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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을 이해하는 왕도는 있는가?

  • 기자명 정수호
  • 입력 2018.11.30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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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중고등학교 시절 입시공부를 할 때 <영어의 왕도>라는 영어학습서가 있었습니다. 왕도(王道)는 그야말로 왕의 길 또는 으뜸이 되는 길이란 뜻인 듯합니다. 다음백과 사전을 찾아보니 ‘어떤 일을 하는 데에 마땅히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뜻이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 영어공부를 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이듯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여러 가지이고 여론 즉 민심을 해석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최근 방송가에서 여론전문가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는 여론동향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관심이 커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서점에 가서 여론이나 민심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한 책을 찾아보면 관련 서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론조사방법론 등 일반론이나 분석방법론 등에 관한 책들은 있어도 여론을 잘 이해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책은 잘 없는데요 이 점은 참 안타까운 대목입니다.

 

제 비즈니스는 여론과 민심을 잘 읽고 그것에 대한 대책을 잘 세우는 일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선거를 통해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분들’, ‘본인의 정치적 자산관리가 필요한 분들’이 주로 제 클라이언트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분들에게 조언 또는 컨설팅을 해 드리기 위해서는 저 스스로 여론을 제대로 읽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할 수는 없습니다. 클라이언트들이 이해하는 여론보다 더 깊은 심층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그분들에게 정무적 정치적 조언을 해 드릴 수가 있을 테니까요.

 

여론을 잘 읽는 것이 왜 중요한 지 한 가지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2011년 4월에 있었던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의 사례입니다. 현재 강원도지사님으로 일하고 계시는 최문순 전 의원과 엄기영 전 MBC 앵커와의 선거전에서 저는 당시 최문순 후보 캠프에서 홍보팀장업무와 캠프전략업무를 함께 담당했습니다. 선거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캠프 전략팀에서는 두 군데의 여론조사 회사에 여론조사 업무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대단히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A의 회사 조사결과는 15%~18% 정도 뒤지는 결과였고 B회사 결과는 5%~8% 정도 차이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언론기관에서 조사하여 발표하는 공표조사결과도 A회사의 조사결과와 유사했습니다.

 

두 가지 조사결과는 실천적으로는 전혀 다른 선거전략의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전자는 명백한 열세의 판세이고 후자는 경합적 열세인 상황이니까요. 여러분 같으면 어떤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전략기획을 하시겠습니까? 결론적으로 저는 B회사 조사결과를 믿어야 한다고 판단을 했고 그에 따른 선거전략을 기획했습니다. 이후에는 두 군데 회사에서 실행하던 여론조사를 B회사 중심으로 조사를 시행하여 선거 전체 과정의 민심 흐름을 추적하고 판단했습니다.

 

B회사의 조사결과를 근거로 몇 가지의 핵심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첫 번째 7번 예정된 TV토론에서 압승을 거둬야 전세를 역전할 수 있다. 두 번째 상대방의 약점을 지속해서 물고 늘어지는 공세적인 캠페인을 실행해야 한다. 세 번째는 공중전 특히 당시 트위터를 중심으로 활성화되었던 SNS 캠페인에서 압도해야 한다. 네 번째는 원주, 춘천 등 인구가 많은 양대 도시에서 승리해야 한다 등이었습니다.

 

추후 선거결과를 확인해서 종합해 본 결과는 B회사 여론조사 결과가 실제 여론 흐름과 맞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A회사 여론조사 결과는 지지율이 역전된 골든크로스 지점에서도 최문순 후보가 열세로 결과가 나왔었으니까요. 만약에 A회사 조사결과를 중심으로 선거전략을 기획했다면 저는 당시 선거에 승리하기 어려웠으리라 판단합니다. 제가 무엇을 근거로 B사의 조사결과를 신뢰했는지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위 2011년 강원도지사 보궐선거 경험과 같이 ‘선거를 통하여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분들’과 ‘본인의 정치적 자산을 관리하는 분들’은 여론과 민심을 잘 이해하고 그것에 따른 자신의 정치 노선과 행동지침을 결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론과 민심을 거스르고 실패한 사례는 너무도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현재는 이런 대표적인 정치세력이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럼 논지를 좀 바꿔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여론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저는 여론 또는 민심을 이해하는 것은 철학적 관점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여론을 잘 이해하는 것을 기술적인 문제, 방법의 문제로만 접근하면 여론을 잘 이해하기 매우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저의 주장입니다.

