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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 이야기① 연재를 시작하며

■ 맥락을 바꿔보자

  • 기자명 김진욱/기획위원
  • 입력 2018.12.11 12:06
  • 수정 2021.05.0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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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시그널 기획위원

[필자주] 자소서는 필자가 2016년 모바일 앱 개발회사를 퇴직하고 인생 이모작을 준비할 즈음 우연한 계기로 <랭어 연구소>와 협업하며 진행한 한시적 프로젝트였다. 자소서에 관심을 둔 이유는 자소서가 몰개성을 양산하는 교육, 어른들을 포함한 동시대인들이 가진 마인드셋(사고방식)을 반영하는 거울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개성이 죽고 획일화된 사고가 극복되지 않은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는 어떤 사회적 변화가 있다해도 풍요한 정신적 삶은 요원하다. 이 연재는 학생만을 위한 글이 아니라 '자소서'를 소재로 우리들 고정관념을 반추하는 글이다(물론 자소서 작성에도 도움이 된다). 본 연재는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맥락전환의 기본원리 / 맥락전환은 쉬운가 / 자동반응 / 자동반응의 다양한 형태들 / 범주화의 오류가 초래하는 닫힌 세계 / 진실을 억압하는 통념들 / 논리와 표현 / 태도 그리고 서술 / 사실과 의견의 구분 / 싫은 삶의 대안적 가능성 / 맥락전환의 선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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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 맥락 바꾸기(context reframing)가 있다. 한 상황과 사건을 다른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예컨대 비 오는 것은 '외출'이란 맥락에서 보면 나쁘다. 하지만 '모내기'라는 맥락에서 보면 좋다. 맥락에 따라 특정 상황에 대해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다. 관점 바꾸기다. 사고방식(mindset)을 바꿔 한 상황에 대해 새로운 맥락을 부여해 그 상황을 새롭게 창조한다. 이 '맥락창조하기'는 우리나라 EBS에도 방영된 엘렌 랭어(하버드대 심리학과, 하버드대 여성 최초 종신 교수)가 일반화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건 미국 뉴욕타임스가 2007 올해 아이디어로 뽑은 심리 실험이다.

대상은 뉴욕 호텔 객실 청소노동자였다. 그들은 밀기, 팔다리 뻗기, 들어 올리기 같은 노동 만으로도 권장 운동량을 충족하거나 초과한다. 그런데 통계상 이들 건강은 열악하다. 랭어는 이를 운동과 일이 별개 활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에게 건강을 위해 이미 충분한 운동을 하고 있음을 인지시켰다. 그랬더니 4주 동안 체중이 줄고 체지방 비율도 두드러지게 줄었다. 여기서 랭어는 “몸과 마음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개념에 불과할 뿐, 둘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 시각이 더 유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실험은 맥락 바꾸기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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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소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입시나 취업에 필요한 형식적 절차로, 경쟁 상황에서 숙제처럼 생각한다. 그럴듯한 말로 입시나 입사 담당자 입맛에 맞추면 된다고 보기에 천편일률적이 된다. 그 천편일률 때문에 지루한 자소서가 되고 이는 역으로 부정적 결과를 낳는다. 맥락을 바꿔 볼 필요가 있다. 진심으로 자기 관심, 지내온 생활, 자기 비전을 스스로 되묻고 대답하는 자기와의 대화로 바꾸는 것이다. 자소서 내용 자체도 마찬가지다. 의례적인 것을 재고해볼 수 있다. 그렇게 재고할 때 새로운 나만의 시각이 드러난다. 예컨대 ‘자기 인성 형성에서 가장 영향이 컸던 일을 써보라’라는 질문이 있다면 십중팔구 공부 못하는 친구를 도와줬더니 어쨌다는 등 친구 관련 혹은 그럴듯한 에피소드만 생각한다. 

실제로도 그럴까. 드라마의 한 장면이나 글귀 한 구절, 혹은 부모님 부부싸움 장면이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하는 것(태도)이다. 이 해석이 자기를 드러낸다. 통상 진학이나 입사 자료이므로 입시판단관이나 인사담당자는 지원자 태도를 중시한다. 예컨대 입사 면접에서 ‘그동안 뭐하셨어요?’라고 묻는다고 하자. 이때 그동안 고시공부를 했던 구직자가 (1)고시공부를 했어요. 라거나 (2)구직을 위해 시험을 준비했어요라고 대답했다고 하자. 별차이 없어 보이지만 두 번째가 좀 더 긍정적이다. 왜냐면 고시를 '구직을 위한 준비'라는 범위로 구직활동을 확장했고 동시에 태도가 더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자소서 작성자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쓰려 하지 말고 생각하라!'다.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쓰기 기술이 아니라 사고방식(mindset)이다. 맥락을 바꾸기 위해서는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통상 쓰는 자체만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 일에 대해 생각 하지(맥락을 바꾸지) 않고는 자소서건 뭐건 훌륭해질 수 없다. 다들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쓰기부터 한다. 하지만 생각에 비해 쓰는 것은 어렵다. 생각하기, 말하기, 글쓰기 중에 가장 쉬운 것은 당연히 생각하기다. 보통은 거꾸로 한다. 쓰기부터 시작한 후 생각하려니 생각이 될 리가 없다. 쓰기가 고역이 된다. 그 때문에 쓰기 전에 먼저 생각하라는 것이다.

