멱산 아래 두텁바위의 역사속 아름다운 마을_후암동 전경

 

이태원의 지명은 역사와 문화속에 여러번 변하였다. 조선 초 ‘이태원(李泰院)‘은 목멱산 맑은 샘물과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곳으로 도성 안과 밖 빨래터였다. 임진왜란 후 항왜군의 귀화로 ’이타인(異他人)‘이 거주하며 ’이태원(異胎院)‘으로 불리었다. 이후 효종때 배나무 밭이 많아 지금의 ’이태원(梨泰院)‘이 되었다.

 

한성부 성저십리 남부 이태원계였다. 일제강점기에 고양군 한지면 이태원리에서 경성부 이태원정으로 해방 후 용산구 이태원동으로 되었다. 한국전쟁 후 미군이 용산에 주둔하며 외국인이 많이 거주했다. 남산 2호터널과 3호널을 통해 반포대교와 잠수교가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상가도 밀집되어 있다. 아르헨티나,덴마크,루마니아등 대사관과 외국인 및 관광객이 많고 편리한 곳이다.

 

한풍(寒風)재는 목멱산과 한강쪽에 찬바람이 부는 곳이지만, 현재는 따뜻한 마을이 되었다. 새로운 상업문화의 중심지로 문화촌, 해방촌이라 불리는 서울의 명소이다.

 

후암동(厚巖洞)을 따라 성곽을 오르다

 

목멱산 도성안과 밖의 경계지역이다. 도성안 중구와 도성밖 용산구가 한눈에 보인다. 숭례문 둘레 남대문시장과 성문밖 후암시장이 접경이다. 남산 순환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둥글고 두터운 큰 바위가 있는 마을이다. 두텁바위 고개이다. 도성안 사람들과 도성밖에 자손이 귀한 사람들은 후암동, 두텁바위에서 기원을 하였다. 조선 초 한성부 성저십리 남부 둔지방(屯芝坊)이 해방 후 용산구 후암동이 되었다.

 

▲ 목멱산 소월로에 있는 시비,산유화

 

소월시비 봄과 여름을 알린다

 

용산역 지나 서울역이 근방이다. 남산 순환로인 소월로(素月路)을 따라 올라가면 백범 김구 상과 안중근 의사 상이 있다.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백범광장이다. 소월길은 소월시비가 있는 시인 김정식의 호를 딴 도로이다. 개나리와 벚꽃 지고, 진달래 피는 봄길에 목멱산은 절경이다. 여름은 더욱 울창하다.

 

용산 도서관과 남산 도서관 사이에는  퇴계 이황과 다산 정약용 상이 있다. 학생과 지친 시민에게 위안을 주는 쉼터이다. 독일 문화원쪽에 복숭아꽃이 활짝 핀다. 복숭아밭이 많아 복숭아 골로 불리는 도동(桃洞)이다. 곡우(穀雨) 지나 입하(立夏) 전 도화가 별유천지다. 하지(夏至) 지나면 녹음에 목멱(木覓)은 숲 우거지고 새소리가 천지다.

 

한양도성 성안과 성밖은 역사와 문화가 600여 년 쌓여 있는 곳이다. 특히 목멱대왕이라 칭한 목멱산 정상에서 한강까지 중요한 길목이자 군사적 요충지이다. 수운이 발달한 한강변은 600여 년 전 가장 중요한 터다. 이곳이 바로 용(龍)이 사는 곳이다. 용이 천을 따라 강에 가는 형국인 용산(龍山)이다. 백제시대 한강유역은 중요하였다. 용이 나왔다는 전설에서부터 한양도성안 궁안에 용인지,한강에 사는 용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 한양도성 성벽에서 바라본 목멱산과 용산

 

한강진과 노량진등 중요한 나루터가 한양도성 옛길이다. 개항이후 한강철교를 시작으로 큰 다리가 놓여진다. 한남대교·반포대교·동작대교·한강대교·원효대교등은 목멱산에서 한강(漢江)을 가로질러 강남·영등포·여의도와 연결되는 길이다. 용산은 서울로 향하는 관문이다.

 

한양도성 성곽, 최초의 신학교인 용산신학교와 새남터 순교성지 및 원효로성당이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효창원과 백범기념관등 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 할 독립운동가 7위 선열과 의열사도 있다. 또한 유관순 열사 추모비와 부군당 역사공원등 수많은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한여름 무더위 한강을 보며 바람소리에 한양도성 옛길 따라 거닌다. 

 

역사와 문화를 잇는 도시
한양과 한강을 묶는 고장
목멱산과 한강을 품은 보금자리

 

과거와 미래가 숨쉬는 지역,
산과 강이 만나는 이곳은 용산(龍山)이다.

 

▲ 최철호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저서)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최철호 소장]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지리산관광아카데미 지도교수
남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교수

저서 :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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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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