 

여론을 이해하는 길은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현장에 가서 직접 주민들과 대화하거나 의견을 청취하여 들어보는 방식이 한 가지입니다. 보통은 이 방식을 정성여론조사라고 합니다. 두 번째 방식은 통계적으로 설계된 표본을 추출한 데이터를 살펴보고 판단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이것은 통상 정량여론조사라고 합니다. 현업에 종사한 분들이나 여론조사의뢰를 많이 해 본 분들은 잘 알고 계시겠지만 여론조사를 해 보면 ‘~~ 이슈의 여론 동향은 대체로 ~~ 정도일 것이다.’식으로 가설을 세우고 조사설계를 하게 되는데 실제 조사결과가 가설과 유사할 때가 꽤 많습니다. 그런데도 여론조사를 하는 이유는 이 가설들을 검증하고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함입니다. 이 판단을 근거로 전략을 세우고 실천계획을 세우는데 이런 조사결과 데이터들이 없다면 ‘코끼리 장님 만지기식의 기획’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론조사를 하더라도 앞의 사례와 같이 어떤 여론조사 데이터를 근거로 판단을 할 지가 문제이고 또 같은 여론조사 결과를 어떻게 분석하느냐에 따라 전략이나 실천 방향이 달라집니다. 여론 또는 민심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론조사 설문도 잘 기획해야 하고 통계처리까지 완벽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론조사가 합리적으로 시행되었더라도 결과를 해석하는 데는 의견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앞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여론조사결과를 바라보는 관점 차이 때문에 발생합니다. 대체로 조사설계와 표본추출, 조사 설문, 통계처리 등이 합리적으로 되었다면 교차분석을 활용하여 여러 가지 의미를 찾아냅니다. 그런데 왜 관점에 따라 다른 분석이 나오게 될까요?

 

그것은 데이터를 보는데 두 가지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국민을 중심에 두고 보는 시각과 정치공학관점에서 보는 시각의 차이 때문이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그럼 이런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론과 민심은 당연히 국민을 중심에 두고 보는 것 아닌가?’. 이것은 무슨 궤변이지?’와 같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사례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겪었던 경험입니다. 첫 번째는 여론조사를 해서 보고서를 만들어 가면 ‘클라이언트가 믿을 수 없다.’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조사결과를 본인 멋대로 해석하고 독단적인 판단을 내리고 캠페인을 하는 경우입니다. 대단히 웃긴 상황이지만 현실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이런 경우는 당연히‘국민 중심으로 여론조사를 판단하는 시각’은 아닐 것입니다. 정도는 조금씩 다르고 상황은 다르지만, 위와 같은 일들은 실제로 많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다 알 수 있는 현재 대표적인 사례로는 자유한국당 모습인데 이분들의 엉뚱하고 무모한 행동들은 ‘여론과 민심을 정치공학적 방법으로 본인들 멋대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론을 잘 이해하는 길은 ‘민심을 강물 또는 바다로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즉 민심은 끊임없이 흐르는 것이고 변화하는 것입니다. 민심은 오늘은 칭찬과 격려를 보내지만, 내일은 따가운 매를 들기도 합니다. 그 변화하는 전 과정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왜 변화했는지를 끊임없이 추적하면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방식이 ‘국민을 중심에 두고 보는 시각입니다.’ 즉 ‘국민 생각이나 그 생각의 변화를 한 시도 놓치지 않고 잘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여론과 민심을 잘 이해하는 길입니다’

 

두 번째는 통찰입니다. 통찰은 직관과는 다릅니다. 통찰은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흐르는 강물 같은 민심의 변화와 원인’을 꿰뚫고 보고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그 연구결과의 정보를 잘 조합하고 묶고 분석하는 통찰이 뒷받침되어야 여론과 민심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진취적 시각입니다. 진취적 시각이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주관적인 측면입니다. 그래서 관점에 따라 여론과 민심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진취적 시작은 승리의 관점입니다. 아무리 작은 가능성이라도 그 속에서 승리의 가능성을 찾아내고 민심을 한 곳으로 모아내는 전략을 실천해 나가는 시각입니다. 실천 행동강령을 찾아내지 못하는 여론과 민심의 분석은 허망한 것입니다. ‘이러이러하게 될 수도 있고, 저러저러하게 될 수도 있다.’ 식의 분석이나 전망을 밝히는 분들이 많은데 이런 방식은 전형적인 평론가 스타일입니다. 평론가들은 세상에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런 평론방식은 전략과 행동계획을 결정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퇴진시키기 위해 2016년 10월 29일 광화문에서는 첫 번째 촛불 집회가 불과 몇만 명 정도의 국민참여로 시작하였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간다고 가정을 한다면 이 첫 번째 촛불 집회가 연인원 2천만 명이 넘는 거대한 시민혁명으로 성장할 것을 예측할 수 있겠습니까? 한 가지 현상 속에서도 민심을 잘 읽어내는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면 여러분은 아마도 시민혁명의 뜨거운 불길이 타오를 것을 확신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또 우리 모두는 도도한 역사 흐름과 대한민국 국민들의 힘을 믿고 매주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시민 행동을 함께함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당시에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민심을 제대로 읽고 있었던 것 아닐까요?

 

여론과 민심을 잘 읽는 왕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옳은 방향으로 세상을 바꿔나가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분들, 이런 분들에게는 여론과 민심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지혜가 늘 함께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인호 

(주) 얌전한 고양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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