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본문영역

계룡산(鷄龍山) 신도안에서 600여 년 전 도읍지 계룡(鷄龍)을 만나다 [최철호 칼럼]

  • 기자명 양동균 명예
  • 입력 2019.01.23 09:5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계룡산 높이 솟아 층층이 푸름 꽂고
맑은 기운 굽이굽이 장백(長白)에서 뻗어왔네.
산에는 물 웅덩이 용이 서리고
산에는 구름 있어 만물을 적시도다.

내 일찍이 이 산에 노닐고자 하였음은
신령한 기운 다른 산과 다름이라
때마침 장맛비 천하를 적시나니
용은 구름을 부리고 구름은 용을 좇도다.“

 

경재 서거정(徐居正)이 계룡산에 올라 읊은 계악한운(鷄嶽閑雲) 시(詩)다.

 

▲계룡산 신도내 도성 안 주초석 및 석재_600여 년 전 궁궐터 흔적

 

젊음이 샘솟는 계룡산을 가다

 

백두대간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을 향하는 산세는 크고 웅장하다. 지리산에서 뻗어 나온 한 갈래 산줄기가 덕유산을 향한다. 덕유산에서 갈라져 300리를 거슬러 올라오니 비단결 같은 물줄기와 하늘을 나는 독특한 산에 멈춘다. 산세가 태극이요,강물의 흐름도 태극같은 형세이다. 산(山)태극 수(水)태극 길지이며 명산이다. 민족의 영산이다. 계룡산 굽이굽이 28개 높고 낮은 힘찬 기운을 봉우리마다 머금고 있다. 큰 봉우리부터 작은 봉우리까지 사연이 있고 전설과 미래가 담겨 있다.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과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이라는 풍수지리가 말하는 명당이다. 왜란과 호란을 견딜 수 있는 십승지지 중 한곳이다. 계룡산은 사람의 산이자,생명의 산이다. 민족의 영산이자 성산으로 불린다.

 

닭 벼슬을 쓴 용의 형상,계룡산

 

가장 높은 천황봉(845m)이 주봉이다. 연천봉(739m), 삼불봉(775m), 문필봉(756m), 수정봉(664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마치 닭 벼슬을 쓴 용의 모양을 닮았다. 관음봉, 황적봉, 도덕봉, 신선봉, 막적봉, 임금봉, 형제봉, 장군봉, 천쌍봉, 함지봉, 함박봉으로 봉우리가 병풍처럼 좌청룡 우백호로 끝없이 이어진다. 계룡산 자락은 공주, 대전, 논산, 계룡에 걸쳐 있다.

 

갑사(甲寺) 찾아 가는 길

 

▲24절기 마지막 대한 지나 산속 계곡 풍경

 

계룡산 계곡물은 금강으로 모인다. 크게 7개의 계곡과 3개의 폭포가 흘러흘러 비단결 물줄기가 된다. 노성천, 구곡천, 용수천, 갑천등이 금강으로 간다. 골짜기에는 너무도 익숙한 동학사.갑사.신원사 같은 고찰이 자리하고 있다. 명승, 대찰이 즐비하다. 계룡산 줄기 따라 동서남북 큰 절이 있다. 하늘과 땅,사람 가운데 으뜸 사찰이 갑사(甲寺)다. 가장 오래된 비구니의 강원인 동학사(東鶴寺)가 있다. 계룡산 산신제를 지내는 중악단이 있는 신원사(新元寺)는 수많은 사람이 오고간다. 철화분청사기의 시작을 알린 구룡사터는 도예촌이 되어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춘(春) 동학,추(秋) 갑사’ 계룡산은 4계절 24절기 절경이고 별천지이다. 특히 용추폭포는 계룡시 신도안에서 신원사로 가는 길에 용이 승천하였다는 숫용추가 있다, 또한 용화사쪽에 암용추가 있어 자웅 용추계곡물이 이어져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곳이다. 계룡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다.

