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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어느 밀레니얼 세대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

  • 기자명 편집부
  • 입력 2018.12.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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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어느 밀레니얼 세대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

 

▲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이 13일 유가족과 함께 나선 현장조사를 통해 확보한 고 김용균씨의 유품들. 2018.12.15 사진 =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나는 시커멓게 날리는 먼지 속, 형체를 구분하기 힘든 흉측한 괴물 앞에 섰다. 그것도 처음부터 홀로. 21세기에 이처럼 험악한 곳이 있을 줄 미처 몰랐다. 영화 속 설정, 어쩌면 우리 할아버지들이 목숨 걸고 일하셨다는 옛날 오지 탄광이 이랬을지 모른다. 다만 흙을 파내 만든 동굴과 바퀴로 달리는 탄차 대신 거대한 철제 시설과 영혼을 삼킬 듯한 컨베이어 벨트 소리는 분명 이곳이, 24살 밀레니얼 세대인 나, 김용균이 살고 있는 현실의 실체임을 증명하고 있다.

 

 

하청에 재하청, 그 뒤에 도사린 ‘위험’

 

한국발전기술, 그럴듯한 이름의 회사에 1년짜리 계약직 노동자로 들어간 나는 곧장 회사가 설비 운전 도급 계약을 따낸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 배당되었다. 나는 그곳 연료운영팀 소속 운전원으로 임명되어 9·10호기 설비의 대부분을 차지한 컨베이어 벨트 앞에 배치되었는데 놀랍게도 그게 이곳의 핵심업무였다.

 

컨베이어 벨트 어딘가에서 뭔가 둔탁한 마찰음이 나면 좁은 철제 계단을 기어내려가야 했다. 계단은 들쭉날쭉하여 규격에 맞지 않는 듯했고 실내는 늘 어두웠기 때문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어떤 구간에서는 실내등이 꺼져 핸드폰에 의지해야 했다. 흐릿한 시야 속에 철제 앵글 형태의 석탄 통로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박힌 탄을 꺼낸다. 가끔 오작동 상태에서 머리를 넣었다가 기계가 돌아가면 무지막지한 벨트에 말릴 수 있으므로 초보자가 할 일도, 한 사람이 할 일도 아니다. 자칫 정지된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갈 경우 누군가 풀벨트라 불리는 안전줄을 잡아줘야 하는데 그럴 방법이 없다. 분명 매뉴얼상으로도 2인 1조 업무라 되어 있는데 나에게는 혼자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이 일은 애초 한전 정규직들의 몫이었지만 1980년대 말 자회사로 넘어갔고 그때 한전은 인원 감축의 일환으로 자신들의 정규직도 함께 넘겼다. 외환위기가 휩쓸던 때 자회사는 다시 업무 일부를 떼어 손자회사들을 만들었는데 그 대부분이 민영화되었다. 2013년 정부는 민간업체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 부분 경쟁 입찰을 도입했다. 이후 하청업체들은 2~3년마다 주기적으로 입찰에 참여하여 운명을 저울질 당했고 그리하여 모든 하청업체들이 도급업체로 전락해 피말리는 생존경쟁에 내몰렸다. 나는 그 하청업체 중 하나인 한국발전기술에 속한 계약직이다. 나름대로 희망도 있는데 여기서 일 년 이상 버티다 보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전 입사를 원한 내가 이곳에 온 이유이기도 하다.

 

같이 일하는 동료 60명 중 일부는 나와 함께 주로 낙탄 처리 업무를 맡는다. 컨베이어 안팎으로 튀어 날아가는 뜨거운 석탄 덩어리가 벨트에 끼어 운반 작업이 중단되거나 가열되어 불이 날 수 있으므로 이를 제때 치워야 한다. 이 일은 말처럼 단순하지 않다. 가령 2킬로미터가량 이어진 컨베이어 벨트 중간중간 숱한 연결부위가 있는데 거기 달린 문을 젖혀 속에 떨어진 석탄을 들어 올리는 일은 아무리 보아도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막막하다.

 

 

‘정규직’을 향한 무한 인내의 순간들

 

