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본문영역

자기소개서이야기?③ 자동반응과 브래드피트

자동반응과 브래드피트:무엇이 맥락 바꾸기를 가로막는가

  • 기자명 김진욱/기획위원
  • 입력 2018.12.24 14:09
  • 수정 2021.01.20 16: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진욱/시그널 기획위원

 

[필자주] 자소서는 필자가 2016년 모바일 앱 개발회사를 퇴직하고 인생 이모작을 준비할 즈음 우연한 계기로 <랭어 연구소>와 협업하며 진행한 한시적 프로젝트였다. 자소서에 관심을 둔 이유는 몰개성을 양산하는 교육, 어른들을 포함한 동시대인들이 가진 마인드셋(사고방식)을 반영하는 거울같았기 때문이다. 개성이 죽고 획일화된 사고가 극복되지 않은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는 어떤 사회적 변화가 있다해도 풍요한 정신적 삶은 요원하다. 이 연재는 학생을 위한 글이 아니라 '자소서'를 소재로 우리들 고정관념을 살펴본다(물론 자소서 작성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본 연재는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맥락전환의 기본원리 / 맥락전환은 쉬운가 / 자동반응 / 자동반응의 다양한 형태들 / 범주화의 오류가 초래하는 닫힌 세계 / 진실을 억압하는 통념들 / 논리와 표현 / 태도 그리고 서술 / 사실과 의견의 구분 / 싫은 삶의 대안적 가능성 / 맥락전환의 선각자들

1

<시그널>에 <자소서 이야기?> 연재를 시작한 날 사소한 에피소드다. 비공개 블로그에 연재에 올릴 글 초안을 올려놓고 비밀번호를 전달했다. 편집자 분은 이 글을 한글 파일로 복사해 매체에 올렸다. 발행된 글을 휴대전화로 접속해 보니 단락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연락해 수정했다. 이런 일은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소소한 일들이다. 그리고 사소한 문제다. 뭐가 문제일까? 우리가 쓰는 띄어쓰기는 1949년 정부가 제정한 <한글 띄어쓰기> 세칙 후 여러 차례 정비, 제정된 한글 맞춤법(1988)에 따른다. 이는 교과서 편찬과 출판물 대부분에 적용되었다. 이 세칙은 종이책을 기반으로 만든 것이다. 한글 파일의 맞춤법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현재는 어떨까.

지금 이 <시그널> 화면을 읽는 독자는? 대부분 휴대전화 또는 PC다. 즉 '미디어(매체라는 뜻이다)'가 책에서 액정으로 바뀌었다. 책은 옆으로 넘기지만 휴대전화는 아래로 스크롤 한다. 따라서 스크롤에 최적화된 띄어쓰기, 예컨대 문단 사이가 널찍한 게 읽기 좋다. 책은 문단 사이가 멀어지면 읽기도 불편하고 부피가 커진다. 하지만 우리가 인터넷에 글을 올릴 때 룰은 책 즉 '옛 미디어'를 근거로 하고 있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지난번 소개한 랭어 교수(하버드대 심리학과, 종신 교수)는 이와 비슷한 사례를 지적했다. 즉 사람들은 몇 가지 자신에게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정보를 접하면 그 정보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과거 이미 했던 대로 반응을 반복한다. 

 

2

그녀는 이를 ‘과잉 학습에 의한 자동 행동’ 혹은 ‘자동 반응’이라고 명명하며 다양한 사례를 소개한다. 예컨대 '휴가 때 런던에서 운전하게 된 미국인’이다. 도로 좌우가 바뀌었음에도 돌발 상황에선 익숙한 방향으로만 반응한다. 필자도 차로 지하주차장에서 나올 때 뒤에 차가 없는 데 깜빡이를 켠다. 랭어는 이와 관련한 연구를 소개하며 보통 사람들이 의식적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상태에서도 복잡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예컨대 동시에 읽기와 쓰기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빠진 상태서도 영단어를 받아쓸 수 있다. 지적(知的) 행위라 여기는 상당 부분이 완전 자동으로 이뤄진다. 마찬가지로 정보를 받아들일 때 종종 한정된 신호 만을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무시한다.