 

계룡시 신도안은 천년을 기다린 산 자락에 있다. 신비롭고 위엄있는 산을 품고 있다. 천재지변, 전쟁에도 안전한 산이라 불리며 조선의 첫 도읍지로 종묘와 사직단을 지었다. 궁과 궐을 짓고, 종각과 도성을 쌓으러 했다. 수많은 사람이 동원되어 1년을 쌓고 지었다. 사람을 품고 패기와 역동성을 심었던 도시이다. 신도읍지 건설 도중에 금강 너머 한강으로 간다. 계룡산 넘어 삼각산으로 도읍지를 옮긴다. 애석하지만 역사의 한 단면이다.

 

계룡산은 젊음이 샘솟는 산이다. 계룡은 청년같은 도시다. 작지만 웅장하다. 적지만 포괄적이다. 3개 면과 1개 동으로 이루어진 도시다. 전국 시(市) 중에서 1개의 동은 계룡시가 유일무이하다.

 

계룡의 역사와 유래를 만나다

 

▲계룡산 신도내 도성 안 주초석 및 석재_600여 년 전 도읍지 흔적

 

계룡은 마한의 땅이었다. 백제때에는 황등야산군에 속하다가 통일신라때 황산군이었다. 고려때 연산현과 공주목이었다. 조선때 연산군에서 두마면(豆磨面)이 되어 논산군에 편입된다.계룡대 육해공군 3군본부가 이전되며 대규모 군대시설과 군인 가족들이 주축이 된 도시다. 2003년 계룡시가 되었다.

 

계룡시는 신도안면, 엄사면, 두마면 3개의 면과 금암동 1개 동이 있다. 신도안면은 600여 년 전 도읍지처럼 역사와 문화가 쌓여있다. 계룡산 신도안 주초석 석재, 왕대리 모원재, 왕대리 신원재, 두계 은농재, 금암동 염선재등은 귀중한 문화재이다. 또한 신도안 용동리 암용추, 부남리 숫용추는 용이 살았다는 전설과 함께 용담, 용소가 있는 비경이자 별유천지이다.

 

계룡은 산(山)이다. 산과 산이 이어져 있다. 계룡은 봉우리와 봉우리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나라 명산이자 영산인 계룡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계룡산은 역사적 문화재와 전설이 많다. 희귀동식물과 산림자원이 풍부하다. 백제의 5악(嶽)으로 중요한 명산이다. 통일신라의 5악(嶽) 중 서악이었고, 산신제를 모시던 영산이다. 조선시대에는 3악단(嶽壇) 중 중악단으로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계룡은 역사와 문화의 도시다

 

▲계룡산 신도안 도읍지의 600여 년 전 대궐터와 주춧돌

 

계룡은 계룡산이 한눈에 보이는 역사와 문화의 통로이다. 산 좋고 물 맑고 공기 좋은 풍요로운 곳이다. 작지만 알찬 도시, 교통과 군사의 중요도시다. 600여 년 전부터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려 했던 옛 도읍지다. 왕사 무학대사와 태조 이성계 그리고 삼봉 정도전이 수없이 오가던 흔적이 전해온다.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기 위해 주초와 제방도 있다. 주춧돌 94개 중 92개가 보존되어 있다. 또한 ‘대궐터’, ‘동대궐’, 종로터‘ 및 동문, 북문, 남문터도 있다. <정감록>에서 주장하는 신도읍지로도 유래가 깊은 지역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개벽을 꿈꾸는 도시다. 사람을 품고,패기와 역동성을 찾아가는 도시인은 꼭 한번 들러야 할 곳이다. 한양도성 옛길에서 신도안 새길을 찾는다.

 

▲대한 지나 입춘을 향해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

 

역사와 문화가 잠재되어 있는 도읍지,
미래를 꿈꾸는 청춘과 역사가 만나는 곳,
옛 도읍지를 통해 다가오는 미래를 설계 해 본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마음으로 100년 후 샘솟는 젊음을 만난다.

 

▲최철호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_(저서)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최철호 소장]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지리산관광아카데미 지도교수
남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외래교수

 

저서 :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제공 : 미디어파인)

저작권자 ©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