이처럼 허점투성이인 근무 환경 탓에 발생할 사고의 위험을 회사가 모르는 바 아니지만, 실은 이처럼 열악한 근로조건 덕에 챙길 최상의 이윤이 이 회사가 애초 노린 점일 것이다. 그로 인한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회사가 택한 방법이 하청을 주는 것이고, 하청 회사가 다시 같은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취한 방법이 재하청을 주는 것이다. 일이 그렇게 돌아가므로 이곳에서 낙탄 처리를 맡은 사람 몇은 우리 회사가 재하청을 준 회사에서 나온 사람들이며, 그중에는 나와 동갑인 아이도 있다. 이 아이는 쉬지 않고 탄을 들어 올리는데 아무리 파내도 일은 줄지 않았다. 이곳이 말로만 듣던 ‘위험 업무의 외주화’가 나를 거쳐 한 단계 더 나아간 현장이라는 사실, 심지어 법이 정한 안전장치도 무시하는 이곳이 국가가 책임지는 공기업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두 달이 지나면서 일이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모자라는 잠과 힘든 육체와 눈앞을 가리는 탄가루가 허용하지 않았다. 나는 밤마다 3킬로미터 구역을 홀로 오가며 작업장을 점검했지만 회사는 그 흔한 헤드랜턴을 주지 않아 손전등을 따로 샀고, 그것도 모자라 핸드폰을 써야 했다. 엄마의 전화를 받고도 탄 치우러 간다며 끊어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늘 배가 고팠는데, 원청에서 걸핏하면 때리는 낙탄 제거 지시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챙길 수 없는 탓이다. 구의역 사고로 사망한 아이처럼 나에게도 컵라면은 필수품이 되었다. 화를 낼 줄 몰라서인지 자꾸만 슬픔이 쌓여갔다. 불꽃처럼 포효하는 분노보다 핏물처럼 끈적이는 슬픔이 진실로 무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께 내가 하는 일을 제대로 말씀드리지 않은 게 잘한 짓일까. 취업하겠다고 수십 군데 이력서를 넣었는데 번번이 실패하다 겨우 구한 일자리인데, 실상을 알면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까. 재작년에 이어 지난 5월 정부가 재차 ‘공공부문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이라는 걸 내놓자 엄마는 대통령이 일자리 만들어 청년취업 해결해주겠다고 나섰다며 기뻐하셨는데. 그러고도 이상한 예감이 들었는지, 내가 취직하던 날 엄마는 “정규직 다 필요 없으니 우리 아들 죽지만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지.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껏 부모 속 한 번 썩인 적 없는, 엄마 아빠의 하나뿐인 외동이니.

 

그동안 나는 막연히 국가가 운영하는 공기업이라고 좋아했는데, 실상이 이렇다면 대체 국가란 무엇일까? 대통령? 국회? 노동부? 그들이 내게 해준 게 뭐였던가… 아니 이런 생각은 틀린 것일지도 몰라. 그들은 늘 이상을 말하지만 실은 그 모두가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자신들의 바람인지 몰라. 그렇다면 그들 또한 그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일 뿐인 그래서 나와 마찬가지로 가엾은 존재일지 모르지.  다만 그들이 이상적인 곳을 보는 동안 나는 이 괴물 같은 컨베이어 벨트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할 뿐.

 

 

 책임질 수 없다면 없애야 마땅한 곳

 

11일 새벽 잠결에 문제의 소리를 들은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나 휴대폰 전등을 켰다. 석탄 이동 설비인 컨베이어 저쪽 끝 아래에서 심하게 긁히는 소리가 났기 때문에 천천히 계단을 내려 걸어갔다. 탄이 튕겨나가는 소리 같기도 하고 벨트에 끼인 소리 같기도 했다. 하지만 롤러가 완전히 멈춘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어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당연하게도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고 있을 리도 없었다. 기계를 더듬어 짐작이 가는 위치에 서서 잠시 심호흡을 했다. 기계는 멈췄지만 어둠과 탄가루로 문제의 입구를 찾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얼마 안 가 입구를 찾았지만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숨을 크게 들이쉰 다음 그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몸을 더 밀어 넣었다. 그때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 전체로부터 오싹한 떨림이 전해져 왔다.

 

이곳에서 나의 적응을 가로막는 가장 큰 상대는 컨베이어 벨트의 소리에서 느껴지는 오싹함이었다. 그 소리는 늘 나를 압도했고, 그 소리가 끊기는 순간의 적막이 내 전신을 옥죄었으며, 그 소리 사이로 간간이 들리는 정체 모를 마찰음이 내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적어도 여기서는 성실하게 일하면 일할수록 고통의 양만 늘어나고 희망을 붙잡고 나아가면 갈수록 절벽이 가까워질 뿐이니, 이곳을 벗어나는 날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적어도 이곳은 없어져야 마땅합니다, 라고.

 

그리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동료들 말이 또 있었습니다. 아들 현장에서 봤을 때 현장에서 모습이 어땠냐고. 머리는 이쪽에, 몸체는 저쪽에, 등은 갈라져서 타버리고, 타버린 채 벨트에 끼어있다고 합니다. 어느 부모가 이런 꼴을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 故김용균 군 어머니의 말 중에서

 

동료들은 사고를 알고 즉시 회사에 연락했다. 원청인 서부발전 측은 비상한 속도로 움직였는데,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경찰 신고를 미루는 일이었다. 그 사이 취한 다음 조치는 회사에 법적 하자나 책임이 없도록 관련 증빙을 확보하거나 마련하는 일이었다. 이에 따라 회사는 보고 접수 53분 뒤 충남지방경찰청에 신고하는 한편, 상부기관인 산업자원부 보고서에는 시신 발견 18분 만에 경찰에 신고했다고 적는 기민한 이율배반을 실천했다. 이어진 해명 자료에서 서부발전 측은 나에게 석탄 치우는 일을 시킨 적이 없다고 발표했다. 이 일이 하청업체의 문제이고 자신들이 업무 지시를 내리지 않았으므로 책임질 일도 없다는 말이었다. 그 와중에도 9·10호기 설비의 컨베이어 벨트는 돌아가고 있었다.

 

(관련 보도를 종합하여 재구성)

 

 

글. 김선태(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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