랭어에 따르면 오랫동안 해온 행동을 반복하는 이런 경향에는 근본적으로 마음 놓침(mindless)이 내포돼 있다. 우리는 간단한 단어 하나에도 자동 반응한다. 이 칼럼도 마찬가지다. 대다수 독자는 <자소서 이야기?> 라는 제목만 흘깃 보고도 ‘음, 나와 무관한 얘기군, 패스!’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자동 반응은 일상을 영위하는 데 중요하다. 하지만 열린 인식을 하는 데는 장애가 된다. 호모사피엔스 후배인 우리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지난번 필자가 자소서를 쓸 때 ‘질문을 읽어라’라고 자주 말했다고 했다. 모든 자소서 작성자는 자신이 자소서 문항(요구문)에 대해 매우 익숙하고 질문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문항을 한번 보자.

“본인이 스스로 학습계획을 세우고 학습해 온 과정과 그 과정에서 느꼈던 점, 학교 특성과 연계해 지원 학교에 관심을 두게 된 동기, 입학 후 자기 주도적으로 본인의 꿈과 끼를 살리기 위한 활동계획 및 졸업 후 진로 계획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기술하십시오.”

이 질문은 한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를 묻고 있다. ①본인이 스스로 학습계획을 세우고 학습해 온 과정은 무엇인지 소개하라 ②그 과정에서 느꼈던 점은 무엇인가 ③학교 특성과 연계해 지원 학교에 관심을 두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④입학 후 자기 주도적으로 본인의 꿈과 끼를 살리기 위한 활동계획은 무엇인가 ⑤ 졸업 후 진로 계획은 무엇인가이다. 응답자는 질문자가 뭘 묻는지 알아야 답할 수 있다. 하지만 질문지를 덮고 뭘 물었는지, 몇 개 물었는지 꼽으라면 태반이 못한다.

경영학 구루인 피터 드러커는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어떤 현상을 숫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이고, 정확히 모른다는 것은 그것을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은 현재 상태를 개선할 수 없다는 뜻이다”.

즉 필자가 ‘질문을 읽어라’라고 강조하는 것은 질문에 대해 자동 반응하지 말라는 뜻이다. 대답도 마찬가지다. 질문의 가짓수를 알아야 대답할 가짓수를 셀 수 있다. 그리고 한 질문 당 몇 가지를 답해야 할지 생각할 수 있다. 예컨대 느낀 점 몇 가지, 배운 점 몇 가지. 어려운 게 아니다. 만일 내가 오늘 운전 학원에 갔다면 시동 걸기, 후진, 전진 세 가지를 배운 것처럼. 어떻게 대답의 가짓수를 셀까?

 

3

마음챙김 상태(mindful)에서 질문을 받아들이며 질문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랭어에 의하면 마인드풀이란 ①새로운 것을 알아차리고 ②현실로 진입하며 ③맥락(어떤 일이나 사물이 서로 연관되어 이루는 줄거리)에 민감한 것을 말한다. 그래야 대답할 가짓수가 명료해 진다. 몇 년 전 연예 신문기사를 예로들자. 기사는 다음과 같다.

[앤젤리나 졸리와 이혼소송 중인 브래드 피트가 예정된 행사에 불참한다. 27일(현지시각) 미국 '엔터테인먼트투나잇'에 따르면 브래드 피트는 이날 열리는 ‘보야지 오브 타임(Voyage of Time)’의 프리미어에 불참한다고 공식적으로 알렸다. 브래드 피트는 예정됐던 행사에 불참하게 됐음을 알리며 “‘보야지 오브 타임’은 시간의 탄생을 기록해 아이들과 가족이 함께 보기 좋은, 정말 아름답고 독특한 아이맥스 영화다”라고 추천사를 전했다.