혹자는 말할지 모른다. "말로야 쉽지요!”. 정말 어려울까? 어렵게 생각하니 어려운 것 아닐까? 랭어교수가 한국에 와서 강연할 때 그녀는 유독 큰 동작으로 움직이며 말했다. “맥락 바꾸기가 어렵다고요? 저는 지금 발표를 하면서 평소 부족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맥락 바꾸기죠!”. 자소서를 ‘자기 사연 구축을 위한 자신과의 대화’라고 생각을 바꿔 보자. 자기소개서 작성은 동시에 자소서라는 계기를 통한 ‘자기 바라보기’ 혹은 ‘자기 사연 구축하기’일 수 있다. 누군가는 지나치게 순진하고 비현실적인 것 아니냐고 비판할지 모른다. 하지만 맥락을 바꾸면 현실적인 성과도 좋아진다.

새로운 맥락을 부여하면 열린 태도를 갖고 유연한 사고를 하게 되고 ‘창의’가 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노파심이지만 창의를 돈이나 사업에 한정짓지 마시길 바란다. 요컨대 누구나 천편일률적인 것에 지루함을 느끼고 창의를 반긴다. 창의는 성과로 연결된다. 창의적이란 말은 사실 맥락을 바꾼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사과가 떨어지는 일은 자연에서 무수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중력이라는 맥락과 연결되면서 과학사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물론 이건 매우 어려운 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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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우연한 계기에 <메가스터디> 등에서 자기소개서 작성을 지도하는 교사와 학생대상(고입 예비반)으로 강의를 진행한 바 있다. 이 글은 그 때 고민한 내용을 토대로 한 것이다. 부족한 실력에 강의까지 하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20년 가까이 근무한 모바일업계서 2017년 퇴직 후 이모작을 준비했다. 그즈음 IT 재직시절 후배가 아버지 선물로 아버지 자서전을 준비하다가 아예 자서전 제작사를 창업했다. 사업 아이디어는 명망가나 자기 과시를 위한 출판이 아니라 가족 간 소통 실현을 위한 자서전이었다. 말하자면 개인 경험을 비즈니스로 확장한 것이고, 그것은 기존 자서전에 새롭게 맥락을 부여한 것이었다. 

여기에 필자가 잠시 결합했다. 그러면서 자기 이야기를 청소년으로 확대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러면서 랭어교수의 한국인 제자들이 설립한 <아이앤마인드>와 협업했다. 협업하면서 청소년 심리상담 워크시트와 자기소개서를 결합해 ‘청소년의 자기스토리 구축’으로 프로그램화 했다. 이외 개인적 경험도 도움이 되었다. 필자 아들 둘과 조카 이렇게 셋이 영재고에 갔다. 영재고 자소서를 준비할 때 내가 해 준 조언은 “맥락을 바꿔라”식의 거창한 게 아니었다. 예를 들면 “PC 앞에 앉지 말고 생각해라”, “질문을 읽어라”, “질문을 쪼개라”, “너에게 질문해라”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것만으로도 자소서는 충분히 좋아진다. 이 연재에서 얼마간 인사이트를 줄 수 있다면 이 경험에서 얻은 것이다. 

아울러 IT 분야에서 체득한 업무 기술도 약간 도움이 되었다. 자소서는 내용이 풍부하면서도 메시지를 짧게 하는 효율성이 필요한데 이것은 IT에서 늘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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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연재가 주변 자소서를 지도하는 독자나 자기 사연을 쓰려는 이에게 조금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소서는 이 연재의 소재에 불과하다. 맥락 바꾸기는 앞서 말했듯 창의성의 출발이며 응용 가능하기에 특정 상황 또는 행동에 대해 다면적 사고를 하는데 실마리나 작은 자극이 될 수 있다. 그러길 바라는 희망으로 부족한 연재를 시작한다. 물론 필자는 제 앞가림도 못한다. 그러니 지나친 욕심이며 의욕만 앞서고 결과는 별 볼 일 없는 시도가 될 수도 있다. 모든 책임은 부족한 필자 탓이다. 하지만 겁 없이 출발해 본다. 맥락 바꾸기를 위하여. 

덧. 오늘 명심할 것 한가지만 이야기하면 이거다. 자소서를 포함해 모든 훌륭한 글이란 자기만의 관점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럴려면 지금 주어진 상황의 맥락을 다시한번 생각해봐야한다. 그리고 새로운 맥락에서 상황을 재창조해야 한다. 

 

* 필자: 1985~1996년 성균관대 수학. 전 인포허브, 네오엠텔 본부장 등 모바일분야 IT업계 19년 근무. 스토리텔링 회사 <꿈틀> 기획이사를 거쳐 현 미니기업 <투와캠프> 운영 및 자영업. 꿈틀 재직 시 하버드대 종신교수인 엘렌 랭어의 한국인 제자들이 설립한 심리연구소 <엘 엠 아이 코리아>와 협업해 랭어 긍정심리학을 기반한 <마인드풀 자기소개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메가스터디 윈터스쿨> <알로곤 학원> 등에서 강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실험적 강의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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