그리고 “이렇게 매혹적이면서도 교육적인 프로젝트에 함께 하게 돼 정말 기쁘다”라고 덧붙였다. 브래드 피트는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내레이션에 참여했다. 이어 브래드 피트는 “하지만 나는 최근 우리 가족이 처한 상황에 집중하고 있고, 나로 인해 이 멋진 영화에 대한 관심이 흐트러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모두가 이 영화를 보기를 바란다”라고 불참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혼소송으로 시사회에 가지 못하는 이유를 대변인을 통해 밝힌 기사다. 이를 인용하는 것은 그가 의견을 말하는 방식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참여한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 그 영화를 함께 해 기쁜 이유, 그리고 시사회에 참가하지 못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다.먼저 영화가 좋은 이유. ①시간의 탄생을 기록한 영화다 ②그래서 아이들과 가족이 함께 보기 좋다 ③아름다운 영화이다 ④독특한 영화이다 ⑤아이맥스 영화이다. 아울러 이 영화에 함께 해 기쁜 이유. ①매혹적인 프로젝트 ②교육적인 프로젝트이다. 마지막으로 시사회에 가지 못하는 이유. ①가족이 처한 상황에 집중하고 싶다 ②자기 일로 영화에 대한 관심이 흐려지길 원치 않는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개수’다. 영화가 좋은 5가지, 영화에 참가함으로써 기쁜 2가지, 시사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이유 두 2가지이다. 이를 주변 자소서와 비교해보라. 질문에 답을 몇 개 썼는지 세어 보라. 단 하나의 이유도 제대로 담지 못한 글이 태반일 것이다. 반면 위 인터뷰는 불과 네 줄이지만 답변은 다섯가지다. 자소서를 못쓰는 이유는 질문을 잘 읽지도 않고 질문을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열린 상태로 집중해야 한다. 필자는 청년시절 수행처인 사찰에서 잠시 생활한 적이 있다. 그 곳에 항상 붙어 있던 표어 하나가 “잘 듣고 합니다”였다. 흘깃 듣지 말고 잘(!) 듣는 것다. 잘 듣는(보는) 것은 ‘낯선 것, 새로운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필자는 2편부터 연재 제목을 <자소서 이야기>로 <자소서 이야기?>로 바꿨다. 선입견을 줄이려 살짝 바꿔본 것이다. 그리고 주의를 기울인 독자는 아시겠지만 1편 복습을 위한 10개항 중 10번에 제목을 바꾼 이유를 썼다. "1편글에서 거론되거나 시도된 맥락 바꾸기는 모두 몇가지 일까?"였다. 여기서 민감해야할 단어는 ‘시도 된’ 이다. 여기서 강조하려는 것은 조그만 변화에 늘 기민하라는 것이다. 오늘 요지는 이것이다. 변화에 민감하자. 아울러 자동 반응하지 말라, 질문을 읽어라, 질문의 개수를 세라, 대답의 개수를 세라. 이를 위해 필요한 딱 한 가지는 랭어가 쓰는 용어를 빌면 마음 챙김(mindfulness)이다.

______

필자: 1985~1996년 성균관대 수학. 전 인포허브, 네오엠텔 본부장 등 모바일분야 IT업계 19년 근무. 스토리텔링 회사 <꿈틀> 기획이사를 거쳐 현 미니기업 <투와캠프> 운영 및 자영업. 꿈틀 재직 시 엘렌 랭어의 한국인 제자들이 설립한 심리연구소 <엘 엠 아이 코리아>와 협업해 랭어 긍정심리학을 기반한 <마인드풀 자기소개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메가스터디 윈터스쿨> <알로곤 학원> 등에서 강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실험적 강의 진행. 

 

 

 

관련기사

저작권자 ©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